에로스, 달콤씁쓸한 - 모호

에로스, 달콤씁쓸한 - 모호

$22.00
저자

앤카슨

저자:앤카슨
1950년캐나다온타리오주토론토에서태어났다.시인,에세이스트,번역가이자고전학자이다.‘생업으로고대그리스어를가르친다’라는짧은문장으로자신을소개하기도한다.어린시절앤카슨은서점에서윌리스반스톤이번역한『사포시전집』을보고고대문학에마음을빼앗겼다.고등학교때부터는선생님이점심시간마다틈틈이가르쳐준고대그리스어로고전을읽기시작하며사포,에우리피데스,소포클레스등수천년전시인들을벗으로삼았다.이후토론토대학에진학해고대문학박사학위를취득한그는현재까지도프린스턴,맥길,코넬등여러대학에서고대문학을가르치고있다.카슨은활발한저술활동으로고대와현대문학,시와산문을한데아우르는독창적인작품세계를꾸준히개척해왔으며현재세계문학을이끄는문인으로주목받고있다.A.M.클라인상,맥아더펠로우십,구겐하임펠로우십,그리핀시문학상등다수의상을받았으며,‘T.S.엘리엇상을받은최초의여성’이라는타이틀을안기도했다.2020년에는“고전연구로혁신적인시학을구축하고현시대를인식하도록했다”는평가를받으며아스투리아스공상을수상했다.

역자:황유원
서강대학교종교학과와철학과를졸업했고동국대학교대학원인도철학과박사과정을수료했다.2013년『문학동네』신인상으로등단해시인이자번역가로활동하고있다.시집으로『하얀사슴연못』『초자연적3D프린팅』『세상의모든최대화』,옮긴책으로『짧은이야기들』『유리,아이러니그리고신』『패터슨』『모비딕』『바닷가에서』『폭풍의언덕』『위대한개츠비』등이있다.김수영문학상,현대문학상,김현문학패등을수상했다.

목차

서문―9
달콤씁쓸한―12
사라진―25
책략―30
전술―39
손을뻗음―52
가장자리찾기―59
가장자리의논리―63
가장자리의상실―75
가장자리의아르킬로코스―86
알파벳의가장자리―98
연인은사랑에서무엇을원하나?―112
쉼볼론―124
새로운의미―135
역설적인무언가―145
나의페이지는사랑을나눈다―150
문자,편지―158
접힌의미들―170
벨레로폰테스는결국완전히잘못알고있다―175
현실주의자―185
얼음-쾌락―190
지금그때―200
에로티코스로고스―210
옆으로비켜서기―212
살아있는것에주는피해―221
미다스―226
매미들―233
재미와이익을위한정원가꾸기―237
진지한무언가가결여되어있다―242
장악―245
내게그부분을다시읽어줘―251
지금이시작되는곳에서그때는끝난다―257
날개는얼마나큰차이를낳는지―264
이대화편은무엇에관한것인가?―275
뮈토플로코스―279
참고문헌―289
옮긴이의말―303

출판사 서평

시작부분은결정적이다.(…)우리의이야기는에로스가우리에게들어오는순간시작된다.
_254~255쪽

시작부분은에로스적맥락에서결정적이다.날개를단에로스는난데없이나타나우리를사랑에빠트리고우리가지금껏살아온적없던삶으로우리를데려가기때문이다.그렇다면에로스는언제시작되는가?앤카슨은그시작부분이우리통제를벗어난다고말한다.“그순간은아주찾기어려워서,늘너무늦고만다.우리가사랑에빠졌을때는언제나이미너무늦은순간이다”(249).
통제력을벗어나는이시작부분은살아있는무언가,끊임없이변화하는무언가가터져나오는지점이라는점에서또한결정적이다.(앤카슨에따르면)에로스에사로잡힌연인은왠지그어느때보다‘살아있다’고느낀다.연인은시간속에서유기체로서살아있는,고유한자신을자각한다.
1986년출간된작가앤카슨의첫작품『에로스,달콤씁쓸한』이에로스를이야기하고있다는점은많은것을함축한다.고대문학으로박사학위를막받고작가로서의시작부분에선앤카슨은다른무엇이아닌에로스에대해이야기한다.그는난데없이우리를사로잡는에로스를가까스로붙잡아자신의이야기시작부분에놓는다.그결과에로스를통해작가앤카슨의결정적인시작부분이드러난다.거침없이우리삶에찾아와우리를변화시키고‘살아있음’을느끼게하는에로스를통해.‘앤카슨의이야기는에로스가들어오는순간시작된다.’

앤카슨의에로스에대한탐구는맞붙은서른다섯개의장으로엇갈리듯이어진다.그는그리스로마의서정시와로맨스에서부터현대작가들의시와소설,플라톤의대화편을탐닉하다가이내문자사용과에로스탐닉과의관계를파헤친다.수많은이름과시대,장르를경유하는움직임은현기증을불러일으킬정도이다.가령“필기체와활자체사이의차이,진짜브론스키와상상속브론스키사이의차이,사포와‘가만히귀기울이는남자’사이의차이,(…)바로그지점에서욕망은느껴진다.이공간을가로지르며에로스의스파크는연인의마음속에서기쁨을작동시킨다”(118~119)와같은문장에서,우리는다양한문학작품,문자학및정신사의맥락을에로스라는하나의지점으로묶는그의기민한움직임을마주한다.
그런데독자가이움직임에감탄한다면그것은단순히그가보여주는박학때문만은아닐것이다.감탄은그가언급하고분석하는개개의대상이아니라그것들에손을뻗어한데겹쳐놓는행위에서비롯된다.아닌게아니라그는에로스적욕망이손을뻗는행위그자체에있다고말한다.

에로스는경계의문제다.그가존재하는것은어떤경계가존재하기때문이다.손을뻗음과붙잡음사이,시선과응답하는시선사이,‘나는널사랑해’와‘나도널사랑해’사이의간격속에서욕망의부재하는현존이활기를띤다.
_59쪽

앤카슨은에로스를그그리스적어원에따라‘없어진것에대한욕망’으로정의한다.연인이원하는상대방은현재자신곁에있지않은존재인것이다.그렇다면에로스적욕망은언제나여기없는그것을향해손을뻗는행위를수반한다.앤카슨은묻는다.“연인은사랑에서무엇을원하나?”표면적으로연인은상대연인을원하는것처럼보인다.그러나그는이내연인의기쁨이상대연인이아니라상대연인을향해손을뻗는행위자체에있다고말한다.즉,연인은언제나처럼계속해서상대연인을향해손을뻗는행위를계속할수있기를욕망한다.
『에로스,달콤씁쓸한』에서앤카슨은에로스를이야기하기위해다양한사례들을제시한다.그런데멀리떨어져있던것들에손을뻗어하나의단일한주장이가시화되려는순간그는돌연이야기를다른곳으로돌려에로스의또다른면을제시한다.저자스스로가에로스에대한명확한결론을내기를의도적으로지연하는듯하다.즉,그는마치사랑에빠진연인처럼에로스의여러면을향해손을뻗는그행위자체에탐닉한다.그렇다면그는누구와혹은무엇과사랑에빠져있는가?에로스그자체와.그는글쓰기를통해에로스에대한에로스를드러낸다.그런면에서글의말미,소크라테스에대한아래문장은이책에드러난저자의모습을그대로반영하고있다.

소크라테스가아주분명히보았듯이,알려진것과알려지지않은것사이의차이를향해손을뻗는것은큰위험을동반하는일이다.그는그위험을감수할가치가있는것으로여겼는데,그자신이구애자체와사랑에빠져있었기때문이다.그리고그렇지않은사람이누가있겠나?
_287~288쪽

잡힐듯잡히지않는‘달콤씁쓸한’에로스를뒤쫓는앤카슨의글쓰기를하나의주장으로요약하기란불가능하다.그가펼치는에로스의면면들은그가참조하는작가와사상가,예술가만큼이나개성적인동시에서로유기적으로얽혀있기때문이다.그러나아무래도문자중독자,문예인입장에서가장흥미로울지점은그가에로스와문자,에로스와읽기/쓰기,나아가에로스와앎을겹쳐놓는순간일것이다.그는에로스라는개념이구술사회에서문자사회로넘어가면서사람들에게더예민하게인식되었고첨예하게다뤄졌다고주장한다.다시말해,에로스탐닉과문자사용은서로유사한성격을지니고있으며,후자가전자를증폭시켰다는주장이다.처음엔과도한것으로들리던이주장은그러나문자사적인근거와다양한문학작품분석이쌓이며설득력을얻는다.
“알파벳표기의어떤부분이에로스적인가?”(79)책의초반에제기되었던이문장은후반부에이르러“읽기와쓰기의어떤점이에로스적인가?”(184)와같은문장으로변형되더니서서히앎그자체에대한탐구로이어진다.

에로스가연인의마음속에서작용하는방식과사상가의마음속에서앎이작용하는방식사이에는어떤유사성이있는것처럼보일것이다.소크라테스시대부터철학은그유사성의본성과쓰임새를이해하려고노력해왔다.하지만철학자들만그런노력에호기심을보이는것은아니다.나는이두행위,즉사랑에빠지는것과앎에이르는것이왜나를진정으로살아있다고느끼게만드는지파악하고싶다.그것들에는전기가통하는것과도같은무언가가있다.그것들은다른어떤것같지않은대신서로비슷하다.
_125쪽

이탐구는책의후반부플라톤의『파이드로스』에대한독창적인독해를통해절정에이룬다.『파이드로스』가무엇에관한대화편인지는오랜논쟁의대상이었다.소크라테스와파이드로스의사랑에관한대화는어느순간글쓰기에관한대화로변하고,그이후에로스는두번다시나타나지않기때문이다.즉,『파이드로스』는한쪽으로는에로스로,다른쪽으로는로고스(‘이야기’‘연설’‘이성’‘논리’‘담론’을뜻하는그리스어)로양분되어있다.
그러나앤카슨이보기에이것은표면적인모호함이다.그는『파이드로스』를읽어내려가며참된로고스와진정한에로스가유사하다는것을,나아가모든로고스가그안에에로스적욕망을내포하고있음을밝힌다.

서두에제시한바와같이“우리의이야기는에로스가우리에게들어오는순간시작된다”.에로스는단한번의날갯짓으로우리삶을습격하는침입이다.사랑에빠지면우리는갑자기세상을‘있는그대로’보는것같은기분에빠진다.동시에그것은정상적인삶을불가능하게한다.고대그리스인들에따르면에로스는일종의광기mania이다.이갑작스러운습격,거대한변화는그자체로통제불가능한것이어서그시작을막을수있는사람은없다.중요한것은이에로스와의조우를받아들이는방식이라고앤카슨은역설한다.에로스라는거대한변화앞에서‘사랑하는사람’과‘지혜를사랑하는철학자’는기꺼이위험을감수한다.“앎에대한욕망이위험에대한염려를넘어선다.”

『에로스,달콤씁쓸한』은우리에게단지에로스에대한지식만을전해주는데그치지않고욕망의침입을두려워해서는안된다는,자아가파괴되는게두려워몸을움츠리기만해서는우리자신이누구인지영영알수없게될거라는경고섞인가르침까지도전해주는책이다.그러니까이책은우리를살고싶게만든다.그것은우리에게날개를돋게하고,육신과정신이훼손되는한이있더라도그날개를펼쳐반드시참여해야만하는진짜‘삶’속으로날아가게만든다.
_‘옮긴이의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