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의 아가리

햇빛의 아가리

$12.00
Description
“슬픔과 두려움과 냉철함이 자립(自立)의 시로 흡인력 있게 전달되고 넘치는 기세와 필치가 활달하다”(정한아, 박소란)는 평을 받으며 출발하는 시인 윤초롬의 첫 시집 『햇빛의 아가리』가 아침달 시집 49번째로 출간되었다. 윤초롬은 이번 시집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는 신인으로, “피”로 물든 삶을 생활감 있게 그려내며 하양, 검정 등 극적으로 대비되는 색채감을 더해 존재의 희망과 절망을 극명하게 포개는 기묘한 하모니로 그려낸다.

시 속 화자들은 마치 “자기 피를 보고 웃는”(「엄마 딸이 죽었습니다」) 사람처럼,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심리적 출혈을 겪으면서도 현실을 극복하기보다 그저 이 험난하고 비참한 일들을 조소하면서 “핏기 하나 없는 얼굴”이 되고 싶은 심정을 가족 서사로 녹여낸다. 가족은 피로 묶이는 최초의 공동체이며 인간이 세계에 입성하는 순간 가장 먼저 믿음으로 결속되는 관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족이 해체되면서 ‘피’는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피의 끈질”(「황혼」)긴 슬픔이 된다.

추천사를 쓴 시인 박소란은 이번 시집에서 보여주는 처절한 삶의 고투를 증명하는 언어를 “자신의 가장 깊은 곳까지 침잠해본 사람에게서 길어진 것”이라 말한다. 이번 시집은 총 4부 구성으로, 46편의 시를 통해 삶을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채 상처로 뒤섞인 현실을 생동하는 장면으로 포착하고 불온한 정체성을 하나의 이야기로 기워낸다.
저자

윤초롬

저자:윤초롬
시집『햇빛의아가리』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1부
피와생활의하모니

이따금
엄마딸이죽었습니다
회복기
취조실
황혼
잠든사람
다만눈이내리는풍경
바위의딸

2부
꿈꾸지않았다그러나

빨래
지우지않겠습니다
문제아
끝에서
생물시간
유충과성충
그해겨울
외국인의편지
구멍
스테인드글라스
눈사람
프레임
밤이세계의뒤집힌안감이라면

3부
나는치사량의침묵

타이레놀
수속
살균
흰뱀들
비정상
서빈백사
앙상한가지
시인아닌사람이쓴시
홍옥
홍매화흰매화산책
앉는연습
우리돌기
가위는서랍안에있다

4부
시원한곳으로가자

계단을오르는사람
재배
자세의비결
사혈의원리
사랑하는사람
개를데려올까
추모공원
서클
바깥산책

도마위
다른방식

산문

시와솔직함

출판사 서평

“네가외롭지않게네가너의힘을느낄수있게”
생활이앓는몸살을솔직함으로돌파하는시

피투성이로범벅된삶의가난한장면안에서솔직하고명징한언어로새로운시적태동을감지하는시인윤초롬의첫시집『햇빛의아가리』가아침달시집49번째로출간되었다.아침달큐레이터인시인정한아,박소란으로부터“슬픔과두려움과냉철함이자립(自立)의시로흡인력있게전달되고넘치는기세와필치가활달하다”는평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하는시인윤초롬은이번시집에“아름다움을느낄수없는당신에게”(시인의말)작은아름다움이라도발견할수있도록흥건한“피”의현장을담아낸다.

이번시집에서가장중요한키워드는‘피’다.시인은피와생활이끈적하게섞이는“하모니”(「엄마딸이죽었습니다」)를말하기위해다양한색채감을활용하는데,주로쓰는색깔은피의색인“빨강”과“하양”과“검정”이다.그리고시집전체를피의감각으로물들이기에앞서시인은모든세계를“하얗다”(「이따금」)고말한다.시인은하얗게뒤덮여버린세계에서“나풀거리는기억들”처럼방황하고“여기와저기를분간하지못해”“백치”라는“별명”을얻는다.백치는주로일상에서‘순진한사람’을일컫는말이지만시집을읽어나갈수록이별명은폭력적이고비참한현실앞에무너진자신이항복하기위해드는백기이자피폐해진정신을다잡지못하는백지라는의미를새롭게입는다.시인에게검정과하양은모두“시력을잃어가는공포”(「끝에서」)이자“번져가는시야”(「회복기」)여서,자신이흘린피를연하게해주지만그에따르는대가로삶의일부를포기해야한다.

시인은생활의장면속에서피를너무많이흘린뒤남아있는뼈와살을보존할수있는방법으로솔직한발화를선택한다.하지만시집에수록된산문「시와솔직함」에서시인은이방법에대해회의를갖는다.“왜어떤솔직함은징그럽기만할까”라는질문에는누군가의아픔이작품으로전시되면서삶을고백하는형태가예술작품에담겨고유해지고특별해지는현상이부정한알리바이라고말하며자신의솔직함까지반성한다.그럼에도시인이부서지는삶의모든순간속에서도좌절하지않고솔직한이야기를우리에게전하는용기를낼수있었던까닭에는유일하게희망적메시지가담긴마지막시「다른방식」에있다.시인은“서빈백사”라는모래사장에서만난“흰모래”와“흰빛”을피로환원하지않고비참했던어느여름을눈부신세상으로돌본다.“좋은사람”을떠올리면서“네가외롭지않게/네가너의힘을느낄수있게”“나를파괴하지않”(「다른방식」)겠다고말하는용기의근원은솔직한언어로삶의치부를고백하는직진성에서발현된다.추천사를쓴시인박소란의말처럼윤초롬의시는“스스로를감추고짐짓세련된태도로적정간격을유지하는것을어떤본령으로여기는때,그흐름을가뿐히거스를줄안다”.솔직함은윤초롬시인이금방이라도부서질듯한몸과영혼을보존하는방식이다.삶을송두리째흔드는상처를받은자는시쓰기의솔직함으로자기자신을“부정출혈”(「유충과성충」)이자“사혈”(「사혈의원리」)이라고피칠갑적으로명명하는인식에서해방된다.

가족이라는피의서사
살과뼈가사라지는동안에도
몸과영혼을보존하기

피를토하고흘리면서아름다움을말하는방식이란무엇일까.그처절하고도절박한발화의이면을발견하기위해서는시속화자들이처한생활현장을몸으로체험해야만한다.

시인이시에담은화자들은거의대부분가족구성원이다.시인은가족을피의공동체로묶는다.시집전체에담긴이야기는마치한편의소설처럼매끄럽고순차적으로진행된다.피를나누고섞이면서결연해지는가족은시집에서총네명의인물을다룬다.그중핵심에속하는‘아버지’는“범죄자”(「취조실」)고자살을시도하면서(「황혼」)가정폭력을일삼아가족에균열을내어해체하는인물이다.‘어머니’는가난해진현실을견디다안암에걸려투병하는자이고,‘언니’와‘동생’은유일하게서로의아픔을돌볼수있는관계다.가족이겪는시련을삶의토대에간신히놓을수있는방법으로시인은“앙상한비유”(「지우지않겠습니다」)를택한다.즉시인이말하는피의물성도마찬가지로삶을지탱하기위한일종의비유이자“희고반투명하고액체도고체도아닌덩어리”(「추모공원」)로서가족전체를은유한다.

가족이남긴상처는공동의몫이면서도개인의체질로이어진다.시인은이번시집에서유독부서진다는표현을많이쓴다.‘나’라는존재역시“피”와“살”과“뼈”로이루어진공동체라고말해볼수있다면,인간은태어나면서본질적으로죽음이라는해체에맞닥뜨릴운명이며육체가해산되는순간을한번쯤상상해보게된다.시집1부와2부에서가족전체가짊어지는가난과고통에관한이야기가주를이루었다면,3부와4부에서는이러한현실을관통하면서겪는자신을존재론적으로사유한다.“내가사람이라니믿을수없”(「앉는연습」)다고고백하는이유는참혹한장면들이시야에서산산조각으로부서지듯자신의육체또한부서진다는감각이온몸에전이되기때문이다.

이러한사정을다헤아린후마지막으로제목을살펴보면독자는“햇빛의아가리”라는강렬한제목을만나게된다.시인은풀밭에몰려오는주황빛기운을따스한이미지로표현하기를거부하고햇빛이지닌동물성을포착하여육화한다.이에주변화되는화자는“걸을곳”(「바깥산책」)을“잃어가”지만모두에게다음과같은산책을요청한다.“시원한곳으로가자”고,“멀리멀리전진”하자고.시인은햇빛을늘안온한시선으로따뜻하게말하는자가아님을거듭확인하기위해,그속에담긴본능적슬픔을감각하고주변으로밀려나도,함께살아가는이들을보호하려는의지를‘입’에서말로,말에서문장으로힘차게걸어가는발걸음을주저하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