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셀러『인간시장』의작가김홍신이서정시집『그냥살자』를작가시인선으로출간하였다.이는이어령과박경리가시를쓰고시집을낸것만큼이나새롭고또놀랍다.
주지하다시피김홍신은『인간시장』을필두로한장편소설들로낙양의지가를올린,한국문학최초의밀리언셀러작가다.그의소설이갖는의의와가치에대해서는굳이여기서재론할필요가없겠으나,그가동시대문화현상가운데어느누구도넘어설수없는독자수용의천장을친사실은이제문학사의한장이되었다.그를두고불세출의작가라부르는이유다.그가문득시인의기치를들고나선이유는소설로다표현하지못한,그리고시의장르적특성으로가능한언로를열기위해서가아닐까.그리하여이제껏가슴속에묻어두고있던세상살이의경험과지혜를,오늘의우리사회와뜻깊게공유하려했을터이다.그연령에이르도록지속적으로운용해온문필과세상살이의관계성을활용하면서,‘시로쓴인생론’의범례를보여준것이그의시라할수있겠다.
김종회문학평론가(한국디지털문인협회회장)는평설에서“김홍신의시에는언어의기교나관념의유희가없다.소박하고조촐한,그러나품격있고의미깊은인생론의언사들이오랜격언처럼줄지어있다.이시의행렬은그가살아온세월의경과와그연륜의원숙성을반영한다.그의시들은주로구어체의어법을빌려독자와의소통을도모하며,이는한결친숙하고편안한공감을촉발하는데유익하다.왜김홍신이이와같은시를쓰고시집을간행하려할까.이야기의형식으로풀어서말하는소설의발화법을한편으로밀쳐두고,비유와상징과압축의방정식을동원하는시의기법이그에게절실했던까닭이무엇일까.이질문에대한답변은곧김홍신시의존재양식을말하는것이된다”고평한다.
우주적상상력과인식의공간확장
시인은풀한포기바람한점을보고도명상한다.그것들이모여삼라만상을이루기때문이다.김홍신의시세계가꼭그렇다.그는우리주변의사소한일에서부터우주공간의광활한환경에이르기까지,사뭇자유롭고활달하게시의소재를만난다.이시집의1부에서볼수있는그의세계에는고승의탈속한죽음(「천화(遷化)」)이있고,사람의지구에대한사용권(「사람은지구의나그네」)논의가있는가하면,이모든존재의의의를가늠하는심층적인식(「바람에게물었다」)이있다.그가당면하고접촉하며판단하는모든사물에다각적관점이작용하면서,그상상력은시인이자신의내면에숨기고있는생각들을‘시의보석’으로이끌어낸다.
하늘에게어찌살라느냐물으니/대나무처럼살라하네/대나무는가늘고길어도쓰러지지않아/마디있고속비어그렇다네/인생의고비가마디요/속을비우는건마음내려놓는거라네
―「대바람소리」부분
이시집의첫번째시「대바람소리」의첫연이다.대나무에마디가있고속이비어있기에가늘고길어도쓰러지지않는다는언표(言表)다.시인은곧바로대나무의모형을인생사의면모에대입한다.뒤이어둘째연에서대나무에게물으니‘바람’처럼살라하는데,이모두를넘어서는힘은‘사랑과용서’에있다는것이다.
술잔에뜬별을마신다/별이웃으며심장속으로들어왔다/심장이벌렁벌렁춤춘다/술잔은시시덕거렸다
―「술잔이비었노라」부분
술잔에달이뜨거나별이뜨면,이는매우고급한풍류의시심을증명한다.시인은술잔에뜬별을마신다.자연과시적화자또우주와시적화자가물아일체의지경으로진입하는이순간부터,하늘과별과달이함께호응한다.이를테면시인이시공을초월하는물심일여의연대를꿈꾸는형국이다.
품었던욕망은참으로부질없나니/얼기설기쌓은인연은낙엽되어흩어지더라/켜켜이늘어붙은/애착은가소롭고/사람은본디짐승이었다더라/참사랑과따스한용서와자유를누리기에/사람이되었다하더라
―「사람으로태어나무엇을남길텐가」부분
이시의서두에서시인은‘인생은짧은데흔들리며산세월은왜그리길었는가’라고탄식한다.더불어‘사람은본디짐승’이었으나‘참사랑과따스한용서와자유’로인하여사람이되었다고술회한다.이렇게보면그가품고있는인생관은언제나가치지향적이고순방향적이며,동시에그러한사유가시로발현되고있다.
문학은영혼의상처를/향기로바꾸는인간학이지요/시인은영혼의상처를/꽃대궐로만드는예술가죠
―「살아있음은기적」부분
시,또는문학의기능을확정적으로피력한시의구절이다.아마도이는오랜세월을두고시인에게하나의화석이된문학관으로보인다.그러할때그의시가표상하는인간곧‘살아있는사람’은,기적의주체요천지간을가로지르는가장소중한존재로격상된다.시인이상상력을운행하는공간이이렇게넓고자유로운연유는,어쩌면소설의주박(呪縛)을벗어난시의강세로부터말미암았을것이다.
삶의질곡을넘어선경륜과인간애
인생행로에서한사람이보여줄수있는경륜의크기는,그의경험은물론그사람됨의수준에연동되어있다.큰포부를가지고어떤일을조직적으로계획하거나그렇게세상을관리하는일을경륜이라고한다면,이는김홍신시의넓이와깊이를추정하는하나의시점이될수있다.더욱이누구나마주하게되는삶의질곡에당착했을때,이경륜은그야말로새힘을발양한다.사람이죽으면‘영혼은별’이된다는믿음(「사람의고향은별이다」),‘인생사전쟁터’인마당에참으로‘잘사는법’의발견(「그냥살라」),그리고무게를잴수없는‘내인생의오로라’에대한달관(「하늘을닮은눈빛」)등이이시집의2부에서볼수있는구체적사례가된다.
지나보면안다고통이추억인걸/불행해지면안다아주작은게행복인걸/죽음이닥치면안다내가세상의주인인걸
─「겪어보면안다」부분
‘겪어보면안다’라는시의제목은지금여기에까지이른결과론적평가에해당하지만,여기에는두가지전제조건이있다.하나는지금이전의어려움이나아픔에대한체험이요,다른하나는이제그것을넘어설수있는의지와그로인한새로운진전에의확신이다.인용의시는여기서과거와현재로맞서있는이구조적정황에대한견식을,모양좋게잘수렴한경우다.
거지에게절해본적없지만/천원짜리한장내밀고/두손모으고절했다/또박또박걸어가는그녀에게/두손모으고절했다//참스승이도처에있으니/내발길을다듬고다듬어야하리라
―「따라배우기」부분
이시의화자는거리에서‘구걸하는동냥아치’와그에게적선한여인이허리숙여절하는광경을본다.그현장에서‘또박또박걸어가는그녀’에게두손모으고절하는이는시적화자일시분명하다.그리고짐짓시인은이렇게말한다.‘참스승이도처에있으니내발길을다듬고다듬어야하리라.’눈물겹도록곡진(曲盡)한인간애의한풍경이다.
사람마음은자꾸자꾸/모양을만들어/화가치밀고/피가나며통증이심할밖에//마음에사랑과용서를심으면/사람꽃이된다지요
―「사람꽃」부분
희비애락을벗어날수없는평범한사람이‘사람꽃’이되는경로를보여주는시다.시인은그난감한외줄기길을‘허공’과‘사람’의비교를통해적시한다.그의결론은이렇다.‘마음에사랑과용서를심으면사람꽃이된다지요.’굳이공자의‘기서호(其恕乎)’를빌려오지않더라도,이에견줄만한인간애의도식을찾아내기란어려운노릇이다.
인생의도정에서만난사랑의얼굴
우리가작가이자시인의길에들어선김홍신과그의시를신뢰하는데는,당연히그럴만한이유가있다.그시에서어떤허장성세나정도의지나침을목도할수없을뿐아니라,작고소중한진실에정성을기울이는진정성을납득할수있기에그렇다.일찍이윌리엄블레이크가「순수의전조」에서‘한알의모래에서세계를보고한송이들꽃에서천국을본다’고한세미한수사(修辭)를,3부에수록된시들에서만나게된다.그작고귀한얼굴들은대개‘사랑’이라는공통점을안고있다.사랑하면풋내나는사람이된다(「사랑서리」)는전언(傳言),다친사랑이더찬란하다(「다친사랑」)는판단,사랑이라는별이있어누구나사랑하게만든다(「사랑앓이」)는해명등이모두그와같다.
사람사용설명서에/설마울고불고찡그리며/살라고적혀있을까//행복이어디있냐고물으면/내마음속에있다면서/늘마음밖/남이가진줄알았지
―「인생사용설명서」부분
‘인생사용설명서’나‘사람사용설명서’는어디에있으며어떤문면(文面)으로기록되어있을까.그리고정말그러한문건이있기나한것일까.시가‘현실법칙’이아니라‘진실법칙’에의거해있고,그언어의운행에있어‘시적일탈’이나‘시적허용’이가능하다는것을전제한다면이설명서는시인에게하나의특권으로작동할수있다.이와같은눈으로본다면,그어려운문답이한결명료하게제시될수있을것같다.
가슴에꽃한송이키우고/머릿속엔부싯돌두개를넣어두라/꽃을피우기위해/그대가슴은붉은피흘려야하고/먹구름이몰려들어모두젖어야하고/세포가폭발하듯고통삭여야한다
―「청춘들아」부분
이시는시인이청춘에게전하는사랑과격려의말이다.일찍이호머가‘델로스섬에서아크로폴리스신전곁에하늘을향하여땅으로부터치솟은종려나무를보는것같다’고칭송한,그청춘들에게주는고언(苦言)이다.시인은종내청춘이엄혹한단련을거쳐서제몸과제혼을온통불사르는‘거대한천화(天火)한송이’가될것으로규정하고그렇게권면했다.
회초리꺼낸울엄니/버선발위로치맛단올리고/회초리를내손에쥐어주었네/자식잘못가르친어미를때리라며//아이고울엄니왜이런다냐/정녕새엄니는아니네/나는회초리내던지고/엄니품에서목놓아울었지
―「울엄니1」부분
철딱서니없는시절에다리저는아이를놀린화자에게‘울엄니’는엄벌을내렸다.아들에게어머니자신의종아리를회초리로치라는것이다.어디서익숙하게보던현모賢母의그림이아닌가.다른애들에게는없는이징벌에‘새엄니’인가반문도해보지만,마침내회초리를내던지고그품에서목놓아운다.부연설명이필요없는어머니의참사랑이다.
사랑이라는별이있다네요/누구나사랑앓이를하지요/사랑병은황홀한통증/도깨비닮아/툭건들기만해도달라붙어/드잡이를하지요
―「사랑앓이」부분
사랑이라는별이있고누구나사랑앓이를한다는시적진술은,갑남을녀를막론한사랑의보편성을말하고있다.사랑병이쉽게드잡이를한다는것또한마찬가지다.그래서시인은사랑을두고다음시행(詩行)에서,괴이쩍기로지옥같고살갑기로엄마품속같다는해석을내놓는다.이사랑의얼굴은우리삶의어디에나있고,어느부문에나개입한다.사정이그러하니사랑이야말로인생길의변함없는도반(道伴)인셈이다.
세상살이의지혜와운명론의언어
어느작가가이렇게말했다.‘운명!그이름이등장하면모든토론은종결이다.’이준엄한글의한구절을소환하여떠올릴만큼,김홍신시의종착점은인간의웅숭깊은속성과마침내그것이견인할운명의날들을예감하게한다.그러나그의시에서운명의모습은그에이르는경과기간에당사자의고투와정성에비례하여명암이조정되는,이른바인본주의적성격을가졌다.바로여기에시인또는시적화자가가진세상살이의지혜가개재(介在)할여지가있는것이다.세상에조금이라도보탬이되겠다는다짐(「그냥살면되거늘」),평생묻어둔혼을그대품에남기겠다는고백(「그대품속에핀꽃」),아픔없는인생있을까라는반추(「두루메」)등에서운명론의언어와삶의지혜로운식견이접촉하는형상을볼수있다.
옛선비마냥호(號)를갖고싶었다/스승선비선배들이/민망하리만큼큰뜻의호를지어주었다/내처지가부끄러웠고/지어준호처럼살자신이없어/망설인세월이길고길었다
―「모루」부분
‘모루’라는제목의시다.모루는시제목이면서선종(善終)하는신부가김홍신시인에게공여한호(號)다.모루는대장간에서달군쇠를올려놓고두드릴때받침으로쓰는평평한쇳덩이를일컫는다.농기구나일이나사람이나,제대로성장하고발전할수있도록돕는역할을한다.온생애를두고세상과사람들을위해기여한이시인에게꼭알맞은이름이다.그렇게공익을위해살운명이면,이정황을벗어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