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박 덕 은
고대륜 시인은 1939년 1월 9일 전남 신안군 도초면 발매리에서 아버지 고금담과 어머니 배순례 사이에서 6남매 중 큰아들로 태어났다.
1945년 해방되는 해에 국민학교에 들어간 그는 매일 7킬로미터나 떨어진 먼 거리를 걸어 등교해야 했다. 게다가 교실이 부족하여, 2부제 수업을 하였다.
국민학교 3학년 2학기 때 도초서 국민학교로 전학하여 3회로 졸업을 했다. 그 해 6·25 전쟁이 일어나, 목포제일중학교에 진학했지만, 학교가 불타 버렸고 또 교사가 부족하여 2부제 수업을 해야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휴전 결사반대 궐기 대회를 시내를 돌면서 외쳐댔다. 문태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학도 군사훈련도 받았다.
육군 포병 중대로 입대하여, 교육계에서 복무하다가, 제대 6개월을 남겨 두고 갑종 간부 후보생 184기에 합격하여 상무대 보병학교에서 교육받았다. 하지만, 몸이 아파 중도에 그만두고 제대하고 말았다.
제대 후, 목포교육대학에 입학하여, 1967년에 졸업하고, 방송통신대학 초등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고향, 나주, 광주, 함평 등지에서 평교사로 근무했고, 교감으로 승진하여 무안, 도초, 목포 등지에서 6년간 근무하다, 목포 신흥초등학교에서 퇴직하였다. 그사이 교육 논문을 다수 집필했다.
21살 때 중매로 무인생 동갑내기인 황명순과 만나 결혼하여,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퇴직 후, 광주 지방검찰청 범죄 예방 위원으로 6년간 활동하였고, 빛고을 대동 문화대학을 수료했으며, 빛고을노인건강타운에서 영어, 컴퓨터, 문학, 시사랑, 헬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2018년 《동산문학》 신인문학상 시 수상으로 문단 데뷔를 했으며, 《은발의 향기》에 참여하고 있고, 또 동산문학작가회 이사, 광주시인협회 회원, 광주문인협회 회원, 광주 《서석문학》 회원, 은가비 동인회 회원, 한실문예창작 방그레문학회 회장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수상으로는, 계간지 《오은문학》 디카시 문학 대상, 월간지 《문학공간》 디카시 문학 대상, 녹조 근정훈장, 국민교육헌장 교육부 장관상, 제3회 환경 살리기 백일장 시 당선, 산해정문학상 등이 있다.
저서로는 디카시집 『아내바라기』가 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고대륜 시인의 시 세계를 나긋나긋 탐색해 보기로 하자.
먹구름 하늘이
천둥 번개로 요동치더니
억수로 쏟아진다
장장 하일 폭염 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이고
하늘 원망했는지 몰라
마침내 옹골차게 온다
이왕 온 김에
왕창 퍼부었으면 좋겠다
길바닥이 온통 물바다
시냇물 되어
마구 굴러간다
길바닥의 더러운 쓰레기
싹 쓸어가면 좋겠다
세상의 거짓 풍문도
죄다 떠내려가면 좋겠다
여우비처럼 멈추더니
햇살이 내려앉는다
도로가 말끔해지고
가로수의 잎새도 생기를 자랑한다.
- 「장대비」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뜨거운 폭염 뒤에 찾아온 강렬한 장대비를 통해 느끼는 시원한 해방감과 세상의 정화를 노래하고 있다. 소나기도 아니고 장대비가 내린다. 장대처럼 굵고 거세게 좍좍 내린다. 무더운 폭염 속에서 시원하게 내린다. 땡볕을 더듬던 허공의 뜨거운 촉수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예민한 공중의 골목을 무너뜨리고 아득한 높이에서 지상을 향해 과감하게 낙하하는 시원한 자세가 장대비인 것이다. 장대비는 길바닥에서 몸을 뒹굴고 자동차 바퀴에 짓뭉개져도 계속하여 떨어지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건물을 들이받으며 물의 대가리를 꼿꼿이 들고 있다. 멈출 줄 모르는 장대비의 출발을 화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먹구름 하늘이/ 천둥 번개로 요동치더니/ 억수로 쏟아진다」 시적 화자에게 그 장대비는 오히려 반갑다. 「장장 하일 폭염 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이고/ 하늘 원망했」기에 쏟아지는 소리가 듣기 좋다. 더위를 잠재우기에 화자는 장대비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마침내 옹골차게 온다/ 이왕 온 김에/ 왕창 퍼부었으면 좋겠다」며 장대비를 반긴다. 장대 같은 물의 대가리로 「길바닥의 더러운 쓰레기/ 싹 쓸어가면 좋겠다/ 세상의 거짓 풍문도/ 죄다 떠내려가면 좋겠다」고 마음속 얘기까지 전한다. 아득한 높이에서도 두려움 없이 낙차를 즐기며 떨어지는 장대비가 세상의 거짓을 몽땅 쓸어갔으면 한다. 자신의 몸까지 던지는 장대비이기에 그깟 세상의 거짓쯤은 쓸어갈 것 같기도 하다. 쫙쫙 내리는 장대비의 속성과 잘 버무려져 있다. 시적 화자는 거세게 쏟아지는 빗줄기가 단순히 가뭄을 해갈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땅 위의 오물은 물론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는 거짓과 불신까지 모두 씻어내 주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이어, 비가 그친 뒤 햇살과 함께 찾아온 생기 넘치는 풍경은 비를 통한 정화 과정이 성공적으로 이뤄졌음을 보여 주는 희망적인 결말을 제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시는 자연 현상을 빌려 인간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되돌리고 싶은 변화에 대한 열망을 서정적으로 시적 형상화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엊그제까지 꽃샘추위 심술
오늘은 산뜻한 와이셔츠에
노타이로 팔팔 노신사 길을 나섰다
양지바른 언덕배기에
노란 민들레 옹기종기 둘러앉아
나비인 줄 알고 손짓한다
차창 밖 스치는 광주천 냇가
연둣빛 차려입은 수양버들 아가씨들
긴 머리 감아 내리고 하느작하느작
남광주 시장에 들러
쑥 미나리 두어 다발
봄기운 넣어 챙겨왔다
집 앞 화단에서
우리도 보고 가세요
수선화들이 소리소리 지른다
모처럼 꽃 마중으로
봄이 성큼 다가온 한나절
눈이 즐거운 나들이였다.
- 「봄이 오나 보다」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매서운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마침내 찾아온 봄의 생동감을 노신사의 산책길을 통해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봄은 혁명이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상의 모든 것을 갈아엎는다. 사방 꽃빛이고 연둣빛이다. 우쭐대는 기세도 없이 봄은 바지런을 떨며 들녘으로 산으로 세력을 뻗어나간다. 봄을 따르는 추종자들이 노랗고 붉게 제빛을 줄기마다 매달아, 꽃이 만발하다. 봄은 자신의 권력에 순종하기를 원하기에 봄비를 내려 주고 아지랑이를 피워 올린다. 뿌리에서부터 밀어 올리는 봄의 그 여린 힘을 어찌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그 봄이 오는 길목을 화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엊그제까지 꽃샘추위 심술/ 오늘은 산뜻한 와이셔츠에/ 노타이로 팔팔 노신사 길을」 나서고 있다. 봄을 맞이하기 위해 여유로운 노타이 차림으로 길을 나서고 있는 것이다. 양지바른 언덕배기에서 반가운 봄을 만난다. 「노란 민들레 옹기종기 둘러앉아/ 나비인 줄 알고 손짓한」 봄에게 시적 화자는 반갑게 인사한다. 어디서 봄은 그런 혁명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을까. 눈보라를 이겨낸 그 의지가, 북풍을 견뎌낸 그 저력이 봄의 혈통으로 이어져 내려온 것일까. 나비인 줄 알고 손짓하는 민들레에서 시적 화자는 행복에 젖는다. 「광주천 냇가/ 연둣빛 차려입은 수양버들 아가씨들/ 긴 머리 감아 내리고 하느작하느작」거리는 모습에 시적 화자의 시선이 멈춘다. 여린 연둣빛에는 봄을 대물림하려는 태도가 깃들어 있는지 반짝반짝 빛난다. 시적 화자는 발길을 돌려 「남광주 시장에 들러/ 쑥 미나리 두어 다발/ 봄기운 넣어」 집으로 향한다. 봄을 눈에 담고 가슴에 담더니 이제는 봄을 밥상까지 데리고 간다. 다정다감한 남자다. 시적 화자는 민들레와 수양버들을 의인화하여 자연이 생명력을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 주며, 시장에서 봄나물을 사는 행위를 통해 일상 속에 스며든 계절감을 입체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결국 이 시는 단순히 풍경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주변의 꽃들과 교감하며 느끼는 소박한 기쁨과 설렘을 독자에게 우아하게 전달하고 있다.
국기 게양하고 둘러보니
아파트 동마다 눈에 들어오는 깃발
가뭄에 콩 나듯 서너 집뿐
기념식 본 후 모두 달겠지
아니, 겨우 한두 집
이럴 수가 있을까
태극기가 없어서
일요일인 줄만 아는 걸까
큰일 났구나
생일은 잘도 기억하는데
경축하고 다짐할 국경일을
잊고 모르다니
일 년 내내 태극기 게양하는
완도 소안도처럼
날마다 국기에 대한 맹세
다짐하는 계기가 되길.
- 「3·1절에 태극기 내걸고」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점차 희미해져 가는 애국심과 민족적 가치에 대한 성찰을 시 속에 담아내고 있다. 3·1 운동은 일제강점기의 조선인들이 일본 제국의 지배에 항거하여 한일병합조약의 무효와 조선의 독립 선언을 목적으로 1919년 3월 1일을 기해 일어난 비폭력 만세 운동이다.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퍼진 것을 계기로 고종의 장례가 있던 1919년 3월 1일에 맞추어 조선 전역에서 봉기하였다. 3·1절은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3·1 운동을 기념하여 제정된 대한민국의 공휴일이자 국경일이다. 시인은 일제강점기 때 태어나 매년 3·1절의 소중함을 몸소 느꼈을 것이다. 나라 잃은 서러움이 있었기에 3·1절은 더욱 귀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런데 시대가 좋아지고 개인주의 성향이 짙어지면서 3·1절은 단순한 공휴일로 다가서고 있다. 시적 화자는 그 지점에서 어떤 의문과 질문을 하게 된다. 「기념식 본 후 모두 달겠지/ 아니, 겨우 한두 집」만 태극기를 내건 모습을 보고 실망한다. 시적 화자의 마음에서 저 밑바닥으로 쿵, 하고 떨어지는 어떤 아픔이 느껴진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골목마다 피어나던 뜨거움이 지고 있는 듯해 쓸쓸하다. 그런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큰일 났구나/ 생일은 잘도 기억하는데/ 경축하고 다짐할 국경일을/ 잊고 모르다니」 개인의 생일도 중요하지만, 나라의 독립을 외쳤던 그 날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일 년 내내 태극기 게양하는/ 완도 소안도」를 떠올린다. 전남 완도군 소안도는 태극기 섬이다. 1년 365일 집집이 태극기가 펄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