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클라우드 게이트

시카고 클라우드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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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중언어 환경에서의 삶과 사랑
- 성민희 디카시집 『시카고 클라우드 게이트』
이중문화 이중언어 환경 속에서, 오랫동안 문필 활동을 해 온 성민희 시인이 디카시집 『시카고 클라우드 게이트』를 도서출판 작가의 한국디카시 대표시선 33번으로 출간되었다.
저자 성민희 시인은 한국 문단의 《현대수필》에서 수필로, 《한국소설》에서 소설로, 그리고 《수필미학》에서 수필평론으로 각기의 장르에 따라 이름을 알렸으며 재미수필문학가협회의 회장 및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동안 상재한 수필집으로 『사람이 고향이다』와 『아직도 뒤척이는 사랑』이 있으며, 한국산문문학상과 미주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가 디카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다른 장르의 글쓰기 연륜에 비해 오래되지 않았으나, 사뭇 빠른 보속으로 이렇게 시집 한 권 분량의 적층을 보였다. 그는 제9회 황순원디카시 작품모집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현재 한국디카시인협회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지부 지부장이다.

성민희는 이 시집의 서두 〈시인의 말〉에서 자신이 디카시를 쓰기 시작한 이유를 선명하게 밝혔다. 아마추어로 그림을 그리던 자신에게 ‘장면’ 포착의 관습이 있었고, 그 속에 잠복한 ‘세상 이야기’를 도출하는 재미에 빠졌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사진이라는 영상 기호와 담화라는 문자 기호의 결합에 이르는 순간, 곧바로 디카시의 세계와 합일하는 형국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그는 운명론적으로 디카시인이 될 행로에 서 있었고, 그와 같은 상황은 디카시인으로서는 매우 행복한 국면을 맞게 되는 형편이었다. 그는 디카시와 만나면서 ‘사진은 숨을 쉬기 시작했고 언어는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고 토로했다. 이 시 쓰기의 방식으로 그는 자신의 모든 일상적인 삶의 세부에 렌즈의 초점을 가져갔고, 거기서 그 곡진한 의미, 특히 사람과 사물에 대한 사랑이라는 소중한 결실을 거두어들였다.

일상의 현장과 세미한 관찰력
성민희의 디카시에 등장하거나 출현하는 일상의 모습은, 당연히 그가 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풍경이 대다수다. 그곳이 그의 삶터요 일터요 놀터이기에 그렇다. 그는 이 일반적인 삶의 배경 가운데서 여러 모양으로 만나는 경물(景物)의 배면을 투시하고, 거기에 숨은 내밀한 이야기들을 발굴한다. 1부의 시들은 그에 결부된 ‘사랑’의 존재 양식을 해명하는 사례가 많다. 「동행」의 경우 번잡하지 않은 거리를 함께 걷는 두 사람을 보여주고, 그들의 ‘우리’가 ‘바람이 물들인 단풍처럼 세월이 빚어준 선물’이라고 단정한다. 「한낮의 별」에서는 네모필라 또는 별꽃풀로 불리는 꽃 무리를 두고, ‘이 한 낮에 별이 되어’ 찾아온 그 애틋한 사연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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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성민희

『현대수필』, 『한국소설』, 『수필미학』에 수필, 소설, 수필평론으로 등단했으며.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장 및 이사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사람이 고향이다』 『아직도 뒤척이는 사랑』, 공저로 『미국의 수필폭풍』, 『엄마가 살아냈던 힘은』, 『바람꽃』 등 다수가 있으며 한국산문문학상, 미주문학상, 황순원디카시공모전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대구일보에 칼럼을 연재했으며, 현재는 미주한국일보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미주문협〉 감사, 〈재미수필협〉 이사, 〈가든문학〉 지도강사 및 〈한국디카시인협회〉 OC지부장으로 활동 중이다.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사랑에 관하여
가난한 사랑 Humble love · 14
닫히지 않는 마음 Waiting for Love · 16
겨울나무 Winter Tree · 18
참사랑 True love · 20
기억의 파도타기 The Memory on the Wave · 22
네 친구 Four Friends · 24
한 낮의 별 Noon Stars · 26
둥근 사랑 Rolling Love · 28
동행 In Step · 30
바람 부는 곳으로 Where the Wind Blows · 32
부부 The Couple · 34
사랑의 홀 인 A love’s hole-in · 36
두 송이 꽃 Two Bloom Flower · 38
당신의 빈자리 Your Empty Seat · 40
도시의 이방인 An Outsider in the City · 42

제2부 인생에 관하여
그 분의 손길 His touch · 46
가장의 무게 Breadwinner · 48
고백 Confession · 50
고사목의 유언 Last Words of a Fallen Tree · 52
꿈Ⅰ DreamⅠ · 54
꿈Ⅱ DreamⅡ · 56
꿈Ⅲ DreamⅢ · 58
빈 잔의 기도 A Prayer of an Empty Cup · 60
존재의 자각 Consciousness Awakening · 62
무언의 폭력 Hidden Violence · 64
얼음의 미학 The Aesthetics of Ice · 66
왕영(往榮) Fading Glory · 68
세월의 가르침 Lessons from a Lifetime · 70
차별 금지 No Judgment · 72
그 분을 기다리며 Waiting for Him · 74

제3부 일상 중에
시카고 클라우드 게이트 Cloud Gate in Chicago · 78
나고야 그 남자 The man from Nagoya · 80
덴버 공항에서 At Denver’s Airport · 82
응시 Gaze · 84
실수한 산타 A Mistaken Santa · 86
안녕, 2024년 Farewell, 2024 · 88
애원 A plea · 90
피스모 비치에서 At Pismo Beach · 92
미끄럼틀 세 여자 Three Women on a Slide · 94
갈대숲 In the Reed Field · 96
도산의 편지 Dosan’s Letter · 98
엄마와 딸 Mother and Daughter · 100
소멸과 각인의 시간 When We Fade, Yet Leave a Trace · 102
중얼중얼 봄 Whispers of Spring · 104
내 나이가 어때서 Why are you bringing up my age · 106

제4부 풍경
비상의 순간 The Moment of Ascent · 110
기우제 Rainmaking Ceremony · 112
노을의 고백 The Sunset’s Confession · 114
당당한 존재감 A Dignified Presence · 116
대자연의 서사 Nature’s Saga · 118
나의 작은 천사 My Little Angel · 120
태고의 입맞춤 The Earth’s breath, finally met · 122
품바 Pumba · 124
하늘곰 Sky Bear · 126
한낮의 합창제 A Midday Chorus · 128
정적의 숲 Forest of Stillness · 130
봄호수 Spring Lake · 132
역사(歷史) 속의 역사(驛舍) History’s Traks · 134
침묵의 성소 The silent sanctuary · 136
새들의 조찬 모임 Breakfast Meeting of the Birds · 138

해설 / 이중언어 환경에서의 삶과 사랑_김종회 · 140

출판사 서평

서약의 순간
축가는 파도 소리, 화환은 조개껍데기
유람선도 하객인 양 돛을 세웠다

축복하라
이 가난한 사랑을
- 「가난한 사랑」

왜 시인은 이 시의 제목으로 ‘가난한 사랑’이란 제목을 붙였을까? 사진의 정경을 보면, 분명 혼인 서약의 자리다. 결혼식에 있어서 주례나 증인 앞에서 결혼을 맹세하고 약속하는 의식이다. 이 서약이 있은 다음 주례의 성혼 선언으로 이어지는 것이 상례이지만, 근자에는 이 오랜 의례를 건너뛰어 소략하게 하거나 그 형식을 다르게 바꾸기도 한다. 이 시에서 서약이 진행되는 곳은 요트들이 한가롭게 정박해 있는 바닷가이고, 증인들 또한 단출하기 이를 데 없다. 가난한 사랑이라 했으니, 분명 시인은 이 서약에 얽힌 아프거나 슬픈 사연을 짐작한다는 상황이다. 이 장면에 공여하자는 축복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독자는 없을 터. 결혼식이 소박하다고 해서 가연(佳緣)의 행복까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둘이지만 한 몸이라 누가 말했나
한세상 티격태격 살아내노라면
아내도 남편도 각각일 때 있더라만
중간에 종종종종 따라 붙는 새끼들
한 몸으로 살아야 할 커다란 이유
- 「부부」

이 세상에 하나님이 직접 세운 기관이 둘 있는데, 하나는 교회요 다른 하나는 가정이라고 한다. 그 가정을 성립시키는 필요충분조건이 곧 부부다. 이를 내외(內外)라는 말로 달리 부르기도 한다. 한국의 민법에는 동거, 부양, 협조, 정조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자, 그런데 여기서 시인이 말하는 부부는 어느 한적한 공원의 오리 가족이다. 부모가 앞뒤에 서서 걷는 길의 중간에 앙증맞은 새끼 세 마리가 동행하고 있다. 시인은 이 흔연한 광경을 두고, ‘아내도 남편도 각각일 때’가 있겠으나 ‘종종종종 따라붙는 새끼들’ 때문에 한 몸으로 살아야 한다고 언명(言明)한다. 사랑에 여러 유형이 있겠지만 이 경우는 언제 어디서나 불가역적(不可逆的)인 만고불변의 관계성이다. 항차 이들에게서만 그러할까. 사람의 세상 또한 매한가지다.

인생 행로의 꿈 또는 그 표정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길, 그 행로는 단순히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발자취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내느냐에 방점이 있다. 그래서 목적지보다 그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인식되고, 그것이 자신의 전인격(全人格)을 형성하는 까닭에 자기성찰의 노력이 수반되는 것이다. 이 시집 2부의 시들은 그러한 관점에 의거한 작품이 많다. 「꿈Ⅱ」는 파도와 수평선과 구름의 형상이 장관을 이룬 해변에서, 한 어린아이의 당찬 기세로 이를 가늠한다. 「그분을 기다리며」는 도로변 어느 쉼터의 의자에 놓인 백팩을 화자로 하여, 그 지점에서의 운명과 앞으로의 길을 견주어 보는 매우 독특한 작품이다.

너의 세월도 이야기해 봐
어디에서 주저앉았는지
어느 골목에서 외로웠는지
나는 이미 고백 했어
자세히 한번 봐봐
- 「고백」

이 시에는 다섯 사람의 장인掌印이 찍혀 있다. 저 눈 덮인 탁상이 놓인 곳은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키스톤이란 소도시의 한적한 산장 앞 베란다다. 이렇게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이유는, 필자가 그 다섯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때아닌 4월의 적설(積雪)이 10개의 수적(手跡) 행위예술을 도왔다. 시인은 이 장면에 ‘고백’이란 제목을 붙이고 화자(話者)인 ‘나’와 청자(聽者)인 ‘너’를 구분하여, ‘너의 세월’을 고백하라고 권유한다. ‘나’는 이미 그 세월을 장인에 담아 고백했다는 것이다. 이때 시인이 말하는 세월이란, 힘들고 외로웠던 날의 기억을 환기하는 것이다. 신박한 한 장의 사진에서 참으로 속 깊은 담화의 층위를 거두어들인 시다.

바람 한 줌, 햇살 한 겹 내려앉은 여린 시간
풍성히 날개 펼친 나비로 피었구나

하늘을 가르는 소리 없는 날갯짓
나, 지금 살아가고 있어
- 「존재의 자각」

이 시의 제목으로 선택된 ‘존재의 자각’은 서구의 철학에서 데카르트와 하이데거가 깊이 있게 탐색했고, 동양의 불교적 전통에서는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의 인식을 통해 집착을 벗어나 해탈로 가는 길목이다. 문학에서는 이 관념이 종종 고독과 각성의 순간으로 표현된다. 인용된 사진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은행나무의 작은 가지와 샛노란 잎이 열리는 장면이다. 왜 어떻게 시인은 여기서 존재의 자각을 보았을까. 우선 시인은 이를 ‘바람 한 줌, 햇살 한 겹 내려앉은 여린 시간’이라고 보고 꽃의 개화를 ‘풍성히 날개 펼친 나비’로 호명했다. 그 날갯짓에 ‘나, 지금 살아가고 있어’라는 해명을 덧붙였다. 인생 행로의 한순간에서 만난 생명의 태동을 강렬하게 제기하는 시다.

세상을 달리 보는 중층적 시각
중층적 시각이란 단일한 관점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층위(Layer)에서 동시에 혹은 교차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나 인식 방식을 뜻한다. 이 개념은 문학 이외에도 철학, 예술,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된다. 특히 문학에 있어서는 그 특성의 하나로 인정되는 애매모호성(Ambiguity)이 이 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 예컨대 황순원의 「소나기」를 단순한 첫사랑의 이야기로 읽는 대신 전후 한국의 현실, 자연과 순수성의 상징, 근대적 감수성의 발현 등 다층적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이 시집 3부의 시들은 그런 점에서 특히 눈에 띤다. 「갈대숲에서」에서 보는 ‘내 청춘’이 그렇고, 「소멸과 각인의 시간」에서 보는 ‘나’와 그림자의 관계성이 그렇다.

거대한 은빛 물방울
익숙한 풍경은 낯선 뒤틀림으로
현실이 굽이치며 초현실로 스며드는

수백의 내가 일렁이는 허공에서
나는 ‘나’를 찾는다
- 「시카고 클라우드 게이트」

사진의 클라우드 게이트(Cloud Gate)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있는 거대한 스테인리스 조각품이며, 인도 출신의 영국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2년에 걸쳐 제작했다. 시카고 중심부 밀레니엄 파크 내 AT&T 플라자에 있다. 콩 모양으로 생겨서 더 빈(The Bean)이란 별칭으로도 부른다. 모든 조각이 입체 반사형으로 되어 있어, 들어서는 사람이나 사물 모두 환상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비친다. 필자도 시카고에 갔을 때 여기를 들렀다. 시인은 이 광경에 대해 ‘현실이 굽이치며 초현실로 스며드는’ 형용이라고 정의했다. 동시에 그 기묘한 허공의 환경에서 ‘나’를 찾는 자신을 내세웠다. 그 복합성의 장관(壯觀)이 결국 ‘나’를 입지점으로 해서 감각되는 까닭에서다.

훌쩍 뛰어와 내 품에 안기는 너
우리 말 알아보고 손 흔드는 내가

너도 반갑지?
- 「덴버 공항에서」


이 시의 중심 주제는 단연 모국어다. 이 어휘는 단순히 ‘어머니의 나라말’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 언어ㆍ정체성ㆍ문화ㆍ사유 방식 등 인간의 정신적 영역 전반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영어로 ‘Mother Tongue’라고 하는 것은 ‘어머니’를 앞세워 가장 가까운 보호자와의 언어 습득 과정을 강조하는 까닭에서다. 모국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한 개인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의 틀에 연동된다. 곧 모국어는 존재를 규정하는 언어적 고향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콜로라도주 덴버 공항에서 ‘환영합니다’란 사인보드(Sign-board)의 글귀를 발견한다. 예기치 않은 감동이다. 그래서 ‘너도 반갑지?’라고 반문한다. 매우 범상한 상식의 순간에 매우 특별한 인식의 범례를 발견한 터이다.

진풍경의 포착과 심경의 개방
예술지상주의의 언사 중에 ‘놀랍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것이 있다. 풍경 가운데 놀라운 것을 ‘진풍경(珍風景)’이라 하는데, 이는 눈앞에 보이는 경치 혹은 어떤 모양새가 매우 드물고 특별하다는 뜻이다. 디카시가 추구하는 수발(秀拔)한 사진의 포착이라는 것은 바로 이 진풍경에 해당하고, 흔하고 일반적인 광경은 애써 소재로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문맥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진풍경이 보기 드문 장면일 뿐만 아니라, 보는 이의 시선이 만들어낸 특별한 현상이라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시 또는 디카시의 범주와 운신의 폭이 확보된다. 4부의 시들 가운데 「당당한 존재감」은 캘리포니아의 랜드마크를 이루는 팬팜 야자수의 발치에 당당히 고개를 들고 선 노랑히비스커스 꽃 한 송이를 세워 두고, ‘나, 불렀소?’라는 사뭇 도전적인 대화법을 시전한다. 그런가 하면 「정적의 숲」에서는 흐리게 가라앉은 소나무 숲의 실루엣에서 ‘깊은 고요’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사라지기 전에
한번
눈부시고 싶었다

그래서 불을 질렀다
- 「노을의 고백」

노을이다. 그것도 유칼립투스와 팜 트리 뒤편에서 엷은 주황빛 색감으로 물들고 있다. 노을은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현상이지만, 우리의 삶과 문화 속에서 여러 의미를 지닌다. 그리하여 하루의 마무리를 말하면서 그 붉고 황홀한 빛은 아름다움과 쓸쓸함을 함께 소환한다. 이에 덧붙여 평화, 순간의 찬란함, 덧없음, 허무, 이별, 그리움 등 복합적인 정서를 한꺼번에 담보한다. 그런데 시인의 언표(言表)는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자의 의표(意表)를 찌른다. 사라지기 전에 한번 눈부시고 싶어서 ‘불을 질렀다’는 것이 아닌가. 노을의 상징적 의미에 시적 화자의 주체적 결의가 무슨 선언처럼 들리는 어투다.

마침내 닿은 지구의 숨결

한 걸음 다잡는데
수없는 바람 흔들렸고
입술이 닿기까지
수천만 년 필요했다
- 「태고의 입맞춤」

앤텔롭 캐년이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자연 동굴이며, 사암과 빗물과 햇빛의 조화로 기상천외한 절경을 연출하는 곳이다. 이 놀라운 경관이 형성되고 또 사람들의 발길이 닿기까지 천고의 세월을 지나왔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감격스러운 바는 이 동굴의 현장에서 시인과 일행이 되어 함께 탐색하고 함께 촬영을 했던 필자의 기억이다. 천장으로부터 스며든 빛으로 인하여 연접해 있는 두 벽면의 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