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배가 지나간 호수의 파랑 (반양장)

오리배가 지나간 호수의 파랑 (반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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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인 장이지의 일곱 번째 시집 『오리배가 지나간 호수의 파랑』이 아침달 시집 48로 출간되었다. 2023년에 펴낸 시집 『편지의 시대』를 통해 편지라는 형식을 시에 적극적으로 데려와 우리 삶과 세계 사이에 유실된 존재를 서정적인 얼굴로 불러온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사랑과 우정이 순환하는 이별의 세계를 촘촘하게 그려낸다. “가끔 너와의 일을 내가 쓰고 있는지 지우고 있는지 잊어버리곤”(「무지개」) 하는 양가적인 세계의 경계는 보편적으로 내려앉은 사랑과 우정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쓰게 만든다. 헤어짐이 발생한 관계를 단순히 이별로 인식하지 않고, 만남의 회전문으로 이끄는 시적인 순간들이 이번 시집에 집중되어 있다. 그 대상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등장한다. ‘나’의 이야기 속에서 학교에서 만난 제자나 학생들, 또 어리숙하게 마음에 대해 물었던 사람, 희미해져 가는 우리 등 다양한 타자를 통해 헤어짐의 윤곽을 선명하게 만드는 시인은, “사랑의 끝은 사랑을 조망하기에 불리한 곳”(「세계의 끝-고고학」)이라고 선언하며 “멈추지 않는 파랑”을 지켜보는 일로부터 이별이 흘러간 자리에서 과거와의 새로운 약속을 본다. 세계에 틈입해오는 시대 정서를 기민하게 시에서 작동시켜온 시인은, “그러나 없던 일이 될 수 없는”(「여우비」) 일들을 소환하며 사랑과 우정을 다시 쓴다. 다시 쓰는 일만이 헤어진 존재들과 영원히 만날 수 있는 일. 시인의 말처럼 “영원이란 활자 속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

장이지

2000년『현대문학』으로등단했다.시집『안국동울음상점』『연꽃의입술』『라플란드우체국』『레몬옐로』『해저의교실에서소년은흰달을본다』『편지의시대』등이있다.

목차

전설바다의밤물결
유월
무지개
정경
세계의끝
경화수월
네가떠안고있는것
LoveMeorLeaveMe
이고비
깊은곳
시간
헤어지는중
구상도

작은악마
가족
노간주나무아래서
두사람
월대에서
불타는나무
마음을열어보면
가벼이취해
노래
페르소나
슬픈눈
여우비
혼자만찬란한것
반성
복숭아깃털옷
장엄호텔
꽃피면
골목
울기좋은곳
칠월
처서
엄마야누나야
우정세월
행방불명
안개
파수꾼
핼러윈
애수
자퇴
양을굽다
가리온
영원한휴가
지하통로
WhenYouWishUponAStar
기록

발문
浪漫,그물결치는사랑-성현아

출판사 서평

“우리가함께있었다는묽은표식을남기자”
날마다다시쓰는사랑과우정을위한헌시
선분하나로그린영원의순환로


여섯권의시집을상재하며그리움에주소를부여하고,편지를쓰듯돌아갈수없는순간들을애틋하고명징한언어로보내온시인장이지의일곱번째시집『오리배가지나간호수의파랑』이아침달시집마흔여덟번째로출간되었다.그동안오장환문학상,김구용문학상등을수상하며문학적성취뿐만아니라독자들의단단한지지를받아온시인은지난시집『편지의시대』를통해낭만이실조된세계에서우리가잃어버리거나놓친존재들에게편지를부치며다시금연결감을시적으로일깨워준바가있다.어느새독자를수신자의자리에두며애틋하고도어렴풋한시간을함께써내려가듯편지를보내온시인은,타자를향해있던사랑과우정의둘레를이번시집을통해‘나’의이야기로수렴하며관계의돌아봄속에서영원이라는세계를발명한다.
‘관계’에반드시찾아올수밖에없는종료된시간을홀로돌아보며,시인은그것이‘끝’이아닌언제나함께만날수있는장소로서의‘쓰기’를선택한다.어쩌면이것은시인이시를통해말할수밖에없었던근원적인배경이된다.시인의말처럼“영원이란활자속에서우리가다시만나는것”이기때문이다.시인의작품안에서다시재연결된존재들은우리가언젠가한번쯤헤어졌거나잃어버렸던관계들,다시돌아갈수없는순간들,어쩌면지금진행중일지도모를뼈아픈이별임과동시에그것을순응하며새로운시작을도모하는회복의자리이기도하다.고추잠자리의날개속에서오리배가호수를지나며만든파랑을지켜보는그작고섬세한해상도의풍경은,이렇듯균열이일어난세계를다시연결하고문장속에서재회하게하는중요한문법으로작용한다.
“한없이다시만나는것으로서의이별”을믿어온시인에게,시란이별을다시금확인하는자리이면서동시에계속만나게되는약속의세계이기도하다.사랑과우정이일순간하나의선분을나눠쓰며순환하는영원성을시치리가하마의노을이나산정호수,끽다점,월대등과같은낯선장소에서확인한다.이곳들은세상어딘가에서계속되는풍경이면서도생경하도한데“언젠가시간위의세부처님이/절집의가장누추한/한방에모여/우리두사람을맞아주었”(「헤어지는중」)던일처럼현실을초월한능선위에서새롭게그려지기때문이다.이러한일들이지극히현실적인얼굴로그려지지않고“고라니의/검은물유동하는/눈”(「깊은곳-고고학」)속풍경처럼그윽하게드리우는것은아마도“이해한다고말하고/이해하지만동의할수없다고말”(「두사람」)하는현실로부터초월하고자하는적극적인의지로읽힌다.현실이라는렌즈안에서조감할수없는형태의우정과사랑을새롭게쓰며,이별을영원으로받아적으며이어쓰고,그리하여우정과사랑을겹쳐새로쓰는일이시에서계속된다는것을이번시집을통해증명한다.


한없이다시만나는것으로서이별을믿는것
헤어진시간을통과하는일렁임의시

발문을쓴평론가성현아는“파랑과사랑은단하나의음운으로변별되는단어”라고시인의시를명명하며,시안에서일렁이는운동을미묘하게감지한다.“파랑은바다의물결로,해수의주기적인운동을뜻한다.이운동은파를일으키는외력과원래상태로돌아가고자하는복원력에의해유지되는데,사랑또한이와다르지않다”라고이야기하며화자의애처로운복원력과닿을수없이멀리달아나버리는시간과감정의액체성을이번시집에서읽어낸다.시인은만나지않았던,아무것도없었던순간으로돌아가고자하는복원이아니라이별을자기만의방식으로순응하고이해한후,유실된존재들과문장속에서함께있는형태로의복원을시도한다.발문에서언급하듯“파랑이곧사랑이라는손쉬운동일화에매몰되지않고,그사이의미세한괴리까지짚어낸다”라는점도주목해볼만한지점이다.
미세한괴리에닿는데까지는시인의섬세한바라봄,들여다보기,눈여겨보기의적극적인방식에서기인한다.“눈물바람하였”어도이별앞에서마음의해상도를높이며,다시만날날의약속으로서의쓰기.날마다다시적는사랑과우정의표정이하나의얼굴을쓰고있다는것.시인은마치미래에서온것처럼,지금우리앞에놓여있는다양한모양의이별을어쩌면시안에서재회할수있는또다른약속이나만남일수도있다는것을계속해서이야기한다.그리하여‘영원’이라는불가능하다고믿었던일이결코불가능한게아니라는것을알려준다.어쩌면그것은시인에게도,독자에게도시라는매개로만나게되는존재들과의관계를성립하게하는중요한단서가된다.잊음이라는기억,기억이라는시작,시작이라는연속그사이사이에벌어졌던균열과균열을이어시인장이지만의‘영원성’을만드는일이이번시집을통해벌어진다.단지‘나’와‘너’의관계성에국한된것이아니라세계와세계로서의확장된시선으로‘우리’의형태를입체화한다.이태원참사,가자지구공습,탄핵시위등세계가앓고지켜내려는현장에서도이영원성은성립된다.“내일도만나자고작별의포옹을하고/친구의목에머플러를감아주자/날마다다시쓰자,우리의우정을”(「기록-palimpsest」).이시의부제인‘팔림세스트(palimpsest)’는원래의글일부또는전체를지우고다시쓴고대문서를뜻하는데,이번시집전체를아우르는말로성립된다.흘러가는시간에재단되어기록된이별을포함한일들을,시인만의영원성으로다시쓴다는뜻의중요한의미를지니고있다.또한번시에기록함으로써시간에정박해있던우리존재를파랑으로조금씩일렁이며다른차원의세계로밀어낸다.
골수기증자를찾지못해자퇴를마음먹고찾아온제자의돌아가는것을지켜보는일(「자퇴」),일찍철들어점점지쳐가다어디론가떠나버린학생과강의실구석의빈자리를보는일(「모라토리엄」),제자들과의여행에서난생처음오리배에타본경험으로부터이들을아버지라고호명하는일(「영원한휴가-제자들과」)등시인은만남과헤어짐을동시에예감하며시를통해순간적인일들에영원성을부여한다.“한없이다시만나는것으로서이별을믿”(「시인의말」)는시인의파랑안에서우리는열심히헤어지고,또열심히만날수있다.장이지가그리는이별은손댈수없는일로내버려두는것이아니라끊임없이이어지는일로재회하는,그리하여시간을문장안에서재생시키는복원을선택하며마침내우리에게이별마저눈부신만남으로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