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책읽기(큰글자도서) (‘문학소녀’에서 페미니스트까지, 한국 여성 독서문화사)

위험한 책읽기(큰글자도서) (‘문학소녀’에서 페미니스트까지, 한국 여성 독서문화사)

$42.19
Description
독서는 어떻게 한국 여성을 ‘위험한 사상가’로 만들었는가
다른 세계를 향해 떠나는 책읽는 여성들의 역사
이 책은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 등장한 소설, 잡지, 기관지, 순정만화 등의 매체를 검토하고, 책읽기가 어떻게 한국 여성들을 ‘위험한 사상가’로 만들었는지, 그 과정을 추적한다. 결국 그것은 “한국 여성들이 읽은 책의 역사”가 될 것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여성의 교양과 문학에 대한 미학적 기준을 다시 구축함으로써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장르의 계보를 복원하고, 여성이 행하는 책읽기의 정치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문학이론가 루카치는 근대소설을 “지도 없이 여행을 떠나는 ‘성숙한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 장르”라고 정의했다. 이에 따르면 집을 떠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여성들은 그저 소설의 독자가 될 뿐 어떠한 주체적 캐릭터도 되지 못한다. 남성 주인공이 기본값으로 설정된 이러한 세계에서, 여성은 자신의 젠더를 계속 의식하면서 독서 행위를 이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여성의 독서는 필연적으로 감각의 재배치이자 정치적인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위험한 책읽기’의 역사적 국면을 단계적으로 검토한 뒤, 지금 한국 여성의 인식과 현실을 다시 주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한 작품이다.
저자

허윤

남성이성별화되는공간에서성장한탓에자연스레젠더의수행성에관심을갖게되었다.보편적인것을의심하라고배운덕택에더많은질문을안고세계를바라볼수있었다.한국현대소설을전공했으며한국문학/문화/역사를동아시아젠더사의관점에서연구하고있다.부경대학교국어국문학과에서학생들과함께공부하고있다.
지은책으로『남성성의각본들』,『1950년대한국소설의남성젠더수행성연구』,『문학을부수는문학들』(공저),『원본없는판타지』(공저)등이있고,우리말로옮긴책으로『모니크위티그의스트레이트마인드』,『일탈』(공역)등이있다.

목차

머리말

1장S언니와여성간친밀성의역사
2장해방기여성독본과여성해방의거리
3장1950년대여성잡지『주부생활』과‘가장여류다운여류’
4장명동다방의여대생:‘여대생소설’과감정의절대화
5장여학생과불량소녀사이:잡지『여학생』과소녀다움
6장호모이코노미쿠스가된여학생:박정희체제의통치성과여성노동자의등장
7장애국과봉사의마음:한국여성단체협의회기관지『여성』과국가페미니즘
8장여성학교실과번역된여성해방운동
9장대안공동체‘또하나의문화’와민중시인고정희의역설적공존
10장페미니즘의대중화와『페미니스트저널IF』
11장한없이투명하지만은않은,『BLUE』
12장‘페미니즘리부트’시대의여성간로맨스
13장로맨스대신페미니즘을!


수록논문출처

출판사 서평

‘문학소녀’에서페미니스트까지

1960~1970년대한국에서의무교육제도가정착되자여성들의중·고등학교취학률이급증했다.그로인해여성들의평균문해력이오르고,그와연관해‘문학소녀’라는표상이대두되었다.이때여성의책읽기는낭만적이미지의교양으로취급되는동시에,지나치게소녀적인감상에빠져서도안되고,너무현실적이어서도안된다는기묘하고모순된비판을받게된다.
하지만문학소녀들은점차‘여고생작가’,‘여대생작가’로세간의주목을받았고,이들의‘작가되기’는현모양처가되지않는방식이었다.이제여성교양을위해등장한책읽기는점차세계에대한이해와공감을넓혀주는수단이되었다.1990년대에들어서여성의대학진학률이높아지면서여성학과목수강도크게유행했다.마침내한국에서도페미니즘적읽기가확산되는순간이었다.
2015년‘페미니즘리부트’이후,2015년넥슨의여성성우부당해고사건,2016년강남역추모집회와탄핵집회의‘페미존’,2018년연극뮤지컬계성폭력추방집회등페미니즘이슈를공표하면서불특정다수가모이는일은이제자연스러운광경이되었다.이는오늘날여성들이스스로경험하는억압의근본적인원인이젠더에있음을자각하고행동에나서는‘광장의젠더정치’와‘책읽기’가유기적으로접속하고있기때문이다.


여성읽을거리의변천사

우선“한국여성들이읽은책의역사”초기에중요한역할을한것은해방직후발간된여러가지여성독본들이다.이만규의「가정독본」과「새시대가정여성훈」같은경우는‘가정내존재’로서의여성을강조했다.반면에최화성의「조선여성독본」은여성을‘해방되어야할존재’로보았다.해방기여성독본의대부분이여성의몸이나출산,가정살림등에초점을맞추었던반면,최화성은독특하게도여성해방운동사의관점에서독본을서술했던것이다.
1950년대에는잡지저널리즘이사회문화적으로영향력을갖는시대였다.그중에서도윤금숙,최정희등여성소설가들이편집주간이었던「주부생활」은어머니로서의정체성에초점을맞추고읽을거리를만들어냈다.재미있는점은여성교양을표방한「주부생활」에서연재된소설대부분이주부의일탈을다룬통속적인작품이었다는점이다.여성교양과통속소설의공존에서당시여성들이일상과는전혀다른삶으로서의로맨스를찾고있었음을읽을수있다.
뒤이어문학소녀들의절대적지지를받은프랑소와즈사강의「슬픔이여안녕」을모방한‘여대생소설’들이등장했다.새롭게낭만적사랑과섹슈얼리티의공감장이마련된것이다.일반적인대중소설에서는여성의섹슈얼리티를경유한남성의내면혹은성장이중요한반면에,여대생소설은여성의섹슈얼리티와내면그자체를중심으로내세운다.성적행위성과섹슈얼리티의기쁨을발견하는여성들의욕망이중요해진것이다.
이들로부터한걸음더나아가1965년창간된「여학생」은교양지로서의성격과진학과진로지도,고민상담등여러측면을종합하여지면을구성했다.특히권말의상담실코너를통해독자들의진로와심리상태에대한카운슬링을제공하고,불량학생들의수기를통해품행을선도하는등계몽의의도를강조했다.그러나「여학생」은불량소녀를과잉재현함으로써박정희체제가불량청소년의명랑담론을의도적으로생산하는것은아닌가하는의심을품게하기도했다.


여성노동자와국가페미니즘

박정희체제의통치술은전국민을호모에코노미쿠스로조직했다.그에따라「여학생」은여학생을노동자로명명하면서,교양있는여학생이취업에도성공할수있음을강조하는진로특집을지속적으로실었다.그러면서「여학생」은여학생이라는존재가학업을위해일시적으로일하는노동자라고호명한다.여기에서중요한것은자신의노동에대한정당한임금이나직급이아니라‘건전한여학생’이라는인정행위다.이러한담론은여성노동을부차적인것으로만든다.노동자이기전에여학생이라는,노동자이기전에예비어머니뿐이라는점만강조하기때문이다.
이런담론은한국여성단체협의회기관지인「여성(女聲)」이‘애국과봉사의마음’을강조하면서국가페미니즘의전략이되었다.여협과「여성」의주요목표는영웅화와국제화를위한‘신사임당상(賞)’,‘세계여성의해’,‘세계어린이의해’등을조직하는대외적행사였다.이는실로반민주주의적인발상의정치적행사였고,때로는반여성적이기도한것이었다.탈역사적이고초국가적차원으로설정된여성이라는범주는텅빈실체이자채워지지않는추상적표상과다름아니다.
대안공동체와페미니즘의대중화

1980년대에등장한대안공동체‘또하나의문화’(이하또문)는젠더규범의해체를통한성평등을개인의삶에서실천하고자했다.또문동인들은여성억압,가부장제,젠더등의개념을탈식민적방식으로이론화하고,양성평등과자유로운아이들이라는대안문화를목표로설정했다.그렇지만이런방식은대중과만나는데한계가있었고,대부분번역에의존했던콘텐츠로말미암아가장탈식민적인방식의사회운동이도리어서구의근대성모델에귀속되고말았다는역설을맞이하게된다.
하지만이러한간극은민중시인고정희가또문에동참함으로써극적으로봉합된다.그는민중과여성,변혁운동과페미니즘사이의갈등에주목하면서,여성을‘정실부인’으로만여기는가부장제의통제시스템에저항하는여성간연대를주장했다.중산층여성의허위의식을비판한「이야기여성사」는그가급진주의페미니즘의입장에서여성해방을이야기하고있었음을보여준다.한마디로고정희는1980년대의민족민주운동의젠더를심문하는자였다.
1990년대의여성대중은진보와보수를구분하지않고젠더이해를중심으로모였고,이런흐름속에페미니즘의대중화를이끌어가는여성주의잡지「페미니스트IF」(이하「이프」),「버디」,「여/성이론」등이등장했다.그중「이프」는여성욕망을긍정하고가부장제를직설적으로비판함으로써많은관심을끌었다.그러나‘성적인것’이변화하고있음에도불구하고여전히여성과남성을이성애관계의성적대상으로만반복해서재현했다.그로인해페미니즘문화운동이젠더의정치경제학적문제에대해서는사유하지못한채그비전을상실하고말았다는한계를드러내기도했다.


새로운양식들의도래

20세기말에이르자새로운양식들이나타나기시작했다.소재와주제를다양화하고영역을확장한,종래의순정만화개념에도전하는순정만화들이나타나기시작했다.새로운순정만화의시대가도래한것이다.그최전선에작가이은혜가있었다.그의세계관을완성한「BLUE」는근친성애적욕망을불온하지않게재현함으로써기존에순결을강조해온한국순정만화의아이러니를잘드러냈다.사랑이야기는탈정치화된세계에서유일하게실현가능한상상력인데,이은혜가그안에서가족구조의근간을불온하게되묻고있었기때문이다.
또한‘페미니즘리부트’이후한국의대중문화장은변화를맞이하게되었다.새로운시대에여성을어떻게그릴것인가,혹은여성서사란무엇인가라는질문이SNS를중심으로공론장에서폭발했다.이무렵에등장한것이바로여성간연대와로맨스를그린웹툰〈그녀의심청〉이다.이작품은고전소설인심청전을뼈대로삼되‘효’와‘열’로표상되는‘그녀의이름’을어떻게다룰것인지의심하고질문한다.그리고여기서효녀나열녀등으로여성에게주어진젠더규범은모두새로운이름을얻는다.결국〈그녀의심청〉은지금한국사회를살아가는여성들의목소리를반영하여다시쓴심청전이다.다시말해이작품은페미니즘대중화와여성서사에대한독자들의욕망속에서탄생한텍스트다.
그러고는마침내「82년생김지영」이라는소설이등장했다.이책의인기는‘페미니즘리부트’이후세계를보는눈이달라진사람들덕택이라고해야한다.여성스스로경험하는억압의근본적인원인이젠더에있다는고민으로부터페미니스트독자는탄생한다.그리고그는이제텍스트를해석하는주체로거듭난다.‘김지영현상’은결국‘치안이아닌정치’를획득하는분기점이되었다.이는독자들의욕망이결합되어만들어진것이지텍스트만의힘이아닌것이다.그런점에서「82년생김지영」은정치적으로올바른것이아니라매우영리한텍스트가된다.결국이책은로맨스대신페미니즘을선택한여성들이‘착한여자’로남으면서손에쥘수있는무기가되었다.이처럼한국여성들의‘위험한책읽기’는앞으로도,계속,맹렬하게,이어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