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산책

시절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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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어디에 닿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걷기 위해 걷는 사람 -
질문을 한 움큼 안고 나섰다가,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오는 산책의 기록
로베르트 발저는 산책의 본질을 두고 “평범한 꽃을 유심히 보고, 나 자신과 즐겁게 대화하는 것, 그것이 전부다.”라고 했다. 작가는 사계절 내내 그렇게 산책한다. 랭보처럼 “한낱 걷는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를” 바라며, 걷는 동안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 풍경에 자기 자신을 슬쩍 비추어볼 뿐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걸음이 있다고 한다. 어딘가에 닿기 위한 걸음과, 그저 걷기 위한 걸음. 저자 조항록의 걸음은 후자에 속한다. 그는 매일 산책을 나간다. 눈이 내리고, 달빛이 길바닥을 비추고, 은행나무가 은은하게 물들어가고, 유치원 앞에서 아이들이 재잘댄다. 그런데 발걸음만을 남긴 하루하루 뒤로, 늘 걷던 그 길 위에 매일 다른 계절이 펼쳐진다.
어쩌면 그의 걷기는 어딘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매번 다른 질문을 안고 나섰다가,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오는 일이다. 겨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걸어 나가고, 봄에는 저 구름과 이 바람처럼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고, 여름에는 가장 뜨거운 색이 검정이라는 상념에 잠기고, 가을에는 비어가는 계절의 쓸쓸함을 고독의 환희로 받아들인다.
저자는 버려진 옷장을 보며 한 사람의 일생을, 도넛처럼 구멍 난 기억의 빈자리를 보며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을 되묻는다. 그는 말없이 걷다가 우리를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들과, 세상이 조금 가벼워지고 하루가 채워지는 순간들을 가만히 길어 올린다. 목적지가 없어도 걸음은 걸음이라는 걸 증명하며, 산책은 우리를 아주 조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는 걸 되새기라도 하듯.
저자

조항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