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오디세이아

두산 오디세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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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책은 두산 그룹의 성장사이자 창업자 박승직 및 초대회장 박두병의 경영철학을 일별할 수 있는 평전이다.
두산은 130년 전인 대한제국 말 매헌(梅軒) 박승직(朴承稷) 옹이 종로4가 배오개에 면포를 취급하는 ‘박승직 상점’을 열면서 시작되었다.
두산그룹의 초대 회장인 박두병(朴斗秉)은 박승직 창업주의 장남이다. 박두병은 박승직 상점을 두산상사로 개편했고 동양맥주를 인수해 맥주 산업에 진출했다. 동양맥주는 일제하에서는 상호가 소화기린맥주였다. 박두병은 동양맥주의 브랜드를 OB로 정하고 시장을 장악해 맥주 산업계의 강자가 되었으며 이에 따라 한동안은 OB그룹으로 호칭되었다.
박두병 시대의(1953-1973) OB그룹은 21년 동안 연 평균 91.4%의 매출액 증가율, 68.4%의 자산증가율, 그리고 7.9%의 매출액 순이익 증가율을 보였으며, 계열회사는 박두병이 197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14개였다.
박승직의 장손자이자 박두병의 장남인 박용곤이 두산그룹의 회장에 취임한 것은 1981년 3월 2일이었다. 박용곤 시대에 생긴 19개 회사 중 절반은 창업이었고 절반은 다른 회사를 인수한 것이었다.
박정원(朴廷原) 현 회장은 박승직 창업주의 4세손으로 두산의 10대 회장이다. 박정원 회장의 두산은 그룹 성격이 중공업 위주에서 반도체, AI 관련 최첨단 산업으로 이행해가고 있다.
두산은 중공업 시대 원자력, 에너지 사업에서 더 진화되고 있다. 두산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가 항공 엔진, 수소 터빈에 도전하고 있다.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분야다.
저자는 이 책에서 130년이나 장수하는 두산의 숨은 정신이 무엇인가를 밝혀보려고 노력했다. 두산의 창업자 박승직의 신조는 ‘신용과 인화’였다. 이 정신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박두병 회장의 내면을 좀 더 깊이 파고 들어가려고 했고 박용곤 회장에 대해서도 그런 노력을 기울였다.
저자

백인호

매일경제 편집국장,
MBN 대표이사,
YTN 사장,
가천대 초빙교수

〈저서〉
장편소설 『삼성오디세이아』
『현대오디세이아』
『자동차왕 정몽구 오디세이아』
『SK 오디세이아』
『LG 오디세이아』
『롯데 오디세이아』
『삼성 이건희 오디세이아』
『한화 오디세이아』
『대한항공 오디세이아』
『CJ 오디세이아』
『포스코(포항제철) 오디세이아』
『효성 오디세이아』

목차

■ 머리말 8


제 1 부
1. 박두병(朴斗秉) 회장의 비전 15
2. 면포(綿布, cotton) 거상(巨商) 박승직(朴承稷) 21
3. 꿈의 ‘박승직 상점(朴承稷商店)’ 개설 30
4. 일인상계(日人商界)의 도전과 그 대응 38
5. 박승직 상점(주)의 세대교체 (박승직에서 박두병으로) 44
6. 두산(斗山)그룹의 태동과 형성 58
7. 박승직 상점에서 두산(斗山)으로 74
8. 대망의 동양맥주(OB Beer) 인수 82
9. 맥주시장 숙명의 끈질긴 대결 91
10. 두산그룹 확장의 시대 105
11. 코카콜라와 환타(Fanta) 시대의 화려한 개막 112
12. 언론사 합동통신 인수(合同通信, Hapdong News Agency) 124
13. 박두병 회장, 소유와 경영분리 신념 실현 131
14. 새 세대 경영진의 시련과 도전 141
15. 동양맥주의 사세 확장(맥주, 위스키, 와인 생산) 155
16. 만보사(萬報社), 정공사, 한국유리 합병 물결 169


제 2 부
17. 3세(世) 박용곤(朴容昆)회장 등극 187
18. 다시 타오른 맥주 판매 전쟁 (네덜란드 하이네켄 맥주 등장) 197
19. 중동(中東, Middle East)으로 진출한 두산건설 210
20. 종합 기계 제작, 전자산업 소재, 포장용기 종합 메이커로 218
21. 연강(蓮崗) 학술재단 설립과 문화사업 전개 232
22. 대구 수원지 페놀(Phenol) 오염사고와 시련 239
23. 프로야구팀 OB 베어스(Bears) 창단(현 두산 베어스) 252
24. 연강 박두병의 진면목 261
25. 그룹 기업구조 대혁신 - OB맥주 매각과 한국중공업 인수 286
26. 박용곤(朴容昆) 회장의 시련과 고독한 결정 300
27. 두산 가스터빈(Gas Turbine)의 경쟁력 315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1
박두병(朴斗秉)회장의비전

박두병대한상의(大韓商議)회장은68년4월어느날소공동소재상의로출근해보니비서실에서그날일정을보고하면서매일경제신문(현매일경제)백인호경제부기자가상의출입기자가되어인사차방문하게되어있다고알렸다.대한상의는대한상공회의소(大韓商工會議所,KoreaChamberofCommerceandIndustry)의약칭이고더러상의(商議),코참,KCCI등으로불린다.대한상의는법정(法定)경제단체로한국무역협회,한국경영자총연합회,한국경제인협회,중소기업중앙회까지이른바경제5단체중다른경제단체가민간임의단체인것과비교된다.대한상의역사는한국자본주의역사와맥을같이한다.1876년조선과일본간에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이체결된후개항항(開港港)이생겨서양의문물과신식상업방식이도입되고조선에들어온인본인상인등이상업회의소제도를도입하자조선상인들은일본상인들의상권팽창을견제,대항하기위해자발적으로결성하여1882년에첫민족계조직‘원산(元山)상업회’를세웠고2년후‘한성상업회의소’를세웠다.
(독자들이여,우리는잠시강화도조약에대해조금자세하게알아둘필요가있다.앞으로전개되는조선의상권(商權)의역사와변화,두산그룹의출현과성장과정을이해하는데도움을주기때문이다.)
강화도조약은1876년일본과조선사이에체결된최초의근대적조약이자불평등조약이었다.형식은근대국제법의토대위에서맺어졌지만,일본의강압적위협아래서체결되었다.일본은1875년9월20일군함운요호(運揚號,245톤)를보내조선해양탐사를빙자해강화도와영종도를습격하고양민학살과주변방화등의만행을저질렀다.운요호는다시강화도로이동하여조선왕조에무력시위를하면서조선에게이사건의책임을물으면서조약체결을강요했고결국조선왕조는1865년강화도조약을체결하게되었다.이조약은조선이자주국임을표방하면서도부산,원산,제물포(인천)등세항구개항,일본화폐의유통허용,치외법권인정등일본에게유리한내용을담고있어조선의경제적,정치적침략의발판이되었다.조선조정은조약의내용이장차어떤결과를가져올지짐작도못하면서사인했다.일본은이조약1조에서조선은자주국이면서일본과동등한권리를가진다고했다.조선조정은‘자주국’이라는말에흡족했을것이다.그러나이조항이조선을청(靑)의속국에서분리시켜자신들의영향권으로집어넣으려는일본의음모임을알지못했을것이다.항구개항도일본인이그지역에서거주하며상행위를허용토록한것이다.일본사람들이조선땅에서살면서돈을버는일을하도록한것이다.이조약10조에서는일본인이조선내에서죄(범죄행위)를지어도일본관리가심판하도록정해일본인에게치외법권(治外法權,다른나라영토안에있으면서도그나라국내법의적용을받지아니할권리)을인정해주었다.이조약부속규칙으로일본상품에대한관세철폐(무관세),양곡의무제한유출등이허용되도록했다.추후조선의쌀이일본으로제한없이나갈수있는길을만든것이다.이것은일제강점기쌀공출(供出)이라는악명높은행위로변했으며조선사람들을배곯게했다.조선은이조약체결34년후일본에먹히고말았다.
“백기자,기자몇년차인가?”박두병회장은백기자에게차를권하면서첫질문을던졌다.“네,이제2년차에들어섰습니다.저희매일경제신문은1966년3월24일창간호를낸신생언론사입니다.”“그렇군,나도언론사(합동통신)를가지고있고언론계흐름은어느정도알고있지.경제신문경제부에서도상공업발전사(史)를공부하시나?”“금융,재정분야가주입니다만상공업분야에대해서도어느정도관심을가지고있습니다.회장님께서는상공분야에관한한우리나라에서는독보적인식견을가지고계시고국제적감각도뛰어나시다는평갑니다,”“백기자,내가상공회의소회장이지만이분야를좀더전문적으로이해하려면길드(Guild)에대해서약간의지식을갖는것이필요하지.길드는중세에서근세에이르기까지유럽의도시를중심으로장인(匠人)이나상인이조직한조합(組合)이야.길드는사업권면허를통해해당지역의생산권이나상권을독점했지.초기의길드는무역상의동업자조합형태였으며한도시를거점으로단일품목의거래를중재했지.길드는노동조합,카르텔또는비밀결사와같은형태를취하기도했어.길드는핵심적인특권을가지고있었는데한도시에서재화와용역의판매에대해독점적지위를갖기도했지.길드는길드의이익을위해자유로운경쟁을규제하거나상품이나품질기준을마련하였고도제(徒弟)고용의심사를통해이주민이나여성의고용을배제하기도했지.곳에따라서는비기독교인의경제활동을가로막았는데예를들어독일지역에서는유태인을회원으로받아들이지않았어.교육역시마찬가지여서세계최초의대학으로1088년설립된볼로냐대학교나1096년무렵세워진옥스퍼드대학교,1150년시작된파리대학교등은애초에길드로출발한것이지.”“이런상공업조합의기원은언제부터인가요?”“길드와유사한상공업조합은고대로마시대까지거슬러올라가지.콜레지엄(Collegium),콜레지아(Collegia)등으로불리운로마상공업조합은상인들의자발적조합이었지.”“길드의조직형태는어떤것들이있습니까?”“길드는크게보아상업길드와장인길드로구분할수있지.그외에도다른형태의길드도있지.상공업과관련이없는길드의예로잉글랜드에는그누구도다른사람을해칠수없는성소(聖所)인프리스(Frith)가있었으며이를관리하는‘종교길드’가있지”박두병회장의설명은계속되었다.백기자는설명을들으면서도박회장의안색이꽤창백하고야위어보인다고느꼈다.“회장님,중세유럽에서중산계급,근대사회에서자본가계급에속하는사람,부르주아(Bourgeois)계급은언제부터형성되었는가요?”“부르주아는원래‘성(城)안사람’이라는뜻에서유래한말로중세시대에는상인,장인등도시의중산층을뜻했지.현대자본주의사회에서는’자본을소유한지배계급(자본가계급)을의미하지.”“회장님동양에서상인(商人)계급은어떻게발전해왔습니까?”“동양에서는백성을사·농·공·상네부류로나눈것은사실이지만그것이계급적의미를내포했다고볼수는없지.모든산업이분업이안된채로한사람이모든일을하는것보단분업을해서각자가각자의일을해서효율성을높이는것이낫다는관점에서네분류로나눴다고보아야지.한·중·일동양3국은농업국가였으므로주곡을생산하는농민이우선시되었고상인은생산에는참여하지못하지만,유통단계에서이윤을챙기는계층이된것이지.이조시대에서는유교원리에따라상인들을천시한것도사실이지.그러나산업사회가되면서상업의중요성이커지면서상인계급이생겨나고상인(기업인)들이우대받는시대로접어든것이지.”
“회장님,국제상공회의소(ICC,InternationalChamberofCommerce)는언제탄생했으며역할은무엇인가요?”“국제상공회의소는세계에서가장크고대표적인기업관련국제기관으로1920년파리에본부를두고발족했지.130개국이상수만명의회원사들을가지고있으며각국상공회의소나실업가의연락내지제휴통상관계의원활화를목적으로삼고있지.우리나라도회원이지.국제상업회의소국제중재법원은중재를통해국제적상사분쟁의합리적인해결을도모하기위해1923년부터프랑스파리에산하기관으로두고있지.”박두병회장은대한상의회장으로6년동안재임했다.재임중그가마주한가장큰문제는1969년정부의‘무역자유화’조치였다.무역자유화란국가간의무역에대한통제(관세,수입제한등)를줄이거나철폐하여자유로운교역을가능케하는것을말한다.박두병회장은무역자유화로수입무역빗장이풀리면경쟁력이없는영세한국내중소기업들이도산의위기에처할수있는것을알고있었다.전국상공인의이익을대표하는상의회장은국가의무역자유화정책의성공을도우면서경쟁력이약한산업분야도보호해야했다.박두병회장은1968년부터정부,기업,국민의삼위일체를강력하게역설하면서무역자유화의충격을이겨내려면‘산업합리화운동’을전개해야한다고주장했다.산업합리화란특정산업의구조조정을통해국제경쟁력을강화하고효율성을높이는것이다.박두병회장은1972년까지5년동안이운동을줄기차게전개했다.마침제2차경제개발5개년계획을수행중인정부의정책수립에방향타역학을했다.
“백기자,앞으로우리나라경제는산업고도화단계로진입하게됩니다.화학,철강,기계공업등중화학분야를중점적으로키워야됩니다.현재의경공업위주의산업구조로는선진국으로가기어렵습니다.내가소속한두산그룹도현재의식음료위주에서벗어나중공업구조로가게될것입니다.그래야수출100억달러목표를달성하고그이상의경쟁력을가지게될것입니다.”박두병회장은적어도10년앞을내다보는비전(Vision)을내보였다.박두병회장은1968년5월아시아상공회의소연합회를서울에유치해회장으로피선되었으며1970년5월일본오사카에서개최된제3차총회에서도회장으로선임되었다.아시아상공회의소연합회는아시아의여러국가가연합하여설립한국제기구의하나다.회원국의협력과조정을통한상거래조건의개선과무역확대및경제협력,발전을추구하는것이주기능이다.박두병회장은‘외자유치’가한국경제성장의사활이걸린때폐쇄적인일본위주에서벗어나미국자본유치에적극적인활동을전개했고캐나다,중남미,호주및뉴질랜드,유럽각국을순방하면서수출시장확대에혼신의힘을기울였다.박두병회장은1973년초제5차한·일민간합동경제위원회단장으로회의를진행시켰다.박회장은이때건강에이상을느꼈다.일본측단장우에무라고보로(植村早年郞)씨는“박두병단장은이번회의를목숨을걸고진행하고있습니다.”라고말했다.대한상의는1973년7월4일회장임기만료를앞두고후임자를물색하던중박두병회장의의사와는상관없이그를8대회장으로선출했다.
백기자는꽤오랜시간동안박두병회장과의인터뷰를마쳤다.백기자는박두병회장의상업사(史)에대한지식이높은수준임에놀랐다.

2
면포(綿布,cotton)거상(巨商)박승직(朴承稷)

(독자들이여,앞으로우리는두산그룹의역사가어떻게형성되었고어떤경로를밟아오늘에이르렀는가를살펴볼것이다)
두산그룹창업주박승직은조선후기상업발달로등장한거상이었다.거상이란상업으로큰돈을벌어사회적으로인정받으며막강한영향력을가졌던상인을말한다.박승직은1864년6월22일(음력)경기도광주군탄벌리(炭筏里)에서태어났다.탄벌리는숯가마골로불렸다.부친문회(文會,밀양박씨부마공파)와모친김해김씨의8남매중넷째,다섯아들중셋째였다.박승직가문의뿌리인부마공파는고려충선왕시대밀성군의8대손이조선2대왕정종의사위즉부마도위가되면서비롯되었다.박씨일족은이때부터경기도광주일대에서세거하게되었다.박승직의가문은관록을받으며부귀를누렸지만,이가문의가세가언제부터기울게되어가난한농부가되었는지확실한기록은없다.다만박승직의부친에이르기까지5대에걸쳐광주일대에서농사를지으며근근이혈연을이어온것은확실하다.1대(代)가30년인것을감안하면약150년동안농사가주업이었던것이다.후일박승직은자신의집안내력을기록한‘심야중자필(深夜中自筆,밤중에스스로쓴)’에서“아버지생시에시골광주임의실사실때농사를지어간신히지냈는데전답이라고는조금도없고남의위토(位土,제사또는이와관련된일에필요한비용을충당하기위해마련된토지)를자농하여밥은굶지아니하였으나재산이라고는은(銀)일푼도없었다.”는표현으로보아곤궁한형편이었다.
박승직이이러한형편으로받은교육은10여년간서당에서수학한한문학습이전부였다.서당문을밟아일자무식을면한것은다행이었다.당시극소수의사람에게주어졌던신학문에의접근은꿈도꿀수없었다.박승직의소년시절은다른형제들과마찬가지로가업인농사를돕는것이전부였다.그가추후상인(商人)으로서자신의입지를열어가는과정에서도물려받은재산을밑천으로삼은일은없었다.이런의미에서정주영현대그룹창업회장과닮았으며이병철삼성그룹창업회장,구인회LG그룹창업회장,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