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호조판서 권이진(큰글자책)

조선 최고의 호조판서 권이진(큰글자책)

$45.00
Description
오늘의 우리 역사에서 귀감이 될 인물을 발굴 소개한다. 조선 영조 때 호조판서를 지낸 유회당 권이진이다.원광대 유명종 교수는 “성호 이익이 묘지명을 짓고 번암 채제공이 시장을 올린 것으로 보아 그의 학통과 사상이 유학사상사 전회(轉回)의 한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생각된다”며 유학자로서 권이진을 높이 평가하였다. 하지만 그가 더욱 주목되는 점은 뛰어난 행정가, 실사구시 관인으로서의 면모다.권이진은 2년밖에 안되는 짧은 재임 기간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곳간을 가득 채우는 성과를 이뤄냄으로써 훗날 영조도 그를 최고의 호조판서로 평가하였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양란과 기후재해로 황폐화되었던 경제가 점차 회복되고는 있었지만 지속되는 비리와 부실한 재정 관리로 인해 당시 국가 재정은 파탄 직전이었다. 권이진이 얼마나 재정 건실화에 노력했는지는 영조가 사랑스런 옹주에게 은주발을 선물하려 한 것까지 명분 없는 지출이라며 완강히 반대한 에피소드에서 일단을 엿볼 수 있다. 권이진은 세금을 더 거두어들이는 방식이 아니라 근대적이고 합리적인 재정원칙을 수립하고, 낭비를 줄이고, 비리를 척결함으로써 개혁의 성과를 이루어냈다.훗날 정조의 개혁정치를 보좌하며 최고의 영의정으로 칭송된 채제공은 자신이 호조판서를 맡게 되자 조정의 경대부들이 서로 “그대가 반드시 권판서와 같기를 바라오”라고 했다며 “공께서 40여 년 전에 호조판서를 지냈는데도 불구하고 다스린 법과 시행했던 일들이 혁혁하게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고 회고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도 흥미로운 기록이 실려 있다. 탐관오리의 비리를 징치한 것으로 유명한 어사 박문수가 호조판서를 맡았을 때 좋은 평판을 받았으나 ‘권이진이 호조에 있으면서 재화를 잘 다스린 것으로 최고의 칭예를 얻은 것에는 미치지 못하였다’는 대목이다.
저자

권선준

대전에서태어나대전고등학교와성균관대학교경제학과를졸업했다.20대에학생운동과노동운동에참여했으며그후국회,청와대,21세기리서치,언론진흥재단등에서일했다.대학에서한국사를가르친부친의영향으로줄곧역사를통해정체성을확인하고인생의목표를찾는삶을살아왔으며전통의가치를현재의시각으로되살리는데관심이많다.

출판사 서평

권이진의정책을면밀히연구한역사학자들도이러한평가에동의하고있다.충남대성봉현교수는〈유회당권이진의호조재정확보책〉이라는논문에서‘권이진을조선최고의호조판서로평가’하였으며,김준석연세대교수도권이진이‘그시기재정운용의최고능력가라는평판’을얻었다고평했다.노론이주도하던당시정치구도속에서권이진은극소수파인남인출신이었다.그럼에도불구하고그가호조판서로전격발탁된데는무엇보다그의탁월한능력과정파에휘둘리지않고실사구시적올곧음을추구하던사람됨이영조의눈에띄었기때문일것이다.권이진집안의혼맥및그에서파생한인간관계는조선붕당사를통틀어가장흥미로운대목이기도하다.그의외조부는노론의영수인우암송시열이고,고모부이자스승윤증은소론의영수이다.사문난적으로처형된남인대표윤휴의아들윤의제역시고모부였다.권이진의할아버지권시를중심으로당시붕당의대표인물들을망라하는놀라운인연이형성된것이다.권이진은송시열과윤증에게서학문을배웠다.다채로운배경속에서숙명적으로다양한학문적세례를받을수밖에없었다.하지만그를더욱탄탄히붙들어세운것은증조부권득기와조부권시가확립하고전수한가학의전통이었다.‘매사에반드시옳음을추구한다’는구시(求是)의정신이그것이다.그리하여권이진은당파에기울어지지않으면서‘구시’의정신을바탕으로민생정치와현실적인경세문제를실현하기위해힘썼다.격심한당쟁의세상에서실사구시관인의길을간권이진의삶은참으로독특하다.그는호조참판,호조판서등을맡아탁월한재정전문가로서의면모를보였을뿐아니라,힘없는백성들의부담을경감하고그들의목소리에귀기울이는애민적목민관으로서도큰사랑을받았다.또한동래부사를맡아자주적대일외교의기틀을마련하고남해안연안의방어책마련에획기적인개혁안을제시하였다.평안감사를맡았을때는일일이변방을순회하며대청무역의적폐청산및북변방어책확충에노심초사하였다.하나같이‘구시’를바탕으로한실천적행정가의면모라할수있다.조선역사상행정가로서이같은삶을살고성과를낸사람은거의없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더욱이권이진같은재정행정가는전무하다.이책의집필은권이진이남긴문집《유회당집》이중심바탕을이루고있으며,그밖에《조선왕조실록》과당대문인들이남긴기록이전거로활용되었다.권이진은1668년(현종9년)대전시탄방동(당시공주목유성현천내면탄방리)에서태어났다.권이진은할아버지권시가그곳에입향후호서(湖西)사람의일원으로활동함에따라자연히그영향을받으며성장하였고1707년대전보문산남쪽의무수동으로이사해정착하게된다.만년에는부모님묘소아래재실을짓고“날이새도록뒤척이면서두분이그리워잠못이루네(明發不寐有懷二人)”라는뜻으로‘유회당(有懷堂)’이라이름지었다.이후유회당은그의호가되었다.그는이곳을가꾸고일군과정을명당실기(明堂室記)와하거원기(何去園記)에남겼다.현재무수동에는유회당과삼근정사,거업재,장판각,여경암등이대전시유형문화재로지정되어보존되고있다.권이진은호조판서와평안감사를마친후고향무수동으로돌아와머물다가1734년67세를일기로생을마감하게된다.영조는치제문을지어그가이룬성과를칭송하며죽음을아쉬워한다.그의묘소는대전시중구어남동에조성되었다.한편이책의미덕에추가해야할것이하나더있다.그것은권이진이1723년연경에사은사부사로가면서남긴〈연행일기〉이다.연암박지원의〈열하일기〉보다56년이나앞선기록이다.두글을비교해읽는다면조선시대연행사신의세계에대해보다깊이이해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