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에서 듣는 음악

휠체어에서 듣는 음악

$20.00
Description
『휠체어에서 듣는 음악』은 휠체어 위에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작가 하태우가 자신의 삶과 시선을 내놓는 첫 책이다. “당신도 지금 휠체어를 타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건네며 시작하는 이 책은 익숙하고 따뜻한 음악들에 기대어 낯설고 서늘한 생각을 펼쳐 낸다. 책 구석구석에 나타나는 유머러스한 추임새 덕분에 이 온도 차는 더욱 뚜렷해진다.

『휠체어에서 듣는 음악』에는 2010년대 한국을 살았다면 누구나 한 번쯤(혹은 수십 번쯤) 들어 보았을 음악들이 빼곡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양한 음악을 폭넓게 듣기보다 처음 들었을 때 좋았던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다”며, “융통성 부족한 성격이 음악 취향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너스레를 부린다.(3쪽)

하지만 같은 음악도 듣는 이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감상을 낳기 마련이다. 가령 10CM의 공전의 히트 「아메리카노」는 저자에게 ‘대(大)카페 시대’ 속에서도 카페의 문턱을 넘지 못하던 대학교 1학년 때를 상기시킨다. “나도 ‘순대국 먹고 후식으로’ 아메리카노 마시고 싶다고….”(55쪽) 한편, ‘보통의 존재’로서 겪는 상실을 노래한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는 저자로 하여금 “나는 내 자신이 보통의 존재이고자 애쓰는 ‘보통이 될 수 없는 존재’임을 자각”하게 한다. 저자 자신이야말로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13쪽)

그렇다고 ‘휠체어에서 듣는 음악’이 마냥 씁쓸하거나 슬픈 것은 아니다. 저자에게 음악은 친구에 대한 애정 담은 선물이기도 하고(「휠체어에서 사는 앨범」), 동생의 운전 연습을 도우며 듣는 BGM이기도 하다(「운전은 무리」). 저자는 음악을 통해 시간 여행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10년 전의 나를 보면 무슨 말을 할래」), 정신을 잃을 듯한 직장 스트레스를 달래 보기도 한다(「멀리멀리」). 저자는 음악이 내밀하고 관능적일 수 있으며(「사실 그래서 좋다」), 동시에 배제된 이들의 곁에 서서 팔뚝질 할 수도 있음을 안다(「푸른 언덕 청파동」). 그러니까 ‘휠체어에서 듣는 음악’은 낮으면서도 높고, 빠르면서도 느리다. 휠체어처럼 말이다.

『휠체어에서 듣는 음악』은 저자가 휠체어 위에서 쌓아 온 흥건한 감정과 산뜻한 상념을 모두 담고 있다. 이 책에 함께 수록된 미술가 노상호의 앨범 재킷 드로잉들과 마찬가지다. 또 『휠체어에서 듣는 음악』은 단정한 문장 속에 간간이 귀여움을 숨겨 두었다. 테이블 위 검고 차가운 물건들과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함께 있는 표지 사진과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며 “언젠가 내게서 사진과 글이 사라지더라도 음악만은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고 한다.(103쪽) 이 말에서 들리는 것은 희망일까, 절망일까? 『휠체어에서 듣는 음악』은 읽는 이로 하여금 음악 속에서 눈과 마음의 갈피를 잃게 만들 것이다.
저자

하태우

저자:하태우
1991년마산에서태어났다.세살무렵근육병진단을받았다.서울대학교에서심리학과철학을공부했다.휠체어위에서글을쓰고사진을찍는다.『휠체어에서듣는음악』을썼다.서울에살고있다.첼시FC의팬이다.

목차

휠체어에서사는앨범―콜드플레이
죽어마땅한것,죽여마땅한것―눈뜨고코베인
가장보통이고싶은존재―언니네이발관
피멍이든것같은―자우림
운전은무리―설
소멸은공평하게―보드카레인
서울나들이―김목인
10년전의나를보면무슨말을할래―빈지노
급속충전―미역수염
피범벅이되도록―국카스텐
‘겁나’긍정적인―페퍼톤스
김창완밴드잖아―김창완밴드
여름이되면생각나는―새소년
쇼팽을즐기는가장완벽한방법―올라퓌르아르날스,알리스자라오트
돌멩이가될것같다―김뜻돌
기타연습―글렌핸사드,마르케타이르글로바
커뮤니케이션의이해―브로콜리너마저
멀리멀리―우효
올해는제발―람슈타인
깊은밤안개속―3호선버터플라이
7급공무원시험―옥상달빛
사실그래서좋다―시가렛애프터섹스
유쾌함을처방―AC/DC
나도아메리카노―10CM
까만색플라스틱비디오테이프―앨런멩컨,하워드애슈먼
가깝고도먼행복―알바노,로미나파워
Diealone―혁오
비오는날,잠자리―유라
아카시아는아카시아가아니야―소규모아카시아밴드
반복적경두개자기자극술―푸른새벽
멋진하루―푸디토리움
뜨거웠던여름을기억할게―더발룬티어스
끄덕끄덕―검정치마
S와나―릴리슈슈
밤산책―김거지
그럼에도불구하고―이설아
살아가며우리가배운건―보수동쿨러
마네킹은휠체어를타지않는다―사카모토류이치
바다를바라보며―도마
마지막에남아있는것―세이수미
해로운노래―김사월
내장노사―장기하와얼굴들
가을은등롱―다린
푸른언덕청파동―정밀아
위스키가서친구집한잔―악틱멍키스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휠체어에완전히의지하게된건언제부터였을까.내근육병은진행속도가느린편이어서,언제부터걷지못했고언제부터서있지못했는지가흐릿하다.어쨌거나지금은수동이든전동이든휠체어가없으면일상생활이불가능하다.앉거나누운자리에서꼼짝도할수없다.사실꼼짝은할수있는데그것이정말꼼짝에불과해서꼼짝도할수없는것과별반다르지않다.수동휠체어가있어책상에앉아서글을쓸수있고,전동휠체어가있어밖에나가서사진을찍을수있다.(13쪽)

힙합에대한애정은20대중반부터눈에띄게식었다.‘머니스웨그’도질렸고‘비치’(bitch)나‘푸시’(pussy)타령도싫었다.그럼에도2016년5월에발매된빈지노의정규1집『12』는듣지않을수가없었다.(23쪽)

기타를배우고싶다는생각이든건어찌보면당연했다.마침집에는엄마가가끔치던통기타가하나있었다.작은방에들어가장롱옆에세워져있던기타를꺼내들었다.처음잡아본기타는생각보다크고묵직했다.휠체어에앉은상태에서는다리위에기타를올려놓기가쉽지않았다.양옆으로튀어나와있는팔걸이에기타몸통이계속걸려서안정적인자세로기타를잡을수가없었다.엉거주춤하게기타를붙잡고방학내내몇개의코드를번갈아가며연습했는데,어정쩡한모양새때문에기타를치는시간보다기타잡는자세를바로잡는시간이더길었다.글렌핸사드처럼기타를치며노래까지부르려면30년은걸릴것같았다.(39쪽)

카메라를들고다녔지만사진을한장도찍을수없고,서점에갔지만책을한쪽도읽을수없는날이있다.그런날에는정말이도시로부터멀리멀리달아나고싶다.『성난도시로부터멀리』의앨범표지처럼,아무런색깔도없이오직검은선만존재하는곳으로.선인장과야자수가있고까만태양이높이이글거리는곳으로.우효의투명한목소리가그곳으로데려다줄것만같다.(43쪽)

rTMS를받으러일주일에한번씩병원에갔다.기계가설치된의자에앉아청소기헤드처럼생긴코일을왼쪽머리에갖다대고있으면찌릿찌릿한자기장자극이느껴졌다.휠체어에서옮겨앉아야했기때문에매번누군가의도움이필요했다.같은병원에서간호사로근무하는첫째동생이치료실로찾아올때도있었고,첫째동생의남자친구가회사를쉬는날나와동행할때도있었다.두사람모두시간이안될때는식당에서일하고있던엄마가병원으로왔다.가족에게짐이되고있다는생각을떨치기어려웠다.(69쪽)

전교생을통틀어한명이있기도어려운데한교실에두명이나휠체어타는근육병환자라니.나와S는서로를의식하지않을수없었다.그러나근육병에휠체어를탄다는점을제외하면우리는모든것이정반대였다.나는공부를잘했고친구가많았으며어떤상황에서든적극적이고활발했다.반면S는공부를못했고친구가없었으며매사에소극적이고조용했다.(77쪽)

가산혼합되어하얗게밝아지는빛처럼,앨범전체를반복해서들을수록도마가노래하는다양한감정들은점점슬픔으로수렴해간다.따스하고밝게빛나는슬픔.모든것에저마다의이유가있다고굳게믿는사람처럼,도마의노래를들으며,도마의노래를듣다보면왜결국슬퍼지는지에대해계속생각했다.(89쪽)

김사월의노래를들으면몸과마음이조금씩가라앉는다.나는가라앉기를잘한다.자주,오래가라앉는다.아침저녁으로먹는약이부표처럼수면위를떠다니고,나는그아래에서웅크린채숨을참는다.감정과표정이물거품이되어사라진다.방에틀어박혀조금도움직이지않고밤낮이없을만큼잠을잔다.어지럽고슬픈꿈을꾼다.한번은그런나를보고J가말했다.너에게김사월은너무해로워.(93쪽)

D의해결법은조금달랐다.(그리고재미있었다.)새로이사를하게된D는어느날대뜸선물을요구했다.D의생일이가까웠기때문에뭘갖고싶은지물었다.돌아온답은뜻밖에도‘수동휠체어’였다.자신의집에두었다가내가놀러오면옮겨탈수있게수동휠체어를선물로받고싶다는것이었다.그렇게해서나는처음으로누군가에게휠체어를선물하게되었다.(1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