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에는죽은사람만묻혀있는것이아니다
20여년전용미리서울시립묘지에서3년간무덤을파고주검을수습했던
한묘지관리인의기록
죽은사람에게는더이상시간이필요하지않다.시간이필요한것은남겨진사람들이다.누군가의죽음을받아들이고,함께했던시간을정리하는데에는시간이필요하다.묘를만들고돌보는일역시어쩌면죽은사람을위한의식인동시에살아있는사람이죽음을받아들이기위해마련한시간인지도모른다.
『산역―주검을돌보다』는시인성윤석이20여년전3년동안용미리서울시립묘지의용역관리업체에서일하며묘지를관리하고주검을수습했던경험을바탕으로쓴책이다.때로는사실적으로,때로는상상을더해이야기를풀어냈다.책은‘현장―죽음을손으로만지다’,‘조우―죽은것들과만나다’,‘진혼―인간에겐헤어질시간이필요하다’의세부분으로나뉜다.무연고묘를열어유골을수습했던일,35년만에아버지의무덤을찾아온사람,묘지에버려진개들,공동묘지에서겪은기묘한일들까지저자는묘지에서마주한구체적인장면들을따라가며죽음과기억,망각과이별에관한생각을펼친다.
죽은다음인간을기억하게하는것은무엇인가
저자가묘지에서마주하는것은관념적인죽음이아니라죽은사람의몸이다.수십년동안아무도찾지않은무덤을열고,썩은관안에서유골을수습한다.무연고묘를개장하기도한다.이름과사연이사라진무덤앞에서저자는죽음이후인간에게무엇이남는지를생각한다.
책에는스웨덴으로입양된뒤35년만에한국을찾은카리나가등장한다.자신의생부가묻힌곳을찾아묘지를방문한그녀는무덤앞에무릎을꿇고아버지를부른다.오랫동안찾지못했던사람의흔적이눈앞에나타나는순간,무덤은더이상죽은사람만을위한장소가아니다.그곳은살아있는사람이자신의기억과마주하는장소가된다.누군가는가족에게잊히고,누군가는수십년이지나도누군가의기억속에남는다.누군가는후손이없어무연고묘가되고,누군가는도시개발때문에묘를옮겨야하는순간에도여러가족이찾아와조상의유골을직접모신다.죽은뒤한사람을기억하게만드는것은계급이나돈이아니라결국그사람과맺었던관계다.이생각은책곳곳에서반복된다.묘를쓰고,벌초하고,돌보는행위가미래에는어떤의미로남게될까.결국묘를관리하는일은죽은사람에게무언가를해주는행위라기보다,산사람이죽은사람과맺었던관계를계속확인하는행위인지도모른다.
묘지에남겨지는것은죽은사람만이아니다.살아있는사람들이버리고간존재들도있다.저자는묘지에개를버리고가는사람들을바라보며버린다는것과돌본다는것에대해서도생각한다.죽은사람의무덤을관리하는장소에서살아있는개들을돌보는일이동시에벌어진다.누군가의죽음을수습하는일,무덤을정리하는일,잊힌사람의흔적을찾아주는일도일종의돌봄이다.
인간에겐헤어질시간이필요하다
장례는죽은사람을떠나보내는절차이지만동시에살아있는사람이죽음을받아들이는시간이다.갑작스러운죽음앞에서우리는곧바로일상으로돌아갈수없다.누군가의부재를이해하고,그사람이없는세계에적응하고,함께했던시간을기억하고,마침내보내기위해서는시간이필요하다.그래서저자가말하는‘진혼’은망자의영혼을달래는것에서그치지않는다.그것은살아남은사람이자신의삶으로돌아가기위한과정이다.
사람은죽은뒤무엇으로남는가.우리는죽은사람을어떻게기억하는가.망자를보내는일은누구를위한것인가.그리고사랑했던사람과헤어지는데에는얼마나많은시간이필요한가.20여년전묘지에서죽음을손으로만졌던저자는여전히그질문들을품고있다.
책속에서
무연고묘묘적부는맨뒷장.죽음에도차별이있다.양지바른남향1묘지는강남아파트,동향2묘지는천당아래분당아파트이런식이다.죽은자들의아파트를표시한지도가묘적부인셈이다._28쪽
무연고묘지는주로노숙자나행려병자들을화장해그유골을묻어둔곳이다.그러니봉분도없고상석도비석도없다.나무토막에페인트글씨로번호만써두었을뿐이다.찾아오는사람도거의없다.살아있을때도어느파란만장하고버거웠을어느한순간버려진사람들이다.중요할리가없다._28쪽
하지만잔디와토끼풀같은인간관계는나도어쩔수없지.그건말이야나혼자서도어쩔수없고,아무도이해하지못하거든.자네주위에토끼풀같이질긴놈이있나잘봐._39쪽
사람들의기이한행동에대해이곳사람들은여러가지의견을내놓았다.그들은묘지에개가버려지는것이경기탓이라고했다.정치가엉망이니경기가나쁘고,경기가나쁘니혼자사는사람들이개를버리고간다는식이다.그러나내가알기로이곳을찾는대부분의사람들은혼자사는사람들이아니었다.그들은이곳에한때나마알고지내던사람을묻은보통사람들이었고,대부분아이와개와자동차를가지고있었고,개를버리고가는사람들도바로그들이었다._52쪽
그는마치자살하는데도사람이야무져야한다는듯말했다._86쪽
명당이란달리있는게아니고관과시신이다삭아시신이놓였던자리테두리에검은흙선만남아있는경우를우리는그렇게불렀다._134쪽
이렇게버려지는묘만해도전국으로치면다셀수도없을것이다.죽음앞에서는계급도사라진다.아니,더정확하게는죽은뒤에인간을기억하게하는것은계급도돈도아닌관계다._145쪽
얇은종잇장같이삶과죽음이앞면과뒷면으로나뉘어젖혀지고목숨이실낱같이희미하게이어붙여지는것이라면,그수많은갈림길에서삶과죽음을결정하는것은우연일까필연일까._174쪽
바야흐로봄기운이사방에충만하다.봄꽃들이다투어피어날시기이다.산수유가그렇고벚꽃이그러하다.봄꽃이애절한건다투어피어쉬이지기때문이다.여간섭섭한게아니다.바람에실려,바람에불려가는게봄꽃들이다.그래서매화의죽음을풍장이라고도한다._2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