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기쁨

순수한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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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차유오의 『순수한 기쁨』이 44번째 아침달 시집으로 출간됐다. 202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이 등단 5년 만에 펴낸 첫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는 2020년 신춘문예 당선작 「침투」를 포함한 55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당선 당시 “심리적 이중성”이라는 독특한 에너지로 호평을 받았던 시인의 에너지는, 이번 시집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보이지 않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쓰고자 하는 순수한 바람이 미세하고도 섬세한 묘사와 감각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꿈, 기억, 마음 등의 광활한 추상성은 능동적 움직임을 통해 내면의 성찰과 성숙을 자아낸다. 발문을 쓴 김현 시인은 “사람의 자리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속삭인다”라는 감상과 함께 시집의 주요 키워드인 “사랑”을 사람으로, “마음”을 눈밭으로 표현한다. 시 속 화자들은 늘 어딘가에, 무엇에 쉽게 빠지고 구석에 있다가 천천히 가라앉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침잠을 기꺼이 기쁨으로 받아들이며 계속해서 “마음자리”를 찾아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 토적물 앞에서 우리는 나를 이루는 존재의 자리를, 내가 되고자 하는 또는 되어가려고 하는 세계를 비로소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저자

차유오

저자:차유오
2020년《문화일보》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1부나타났다가사라지는

투명한몸
순수한기쁨
감춰지지않는것들의목록
흩어진마음
침투
풍선
관찰
비워내기
원래의공원
인조세계
언덕의모양
어떤사랑
사랑아닌것들

얼굴들
사람은모르고새들만아는것들

2부흩어진채하나가되어

건설된영원
갇힌사람들
드라이브
해변으로부터
조금의조금
천사의노래
기억창고
나무의안부
장난짓
아침
아무도아닌

3부내가점차투명해질때

멈춰버린인간들
휴의형태
쓰리디생활
단순하고복잡한형태의세계
기억력
신선하고선선한
사라져도좋을마음
알수없는기분은알수없는표정이된다
아무도없는
천천히녹아가는
출입
아무도읽지못하는편지
dying
슬리피블루
벗어나기

4부남겨진사람만이떠나간사람을생각할수있고

모두잠들어있는
녹지않는겨울
레코딩
오늘밤에는누가축복받을수있을까
모르는일들
목격자
나너공동체
나의바깥이되어
신과신이아닌
쥐의죽음에관한고찰
연체
버려지지않은물건의버려진마음
그곳에있어

발문
먼곳김현

출판사 서평

“몸보다마음이큰것같아”
흐릿한존재들에게쥐어지는일련번호

안개,연기와같은희미한존재성을바다,하늘과같은선명하고깨끗한언어로아름답게어루만지는차유오시인의첫시집『순수한기쁨』이출간되었다.이번시집은4부구성으로,신춘문예당선작「침투」를포함한총55편의시가수록되어있다.

“남겨졌다”“버려졌다”“가라앉는다”“사라진다”……차유오시인의시에는수많은동사가등장한다.그리고그동사는대부분약하고어렴풋하다.소리내어읽어보지만왠지없는단어처럼추상적이다.시인은빈방울을한데모아큰거품을만든다.흩어지길좋아하는모래알을겹겹이쌓아단단한형체를만든다.사라질법한장면들,언젠가는사라질장면들,오래된기억들을창고에물건쌓듯차곡차곡쌓는다.관조를일삼다가도어느순간그는언어를채썰어커다란냄비에담는다.딱딱하고건조하기만했던언어에서수분이조금씩새어나온다.주걱으로조려지는언어를뒤집고섞는다.그렇게그의시는,눈이아닌몸으로만들어진다.

시집1부는아득한바다를,2부는투명한얼음동굴을,3부는희미한안개속을,4부는새하얀눈밭을거니는듯한풍경이펼쳐진다.화자는“아무렇지않게지나가면정말로아무렇지않은것이될텐데”중얼거리며주저하지않고계속나아간다.진짜같은가짜를마음에두고진심인것처럼믿으며.사랑할줄모르면서사랑에빠지는것처럼.우리는가짜와껍데기를사실처럼믿으며어떤시절을진실처럼살아가기도한다.이에시인은오로지‘마음’만이진실의자리에들어설수있다고말한다.

구석의자리에서
겨우마음이되려고하는이야기

1부에서4부의모든이야기는결국마음이자리를가지고놓이게된근원들과귀결된다.시인은아무도없는버스,텅빈가게,사람들이모두사라진오후,잃어버린물건등희미하고쓸쓸한일상의풍경을면밀하게관찰하면서사라질법한존재들을아름답게예찬한다.특히2부에서는시집의정체성이조금더두드러지는데,“빠져나간다”“쏟아진다”“흩어진다”“날아간다”등의동사들이반복적으로등장하면서화자와청자모두에게희미하고서늘한필터를씌워준다.그러면서도자유롭고광활히떨어지는물방울아래에“빈바구니”를둠으로써사라져버릴법한모두를하나로모이게한다.정처없이헤매는마음에지정석을둔다.

3부에서화자는종종관찰자가된다.“휴”“프린팅”“레고”등인간아닌로봇의삶이좀더구체적으로등장하면서그들의감정과생각을상영하고“그”“그녀”“당신”의풍경을통해제삼자의객관적시선을끌어낸다.시집후반에는유령이되어버린도시,관속에잠긴죽음,폐허가되어버린집등어둡고암울한장면이대거등장하다가도“떠나보내도다시돌아오도록”어렴풋한일들을자연스레다시한데로모은다.그렇게어느순간“찌그러진캔”은서서히“단단한형체”가되어간다.

4부는흔적을따라이어진다.눈밭에남은발자국,우산꽂이에꽂힌우산,아무도타지않은자전거,오래된시계등남겨진것에대한애틋한예찬이이어진다.사물은흔적을갖고,흔적은다시사물이된다.이곳에서시인은조금더쓸쓸해진다.“함께하고있지만하나가될수는없는”공간속사람과사물,기억과사건들.마음의보풀은그일련성에서태어난다.외로워지려할때쯤“흩어진장면들을모아하나의장면으로응집”시키는그를따라,마침내“그곳에있”는모든광경을,우리는보다순수하게기뻐할수있을것이다.

시집『순수한기쁨』은“그늘”진“구석”에덩그러니있다.책들이겹겹이쌓인테이블의가장맨아래,찾는이는모를위치의책장가장높은곳에,허리를구부리거나몸을숙여야만볼수있는곳.시간과마음을들여야만가닿을수있는곳.그런소심과침묵이잘다려진곳에『순수한기쁨』이은은하게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