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에빠져있던독소전쟁사의전말을
명쾌하게보여주는개설서
《러시아의전쟁》은제2차세계대전연구의대가리처드오버리가제목처럼소련(러시아)를중심으로독소전쟁(1941년6월~1945년5월)의역사를쓴것이다.그동안나치독일의팽창,일본대미국의태평양전쟁,노르망디상륙작전으로시작된연합국의반격등에익숙한한국독자들에게,새로운시각을제공해줄수있는책이다.소련대통령자료보존소와KGB(국가안전위원회)소장자료등1985년소련의‘개방(glasnost)’이후공개된새로운자료를활용해영국-러시아가공동제작한동명의TV다큐멘터리를기초로했다.전략,전술뿐아니라소련의정치,경제,사회,외교,문화,심성등관련주제를총망라하며독소전쟁을분석했다.
《러시아의전쟁》은개설서가마땅히지녀야할미덕을고루갖췄다.우선기본적인사실을충실하게서술하고,지도로복잡한전황과전략,전술을한눈에알아볼수있도록해독소전쟁을처음접하는독자들도전쟁의전말을쉽게파악할수있다.그리고지금까지수많은학자의노력으로축적되어온기존의연구성과는물론이고여러쟁점도일목요연하게정리되어있다.이책은치밀한논증덕에전문가들에게서도호평을받았지만,박진감넘치는서술에힘입어영미권일반인사이에서도큰인기를끌었다.특히독소전쟁이라는엄청난역사의소용돌이속에서인간성의다양한모습을적나라하게보여주는인간군상을생생하게그려내가슴을먹먹하게만든다.
독일-소련전쟁에붙어있는편견이
우리와무관하지않은이유
우리에게알려져있는독소전쟁의통념은극심한편견에차있다.그동안소련의승리요인이아닌독일이이기지못한요인에더주목해온탓이다.독일군은‘무식한반(半)아시아’전사인러시아인들에게쉽게승리하리라예상했지만,패배후에변명거리를찾기에바빴다.나폴레옹처럼소련의혹독한겨울추위에좌절했다거나,독일이인력과장비는더우수했으나소련의막대한물량공세에무너졌다는것처럼말이다.이런통념은문명화된독일이,문명화에뒤처져서오히려강점을지녔던소련에게패배했다는,차라리신화라고나할잘못된인식이다.
이러한편견은우리와도밀접한관련이있다.바로아시아를향한인종주의적시각에서비롯된것이기때문이다.즉서유럽이외의문화는문명과는거리가먼문화라고깔보는편견,더자극적으로말한다면아시아에사는인간은문명의세례를받지못한열등인간이라는것이다.우리가패배자들의변명이아닌,진정한승리의요인을알아야하는이유가바로여기에있다.
스탈린지도체제와소련시민의
‘불안정한’결합이승리를가져오다
저자리처드오버리는소련의승리가다양한요인이‘불안정하게’결합된결과라고말한다.무엇보다도여러요인가운데에서체제와그체제에완전히는길들여지지않은세력의일시적인공존과협조라는요인을부각하며,스탈린과그가구축한공산당체제에서부터일반시민까지를시야에놓고그들의대응방식에서전체적인그림을그려나간다.
스탈린체제는그잠재력을어느정도끌어내는데성공했지만,동시에그억압적성격은그잠재력을최대로발휘하는데심각한제동을걸기도했다.소련사회를짓눌러왔던스탈린체제가전쟁으로말미암아느슨해졌고,소련지도부도경직된체제로는소련의생존을보장할수없음을깨닫고변화를허용했다.소련시민은전쟁은지극히고통스럽지만전쟁을통해체제가바뀔수도있다는희망을품게되었고,이런희망속에서유례없는고통을견뎌낼힘을얻었다.이런설명틀은공산당의지도아래일치단결한소련시민의영웅적애국심이승리의원동력이었다거나무수한사람을사지에뛰어들도록강요한스탈린체제의테러가승리의비결이었다는양극단의단선적설명방식보다훨씬더정교하게소련의승리라는수수께끼를풀어준다.
이러한소련의승리요인과그안을들여다보면,자연스레스탈린공산당체제의실체를발견하게된다.비극적이게도,큰희생을가져온전쟁뒤에다시스탈린주의체제는오히려더더욱강고해졌다.그궁극적인결과는융성하는서방과대조되는파산한소련이었다.독소전쟁의진정한비극은바로여기에있다.소련시민은전쟁에서엄청난피를흘리고승리했으나,그승리가자유와해방을가져다주지는못했던것이다.이러한결과를통해막연히인간을무자비하게몰아대는야만적인소련의모습을넘어서소련이란체제가그러한모습으로나아갈수밖에없었던역사적인경로와그의미를깨닫게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