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시간을품은원형의작은기록자,와당
건축과문자,예술과미학이응축되어
당대사람들의정신세계를투영하다
‘와당(瓦當)’은지붕에기와를입혀내려온끝을막음하는건축재를말한다.그러나와당은단순한장식이아니다.그속에는고전의예술정신과미학,인문과사상,예술과공학이함께깃들어있으며,왕권과국가의존엄을표현하는동시에인간과자연,시간과공간의조화를담아낸다.와당에는권력과계급의상징도담겨있었다.국가지도자의존엄과권위를강조하면서,동시에인간존재의나약함과소망을표현했다.작은원형속에는왕의권위와인간의소망,자연과우주를바라보는사유가담겨있으며,와당문자와문양은이러한내용을확인할수있게한다.와당은땅위에서는그형태가거의보이지않지만지붕위에서는건물과자연,시간과인간을연결하는상징이된다.그속에서우리는아시아건축의깊은미학을발견할수있다.한장의와당,그작은원형속에는인간의삶과자연,사회와정치,철학과예술이조화를이루며응축되어있다.
기와는원래지붕을마감하는실용적건축부재였다.비와눈,바람으로부터건물을보호하며궁궐과사찰,민가에이르기까지폭넓게사용되었다.그러나와당은실용을넘어,문양과곡선을통해자연과어우러지고시간과기억그리고소망을담는공간적언어가되었다.그리고기와의곡선과선이만들어내는리듬은현대의직선적건축속에서도풍경과조화를이루며,동양전통건축이지향해온‘자연과의조화’라는미학을이어갔다.
“하늘과땅의경계에서가장먼저시선을붙드는것은기와다”
시간과권력,자연과인간을잇는매개,와당
와당은지붕을마감하는작고둥근기와조각이지만,이책은그것을단순한장식에서꺼내어‘시간과권력,자연과인간을잇는매개’로읽어낸다.자연과어우러지며하늘과땅을연결하는배치구조는단순한장식을넘어건축과인간의융화를보여준다.그안에서우리는인간이어떻게자연과조화를이루며,시간과기억속에자신의존재를기록하고자했는지를읽을수있다.또한와당은건축과문자,예술과공학이교차하는압축적매체다.높은지붕끝,손이닿지않는그곳에서와당은국가권위와인간의소망을동시에드러내며,작은원형안에당대의미학과우주관을응축한다.이책은그응축을풀어내기위해와당을하나의‘기록자’로상정하고,문양과문자,재료와구조,배치와맥락이어떻게의미를생산하는지를차근히따라간다.
기술이만든미학:기와구조의진화와와당의탄생
흙과풀로지붕을이을때수십,수백장의기와가얹히면목조구조는거대한하중과맞닥뜨린다.비와눈,배수의무게가더해지면지붕은더쉽게파손될수밖에없다.이런문제를해결하기위한고대의공학적고민이목조건축의지속적인개선을이끌었고,그과정에서지붕의마감과배수를담당하는와당이구조적필연으로태어난다.즉와당은자연재해로부터목조건축의수명을연장하고내부에거주하는사람의쾌적함을보장하는‘보호장치’였으며,기능의완결성은곧미학의출발점이되었다.
기술적진화의핵심에는판와(암키와)와통와(수키와)의결합이있다.초기에는널빤지형판와가지붕을단단히덮고,그위에반원통형통와가얹혀물길을잡는방식이일반적이었다.이러한‘기초조합’이안정적인배수와하중분산을가능케하면서,우리는비로소지붕선의곡선미와문양의서사를논할수있게된다.원형의수막새(와당)는서주중기를지나면서등장했고,춘추전국을거치며기능을넘어상징과심미를더한조형으로진화한다.지붕이건축의얼굴이자위계를드러내는핵심이라는인식역시이시기에공고해진다.
문양의언어,문자의소리:와당이말하는것들
와당을보는일은‘왜이런문양을사용했는가’를묻는일이다.이책은와당의형태못지않게그선택의이유,즉제작자와사용자의사유에주목한다.전통건축의부드러운선과면,과하지않은볼륨감속에서지붕의최상부를덮는기와와와당은전체건물의인상을결정짓는시각적마침표다.그러므로와당의문양과문자는단지꾸밈이아니라,건물의성격과뜻을요약하는상징체계로작동한다.
그중에서도문자와당은‘보이지않는메시지’라는역설을품는다.지상에서는읽기어려운위치에있으면서도네글자문구나합문(두글자를이어쓰는서체),변형된자형등으로소망을새긴다.이책은한대문자와당이전서·예서뿐아니라와당의구획과곡면에맞춘독특한서체를산출했음을보여준다.이는기능이형식을만들고,형식이다시의미를확장하는사례다.낙선재(창덕궁)의‘희(喜)’자와당처럼특정공간의성격,즉사랑과기쁨,혹은경사를한글자로농축한사례는문자와당의감각적힘을단적으로말해준다.글자의필획을이어붙이는합문,당면(와당의정면)에배치된상징문양등은문자와문양이만나‘읽히는조형’을성취한방식을보여준다.
와당문양의세계는‘장수’,‘길상’,‘보호’같은보편의기원을공유한다.구름문양으로문자를구획하고,새나거북같은장수상징을함께배치하는방식은,의미를겹겹이적층하는동아시아적조형문법을드러낸다.문양은단지예쁜그림이아니라,기원과권위를동시에호출하는상징의문장(文章)이다.
‘천추만세’의정치학:권력과소망을새긴네글자
책의백미가운데하나는‘천추만세(千秋萬歲)’문자와당을둘러싼상세한추적이다.‘천세와만세’는단순한장수의축원이아니라,한왕조의영속을바라는정치적기원의언어였다.문헌상《한비자》나동진시대의《포박자》에보이는장수개념,그리고인면조(사람얼굴과새몸)의도상과함께짝을이루며,문자-이미지-장소(궁궐지붕)의삼중구성을이룬다.이책은한고조이후본격화된문자와당속‘천추만세’가사람의형상과새의이미지와빈번히결합한다는점에주목하며,장수의욕망이곧‘권력의영원회귀’에대한기대로확장되는과정을건축사물의언어로풀어낸다.
흥미로운대목은‘천추만세’가한곳의유행이아니라당대중국전역에서발견되는광범위한문화코드였다는사실이다.장안의미앙궁을비롯해제나라고성,내몽골흑성고성,허베이한단,시안화창유적등지에서다량의사례가출토되며,자형자체를새머리·날개로치환하거나와당정면에새를배치하는등텍스트가도상으로변주되는창안이활발했다.이는문자·문양·지붕구조가서로영향을주고받으며‘읽히는지붕’을구성했다는방증이다.
또한이책은문자와당이단지과거중국의전유물이아니라,한국궁궐의정서에서도창의적으로이어졌음을보여준다.창덕궁낙선재의‘희(喜)’자와당은공간의성격과역사적맥락인군왕의사랑과기쁨을한글자에응축해배치한예로,문자와건축,삶의서사가결박되는지점을생생히증언한다.이런사례들은와당이“누군가에게보이기위한광고”가아니라,지붕끝에남겨둔내밀한기원과기억의표식이었음을납득시킨다.
와당을다시보다:오늘의감각으로읽는동아시아건축의정수
이책의미덕은유물의박물관적관람을넘어‘어떻게보아야하는가’의감각을회복시킨다는데있다.와당은왜그곳에있어야했는지,그문양과문자가무엇을소망했는지,그배치와형식이어떤기술적·미학적선택의결과였는지를묻는일은곧“건축을하나의텍스트로읽는법”을익히는과정이다.저자는와당의발명과사용을명확한이유와형식을갖춘관습적물질로규정하며,지붕의선과곡선이‘권위의얼굴’이자‘기억의그릇’이었다는사실을상기시킨다.그러할때와당은과거에멈춘유물이아니라,지금의우리에게말을건네는조형언어가된다.
결국이책이제안하는독법은명료하다.와당을‘보이는사물’에서‘읽히는사물’로옮겨놓을것.기술이만든구조속에서미학이탄생했고,그미학이문자와문양으로응축되었으며,그응축이권력과소망,시간과자연을한장의원형에묶어두었다는사실을따라가볼것.그렇게지붕끝의작은기록자를읽어내는순간,동아시아건축미의정수인형식과기능,권위와기원,자연과인간의조화가비로소눈앞에선명하게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