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인워터

플레인워터

$23.00
Description
“물은 당신이 붙잡을 수 없는 무언가다”
앤 카슨의 모든 것을 압축해놓은 초기작
『플레인워터』는 현대문학의 경계를 새롭게 쓰고 있는 시인 앤 카슨의 초기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시와 산문을 아우르는 짧은 작품들이 서로를 비추며 독창적인 모음집을 이루고 있다. 카슨은 사랑과 상실, 여행과 언어 같은 보편적 주제를 실험적 형식으로 풀어내며 독자에게 전혀 새로운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작품들은 한 권 안에서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각기 고유한 궤도를 따라 흐르며 독립적인 울림을 지닌다. 첫 작품 『에로스, 달콤씁쓸한』이 고전학적 탐구를 바탕으로 에로스적 욕망의 본질을 사유했다면, 『플레인워터』는 그 통찰을 시와 산문, 여행기, 극적인 대화와 일기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형식으로 확장한다. 이 책은 이후 카슨의 실험적 문학 세계를 예고하며, 시와 사유, 학문과 감각을 넘나드는 그녀의 독보적인 문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이정표라 할 수 있다.
저자

앤카슨

1950년캐나다온타리오주토론토에서태어났다.시인,에세이스트,번역가이자고전학자이다.‘생업으로고대그리스어를가르친다’라는짧은문장으로자신을소개하기도한다.어린시절앤카슨은서점에서윌리스반스톤이번역한『사포시전집』을보고고대문학에마음을빼앗겼다.고등학교때부터는선생님이점심시간마다틈틈이가르쳐준고대그리스어로고전을읽기시작하며사포,에우리피데스,소포클레스등수천년전시인들을벗으로삼았다.이후토론토대학에진학해고대문학박사학위를취득한그는현재까지도프린스턴,맥길,코넬등여러대학에서고대문학을가르치고있다.카슨은활발한저술활동으로고대와현대문학,시와산문을한데아우르는독창적인작품세계를꾸준히개척해왔으며현재세계문학을이끄는문인으로주목받고있다.A.M.클라인상,맥아더펠로우십,구겐하임펠로우십,그리핀시문학상등다수의상을받았으며,‘T.S.엘리엇상을받은최초의여성’이라는타이틀을안기도했다.2020년에는“고전연구로혁신적인시학을구축하고현시대를인식하도록했다”는평가를받으며아스투리아스공상을수상했다.

목차

1부밈네르모스:브레인섹스그림-11

2부카니쿨라디안나-53

3부마을들의삶-115

4부물의인류학-159

옮긴이의말-379

출판사 서평

『플레인워터』의가장뚜렷한특징가운데하나는시와산문이서로경계를허물며교차한다는점이다.전통적인시집이나산문집에서는형식의구분이독서경험의틀을규정하지만,앤카슨은이를의도적으로무너뜨린다.카슨은「밈네르모스:브레인섹스그림」에서기원전7세기서정시인밈네르모스의작품세계를탐구하지만전통적인학문적분석틀을따르지않는다.그는파편으로만남아있는밈네르모스의시를가져와자신이새로쓴시를병치한다.또여기에는밈네르모스의시에대한논문적성격의에세이와시인과가상의인터뷰세편이뒤따른다.이처럼서로다른형식이맞닿을때독자는경계바깥의언어가지닌낯선울림을경험하게된다.카슨의문학은이러한혼합적구성속에서시와산문이라는전통적범주를넘어선다.
고전학자로서의훈련을받은카슨은작품전반에서고대의인물과개념을끊임없이호출하며,그것을현대적삶의정황속에비추어본다.그는단순히고전텍스트를해설하거나인용하는데그치지않고,이를현대의서사와대화시키는방식으로새롭게살아움직이게만든다.예컨대「카니쿨라디안나」에서카슨은현대페루자의현상학학회를배경으로,르네상스화가페루지노와현대의화자,그리고고대사상가들의흔적을한무대에겹쳐놓는다.이서로다른시공간과인물들이교차하는장면속에서,고전적개념은단순히회상되는것이아니라현대적삶과긴밀히상호작용하며새로운의미를획득한다.카슨은이렇게고전을재현하거나단순히반복하지않고,다시몸을부여하고재상상함으로써현대적주제를탐색한다.이과정에서고대와현대는서로의거울이자반향으로작동하며,독자는그공명속에서카슨문학의독창적힘을경험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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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인워터』에수록된작품들사이에는일관된줄거리가존재하지않는다.모든것을통합적으로바라보려는독자앞에서『플레인워터』는“물처럼스르르빠져나가버린다”(옮긴이의말).카슨이말하듯,“물은당신이붙잡을수없는무언가다”.
이렇듯서로이질적이고잘붙잡히지않는작품들이지만여전히작품들사이를공명하는모티프들이있다.이모티프들은작품마다다르게변주되면서도반복적으로되살아나,모음집전체에일종의잔향과리듬을형성한다.카슨은이를통해독자가각작품을독립적으로읽으면서도,책전체를하나의거대한울림판으로인식하도록만든다.
『플레인워터』전반에는‘알수있음’과‘알수없음’의경계에대한집요한탐구가깔려있다.예컨대「밈네르모스:브레인섹스그림」에서고대시인의목소리는파편으로남은시나가상인터뷰를통해파편적으로만재구성될뿐이다.독자는이틈새와단절속에서진실과의미가결코완전하지않다는사실을마주한다.순례와여행의과정을기록한「물의인류학」에서도이러한구도는반복된다.여기서순례는“물이목마름으로여행을떠나듯질문이대답으로여행을떠날수있다는믿음하에”행해진무엇이다.즉,여기서중요한것은질문그자체이며“『플레인워터』에실린모든글은대답보다는질문으로넘쳐난다”(옮긴이의말).
「물의인류학」에는“깨우침은쓸모없다”라는문장이수차례반복된다.이는인식론적불완전성에대한화자의태도를반영하지만중요한것은이문장에는역접과함께여정에대한구체적인묘사가뒤따른다는것이다.“깨우침은쓸모없지만그것의몇몇원칙은그렇지않다”“깨우침은쓸모없지만나는두다리를움직이며사자와함께서둘러나아가고있다”“깨우침은쓸모없지만,나는한방에목표대상이있다는사실이마음에들지않는다”등.결국카슨은대답을향하는질문의여정이직선적인것이아니라끝없이이어지는방황이며그방황자체가중요한것임을보여준다.
또한『플레인워터』에는깊은상실의정서가책전반을관통한다.반복적으로등장하는것은사라지거나잃어버린남성의형상-아버지,형제,연인-이며,이부재는단순한결핍을넘어화자의정체성자체를흔드는동력으로작동한다.그러나카슨이그리는애도는멈춘상태나완결된과정이아니다.오히려물처럼끊임없이흘러넘치고,정체성을잠식하며,끝내채워지지않는공백을드러낸다.애도의경험은고정된서사가아니라늘미끄러지고흩어지는감각으로,독자는그흔들림속에서화자의내면을마주한다.
이러한상실의감각은곧욕망의문제로이어진다.「물의인류학」에서순례자는산티아고길을걸으며종교적헌신이아니라,부재한존재를향한갈망때문에길위에오른다.그여정속에서물에대한갈증은곧사라진이를향한욕망의은유가되며,잡히지않고흘러가는물은붙잡을수없는사랑과기억의본질을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