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은 보리차가 잘 어울리는 달 (박지일의 7월)

칠월은 보리차가 잘 어울리는 달 (박지일의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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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나는 종종 둘 이상의 나를 사는 것 같다
우리가 종종 둘 이상의 우리를 함께 살듯이
둥질이라도 벌여보려는 시도이다…… 행한 것을 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쓴 것을 행하기 위한 쓰기인 셈이고 나를 빌려와서 쓰는 글이 아니라 글을 빌려와서 잠시라도 나를 살아가게 만들기 위한 시도이다…… _「그것을 쓰기」 부분

나는 대부분 그렇게 글을 썼고 그렇게 내가 쓴 글을 잊어왔다. 보면서 나는 나를 잊어가니까. 보고 있으면 잊힌다. (…) 그 옆에는 엄마 사진이 있다./나는 엄마만 본다. 엄마를 잊기 위해서. (…) 나는 관에 누운 엄마를 본다. 끝까지 본다./엄마란 엄마는 다 잊기 위해서. _「칠월은 앉아 있기 좋은 달」 부분


난다 출판사 시의적절 7월의 주인공은 시인 박지일이다. 『칠월은 보리차가 잘 어울리는 달』은 그의 첫 산문집으로 시 여덟 편과 함께 산문, 짧은 이야기와 일기, 단상 등을 실었다. 202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박지일 시인은 ‘정물적으로 보이면서도 움직이고 있는 기체적인 시세계’로 심사위원을 매혹시키며 “지금 한국 시에 필요한 감각”으로 호명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모국의 오래된 곳과 먼 곳의 말을 찾아나서는 종횡무진’(이원)을 보여주며 ‘광활한 환유적 상상력의 폭’(김행숙)으로 미학적 실험을 계속해나간 그는 2021년 묶어낸 첫 시집 『립싱크 하이웨이』(문학과지성사)에서 ‘하나의 정황을 둘러싼 채 수없이 비껴가는, 영원히 완성되지 못할 이야기’라는 ‘물음의 자리에 우리를 데려다놓고 그 의미를 느리고 깊게 들여다보았다’(최가은). 또한 2024년 펴낸 두번째 시집 『물보라』(민음사)에서는 (아무것도 없음까지 포함하여) 가리고 선 그 너머를 보여주려는 문을, “믿음과 믿지-않음,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의 ‘부딪침’”(정원)을 반복하여 그려냈다. “땅에 박는 족족 쓰러지는 기둥일지라도 벌판, 허허한 저 벌판에 어디 한번 세워는 보겠다는 목적을 둔 발버둥질”(「물보라」)로서의 “고투의 기록”(채호기).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고 아무에게도 상대당하지 못하는 너.’ 트집거리가 없고 기어이 죽는 물보라. 짓밟고, 구르고, 모래를 씹고, 삼키면서, 끝을 “쓰면서”(「「물보라」와 상관없는 Thomas De Quincey」) 시인은 “쓰는 너를 발견”해냈다(「11月 30.1日」).


끝낼 수 없는 삶도 삶일까?
끝낼 수 없는 사랑도 사랑일까?

내가 아닌 다른 이가 보면 별것도 아니라고 생각될 짧은 메모. 그리고 내가 보아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되는 그뿐인 것(「끊으면서 버들은 버들을 시작한다」). 문을 열면 어느 날은 오대산 초입이고 어느 날은 두륜산 중턱인데. 그리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열 일이 없는 문이니까(「둘」). 쓰는 것은 본다는 것이고 나는 보는 것에 재능이 없다. 그래서 나는 (…) 나를 살아본다.(「여름 산책」) 서로 붙어 체온을 나누고자 하나 붙는 순간 떨어질 수밖에 없는 사이. 닿음과 떨어짐 또는 만남과 헤어짐의 영원 반복.(「한여름은 충치 같다고」) 그날의 만남을 바라본다. 그날의 만남도 나를 바라본다. 나는 점점 잊힌다. 그날의 만남은 점점 잊힌다. 우리는 잊히기 위해서 마주한다. 우리는 헤어지기 위해서 만난다.(「칠월은 앉아 있기 좋은 달」) 여름의 비는 때때로 모든 소리를 잡아먹는다. 여름의 방에서 나는 혼자다. (…) 나는 비와 상관없이 나를 쓸 수 있을까. 혼자와 상관없이 중얼거릴 수 있을까? 혼자인 내가 좋다고.(「나와 상관없는 빗소리가 나를 때린다」) 뱀은 진동을 늘 연습하는 방울 (…) 노래란 음과 가사를 듣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떨림. 그것으로 충분하다고.(「떨보 K」) 곱씹다보면 받아들여지고 받아들이다보면 몸으로 닿게 된다. 그러면 쓸 수 있다. 쓴다. 쓰면 별것 아니게 되니까. (…) 소나무는 나와 관계없이 그저 해변에 서 있다. 파도는 나와 관계없이 밀려오고 밀려간다.(「칠월은 태안을 가기 좋은 달」) 당신이라는 옷을 훌훌 걸치는 엄마. 엄마라는 당신을 훌훌 때리는 비. 헛돼요.(「우산이 없어요」)

긴교스쿠이라 불리는 놀이는
종이 뜰채로 금붕어를 건지는 놀이
(…)
사방을 헤엄치는 금붕어를
낚으려고 시도하는 아이를 떠올리면 된다
이런 풍경은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것이니까
그것이 힘들다면 금붕어 대신 갖고 싶고
가지고 싶지만 또 가질 수는 없는 것을
떠올린 다음에
그것을 갈망하는 나와
병치시켜도 되겠다
이런 풍경은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일 테니까 _「히구라시 그러니까 저녁매미」 부분

티브이에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소리가 엄청 작았다. 집중해서 들어야만 겨우 들렸다. 박광주랑 최혜경이 우리는 너나없는 나그네라고 했다. 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느냐고 했다. 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느냐고 계속 속삭였다. 그것도 좋았다. _「천안아산역」 부분
저자

박지일

2020년경향신문신춘문예를통해등단했다.시집으로『립싱크하이웨이』『물보라』가있다.

목차

작가의말나를내가반복하는것7

7월1일산문나는계속칠월을산다11
7월2일산문오늘은7월2일그리고1월2일이다15
7월3일산문너무슬프지않게27
7월4일시방이분류하는몇종류의나31
7월5일시용소계곡35
7월6일산문골화骨化앞에흰백白자가붙으면39
7월7일시배꼽으로간다는꾼45
7월8일짧은이야기쉿51
7월9일일기그것을쓰기55
7월10일산문끊으면서버들은버들을시작한다61
7월11일시손쓸수도없이오장에쓰이는기록67
7월12일짧은이야기둘77
7월13일시느낌표에빚을진10인용관광버스81
7월14일산문보리와차87
7월15일산문서울기91
7월16일단상여름산책97
7월17일단상면을넘기는목도고되다는데101
7월18일산문나와상관없는빗소리가나를때린다105
7월19일일기안함못함못함그리고안함111
7월20일시거꾸로선매화나무119
7월21일단상한여름은충치같다고123
7월22일산문퇴근길에는오르막을오르며생각한다127
7월23일산문칠월은앉아있기좋은달133
7월24일시떨보K141
7월25일산문칠월은태안을가기좋은달145
7월26일산문히구라시그러니까저녁매미151
7월27일시꼬리연161
7월28일단상우산이없어요163
7월29일산문조용만이맴도는169
7월30일일기천안아산역175
7월31일산문뭐했다고벌써팔월?179

출판사 서평

◎‘시의적절’시리즈를소개합니다.

시詩의적절함으로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제철음식대신제철책한권

난다의‘시의적절’시리즈는2025년에도계속됩니다.열두명의시인이릴레이로써나가는열두권의책.매일한편,매달한권,1년365가지의이야기.시인에게여름은어떤뜨거움이고겨울은어떤기꺼움일까요.시인은1월1일을어찌다루고시의12월31일은어떻게다를까요.하루도빠짐없이,맞춤하여틀림없이,매일매일을시로써가는시인들의일상을엿봅니다.

시인들에게저마다꼭이고딱인‘달’을하나씩맡아자유로이시안팎을놀아달라부탁했습니다.하루에한편의글,그러해서달마다서른편이거나서른한편의글이쓰였습니다.(달력이그러해서,스물여덟편담긴2월이있기는합니다.)무엇보다물론,새로쓴시를책의기둥삼았습니다.더불어시가된생각,시로만난하루,시를향한연서와시와의악전고투로곁을둘렀습니다.요컨대시집이면서산문집이기도합니다.아무려나분명한것하나,시인에게시없는하루는없더라는거지요.

한편한편당연길지않은분량이니1일부터31일까지,하루에한편씩가벼이읽으면딱이겠다합니다.열두달따라읽으면매일의시가책장가득하겠습니다.한해가시로빼곡하겠습니다.일력을뜯듯다이어리를넘기듯하루씩읽어흐르다보면우리의시계가우리의사계(四季)가되어있을테지요.그러니언제읽어도좋은책,따라읽으면더좋을책!

제철음식만있나,제철책도있지,그런마음으로시작한기획입니다.그이름들보노라면달과시인의궁합참으로적절하다,때(時)와시(詩)의만남참말로적절하다,고개끄덕이시라믿습니다.1월1일의일기가,5월5일의시가,12월25일의메모가아침이면문두드리고밤이면머리맡지킬예정입니다.그리보면이글들다한통의편지아니려나합니다.매일매일시가보낸편지한통,내용은분명사랑일테지요.

[2025시의적절라인업]
1월정끝별/2월임경섭/3월김용택/4월이훤/5월박세미/6월이우성
7월박지일/8월백은선/9월유계영/10월김연덕/11월오병량/12월고선경

*사정상필자가바뀔수도있음을미리말씀드립니다.
*2025년시의적절의표지는글과사진을다루는작가장우철과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