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우리의이야기를적은종이를찢어버릴수는없었나요.다시색칠할기회는존재하지않던가요.이제는어떤색으로칠해야빛으로향하는지알것같은데,그대,내손을잡고우리해왔던반대로만걸어보는건어떤가요?어둠에서출발해서하얀빛으로나아가는법을당신과의이별에서배웠는데,나는원색에불과한걸요.당신과섞여야만빛으로나아갈수있는걸요.나,이렇게빛이되는법을영영모른채깊은침묵속에서타들어가야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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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없는세상속에살아갈자신이없다.이제야고백하건대너의빈자리는나의세상을한여름에도얼어붙게하였다.이제추운겨울다가올적에,낙엽은떨어지고사랑마저실종했을때,꽃잎하나떨어지지않고대롱매달려있어우리다시시작해보자이야기할때였다.이제야비로소너있는세상에살자신이없어진나는오래도록지운너의흔적위에희미한자국을더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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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도아니고동물도아닌이상한존재.인간세상에결코어울리지못하고,돈도벌수없는,그런희한한것.한번도세상에발견되지않고알려지지않은희귀종.내가당신을보내야만했던건,사랑이비참함으로변질되어곧상해버린다는걸썩은진흙처럼발견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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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다시사랑하지않겠다.깊은바다로침묵하겠다.영원히떠오르지못하게바위를등에묶은채로깊은추억속으로가라앉겠다.침전하는나를발견해도언제까지나자신은스스로를기억하지못한다.불안한소용돌이에휩싸인희생자였다.오롯이인간세상에태어나가장가슴아픈기억들만을골라추억해야했던슬픔은언제나형체를찾아보기힘든무형의물질이었다.나는이름마저기억하지못한다.비가오는날이면사람이없는곳에서고개를드는지렁이처럼존재를잃어버린,너무나도투명해안에서밖이비치지않는유리잔.
그런내가상처를이겨낸토양위에서웃음짓던당신을보내야만했던건,비가오면정처없이땅위를떠돌아다니는지렁이처럼,수차례자살시도에도죽지못해절규하던한남자의비참한생애를그대에게까지전가시키고싶지않은책임감이었다.사랑은언제나환각이었다.두눈을감고기억에서더듬어야캄캄한상자에서빛나는무언가를만날수있다는착각에빠지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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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운세상에,모두가상처입은눈으로상대를잡아먹기위해으르렁거리고있을때,너는어디에있어?어둠에서아무도쳐다보지않을때,햇빛이들어오지않는칠흑같이외로운공간에서조용히꽃봉오리를터뜨리곤,태양같은반짝임을혼자참아내는거야?서럽게터져나오는울음은가슴으로겨우짓눌러서,눈물로채워넣는거야?네가혼자있는자리에이끼나잡초같은무시무시한것이너를더럽히면어떡할거야?너라는꽃은언제쯤눈물없이피어오를수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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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자.먹고살려고발버둥치는한여인을물에빠뜨려끝까지죽이려고바닥깊숙이머리를처박는건,신이시여그건돈의잘못입니까.아니면사람의작태입니까.
---p.29
사랑은가난마저사랑이었다.그렇게가난마저사랑해주던여자가있었다는사실도.
---p.37
내평생의자부심은비겁하게살지않는것이었소.비록가난하더라도현실과타협하지않았소이다.적당히현실과타협하여비켜선적없고남의눈에서심장을아릴듯한눈물을뺏어먹으며나의호의호식을연장한적조차없소이다만,이제와그대를지켜주지못한것을생각하면,나정말악마가될걸그랬소.당신을지킬수만있었다면야나정말현실과타협할것으로그랬소.
---p.39
나는스스로를자각한다고생각할때부터아무것도보지못했다.정확히그때부터다.거울을보는일이두려워져서내모습이비칠만한곳은모조리피해다녔다.살아있다고는하나,내얼굴을더듬어보면거뭇한수염만만져질뿐,눈,코,입은어디에도존재하지않았다.불안정한사람이하는일은으레그러하다.그는사랑뿐만아니라모든것에불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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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삶은참으로가혹한것이어서늙은노모의손에이끌려동네시골안과의원을찾은앳된스무살장님청년의해맑은미소처럼마음이미어진다.늙은어머니는허리가다굽어앞을볼수없다.그의하나뿐인외아들은그런어머니의손을붙잡고오늘도볼수없는두눈을진료받기위해안과에찾아온다.기적은과연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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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끝나지않는삶을기약하는것처럼말이다.바로불행이라는이름으로흘러가는모두의생애처럼,나는오늘도저주받지않은척거짓꾸밈을하고숨을가쁘게내쉬며살아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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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많은가능성을지니기만했을뿐,이루어낸것은어떠한것도없다.나는실패했고아둔했으며하고싶어도할수없는자를조롱한대가를치러야만했다.이런생각을한적이있다.‘차라리태어나지말았어야했다.’
할수있었음에도,이루어낼가능성이있었음에도,스스로에게함몰되어아무것도해내지못한나만의죄업.고등학교때선생님은이런말씀을하셨다.“할수있는데도하지않는것은하고싶어도할수없는이들에게짓는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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