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들 (개정판)

짧은 이야기들 (개정판)

$15.00
Description
“시를 읽지 않는 사람들은 앤 카슨을 읽는다.”

시인이자 고전학자인 앤 카슨의 첫 시집
팽팽한 절제 속 독창적으로 간결한 45개의 시적 발화
1992년에 출판된 앤 카슨의 첫 시집 『짧은 이야기들』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만큼 선구적인 작품들을 보여주는 앤 카슨의 출발점이자 그의 문학세계를 집약한 책이다. 『짧은 이야기들』의 시들은 무언가 중요한 것이 잘려나가버린 듯한 언어의 그루터기들, 하지만 그루터기로 남음으로써만 모종의 진실에 더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하는 작은 벽돌들이다. 카슨이 이 45개의 벽돌을 쌓으며 만들어내는 것은 견고하고 완전한 벽돌집이 아니라 그 벽돌들 사이의 틈과 균열이다. 그리고 그 결핍된 틈 사이로 예리하고 명석한 빛이 비집고 들어와 늘 어딘가에 도달한다.
“어느 이른아침, 말들이 사라졌다. 그전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사실들이 있었고, 얼굴들이 있었다”라는 말로 시집은 시작한다. 이어지는 ‘짧은 이야기들’은 말들이 사라진 후에야 비로소 드러난 시들이다. 『짧은 이야기들』은 기록된 역사 그 이면의, 말해지지 못한 진실에 초점을 맞춘다. 그동안 역사의 조명을 받아온 카프카, 클로델 등의 인물이 아니라 그들의 주변에 있던 연인과 누이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짧지만 중요한 이야기들이다. 고대 시인 오비디우스의 화려한 업적이 아니라 그뒤에 숨겨진 그의 외로움을(「오비디우스에 대한 짧은 이야기」), 작가 실비아 플라스가 아니라 어머니에게 이해받지 못했던 딸로서의 실비아 플라스를(「실비아 플라스에 대한 짧은 이야기」) 주제로 하는 이야기들이다. 『짧은 이야기들』은 이러한 작은 목소리들의 합창이며,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발화의 장이다.
이렇게 탄생한 45편의 시는 자그만 벽돌 모양을 하고 있다. 각각의 벽돌은 삶에서 떨어져나온 순간순간의 인상을 받아쓴 것이다. 그러나 이는 카슨이 말하듯 ‘언어의 그루터기’에 불과하다(「꿈에서 알게 되는 진실에 대한 짧은 이야기」).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은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모욕을 (…) 생각하면 성대가 부어오”르고(「꽃따기에 대한 짧은 이야기」), “온 바닥에 유리 문장들을” 남길 수밖에 없도록 억압받으며(「바로잡음에 대한 짧은 이야기」), 추방이나 감금으로 인해 혼자 남겨지기도 한다. “인생의 마지막 30년을 정신병원에서, 의문에 사로잡힌 채, 입원 서류에 서명한 시인 남동생에게 편지를 쓰면서 보냈”던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도 마찬가지였다.
저자

앤카슨

저자:앤카슨(AnneCarson)
캐나다출신의시인,에세이스트,번역가,고전학자이다.1950년6월21일온타리오주토론토에서태어났다.고등학교시절처음접한그리스고전에강하게매료되어대학에서그리스어를전공하고이후30년간맥길,프린스턴대학등에서고전문학을연구하고가르쳤다.동시에고전에서영감을얻은독창적인작품을발표하여작가로서명성을얻었다.파피루스의파편으로남은이야기를현대의시어로재창작하거나신화속등장인물을새로운관점에서해석한일련의작품들로맥아더펠로우십과구겐하임펠로우십등을받았고,2001년에는여성최초의T.S.엘리엇상수상자가되었다.

“삶에서가장두려운것이지루함이고,지루함을피하는것이인생의과업”이라말한앤카슨은머스커닝햄무용단,행위예술가로리앤더슨,록가수루리드,시각예술가킴아노등타분야저명한거장들과의공동작업을통해문학의지평을넓혀나가고있으며2012년노벨문학상후보에올랐다.

역자:황유원
시인이자번역가.서강대학교종교학과와철학과를졸업하고동국대학교대학원인도철학과박사과정을수료했다.2013년문학동네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고,이후김수영문학상,대한민국예술원젊은예술가상,현대문학상,김현문학패등을받았다.시집으로『하얀사슴연못』,『초자연적3D프린팅』,『세상의모든최대화』등이있으며,옮긴책으로는『슬픔에이름붙이기』,『패터슨』,『모비딕』,『폭풍의언덕』,『바닷가에서』,『두더지잡기』등이있다.

목차

서문-11

호모사피엔스에대한짧은이야기-14
희망에대한짧은이야기-16
색채광선주의에대한짧은이야기-18
게이샤에대한짧은이야기-20
저녁9시30분을맞이한거트루드스타인에대한짧은이야기-22
그의데생실력에대한짧은이야기-24
주택에대한짧은이야기-26
음악에서느낀실망에대한짧은이야기-28
여행을어디로갈것인지에대한짧은이야기-30
왜어떤이들은기차에마음이들뜨는지에대한짧은이야기-32
송어에대한짧은이야기-34
오비디우스에대한짧은이야기-36
자폐증에대한짧은이야기-38
파르메니데스에대한짧은이야기-40
꽃따기에대한짧은이야기-42
주된것과부수적인것에대한짧은이야기-44
원근법에대한짧은이야기-46
많이사랑받는기쁨에대한짧은이야기-48
브리지트바르도에대한짧은이야기-50
바로잡음에대한짧은이야기-52
반고흐에대한짧은이야기-54
취침용돌에대한짧은이야기-56
뒤로걷기에대한짧은이야기-58
방수처리에대한짧은이야기-60
모나리자에대한짧은이야기-62
최후에대한짧은이야기-64
실비아플라스에대한짧은이야기-66
독서에대한짧은이야기-68
비에대한짧은이야기-70
비쿠냐에대한짧은이야기-72
전부수집하는것에대한짧은이야기-74
샬럿에대한짧은이야기-76
아버지와의일요일저녁식사에대한
짧은이야기-78
밤의젊은이에대한짧은이야기-80
데이만박사의해부학강의에대한짧은이야기-82
서양란에대한짧은이야기-84
징역살이에대한짧은이야기-86
꿈에서알게되는진실에대한짧은이야기-88
횔덜린의세계의밤의상처에대한짧은이야기-90
비행기가이륙할때의감각에대한짧은이야기-92
나의과업에대한짧은이야기-94
쾌락주의에대한짧은이야기-96
왕과그의용기에대한짧은이야기-98
피신처에대한짧은이야기-100
당신이누군지에대한짧은이야기-102

저자후기:후기에대한짧은이야기-105
발문-109
옮긴이의말-127

출판사 서평

예술적도전으로서의글쓰기:
“나는가능한한당신에게잘못되어보이기위해이문장을쓴다”

서문에서앤카슨은“쉰세권의낱책”에“말해진모든것,서로아주멀리떨어져있는것들을받아”썼지만어떤“사람들”이와서그책들을상자에넣고잠가버렸으며,그들이떠난다음숨겨둔세권의낱책에“놓친부분들을채워넣”었다고말한다.그가채워넣은기억은자유로운연상작용으로이루어진다.시인의의식은쇠라에서브리지트바르도로,송어에서오비디우스로,데생작업에서음악으로다양한대상과주제사이를널뛰듯누빈다.

 앤카슨의작품이지닌그특유의재치는그가고정적인의미체계에서벗어나‘언어의그루터기’가되기를자처함으로써얻어낸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는“훌륭한이야기에서는일어나는모든일에원인이있다고”하며“개연성과필연성에대해이야기하지만”,카슨에게중요한것은‘이야기의지루함을피하는것’이다(「서문」).“나는가능한한당신에게잘못되어보이기위해이문장을쓴다”는시속화자의말은(「피신처에대한짧은이야기」)‘개연성과필연성’의규칙에서자유로운시세계를그리고자하는시인의선언이기도하다.

“지루함을피하기위해서라면나는무슨일이든할것이다.
그것은인생의과업이다”

앤카슨이「서문」에서사용한낱책(fascicles)이라는단어는또한골격근및신경섬유의조직을의미하기도한다.『짧은이야기들』은헐겁게지어진벽돌집이자낱낱의개체로조직되어있는느슨한신체이기도하다.『짧은이야기』에서신체는자아와동떨어진익명의물체로서존재한다.알수없는모델의“가느다란팔”과(「그의데생실력에대한짧은이야기」)발코니의의자마냥‘내버려둔’자궁,물처럼‘들이부어’지는얼굴이등장한다(「아버지와의일요일저녁식사에대한짧은이야기」).“사진속두손이(…)무릎위에놓인다른누군가의신체부위처럼보이기에이르”기도한다(「취침용돌에대한짧은이야기」).

현실에서꿈속으로떠도는몸의묘사그리고자동차,기차,비행기등의운송수단에화물처럼실려시간과공간을가로지르는몸의묘사도이어진다.앤카슨의시는읽는이로하여금마치스스로의신체로부터유배된듯신체를낯설게느끼게한다.이러한이방인으로서의체험은앤카슨이이어서출간한두번째작품집,『유리,아이러니그리고신』의「로마의몰락:여행자가이드」에서중점적으로다루는내용이기도하다.

짧은호흡으로이어지는『짧은이야기들』의시들속에서생경한신체와풍경들을좇다보면그낯선시점에도어느새기이하리만치익숙해진다.앤카슨은미술관에걸린모나리자의유명한미소가아니라모나리자라불린한여인의감정을바라보며(「모나리자에대한짧은이야기」),빗방울을헤아리다가도곧“누구의머리위로도내리고있지않”은먼바다에내리는빗방울로시선을돌린다(「비에대한짧은이야기」).카슨의상상력은시공간을무너뜨리고,캔버스너머앉아있는여인을,먼바다의수면을두드리는빗방울을여기이곳으로불러온다.때문에『짧은이야기들』의조각들이널려있는범위는방대하다.학문의세계에몸담고있던시인이처음으로발표한시집인만큼,『짧은이야기들』은구속적인틀,역사적이고시간적인광활한영역으로부터분석해모은발화행위,그리고단편적인생각의배열에공을들인작품집이다.이는읽는이를또다른세상으로데려다주기에모자람이없을것이라확신한다.

첫머리에실린「서문」에서카슨은“지루함을피하기위해서라면나는무슨일이든할것이다.그것은인생의과업이다”라고선언한다.이는“시를읽지않는사람들은앤카슨을읽는다”(데보라란다우)라는평을받을정도로기존의시가가진형태를과감히벗어던지고새로운장르를개척해나가는그가아직까지도따르고있는규칙이다.이시집을끝맺는마지막문장“당신은누구인가?”는그가추구하고자하는작품성의방향을묻는,스스로에대한질문이기도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