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공기 (김영희 시조집)

달콤한 공기 (김영희 시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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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백화난만의 상상력과 시적 통어(統御)
─ 김영희 시조집 『달콤한 공기』
2014년 《문학과 의식》을 통해 시 등단, 2022년 《강원시조》에서 단시조문학상을 받으며 시조 등단한 김영희 시인이 두 번째 시조집 『달콤한 공기』를 작가 기획시선 41번으로 출간하였다. 시인은 그동안 『여름 나기를 이야기하는 동안』을 비롯하여 4권의 시집을 냈으며, 시조집 『바람이 노래하는 곳』을 상재했으며, 청담시조작품상과 천강문학상 시조 대상을 받은 관록이 있다.
이번에 펴낸 김영희 신작 시조집 『달콤한 공기』는 시인의 10년 시력이 집약된 결과물이다. 모두 5부로 구성되어 70편의 시편을 선보인 이번 신간 시조집은 새로운 길에 대한 추구와 매한가지의 창작법을 보여준다.
저자

김영희

저자:김영희
강원도정선에서태어났다.2014년계간『문학과의식』으로등단했다.시집으로『양파의완성』,『당신이내게로올때처럼』,『나무도마를만들다』가있다.한국문인협회,강원문인협회,원주문인협회회원이다.2019아르코문학창작기금및2019제24회원주문학상을수상했다.agnes0258@naver.com

목차

시인의말

1부
들풀
숲속저수지
느티나무무늬
분홍감자
달콤한공기
여기는정선
기억의복판
초록넝쿨
겹겹의꽃잎
떨림
둥글고환하게
아침
언뜻꽃그늘
소리의색깔

2부
위로
옷한번
귀를꼭감고
과속방지턱
자세를배우다
봄비에게
딴청
뇌우처럼
초저녁
빗방울들
밤비
어미는말이다
도굴
활짝이라는말

3부
봄날,1막3장
살구꽃잔치
몸짓들
밤한톨
살엄음판
아무말대잔치
평행선과교차선
까슬
굽고졸이고
포도
죽방멸치
독거
가을편지
가을산

4부
무화과를읽다
음률을맞추면서
봄날의성묘
고인돌이있는풍경
달빛혼자보냅니다
종소리
가로등
반딧불이
자락자락가을
사진속에있었네
뒤란이야기
몽돌가족
토렴을배우다
겨울

5부
깊고푸른나무
손을베다
포구의휴식
꽃소식
화절령

이런고요
양파
가을에는
꾀꼬리단풍
주머니
만개
나를쓰는밤
마른꽃에게

해설
백화난만의상상력과시적통어-김종회

출판사 서평

새들은온갖빛을입에물고날아온다
분홍을한점울고초록도풀어놓아
사오월
소리만담아
화첩한권엮는산
-「소리의색깔」전문

소리는청각이미지이고색깔은시각이미지이다.이양자를하나의묶음으로형상화하고그의미를유추하자면,상당한사유(思惟)의증폭작용이필요하다.그런데이시조의시어들은사뭇편안하고자유롭다.‘새들은온갖빛을입에물고’날아온다.이렇게새울음소리에서빛의소재(所在)를읽어내는관점이작동한다.거기다‘분홍을한점물고’초록도풀어놓는다.마침내‘사오월소리만담아’그결과로‘화첩한권엮는산’이된다.복합적상상력이확산된,잘매만져진시다.

2부의시들에서시인은우리삶의가장밑바닥에숨어있는실체적진실탐사의멀고도지속적인도정(道程)에가시적인세상의경물(景物)들을적극활용한다.「위로」에서‘숨죽은푸성귀들’의눈물을보는일,「자세를배우다」에서‘바닥은길을내는시작점’이란인식,그리고「어미는말이다」에서‘끈끈이쥐포수’에붙잡힌아기쥐와그를본어미의눈등이모두그렇다.

지난일다가올일꽃지고꽃피는일
활짝은한순간을피워둔그림문자
마음이헐렁해진저녁
읽어보는단어다
-「활짝이라는말」부분

화자는꽃을거명하지아니하고,그꽃이한껏핀모양을나타내는‘활짝’이라는부사를주제어로선택했다.‘지난일다가올일’이‘꽃지고꽃피는일’인데,활짝은그순간을지칭하는‘그림문자’라는것이다.꽃이활짝피면마음이헐렁해지는저녁이오는것은누구에게나동일한현상일까.꽃피는저녁의정취를이토록순정하고고요하게묘사하기란쉬운일일수없다.3연에이르러어느덧시인은‘내안에달아놓은’활짝을불러본다.그것이‘맨처음그린뜻’이라면그너머도환한지경(地境)이라는것이시인의생각이다.

3부의시에서는사람과사물과자연을모두스승으로간주하는시인의열린마음이돋보인다.‘세사람이길을가면그중에반드시나의스승이있다’는말처럼,우리주변의모든존재는장점이있으며시인은그것을배워야한다는관점을보이고있다.「살구꽃잔치」에서‘꽃바람한줌’의초대장,「굽고졸이고」에서생선자반요리가암시하는우리삶의국면,「가을산」에서‘구름도불러색동옷’을입는산의형색이그와같다.만상(萬象)의구석마다시인에게건네는교술자의목소리가잠겨있는형국이다.

마음을읽어보다강폭을재어본다
이쪽과저쪽기슭이어볼생각인데
밤새껏조바심만내다기진해진속마음
그래도건너볼까몇번을서성이다
건너기두려운강건넌방에자리하고
근심만뒤적이다가기슭에서잠든밤
-「살얼음판」부분

강물앞에서화자의마음과삶의길을가늠해보는시다.그러기에마음을읽어보다강폭을재어보는것이다.이때의읽어보기와재어보기는서로다른유형의측정이지만,그것이지칭하는평가와판단의추정치는다른것이아니다.인생길의주요한과정을상징하는경점(更點)이암시적이고간접적인언급으로제시되기에좋은시가되는터다.그와같은연유로강의살얼음과속마음의조바심이하나의계량기위에놓이는것이아닌가.이양자사이의비교와계측이계속되면서,근심만뒤적이다가기슭에서잠드는것이우리삶의형상이아니던가.

4부에수록된시들은제3의눈,시안(詩眼)의기능과힘을잘활용한다.「봄날의성묘」에서이생에서처럼만나는아버지와어머니,「뒤란이야기」에서어머니떠난뒤란의담론,「겨울」에서은빛과흰옷에기댄겨울의의인화등이그세목이된다.

꽃잎의찬란함은발설된비밀같아
세상일못듣는척아무것도모르는척
붉은꽃가슴에품고눈을감는무화과
(중략)
내안이꽃밭이라말안하는무화과는
호명후사라지는귀가없는무화과는
행간에말없음표를적어놓은짧은시
-「무화과를읽다」부분

무화과를읽는것은,무화과꽃을응시하는데서그치지않고그꽃과열매가상징하며함축하는제3의뜻을상정하는행위다.그렇게숨은보화와같은뜻이있기에,‘꽃잎의찬란함’은‘발설된비밀’같고붉은꽃가슴에품고눈을감는행태(行態)가된다.‘내안이꽃밭’인데도말하지않고듣지않는무화과는,그존립의근거가자신의내부로침윤할수밖에없다.그래서결미에이르러시적화자는,이상황을통할하여‘행간에말없음표를적어놓은짧은시’라고규정하는것이다.

과장도수식들도지우고벗어내자
살갗을열고닫던벌나비도떠나가도
꽃잎은세상만뚝뚝접으라고하잖아
(중략)
이울다몸지우고사라지는한철보다
풍경에시나브로포함되는사소한일
베어문향기꼭품고깨어있자꽃들아
-「마른꽃에게」부분

‘마른꽃’은심하게말하면꽃의최후다.생기발랄하던얼굴은간데없고삭은쭉정이같은신세로전락한,꽃의가장말기다.하지만시인은그렇게수긍하지않는다.그가제3의눈을가진자이기때문이다.‘꽃잎은세상만뚝뚝접으라고’해도,이를‘퇴화의시간’이라여기지않고‘침묵은시간뒤의시간,아름다운언어’라고강변한다.그마지막에이르기까지‘베어문향기꼭품고깨어있자’라고권유한다.마른꽃한송이가빛나는생화의시기를훌쩍넘어서는순간이다.여기에놀라운시적승급(昇給)이있다.

5부의시들은덧없는인생사의조건에대한답변을다루며독자에게공감과감동을촉발한다.「포구의휴식」이발설하는‘나마스떼’의인사,「화절령」이환기하는꽃한송이의초절(超絶),그리고「이런고요」에서만나는세상과의폐절(廢絶)에는그러한탈속과각성의의식들이서식하고있다.

이처럼김영희의시조에서는결이고운시어의선택,부드러운서정성의향유,애틋한감성적이미지의활용,선명한메시지의응축과전달,잘짜인시적구도등여러덕목을한꺼번에발견할수있다.그런가하면순우리말의소환이나연시조로의확장등우리시조의발전에기여하는요소들도목도할수있었다.앞으로도그의시와시조가가일층일진월보하여,우리로하여금더큰시읽기의기쁨을누리게해주길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