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도 오어 낫 바르도

바르도 오어 낫 바르도

$19.00
Description
‘바르도’는 죽음과 재탄생 사이의 기간과 과정을 가리키는 티베트어로, 삶과 죽음을 모두 거친 다음 도달하게 되는 상태다. 위도 아래도 없고 왼쪽도 오른쪽도 없는, 사후 49일간의 중간 지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대표하는 대사(“To be, or not to be”)를 제목으로 차용한 앙투안 볼로딘의 소설 『바르도 오어 낫 바르도』는 죽음과 삶 사이의 유예된 시간과 공간을 그곳을 통과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펼쳐 나간다.
앙투안 볼로딘은 여러 작품에서 바르도라는 중간계 개념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 왔다. 49개 장(章)으로 이루어지며 ‘검은 공간’이 언급되기도 하는 『미미한 천사들』, 죽은 아내의 기억에 시달리며 현실과 꿈,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한 채 이 세상과 저세상을 오가는 『메블리도의 꿈』, ‘찬란한 종착역’에 도달하기 위해 뒤틀린 영웅 솔로비예이의 끝나지 않는 꿈속 숲을 지나야 하는 피조물들의 여정이 그려진 『찬란한 종착역』, 바르도에서 방황하는 이의 목소리가 담긴 『작가들』. 이 책 『바르도 오어 낫 바르도』는 그동안 볼로딘의 인물들이 여행해 온 바르도라는 상태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보며, 이 과정을 통해 소설이라는 상태를 질문한다.

사이에서 떠다니기

“저희는 현재 바르도에 있습니다. 바르도는 무엇일까요…? 터무니없는 표현을 쓰지 않고 바르도를 정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비전문가들에게 말씀드리는 것인 만큼, 제가 한번 간단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바르도란, 이를테면 삶 이전과 죽음 이후의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막 사망한 남자와 여자가 깨어나는, 떠다니는 어떤 상태입니다. 어떤 상태 혹은 어떤 세계죠. 떠다니는.”(45쪽)
『바르도 오어 낫 바르도』에서, 한 인물이 죽은 후의 과정은 이러하다. 죽음을 맞은 이후, 영혼은 열반하거나 환생하기 전까지 49일간 바르도를 방황하며 각종 환상과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이 바르도를 건너는 여정을 돕고자 누군가가 죽은 사람의 귓가에 책을 읽어 준다. 이 책이 『바르도 퇴돌』 내지 『죽은 자들의 책』이다.
처음 바르도의 문턱에 서는 자는 혁명적 공산주의자이자 급진적 평등주의자인 코민포름이다. 회개한 테러리스트의 총에 맞아 죽어 가는 그를, 늙은 수도승 드룸보그가 앞선 방식으로 도우려 한다. 그러나 코민포름이 숨을 거두기 전 그에게서 정보를 빼내려는 스트로부쉬가 급한 마음에 서고에서 요리책과 초현실주의 선집을 꺼내온다. 어쨌든 이들은 죽어 가는 이의 심장이 멈출 때까지, 멈춘 이후에도, 계속해서 책을 읽고 말을 한다. ‘투명한 빛’을 향해 가야만 다시 태어나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있음을 주입하는 목소리와, 그와 무관한 책을 무작위로 펼쳐 읽는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겹친다. 주술을 연상케 하는 이러한 말의 거듭됨은 무언가를 읽고 쓰고 말하는 행위 자체를 주목하게 한다. 뒤이은 장(章)들에서도 이어지고 늘어지는 이러한 반복의 과정 속에서 말과 글의 지속이 말과 글의 내용을 초과해 간다. 즉 말과 글을 끊임없이 생산해 내고 그러한 행위를 지속하는 자체가 의미 있어지고 필요해진다. 이러한 관점은 볼로딘의 “서사적 웅얼거림”(71쪽)이 지속되는 근거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심지어 완전히 잘못된 세부 사항마저도, 확신하지 못하지만 귀 기울여 듣고 있는 사람을 항상 안심시켜”(71쪽) 주는 효용성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은 소설의, 나아가 문학의 특정한 용도 중 하나일 수 있으며, 행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이를 통해 소설이라는 상태 자체로 존재할 수는 있다. 즉 바르도가 “떠다니는 어떤 상태”(45쪽)이듯이 소설 역시 그러하다.
이 책을 먼저 읽은 소설가 양선형은 이러한 바르도라는 ‘사이’의 상태를 소설이라는 픽션의 핵심으로 본다. “픽션은 무(無)와 현실의 틈새에서 벌어지는 사건이기에 없음도 있음도 아니고, 사라짐과 나타남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기이한 존재들의 대피소를 마련하는 일이다.”(양선형, 「추천의 글」) 바르도에 다다른 볼로딘의 인물들은 번번이 미끄러지고 계속해서 어긋나 온 이들이다. 혁명에 실패한 자. 자신이 죽었음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잠들어 버린 끝에 원숭이의 자궁으로 들어가게 된 병사. 주어진 임무를 달성하지 못하는 조직원. 관객 없이 모든 배역을 홀로 연기하며 새들의 배설을 감내하는 광적인 극작가. 나름의 정의를 실현하려다 감금된 자. 바르도에서의 존재가 마음에 든 나머지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 제게 주어지는 조언을 듣지 않고자 하는 죽은 자. 아무도 웃게 하지 못하는 광대. 신비주의자의 세계에 광인, 실패한 혁명가, 어리석은 자, 반(半)인간의 세계가 겹쳐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한편 역시 이 책을 앞서 읽은 소설가 구병모는 부조리와 유머를 통과하며 “혼수상태의 난장”으로 향해 가는 이 소설이 “경계를 잃거나 앓는”다고 말한다(구병모, 「추천의 글」). 바르도의, 소설의 ‘사이’라는 상태는 이렇게 소실과 통증을 통해 역으로 확장되면서 읽는 이를 감염시켜 간다.
저자

앙투안볼로딘

저자:앙투안볼로딘(AntoineVolodine)
1950년에프랑스에서태어났다.러시아문학을가르치고번역했으며,프랑스어로글을쓴다.40여편에이르는소설을통해문학적평행우주‘포스트엑조티시즘’을구현했다.『미미한천사들』(1999)로베플레르상과리브르앵테르상을,『찬란한종착역』(2014)으로메디시스상을받았다.

역자:조재룡
서울에서태어나성균관대불문과를졸업하고2002년프랑스파리8대학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서울대한국문화연구소와성균관대인문과학연구소,고려대번역과레토릭연구소의전임연구원을거쳐,현재고려대불문과교수로재직중이다.2003년『비평』에평론을발표하면서문학평론가로도활동중이며,시학과번역학,프랑스와한국문학에관한다수의논문과평론을집필하였다.저서로는『앙리메쇼닉과현대비평:시학,번역,주체』『번역의유령들』『시는주사위놀이를하지않는다』『번역하는문장들』『한줌의시』『의미의자리』『번역과책의처소들』『아케이드프로젝트2014-2020비평일기』『시집』등이있으며,역서로는앙리메쇼닉의『시학을위하여1』,제라르데송의『시학입문』,루시부라사의『앙리메쇼닉,리듬의시학을위하여』,알랭바디우의『사랑예찬』『유한과무한』,조르주페렉의『잠자는남자』,장주네의『사형을언도받은자/외줄타기곡예사』,로베르데스노스의『알수없는여인에게』,미셀표쉐의『행복의역사』,레몽크노의『떡갈나무와개』『문체연습』,자크데리다의『조건없는대학』등이있다.2015년시와사상문학상을,2018년팔봉비평문학상을수상하였다.

목차

I.바르도직전최후의명예로운저항
II.글루첸코
III.슐룸
IV.메두사의바르도
V.퍼프키
VI.다도키안
VII.바르도의바에서

작품목록

출판사 서평

사이에서떠다니기

“저희는현재바르도에있습니다.바르도는무엇일까요…?터무니없는표현을쓰지않고바르도를정의하기란쉽지않습니다.비전문가들에게말씀드리는것인만큼,제가한번간단하게설명해보겠습니다.바르도란,이를테면삶이전과죽음이후의세계라고할수있습니다.이제막사망한남자와여자가깨어나는,떠다니는어떤상태입니다.어떤상태혹은어떤세계죠.떠다니는.”(45쪽)

『바르도오어낫바르도』에서,한인물이죽은후의과정은이러하다.죽음을맞은이후,영혼은열반하거나환생하기전까지49일간바르도를방황하며각종환상과장애물을만나게된다.이바르도를건너는여정을돕고자누군가가죽은사람의귓가에책을읽어준다.이책이『바르도퇴돌』내지『죽은자들의책』이다.

처음바르도의문턱에서는자는혁명적공산주의자이자급진적평등주의자인코민포름이다.회개한테러리스트의총에맞아죽어가는그를,늙은수도승드룸보그가앞선방식으로도우려한다.그러나코민포름이숨을거두기전그에게서정보를빼내려는스트로부쉬가급한마음에서고에서요리책과초현실주의선집을꺼내온다.어쨌든이들은죽어가는이의심장이멈출때까지,멈춘이후에도,계속해서책을읽고말을한다.‘투명한빛’을향해가야만다시태어나고통을겪지않을수있음을주입하는목소리와,그와무관한책을무작위로펼쳐읽는목소리가반복적으로겹친다.주술을연상케하는이러한말의거듭됨은무언가를읽고쓰고말하는행위자체를주목하게한다.뒤이은장(章)들에서도이어지고늘어지는이러한반복의과정속에서말과글의지속이말과글의내용을초과해간다.즉말과글을끊임없이생산해내고그러한행위를지속하는자체가의미있어지고필요해진다.이러한관점은볼로딘의“서사적웅얼거림”(71쪽)이지속되는근거중하나가될수있다.“심지어완전히잘못된세부사항마저도,확신하지못하지만귀기울여듣고있는사람을항상안심시켜”(71쪽)주는효용성을갖게되기때문이다.어쩌면이것은소설의,나아가문학의특정한용도중하나일수있으며,행여그렇지않다하더라도,이를통해소설이라는상태자체로존재할수는있다.즉바르도가“떠다니는어떤상태”(45쪽)이듯이소설역시그러하다.

이책을먼저읽은소설가양선형은이러한바르도라는‘사이’의상태를소설이라는픽션의핵심으로본다.“픽션은무(無)와현실의틈새에서벌어지는사건이기에없음도있음도아니고,사라짐과나타남사이에서고군분투하는기이한존재들의대피소를마련하는일이다.”(양선형,「추천의글」)바르도에다다른볼로딘의인물들은번번이미끄러지고계속해서어긋나온이들이다.혁명에실패한자.자신이죽었음을이해하지못하다가잠들어버린끝에원숭이의자궁으로들어가게된병사.주어진임무를달성하지못하는조직원.관객없이모든배역을홀로연기하며새들의배설을감내하는광적인극작가.나름의정의를실현하려다감금된자.바르도에서의존재가마음에든나머지이곳을벗어나고싶어하지않는,제게주어지는조언을듣지않고자하는죽은자.아무도웃게하지못하는광대.신비주의자의세계에광인,실패한혁명가,어리석은자,반(半)인간의세계가겹쳐진다면무슨일이벌어질까?한편역시이책을앞서읽은소설가구병모는부조리와유머를통과하며“혼수상태의난장”으로향해가는이소설이“경계를잃거나앓는”다고말한다(구병모,「추천의글」).바르도의,소설의‘사이’라는상태는이렇게소실과통증을통해역으로확장되면서읽는이를감염시켜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