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극집 1 (양장본 Hardcover)

단편극집 1 (양장본 Hardcover)

$27.00
Description
작가 사뮈엘 베케트는 극작가이자 연출가였고, 소설가이자 시인이었으며, 비평가이자 번역가였다. 작가로서 그의 역할은 작품과 더불어 계속해서 변화했다. 자신의 글을 다른 언어로 스스로 다시 쓰는 번역 과정을 여러 차례 거쳤던 베케트는 글로 완성한 작품을 극장의 무대로, 라디오로, 텔레비전으로, 영화로 다시 한번 통과하며 작품의 매체를 바꾸어 갔다. 그러면서 작품이 새로운 몸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 깊이 관여했고, 거듭 동참했다.
『단편극집 I』은 사뮈엘 베케트가 영어로 먼저 쓴 극작품 열아홉 편을 묶은 선집이다. 다양한 매체를 위해 쓰인 단편극들은 구성과 전개 방식 등이 저마다 각기 다른 형식으로 펼쳐진다. 이는 당연하게도 글이 변환되어 구현될 이후의 매체를 주요하게 염두에 둔 결과로 보인다. 베케트에게 극장,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 등의 매체는 글의 다른 모습을 위한 도구나 장치를 넘어선 글의 대상 자체였고, 글과 함께, 글과 또 다른 각도에서 작품을 입체적인 존재로 만들어 가는 동등한 요소였다고 여겨진다.
베케트의 어느 작품에서든, 베케트와 번역이라는 문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특히 입말을 예정하는 대사와 상황과 동작을 지시하는 지문이 여러 형태로 변주되며 이루어 가는 극작품은 구어와 문어를 절묘하게 줄타기한다. 한국어판 『단편극집 I』에서, 장광설과 침묵을 오가며 수학적인 움직임으로 정교하게 조직된 베케트의 언어는 번역가 이예원의 섬세히 생동하는 한국어를 맞춰 입고 한국어 사용자들이 그간 알아 왔던 언어를 다시금 새롭게 인식하게끔 이끈다. 작품 번역에 뒤이어 번역가가 정리한 「단편극의 출간, 공연과 방송, 번역에 대해」는 베케트 작품의 궤적을 되짚으면서 변화하는 작품 세계와 한국어판 번역의 실마리를 조금씩 남겨 간다. 한편 사뮈엘 베케트 연구자·번역가 김두리는 글 「돌들: 부동하는 점들의 세계」에서 베케트의 극작품들을 분석하며 극 속 인물과 현실의 복잡성, 두개골로 형상화되는 ‘벗어날 수 없음’, 말이라는 행위의 변주를 통해 만들어지는 이야기, 인형과 같이 정확하게 움직이며 획득되는 우아함과 부동심, 대칭 방식으로 반복적으로 구현되는 특정한 구조와 철학적 문제, 움직임이 사라진 채 맺어지는 장면들을 “시각적 시”에 다다른 “돌 이야기”로 묶어 낸다.
저자

사뮈엘베케트

저자:사뮈엘베케트(SamuelBeckett,1906-89)
1906년4월13일아일랜드더블린남쪽폭스록에서유복한신교도가정의차남으로태어났다.더블린의트리니티대학교에서프랑스문학과이탈리아문학을공부하고단테와데카르트에심취했던베케트는졸업후1920년대후반파리고등사범학교영어강사로일하게된다.당시파리에머물고있었던제임스조이스에게큰영향을받은그는조이스의『피네건의경야』에대한비평문을공식적인첫글로발표하고,1930년첫시집『호로스코프』를,1931년비평집『프루스트』를펴낸다.이어트리니티대학교에서프랑스어를가르치게되지만곧그만두고,1930년대초첫장편소설『그저그런여인들에대한꿈』(사후출간)을쓰고,1934년첫단편집『발길질보다따끔함』을,1935년시집『에코의뼈들그리고다른침전물들』을,1938년장편소설『머피』를출간하며작가로서발판을다진다.1937년파리에정착한그는제2차세계대전중레지스탕스로활약하며프랑스에서전쟁을치르고,1946년봄프랑스어로글을쓰기시작한후1989년숨을거둘때까지수십편의시,소설,희곡,비평을프랑스어와영어로번갈아가며쓰는동시에자신의작품대부분을스스로번역한다.전쟁중집필한장편소설『와트』에뒤이어쓴초기소설3부작『몰로이』,『말론죽다』,『이름붙일수없는자』가1951년부터1953년까지프랑스미뉘출판사에서출간되고,1952년역시미뉘에서출간된희곡『고도를기다리며』가파리,베를린,런던,뉴욕등에서수차례공연되고여러언어로출판되며명성을얻게된베케트는1961년보르헤스와공동으로국제출판인상을받고,1969년노벨문학상을수상한다.희곡뿐아니라라디오극과텔레비전극및시나리오를집필하고직접연출하기도했던그는당대의연출가,배우,미술가,음악가와지속적으로교류하며평생실험적인작품활동에전념했다.1989년12월22일파리에서숨을거뒀고,몽파르나스묘지에묻혔다.

역자:이예원
캐나다에서태어나한국과인도네시아,핀란드,덴마크,영국을오가며성장기를보냈다.2002년부터영상자막,출판,미술번역을해왔다.데버라리비에세이(플레이타임),사뮈엘베케트소설『머피』(워크룸프레스)외다수의글을한국어로옮겼고,황정은소설과한강소설(공역)을영어로옮겼다.파디주다외33인의시인과번역가가쓰고옮긴『팔레스타인시선집』(접촉면)을함께옮기고만들었다.

목차


지는모두
크래프의마지막테이프
불씨
말과음악
재생
필름
오고가고
응조

나아닌
그때
발길
유령삼중주
…다만구름…
독백한편
흔들노래
오하이오즉흥
사방
나흐트운트트로이메

부록I/단편극의출간,공연과방송,번역에대해/이예원
부록II/돌들:부동하는작은점들의세계/김두리
작가연보
작품연표

출판사 서평

들리는것

극작품이라는형식의글을‘들리는것’과‘보이는것’으로나누어바라볼때,베케트의극은달리읽히는면이있다.말과음악과소리는‘들리는것’으로서베케트의극에서주요하게작용하며,‘보이는것’을여러방식으로드러낸다.

소리와불가분의관계인라디오를위한극「지는모두」에서,등장인물들이내뱉는혼잣말내지여담같은대사는발을끌며걷는소리와동물울음과달구지바퀴소리와자전거종소리와경적과흥얼거림과코푸는소리와킥킥거림과폭소와슈베르트의「죽음과소녀」등을두루거느리며소리로꽉찬극을만들어간다.역시라디오를위해쓰인「불씨」의인물은몽돌해변을걸으며바닷소리위로죽은이에게긴혼잣말을걸고,이혼잣말에아내가거는말과아이가피아노와승마를박자맞춰연습하는소리와울음이겹쳐진다.라디오라는매체를분명히의식한듯읽히는이작품들은말과약간의음악을여러소리와함께들려준다.이극들에서음악은작은요소로쓰이며,(극의내용과연관한해석과별개로)다양한소리중하나로들리게된다.

한편음악을보다적극적으로드러내는작품들이있다.라디오극「말과음악」의‘말’은‘음악’과서로견준다.‘음악’은음악자신의표현을대사로삼아‘말’과대화한다.이때제3자‘골골’은‘말’을‘조’라는이름으로,‘음악’을‘밥’이라는이름으로부르며‘말’과‘음악’을등장인물의자리에확실히위치시킨다.3막으로이루어진텔레비전극「유령삼중주」는통상‘유령’삼중주라불리는베토벤의「피아노삼중주5번」2악장‘라르고’를카메라의움직임과함께극의구조로반영한다.이책을닫는작품인텔레비전극「나흐트운트트로이메」역시곡명을극의제목으로삼은경우로,슈베르트의리트「밤과꿈」마지막일곱마디와함께,꿈꾸는이가곡을읊조리고흥얼거리는것외의대사없이흘러간다.이라디오극과텔레비전극에서음악은배경음악으로기능하지않는다.음악은등장인물이되고,대사가되고,구조가되고,주제나주요한흐름이된다.

극속에서,베케트의어떤인물들은말을쏟아낸다.쏟아지는이말들은듣는이가들은말을곱씹거나거를틈없이말을덩어리로,소리자체로받아들이게한다.일막극이자일인극인「크래프의마지막테이프」의주인공은오래전테이프에녹음된자신의목소리를돌려들으며오늘의녹음을시작한다.「재생」의세남녀는회색단지에들어앉아머리만내민채번갈아,다함께빠르게말한다.「응조」에서‘조’에게들려오는여자의목소리,분출하는말의출구로서입을주목하게하는독백극「나아닌」과문장부호를벗어나세겹으로들려오는자신의목소리를듣는또다른독백극「그때」,제목처럼한편의긴독백으로이어지는「독백한편」,흔들의자에앉아녹음된제목소리가시처럼흘러가는양상을듣는「흔들노래」….덩어리진말은말을소리로체감하게하면서,말의바깥을바라보게한다.

보이는것

말의바깥에듣는이가있고,움직이는이가있다.이들이보인다.
베케트의극속에서,‘듣는이’나‘청자’는종종구체적인모습으로등장한다.그런데「오하이오즉흥」에등장하는‘듣는이’와‘읽는이’는생김새가닮도록지시된다.「크래프의마지막테이프」나「흔들노래」에서녹음된자신의목소리를듣고반응하는이들이나「그때」에서자신의목소리를세방향에서듣고있는이를연상시키는이모습을통해,극을독자로서읽게되는이와관객으로서듣게되는이가이렇게만난다고읽힌다.「나아닌」의끝없는대사가펼쳐지는윗무대아래,있는듯없는듯아주조금움직이는청자도있다.텔레비전극「응조」에서,제목에등장하는인물‘조’는자신에게들려오는여자의목소리를듣고있는자다.조는목소리가들려오기전까지자기방을이렇게저렇게살피다가목소리에귀기울이면서부터는자리에앉아거의움직이지않는데,화면은그얼굴의미세한변화를비춘다.한편텔레비전극「…다만구름…」은제목이빌린예이츠의시구절을향해가면서말하는시늉을,입놀림을보여준다.

이러한‘대사있음’이듣는이나읽는이의(주로말을둘러싼)작은움직임을보여주고있다면,‘대사없음’은보다명확한움직임과그에따른리듬을때로드러내보인다.텔레비전극「사방」의실연자넷은가운과쓰개로몸과얼굴을가린채정사각형내부가양대각선으로구획된구역을각자에게주어진경로로규칙적으로걸으며,대사대신발소리와함께타악기네종류를여러조합으로연주해간다.‘작은극’「오고가고」의경우,최소한으로전개되는절제된대사가세인물의손과팔의특정한움직임에집중하도록이끈다.영화각본「필름」역시한마디(“쉿!”)를제외하고대사없이흐르면서카메라가‘눈’이되어‘대상’인인물의동선과움직임을뒤쫓다가,‘대상’의눈에다다라비로소멈춘다.“존재함은지각됨”이며,“자각은존재내에서지속한다”는사실이이렇게증명된다.

내가나를지각한다는것에서벗어날수없음은움직임이계속됨을증명한다.말의바깥이라고말하면서말을벗어나지못하듯이,베케트의세계는움직이면서움직이지않는,혹은그반대의모순을계속해서실현한다.이러한운동성이짐짓굳어진형태로작품의곳곳에붙박여있다.들릴수있고,보일수있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