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更

갱更

$12.00
Description
이음 희곡선 스물두 번째 작품 『갱更』은 도시락 업체를 운영하는 피영이 조기 갱년기 진단을 받고 자신의 쓸모를 확신하지 못한 채 파산 위기에 처해 있다. 이때 과거 도축공장에서 일하다 한쪽 팔을 잃고 치매를 앓는 할아버지 천태가 산재보상금 통장을 들고 찾아온다. 피영의 어머니 금옥은 가게 부도를 막기 위해 천태를 조리실로 데려오고, 여기에 불안정한 일상을 살아가는 동업자 몽고, 청년 노동자 바리와 도로시가 얽히며 차가운 스테인리스 조리실은 뜨거운 생존의 공간으로 변한다.

먹고 삼키는 행위에 담긴 삶의 은유
작품에 등장하는 산업화 시대의 도축에서 현대 사회의 도시락까지 먹고 삼키는 원초적인 행위를 연상시킨다. 천태의 기억 속에 도축은 인간의 몸이 기계처럼 쓰이는 노동 현장을 상징하고, 피영이 만드는 도시락은 거대한 도시 속에서 사람들이 사육되는 방식을 은유한다. 특히 어차피 오래 살지 못할 첫 새끼를 뜯어먹어 스스로의 영양분으로 소화해 버리는 돼지의 습성처럼, 생존을 위해 서로의 몸을 뜯어먹어야 하는 가혹함은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굴레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도달하는 삼키는 행위에서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그것을 온전히 내면으로 가져와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꿋꿋이 살아내려는 의지를 볼 수 있다.

쓸모를 다한 삶 앞에서 다시 시작하다
‘다시’와 ‘고치다’라는 뜻을 가진 갱(更)은 주인공이 마주한 신체적 절망과 새로운 시작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가진다. 작품 속 인물들은 저마다 신체적, 세대적 상처를 안고 있다. 금옥은 아버지 없는 유년 시절을 보냈고, 바리는 손을 다쳤고, 피영의 자궁은 더 이상 일하지 않는다. 희생을 당연하게 여겼던 기성세대와 불안정한 노동을 거부하는 청년 세대는 충돌하지만, 고된 노동과 허기를 공유하며 끝내 서로를 외면하지 못한다.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부채감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서로를 끌어안게 한다. 쓸모를 잃어가는 몸과 삶 앞에서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동시대 희곡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이음 희곡선. 두산아트센터 DAC Artist로 선정된 본주의 희곡 『갱更』은 2026년 9월 2일부터 2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초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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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