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봄에 써야지 속으로 생각했던

네가 봄에 써야지 속으로 생각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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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슬픔과 고통을 기꺼이 끌어안으며 아직 발견되지 않은 희망을 노래해 온 시인 심보선의 네 번째 시집 『네가 봄에 써야지 속으로 생각했던』이 아침달 시집 50번으로 출간되었다. 한국 문학의 새로운 지형도를 그리며 걸어온 아침달 시집의 유의미한 순서로 8년 만에 신작을 펴내는 시인 심보선의 새 시집을 소개한다.
시인은 그동안 세 권의 시집을 통해 삶에 드리워 있는 고통과 어둠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도 슬픔과 아픔을 유예시키지 않았다. 시인은 그 안에서 새롭고 낯선 희망으로 길어 올리며 시 독자들에게 깊이 각인된 이름이기도 하다. 긴 공백 끝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는 세상의 암울한 소용돌이를 견뎌낸 안간힘, 사랑과 이별이 혼재된 언어, 그을리면서도 살아남은 예술을 끝끝내 증언하는 시인이 서 있다. 심보선식 희망은 “애썼어요/ 나 자신에게/ 존댓말로 혼잣말을 하는”일처럼 평범하지만 낯선 감각으로 다가오는 실체로부터 출발한다. 가벼운 말로 위로하거나 기약 없는 약속으로 진실을 헷갈리게 하지 않는다. 증언의 언어들로 진실을 나타나게 만든다.
발문을 쓴 시인 이제니는 시인의 시에 대해 “언제나 인간의 내면과 사회적 시간 사이에서 사적인 슬픔과 공적인 울음을 고유한 진폭으로 그려내 왔다”라고 이야기하며 시인이 이야기한 ‘그을린 예술’의 자리를 다시 한번 강조한다. “ ‘그을린 예술’이란 삶의 비참 속에서도 행복의 빛을 찾고자 하는 꿈으로서의 예술이”라는 점에서 이번 시집은 그을림의 흔적을 더듬어 끝끝내 살아남는 일로 펼쳐진다. 내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재회할 수 없는 이별의 앞에서, 시인은 살아남은 이들의 목소리를 대신하며 세상과 존재의 균열 사이에서 ‘그리고’라는 접속사가 된다. 시인이 세상의 어둠을 돌파하며 시대의 언어로 퇴적되어 드러낸 빛을 이제 읽어볼 차례이다.
저자

심보선

저자:심보선
1994년《조선일보》신춘문예로등단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슬픔이없는십오초』『눈앞에없는사람』『오늘은잘모르겠어』가있다.

목차

1부어떤삶이어떤삶으로부터

쓰지못했다
삶은나의일
섬망
네가봄에써야지속으로생각했던
유린
나타나다
오해28
엉터리사랑
북,꿈
밤산책
책에따라살기
망원
나는나의아버지
다정하고따사로운
몽상가

2부아니면반대아니면안녕

각자의개
말들의정원
말들의묘지
하나빼기
빙하기
나의신은너의신이아니다
키스를하자
그리고
내가다시기도를할수있다면
어떻게해야할까요
골격
풍장생각
화이트노이즈

3부서로의안녕을모르는일

질투는나의힘
아픈몸이아프지않은쪽으로
재회
스물
말년의양식2
절망은끝까지그자신을반성하지않는다
부잣집아이
나의얼음마녀를떠올리며
세계시의날다음날
유서체의전설
문학공동체
쿠오바디스도미네

산문
산책다녀왔으니이제시쓰자

발문
그을린감정속에서써내려간문장들에부쳐/이제니(시인)

출판사 서평

“순한사람들이살아남았음을
나중에기억할수있도록”
살아온날들에게보내는절망과희망의노래
8년만에선보이는심보선의신작

1994년《조선일보》신춘문예로등단하며작품활동을시작한시인심보선의네번째시집.시집『슬픔이없는십오초』『눈앞에없는사람』『오늘은잘모르겠어』까지자기만의속도를따라출간한작품모두한국시단에무척중요한지표가된것도이례적이다.8년만에출간되는이번네번째시집은,그동안사회학자로서예술과사회가얽혀있는자리를세세히읽고,시대의흐름을그려나가기도하는그의깊어진시선이담겼다.

새로운서정으로독자들에게깊이각인되었던시인은이번시집에서도고통과어둠으로점철된세계를투시하며인간존재를성찰한다.그가이야기해온‘그을린예술’의실천처럼,비참한삶을저버리지않고나아가한줄기의빛을찾으려는행보가시에고스란히담겨있다.수록된시인의산문에서도밝히듯,내란의소용돌이속에서불화하고침울해했던시간을끝끝내돌파하며,한순간생존자가되어버린우리들의시대적슬픔을대신말하길그치지않는다.반복되는절망속에낯선희망하나를비추며,살아갈길의통로를열어젖히는시인의절실한음성이아른거리는시편들이다.

자신에게존댓말로해보는위로,아버지를그리워하며자신의아버지가되어보는나,빛의꽃다발처럼풍성했던어느유년시절의풍경에서부터부재를처절하게감각하게되는어느현실까지.시인의빛과어둠은하나의존속된존재안에서함께살아간다.어둠에게어둠의할일을부여하고,빛에게빛의할일을부여하면서현실을결코외면하지않는시인의결연한태도가이번시집에서더욱부각되기도한다.
총3부로구성되어있는이번시집은,자전적이면서도내밀한고백과도같은시들이주류를이룬다.특별히산문에서언급하고시에서도직접드러나지만쓰지못했던시간이쓰지않는다른일로심부름을보낸것은시인에게더깊은고독을보게한것,시대에필요한삶의새로운문법을익히게한것,말하거나쓰지않았던침묵의시간에기대어살아낸시간을증언하게한것들이다.“우리가생존자였음을/우리가주저앉아통곡하며/가슴을치던이곳에서시인은그사실을기억하기위해다시쓰게되었다.

“나의일은살아가는것
내가모르는먼곳으로나를떠나보내는것이다”
그을린세계에빛의테두리긋기
잿빛속에서건네는약속과의지의시

1부에서는삶의새로운주체성을찾아가는화자와그갈피에끼어드는타자간의관계성이두드러진다.“나는내가모르는타인일때에만선한인간이다”(「삶은나의일」)라고이야기하는화자는자신에게속박되어있던‘나’로부터멀어졌을때바라볼수있는삶에서무언가를찾고자한다.“내가모르는먼곳으로나를떠나보내는”일을실천하는동안시「섬망」에서는떠나온자리의‘나’를돌보며청유형으로그기억들을위탁하기도한다.또한표제작에서는‘너’라는대상이“네가봄에써야지속으로생각했던”일로부터어떤이야기가시작될수있었는지‘나’의쓰기로환원해“끝모를이야기”로이어간다.“내몸에나도모르는자국들”(「유린」)을더듬으며나를낯설게인식할때‘당신’.‘너’와같은타자는훨씬더선명하게다가와‘우리’가된다.서로를업고달리는존재,아무것도없는나의상체에기대어있는당신,당신이잠든사이에산책다녀오는나,나를버리고간독서광아빠등‘나’와‘타자’의관계는미묘하게어긋나고서로의부재속에가득들어차있는허상처럼그려진다.시인은‘나’를구성하고있던나의바깥까지호명하며삶이작동되어왔던방식을새롭게이해하고갱신한다.2부에서는나와타자의무수한집합체로서의‘우리’를호명하며그속성을시대적으로반영하는시들이눈에띈다.“너의천사는나의악마이고/나의천사는너의악마이거늘”(「나의신은너의신이아니거늘」)이라고선언하는대목에서도알수있듯이결렬된것처럼보이나서로의끝에서서함께할수밖에없는운명체로서‘우리’를다시그린다.감각의검은색과표정의하얀색이만드는대비처럼,극명하게다르지만결국“머리를맞대고잠”(「그리고」)드는존재이자“아무것도하지않으면서모든것을함께”하는존재로서의삶을이해하기시작한다.‘그리고’라는접속사처럼,시인은결렬되거나유실된관계를다시연결하며삶의새로운변곡점으로만든다.이것은심보선이그동안의시집에서끝끝내해내고야말았던낯선희망의연장선이기도하다.

시인이시안에서그리는정황들은대체로무언가가동시다발적으로일어나는일이아니다.이미벌어진일을수습하거나,일어난일이후의이야기가훨씬더많이되풀이된다.“이집에선아무도태어나지않았고/아무도죽지않았는데/지나치게많은선물과유품이있네요”(「어떻게해야할까요」)그것은단순히과거를돌아보는행위,미래를예감하는행위에지나지않고“아무도”태어나거나죽지않았다는무기력한상태로모사된빈공간의서사를메우는방식으로서의사유로시작된다.거기에는개인적일화와사회적맥락이교묘하게맞닿아“이제어떻게해야할까요”라는말의반복으로공명한다.“그냥앉아있기만”(「골격」)하는무기력하고별일없어보이는무료한삶속에서도은연히드러나는“분노라는골격”을나에게서발견하는것은,1부에서화자가나를멀리떠나보내고타자로재구성하여돌보았던텅빈‘나’였기에가능한‘나타남’이다.3부에서는이러한나타남의구체적인현상을구체적인인물과의일화로드러내는시들이많다.「재회」에서처럼끝난우정뒤에찾아온친구에게,13세기이국의마녀에게,아픈누나에게보내는답신같은시들은우리에게머물러있다떠난누군가의자리를상기시킨다.“자신의존재가분명어딘가에다가가는구나느끼는”(「말년의양식2」)시간성을시인은회복의의지로,없음과도함께하는마음으로재구성한다.그리하여빛이아른거리는유년을지나절망이도사리고있는현실을주파한다.그럼에도결국돌아와있는자리는“세계시의날”의다음날처럼,시쓰기에고투하고부대끼는존재의자리이다.시인은“이번시집에실린다수의시는내란의소용돌이가운데쓰인것이라”(산문「산책다녀왔으니이제시쓰자」)고이야기할만큼요동치는시국속에서“살아가지않는다면,삶을이루는일들을과업처럼수행하지않는다면,내영혼은외부의힘에휩쓸리고짓눌려파괴될것만같은”자신과균열이일어난세계를기민하게감각하며이번시집을묶었다.이모든것이‘살아냄’의순간이었다면,함께살아낸생존자인우리들에게,시인은그럼에도불구한일들,없지만나타나는일들을시안에서실현시키며주체적인삶의뒤척임을희망으로전한다.그을린예술안에서우리가할수있는것은시인이제니의발문에서처럼“현실의불길이우리를그을린재처럼만들어버릴지라도예술은그잿빛속에서작은불씨를,희망의빛을,끈질기게찾아내려는노력”뿐이다.시인심보선이어둠속에서뒤척이며쓴이시들은,우리가봄에써야지속으로생각했던일들,세상의혼란이그것을덮어버리기전에찾아온것이기도하다.

시인의말

다시는못쓸것같았다.
다시쓸수있어기뻤다.
남은삶
쓸수없는밤과
쓸수밖에없는밤이
서로에게가없이다정하기를.

2025년6월
심보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