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 (개정판)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 (개정판)

$22.00
Description
“에즈라 파운드의 ‘새롭게 하라’라는 말을
이렇게 멋지게 실행에 옮긴 경우도 드물 것이다.”

각기 다른 형식을 지닌 시들의 향연:
앤 카슨을 정의하는 다양한 스타일의 총집합
앤 카슨의 두번째 시집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은 현대사회와 종교, 역사를 아우르는 다양한 인문학적 주제에 대한 대담한 접근 방식을 보여주며 1995년 첫 출간 당시 ‘지난 수십 년 동안 출간된 작품 중 가장 대담하고 독창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말은 그로부터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은 앤 카슨이 이제껏 보여준 독보적인 문학적 시도들의 기반이 된 작품으로, 그만의 분명한 문학적 색채를 확립하는 데에 제일 중요한 역할을 했던 초기작들을 한데 모은 작품집이다.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은 ‘시’라는 이름하에 에세이, 산문시, 비평, 번역, 극, 일기, 고전 다시 쓰기 사이를 거침없이 오간다. 앤 카슨을 정의하는 다양한 스타일, 각기 다른 형식을 지닌 시들의 향연이라 할 만하다. 장편소설보다 더 다채로운 시 「유리 에세이」, 신에 관한 온갖 상상력이 날카로운 빈정거림과 함께 난무하는 「신에 관한 진실」, 고전 속 인물들을 현대의 TV 프로그램 촬영장으로 옮겨놓은 「TV 인간」, 이방인이란 대체 누구이며 ‘지배’란 대체 무엇인지 묻는 「로마의 몰락: 여행자 가이드」, 인간적이고 재치 있는 스타일로 풀어낸 성서의 기이한 이야기 「이사야서」 그리고 앤 카슨이 고전학자이자 여성 시인으로서 써내려간 에세이 「소리의 성별」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

앤카슨

저자:앤카슨(AnneCarson)
캐나다출신의시인,에세이스트,번역가,고전학자이다.1950년6월21일온타리오주토론토에서태어났다.고등학교시절처음접한그리스고전에강하게매료되어대학에서그리스어를전공하고이후30년간맥길,프린스턴대학등에서고전문학을연구하고가르쳤다.동시에고전에서영감을얻은독창적인작품을발표하여작가로서명성을얻었다.파피루스의파편으로남은이야기를현대의시어로재창작하거나신화속등장인물을새로운관점에서해석한일련의작품들로맥아더펠로우십과구겐하임펠로우십등을받았고,2001년에는여성최초의T.S.엘리엇상수상자가되었다.

“삶에서가장두려운것이지루함이고,지루함을피하는것이인생의과업”이라말한앤카슨은머스커닝햄무용단,행위예술가로리앤더슨,록가수루리드,시각예술가킴아노등타분야저명한거장들과의공동작업을통해문학의지평을넓혀나가고있으며2012년노벨문학상후보에올랐다.

역자:황유원
시인이자번역가.서강대학교종교학과와철학과를졸업하고동국대학교대학원인도철학과박사과정을수료했다.2013년문학동네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고,이후김수영문학상,대한민국예술원젊은예술가상,현대문학상,김현문학패등을받았다.시집으로『하얀사슴연못』,『초자연적3D프린팅』,『세상의모든최대화』등이있으며,옮긴책으로는『슬픔에이름붙이기』,『패터슨』,『모비딕』,『폭풍의언덕』,『바닷가에서』,『두더지잡기』등이있다.

목차

유리에세이-11
신에관한진실-95
TV인간-129
로마의몰락:여행자가이드-163
이사야서-223
소리의성별-247
발문-299
옮긴이의말-311

출판사 서평

“이따금씩유리위로말言이자취를남기며지나간다”
소리내면에담긴작은자서전의기록

『유리,아이러니그리고신』의문을여는첫작품이자카슨의‘시그니처포엠’으로도불리는「유리에세이」는상실과고독,그리고그로부터벗어날가능성에대한한편의시소설과도같은이야기이다.이시에서카슨은화자의아픈실연의기억과에밀리브론테의삶을교차시킨다.가이대븐포트는발문에서“진실함,그리고진술이지닌감수성”을「유리에세이」가가진울림의근원으로꼽는데,그진실함은시속에서“누드”의형체로나타나더욱감각적으로다가온다.

“매일아침내게환영이하나씩찾아왔다./나는언뜻보이는이것들이내영혼의벌거벗은모습이라는사실을차츰깨닫게되었다.//나는그것들을누드라고불렀다./누드#1.언덕위에홀로있는여자./그녀는바람을향해서있다.//(…)신경과피와근육이모두드러난기둥하나만이남아/입술없는입으로무언의외침을내뱉고있다.//이것을기록하고있자니고통이밀려온다,”

“거친작업장에서깎아만든”“영혼의벌거벗은모습”이내뱉는“무언의외침”은『유리,아이러니그리고신』의마지막에실린에세이「소리의성별」에서메아리처럼되돌아온다.제각각의형식으로이어지는작품들이결국끝에서맞닿으며하나의완전한원을이루는셈이다.

「소리의성별」에서앤카슨은고전학자인여성시인이페미니즘적시각으로에세이를쓰면어떤작품이탄생하는지를보란듯이보여준다.그는그리스신화와문학,종교의식에나타나는여성적“비명”,혹은“올롤뤼가스”에대한문화적불안의흔적을추적하며여성이‘입을닫을수밖에’없었던사회적배경을소개한다.카슨이여기서언급하는텍스트들은대부분고대의것이지만그가던지는‘억압과자제외에다른인간적덕목의개념은없는가’라는질문은현재까지도답하지않으면안될물음으로남아있다.

사회문화적으로허락된목소리인“소프로쉬네”와‘감정에휘둘리고이성적인자제력이부족하다’며침묵을강요받아온여성의목소리에대해논한그는“우리가내는모든소리는작은자서전이다.소리의내면은완전히개인적인것이지만그것이그리는궤적은공적이다”라는한마디로자신의입장을정리한다.이는카슨이『유리,아이러니그리고신』이후로발표한작품전반을이해하는데도중요한실마리가된다.

『유리,아이러니그리고신』의허리부분을구성하는것은일련의아이러니이다.「신에관한진실」에서시인은‘종교는말도안되고도움도안되지만그렇기에그것을따른다’라는아이러니를우리앞에툭떨궈놓는다.

신이라는존재는뒤에등장하는시「이사야서」에서도주된역할을맡는다.「이사야서」에서카슨은구약성서적인사고방식과서술방식을재현하면서도이를인간적이고재치있게풀어내고,더나아가역사속에서축적되어온성에대한고정관념을직시한다(“이사야여그대는여자에대해뭘알고있는가?신이물었다./이사야의콧구멍아래에서여자와관련된단어들이뿜어져나왔다:/홍조.악취.마누라.무화과.마녀?”).신,남자,여자로분리되어있던구약성서속세계는이사야의몸이“작은새들과동물들에게젖을먹”일수있는몸으로변하면서새로운국면을맞는다.덕분에독자들은구약의대예언자이사야가‘정의로움’을뜻하는두고대히브리어단어가운데남성형단어뿐만아니라여성형단어까지익히게되는진귀한광경을목격하게된다.“오크나무를둘로쪼개는정의의날벼락”으로서의남성형단어‘정의로움’뿐아니라“목재의텅빈근육안에버섯과구더기와원숭이들이/터전을잡는”여성형단어‘정의로움’까지알게되는것이다.앞의시「유리에세이」에서화자와결별한남성의이름이‘정의로움’과연결되는‘Law’,즉법이었다는사실도이작품들을하나로이어주는흥미로운포인트중하나다.

가장고대적인것에서탄생한가장현대적인문학
감정으로써내려간정교한방정식

「TV인간」에서카슨은고대서사시『일리아스』속영웅헥토르와잔혹극의대가아르토,철학자소크라테스,그리스시인사포를현대TV프로그램의촬영장으로소환한다.역사적인물을그의시대문화적배경과분리하는것은그를정의하던고정된틀을깨부수고새로운해석의가능성을부여하는일이기도하다.앤카슨의시는‘제일오래되었으면서도제일새로운모더니즘’이무엇인지를보여준다.「TV인간」에서등장하는인물들이이룬업적과역사적으로알려진사실들은그들이카슨의시속에서갖게된새정체성과독특한화음을이루며다층적인의미와내러티브를만들어낸다.

이와같은다층적내러티브는「로마의몰락:여행자가이드」에서도볼수있다.얼핏보기에이시는로마를여행하는한관광객의일지로보이지만,중간중간화자와로마사람‘안나크세니아’사이의경계가허물어지는과정을함께보여주며이방인과시민의구분은어디에서오는지끊임없이질문한다.

앤카슨은감정으로일종의수학을하듯대담한방정식,순환하는이미지의집합과부분집합으로글을쓴다.『유리,아이러니그리고신』은그대담함과자유로움에더해주제적예리함과형식적정교함까지갖추고있다.앤카슨은자칫현학적으로흐를수도있는지적인주제에감각적인서사를더하여결국에는읽는이의마음을아주깊숙이,그것도더없이‘시적으로’파고든다.이번책에서는이러한작품의매력이한국독자에게도최대한전달될수있게끔,함께알아두면좋을몇가지사실을각주로달아놓았다.많은독자에게『유리,아이러니그리고신』이앤카슨작품세계에흠뻑빠져드는값진만남의기회가되기를소망한다.

이책은“거친작업장에서깎아만든”하나의‘유리조각’이다.그것은거대한슬픔과빛의덩어리로,보고있으면“마치우리모두가유리의대기속으로끌려내려가기라도한듯”한기분이들고,어쩔수없이“이따금씩유리위로말(言)이자취를남기며지나간다”.
_「옮긴이의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