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길은로마로통한다”
서양문명의근원,로마제국도로망2천년사
14개국을가로지르는현장답사를바탕으로
위대한문명이남긴길위의서사를집대성한명저
고대로마의도로는단순한기반시설이아니었다.그것은인간이세상과자신을연결하기위해만들어낸최초의문명네트워크였다.돌과흙으로다져진길위를제국의군대가행진했고상인과순례자,예술가와왕이지나갔다.그리고사람들은이길을통해신을만났고,지식을전했으며,제국의권력은길을통해세상을지배했다.
맨체스터메트로폴리탄대학교교수이자르네상스및근세유럽사연구로이름을떨친영국의역사학자캐서린플레처는《로마로가는길》에서2천년에걸친‘로마의길’에대한역사를추적한다.서기전312년아피우스클라우디우스가건설한비아아피아에서시작해중세의순례길비아프란치제나,나폴레옹의군사도로,무솔리니의선전거리,그리고오늘날로마의관광코스에이르기까지플레처는그동안의연구와14개국을넘나드는현장답사를결합해길을매개로한유럽문명2천년의변화사를유려한서사로엮어냈다.이길에서우리는제국의웅대한유산과인간의끝없는호기심,문명이걸어온발걸음을함께만날수있다.
이책은단지로마제국의유산을다루는역사서가아니다.도로를통해권력과기억,신앙과예술,지배와저항이교차하는유럽의심장부를비추는인문학적탐사이자“길은문명의거울이며,인간의발자취가곧역사다”라는통찰로귀결되는서사적명저다.발간즉시《월스트리트저널》,《파이낸셜타임스》등주요언론이“옛로마의길을따라걷고싶어지는책”,“문명의지도위에새겨진이야기”라고극찬했으며,고대사·문화사연구자뿐아니라여행자들에게도새로운시각을제시했다.플레처는묻는다.“로마제국이사라진지1500년이지난지금도우리는왜여전히로마의길을걷고있는가?”그답이바로이책속에있다.
정복의길에서문화의길로
로마도로가그려낸문명의시간
책의전반부는로마도로의탄생과제국통치의기술을살핀다.아우구스투스의황금이정표에서시작해제국의중심에서방사형으로퍼져나간도로가어떻게행정·군사·경제·종교의기반이되었는지를생생히보여준다.비아아피아는남쪽브린디시로,비아플라미니아는북쪽아드리아해로이어졌고,비아에그나티아는발칸과동방으로뻗어있었다.이도로들은로마의군단이이동하는통로이자세금과법령,예술과언어가전파되는네트워크였다.플레처는동시에이길이정복의도구이자지배의상징이었다는점을지적한다.
중반부에서는중세와르네상스시대의길이등장한다.제국이무너진뒤에도도로는사라지지않았다.순례자들은성베드로와성바울의무덤을찾아로마로향했고,수도사들은길위에병원과숙소를세워신앙의길을지켰다.비아프란치제나를따라이동한수많은순례자들의발자취는‘신의도시’로향하는인간의신앙과용기를보여준다.이후르네상스시대로접어들며도로는다시지식과예술의길로부활했다.괴테,몽테뉴,바이런같은지식인들은로마로향하며‘고전의원천으로돌아가는길’을걸었다.이시기도로는더이상군사적인프라가아니라사유와문화의무대,인간이자신의과거를재발견하는장소가됐다.
후반부에서는근대화와전쟁의길이교차한다.19세기와20세기초,도로는산업화와제국주의의상징으로변모했다.나폴레옹의군사도로,가리발디의행군로,이탈리아통일의상징으로등장한신로마의도로들모두근대국가의야망을실은정치적상징물이었다.무솔리니의파시즘시대에는도로가선전의무대가됐다.그는고대로마의영광을재현한다는명목으로130여채의건물을허물고고대유적을선전물로바꾸며도로를건설했고,그위에서행진과연설,퍼레이드가이어졌다.플레처는이과정을통해길이어떻게권력의언어로변하는지를날카롭게분석한다.
책의마지막에서플레처는현재의길로시선을옮긴다.지금도로마시민과여행자들은로마의길을거닐며2천년의역사를마주한다.도로옆에는고대의무덤과교회,근대의빌라가나란히서있다.플레처는이를“과거와현재,신화와일상이겹겹이포개진풍경”이라표현한다.관광객의발길속에서,도시의교통속에서,그리고현대인이걷는길위에서로마의흔적은여전히이어지고있다.
어린시절의기억에서시작된탐구
로마의길이남긴영원한흔적을좇다
《로마로가는길》은저자의오래된기억에서비롯된책이다.플레처는어린시절아버지의차를타고영국곳곳에남아있는로마도로의흔적을직접보았다.아버지는차창밖으로이어진직선도로를가리키며“이길이바로로마의길이란다”라고말하곤했다.그때의인상은훗날“길이란무엇인가,왜로마의길이오늘까지남아있는가”를묻는계기가되었다.
세월이흘러역사학자가된플레처는어느날어머니의집에서1896년에만들어진지도를발견했다.그지도에는로마도로가표시되어있었다.로마도로는당시사용되고있는것은아니었으나,지도제작자는지도상에표시할정도로중요하게보았던것이다.그럼에도불구하고로마제국의도로망은기술적·고고학적차원에서만연구될뿐,‘길자체가문명과기억을어떻게형성했는가’를탐구한연구는거의없는것을발견하게되었다.플레처는그공백을메우기위해학자의분석력과여행자의호기심을결합했다.수년동안유럽각지를직접답사하며로마의길이남긴흔적을발로확인했고,그여정의결과물로이책을집필하게되었다.
그런데로마도로가유럽전역에걸쳐그토록오랫동안문화적존재감을유지해온이유는무엇일까?부분적으로는로마인들스스로그렇게되어야한다고결정했기때문이다.클라우디우스가도로를가리켜‘지금껏지어진것중에서가장위대한기념물’이라고부른것은일리가있다.로마의길은단순한길이아니었다.그것은제국의혈관이자행정과군사,상업이흐르는통로였다.이도로를따라병사들은속주로진격했고,관리들은법과명령을전했으며,상인들은포도주와향신료,철제도구를실어나르며지중해세계를하나의경제권으로묶었다.길을따라세워진이정표와주행거리석,도로유지규정은로마의질서와법치의정신이땅위에새겨진증거였다.
기술적으로도로마도로는시대를앞섰다.여러겹의포장,배수시스템,직선화된노선설계는현대토목공학의원형이라할수있다.어떤도로는2천년이지난오늘날에도여전히차량이다닐만큼견고하다.또한도로옆의이정표들은로마인들이사라진후에도오랫동안후원자와황제의이름을생생하게간직하며길자체가제국의‘돌로된연대기’로남았다.로마도로망의장구한역사는놀랍고,그엄청난규모는어떤단일건물도따라올수없는로마의위력을보여준다.찰스디킨스는로마의길을걸었던일을회고하며이렇게말했다.“이도로에뿌려진돌하나하나에역사가새겨져있다.”그는옳았다.로마도로는여전히우리를연결하고,역사를기억하게한다.
학문과여행이만나다
길위에서쓴살아있는역사
플레처는직접14개국을가로지르며로마의길위에새겨진흔적을관찰하고,한때제국의영광이지나간풍경속에서오늘의삶과기억이어떻게겹쳐지는지를기록했다.그리고학자의시선으로세밀한역사적통찰을더하면서도여행자의감각으로냄새와빛,거리의풍경을담아냈다.책곳곳에는이탈리아남부의오래된역,버스시간표,시골여관의식사와기차에서만난사람들의이야기가등장한다.이처럼역사적통찰과현장감있는여행기는독자로하여금마치저자와함께여행하는듯한생생한감각을느끼게한다.
또한플레처는해박한문체속에재치있는유머와개인적인관찰을섞어넣어읽는즐거움을선사한다.튀르키예에서‘1453’을두번입력해야접속되는와이파이비밀번호를언급하며1453년은오스만제국이콘스탄티노플을점령한해를가리키는데,튀르키예인들에게그만큼인상적인해였는지담당자가그숫자를두번이나사용했다고너스레를떨거나,보르게세공원에있는바이런의조각상은책을들고있는데책의절반이상이떨어져나가“이제는샌드위치를든것처럼보인다”고농담한다.또한학자다운냉철함은잠시내려놓고바닷가부두에서맥주를마시다손에든과자를낚아채려달려드는비둘기들과‘사투’를벌이는장면도등장한다.이런유머러스한묘사는독자를미소짓게만들며,길위의역사와일상의경계를무너뜨린다.이렇듯플레처는생동감넘치는서술을통해역사서의깊이는물론,여행기의흥미를겸비한인문학적역사서를만들어냈다.
제국의도로에서세계의길로
긴세월을넘어여전히이어지는로마인의발자취
로마인들이2천년전닦아놓은길은서양문명의근육과신경망이되어라틴어와로마법,도시의구조와행정체계,예술과신앙을유럽전역으로전파시켰고,그결과로마의흔적은프랑스와스페인,영국,발칸,심지어북아프리카와중동까지스며들었다.로마의길이없었다면중세수도원과성지순례의문화도,르네상스의예술과교류도,근대의과학과사상도빠른속도로퍼질수없었을것이다.그리고그영향은제국의몰락이후에도사라지지않았다.나폴레옹은로마를단순한도시가아닌프랑스의영향력확대와역사적영광을되살릴상징적인대상으로보고,로마도로의직선성과합리성을모범으로삼았다.이처럼유럽의도로체계는로마의길위에겹겹이덧입혀졌다.무솔리니역시로마도로의형식을정치선전의무대로이용했다.플레처는이모든사례를통해“로마의길은단지과거의유산이아니라,근대의상상력과권력의모델이었다”라고말한다.
그리고놀랍게도로마의길은오늘날에도여전히쓰이고있다.비아아피아의일부구간은지금도로마남부를잇는도로로사용되고있으며,로마시대의노선을거의그대로따라가는고속도로와철도역시적지않다.로마를찾은관광객들은옛도로를걸으며고대의숨결을느끼고,도시의일상속에서2천년의시간이겹쳐짐을발견한다.책장을넘길수록독자는로마도로가단지과거의유물이아니라여전히살아있는문화적풍경임을깨닫게될것이다.2천년의길위에서,우리는여전히로마로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