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왜지금옛광고를다시읽어야하는가.1990년대는‘모든현재의시작’이며,오늘우리의욕망을부추기는문법대부분이바로그시절에설계되었기때문이다.스마트폰과알고리즘그리고AI가일상을재편하는오늘날에도자본의신화메커니즘은형태를바꾸며여전히작동하고있다.다만더깊이숨고,더정교해지고,더분산되는방향으로진화했을뿐이다.소비가일상이된시대에브랜드의유혹에서온전히자유로운사람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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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대한민국광고대상’1회부터10회(1994~2003년)수상작중대표적인광고물들에주목한다.이상은당시우리나라최고권위의광고상으로평가받았으며,수상작이발표될때마다거의전일간신문에보도되는등국민적관심을끌었다.이수상작들은대체로제품위주의광고가아니라,보편적이고공익적인가치를강조하는이미지위주의광고들이었다.한국인이면누구나고개를끄덕일만한보편적이고공익적인주제를표현해사회적으로높은공감대를형성했다.따라서이광고물들은마케팅효과와는무관하게당시대중이무엇에열광하고무엇에위로받았는지를보여주는증거가된다.
---p.32
프롤로그에서살펴보았듯,광고는대립하는두가치를통해갈등을조성한다음브랜드를그갈등의해결자로내세우는신화의문법으로작동한다.박카스광고에서그두가치는선명하다.‘안보여도군대가겠다’라는청년의의지는제도를어기면서까지실현하고싶은인간적인가치다.반면‘안보이면군대못간다’라는규칙은개인의희망과무관하게작동하는제도적인가치다.이두가치의충돌이이광고가조성하는갈등의본질이다.
---p.39
오리온초코파이‘정’시리즈광고가공전의히트로이어진데는이유가있다.장기1990년대한국사회는극한의경쟁과효율의논리가일상전체를잠식해가던시기였다.직장에서의생존,입시전쟁,외환위기이후의구조조정.모든인간관계가도구화되어가는시대에‘정’이라는단어는잃어버린인간성에대한집단적향수를자극했다.그러나이광고속초코파이가판매한정은사실제도가허용한정이었다.군복안쪽주머니에숨길수있을만큼작고,아무도보지않는순간에만꺼낼수있을만큼조용하며,삼키고나면다시굳은표정으로경계를설수있을만큼일시적인정.자본은바로그크기의정을팔았다.
---p.56
이광고의심층에는‘새로운것대오래된것’의대립이작동한다.그런데이광고에서새로운것과오래된것의대립은단순히디지털대아날로그의정면충돌이아니다.불용성에대한유용성,고정성에대한이동성,크고무거운것에대한작고가벼운것,고정된상식에대한발전한기술의대립이서류가방이폴더폰으로변신하는그짧은순간안에압축적으로담긴다.크고무거운서류가방은오래된것의기호다.아날로그시대의권위와성공을상징하지만,그것은동시에무겁고시대에뒤떨어진것이기도하다.반면작고가벼운폴더폰은새로운것의기호다.서류대신정보를,고정된공간대신이동성을,묵직한권위대신민첩한유용성을상징한다.
---p.90
이10편의광고들이공유하는하나의문법이있다.새로운것은오래된것을일방적으로파괴하지않는다는것이다.자유를추구하는청년은사장과악수하고,디지털은재래시장할머니의웃음을빌려오며,작은마티즈는어미코끼리의등뒤에숨고,유턴하는새는언제나자본의공간앞에서방향을바꾼다.새로운것의가치는오래된것의가치를품에안으면서등장한다.그래야만대중이변화를두려워하지않고받아들이기때문이다.
---p.120
광고는극도로절제되어있다.어두운배경,두손그리고오렌지.화면을가득채운것은복잡한서사가아니라단순한행위의연속이다.두손이썬키스트로고가새겨진오렌지를깐다.그러고는오렌지를반으로가른다.곧이어믹서기가작동되는데,갑자기주스병으로바뀐다.아이가컵에담긴주스를맛있게마신다.다섯개의샷,그게전부다.그런데이단순한담화안에이광고의모든것이숨어있다.이광고를분석하는핵심과제는화면에드러나지않은것,곧보이지않는대립쌍을찾아내는데있다.
---p.139
이광고가방영된2003년,한국의도시에서별자리를맨눈으로볼수있는밤하늘은빛공해로점점사라져가고있었다.역설적으로KT의통신인프라가확장될수록,우리가올려다볼수있는별의수는줄어들었다.자연의섭리를계승한다고선언한기술이사실은그섭리를밀어내고있었던것이다.인류가수천년동안올려다보던그하늘의자리에이제KT의위성이떠있다.별은여전히거기있지만,우리가보지못할뿐이다.그리고그사실을가장잘아는것은우리에게별자리대신위성을팔았던자본일것이다.
---p.158
장기1990년대한국사회가겪었던가치갈등,곧인간적인것과제도적인것의충돌,새로운것과오래된것의긴장,자연적인것과인공적인것의대립은광고라는거울을통해고스란히투사되었다.그런데광고는수동적인거울이아니었다.사회적갈등을자신의내부로끌어들여재구성하는능동적인담론의현장이었다.골드만의상동구조개념을적용하면,이책에서분석한33편의광고가왜하필그시대에그형식으로등장했는지가설명된다.성수대교가무너지고삼풍백화점이주저앉던시대에영창피아노는제도의폭력앞에서도인간의음악이살아남는다는환상을심어주었고,외환위기의충격이개인의삶을뒤흔들던시대에마티즈는작아도강하다는위안의서사를제공했으며,환경파괴에대한불안이처음으로대중의언어가되던시대에KT는첨단기술이자연의원시적섭리를계승한다는희망을펼쳤다.사회의균열이깊어질수록브랜드의신화적중재는더욱화려하고정교해졌다.
---p.175
브랜드라는신은여전히우리곁에서매혹적인미소를보내고있다.이제화려한신화의옷을벗고알고리즘과데이터라는투명한얼굴로다가와우리를자신의시스템안으로포섭한다.형태가달라졌을뿐모순을소비로봉합하라는자본의명령은여전히유효하다.신은사라지지않았다.다만더정교하게변장했을뿐이다.
30년전나의광고비평은‘그냥’이라는폭력이시작되고미디어가자본의권력앞에굴복하면서멈춰섰다.그러나비평은그신이멈춰선자리에서다시시작되어야한다.브랜드가설계한화려한환상을걷어내고,우리삶의비릿한실재와마주할때비로소우리는진정한주체로설수있다.
---p.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