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신이 되다 (광고로 읽는 한국 사회 욕망의 지형도)

브랜드, 신이 되다 (광고로 읽는 한국 사회 욕망의 지형도)

$18.73
Description
대한민국광고대상 수상작 33편을 되짚으며
1990년대 자본이 설계한 욕망의 문법을 들여다보다
광고는 단순히 상품을 알리는 상업적 메시지가 아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욕망하고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어떤 가치 사이에서 갈등했는지를 예민하게 포착한 시대의 텍스트다. 상품을 팔기 위해 대중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야 했던 광고에는 정치나 학술의 언어가 미처 포착하지 못한 당대의 욕망과 불안이 고스란히 스며 있기 마련이다.
이 책은 1990년대 영상광고에 주목한다. 1990년대는 민주화의 열망이 소비의 욕망으로 옮겨가고, 모든 것이 상품화되어 가치마저 이미지로 치환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여기에 세대 갈등과 기술 문명의 충격, 1997년 외환위기까지 겹치면서 한국 사회는 거대한 전환의 소용돌이에 들어섰다. 지은이는 바로 이 시기를 오늘날 우리 삶을 지배하는 자본의 논리와 소비의 문법이 하나의 질서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결정적 출발점으로 본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이 일상을 재편하고 있는 오늘의 뿌리에 1990년대가 놓인 것이다. 지금은 영상광고의 무대가 텔레비전에서 유튜브와 소셜미디어 같은 각종 플랫폼으로 옮겨갔지만, 자본이 대중의 욕망을 포착하고 이미지와 기호를 통해 소비로 이끄는 핵심 문법은 형태를 바꾸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인플루언서의 언어와 소셜미디어의 피드, 팝업스토어의 공간 연출은 그 문법이 오늘의 환경에 맞게 진화한 풍경들이다. 그렇기에 1990년대 광고를 다시 읽는 일은 오늘 우리의 욕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1990년대 광고 현장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 광고 평론가로도 활동했던 지은이는 광고를 만드는 사람의 내부 시선과 그것을 비판적으로 해독하는 연구자의 시선을 함께 지닌 채, 1994년부터 2003년까지 대한민국광고대상 수상작 33편을 분석한다. 박카스, 영창피아노, 초코파이, TTL, 애니콜 폴더, 레간자, 마티즈, 삼성생명, 스피드011, 아남TV, KT…. 한 시대를 풍미했던 광고들을 지은이는 루시앙 골드만의 ‘상동구조’와 레비스트로스의 ‘이항대립’ ‘매개항’이라는 구조주의적 시선으로 다시 읽는다. 익숙한 광고의 표면을 걷어내고 그 안에서 시대의 갈등이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고, 브랜드가 그 갈등 속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를 추적하는 것이다.
이 책의 분석은 한 가지 명제로 수렴한다. ‘광고는 현대의 신화이고 브랜드는 그 신화의 영웅이자 신’이라는 것이다. 광고는 사회의 모순을 정면으로 해결하지 않는다. 대신 대립하는 두 가치를 한 화면 안에서 충돌시킨 뒤 브랜드를 매개항으로 등장시켜 갈등이 해결된 듯한 감각을 제공한다. 박카스는 인간적인 것과 제도적인 것 사이를, TTL은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 사이를, 스피드011은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 사이를 잇는다. 그러나 그 해결의 마지막 통로는 언제나 소비로 이어진다. 문제를 바꾸기보다 문제와 함께 살아가게 만드는 ‘가상적 해결’이야말로 브랜드가 신의 지위를 얻는 방식이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사회적 모순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를 통해 잠시 봉합되고, 대중은 그 봉합을 감동과 위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상품의 이름에 불과했던 브랜드는 어느 순간 갈등의 해결자이자 숭배의 대상인 ‘신’이 된다.
이 책은 33편의 광고를 따라가며 1990년대 한국 사회가 품었던 욕망의 지형도를 그려낸다. 한때 아무 의심 없이 웃고 울었던 광고를 낯설게 다시 바라보면, 그 화려한 이미지 뒤에 감춰져 있던 자본의 언어와 대중의 욕망이 모습을 드러낸다. 각 소주제 아래의 QR코드를 통해 당시의 영상광고를 직접 확인할 수 있어, 독자는 글과 영상을 오가며 그 시대의 욕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소비되었는지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선은 자연스럽게 오늘의 우리에게 돌아온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욕망인가.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는 것들은 얼마나 온전히 우리의 선택인가. 이 책은 오래된 광고를 해독하는 일을 통해 지금도 우리 곁에서 모습을 바꾸며 작동하는 ‘숨은 신’의 존재를 발견하게 한다. 1990년대 광고를 읽는 것은 결국 AI시대 우리를 움직이는 자본의 문법을 읽고, 그 안에서 자신의 욕망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다.
저자

엄창호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는 자유인. 대학에서 경제학과 문학비평을 공부한 뒤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 광고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그 시절 매체에 발표한 글을 모아 광고 평론집 《광고는 덫이다》와 실무 경험을 정리한 《광고의 레토릭》을 냈다. 광고 기호학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정부 산하기관에 근무하며 특수대학원의 겸임교수로 기호학과 소비문화 비판을 강의했다. 이 시기에 《마케팅 기호학》 《소비자본주의를 넘어서》 등을 번역했다.
자유인이 된 뒤에는 근현대의 이념을 탐구해 왔다. 근현대 이념이 특정 세력의 이익에 복무했다는 생각을 담아 《우리를 배반한 근대》를 썼고, 그것이 베이비붐세대의 삶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를 추적해 《베이비부머, 네 겹의 시간을 걷다》를 냈다. 그 연장선상에서 ‘자본주의의 공식 예술’인 광고를 해부해 《브랜드, 신이 되다》에 이르렀다. 광고는 신화이고 브랜드는 신이라는 문제의식 아래 자본의 문법과 대중의 욕망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본 책이다.

목차

책 머리에
프롤로그

1장 인간의 얼굴을 한 제도: 브랜드는 어떻게 감동을 팔았나
박카스-신체검사장의 거짓말과 성실이라는 마취제
영창피아노-포성 속에 울리는 쇼팽, 그 비현실적인 서정의 기만
다시다 손북어국-정성이라는 허울 뒤에 숨은 도구적 가족주의
오리온 초코파이-시베리아의 밤, ‘정’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복종
다음-철조망을 넘은 것은 개구리뿐이었다
삼성생명-아빠의 약속에 가격표가 붙는 순간
갈등의 지형도

2장 새로운 것의 습격: X세대는 정말 자유로웠을까
TTL-신비주의로 포장한 비즈니스적 딜레마
KTF-반란의 언어로 위장된 순응
애니콜 폴더-크기를 접은 자리에 펼쳐진 새로운 구속
LG전자-친숙한 언어로 침투한 낯선 지배자
레간자-상식을 침묵시킨 기술의 오만
마티즈-가짜 상대를 이겨서 진짜 위협을 감추다
신세계백화점-유턴의 자유라는 착각
LG텔레콤-딸이 건넨 사랑, 브랜드가 가로챈 이미지
갈등의 지형도

3장 자본의 생태학: 기술, 자연의 얼굴을 빌려오다
스피드011-기술이 허락하는 고요, 브랜드가 관장하는 자연
아남TV-신기술로 봉합되는 탈자연의 불안
훼미리주스-손으로 까는 오렌지, 천연성이라는 이름의 가상
LG아트비전-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그 정교한 함정
대구은행-죽어가는 강을 팔아 살린 이미지의 신탁
KT-우주의 언어를 훔친 자본의 가장 웅장한 거짓말
갈등의 지형도

4장 브랜드, 신이 되다: 신화는 어떻게 모순을 삼키는가
세 전장, 하나의 문법
골드만의 상동구조-사회의 균열이 광고로 흘러드는 방식
가상적 해결의 보수성-자본은 문제의 해결 대신 문제의 지속을 원한다
브랜드, 신이 되다-숨은 신과의 조우

에필로그/보론/후기/추천의 글/주/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왜지금옛광고를다시읽어야하는가.1990년대는‘모든현재의시작’이며,오늘우리의욕망을부추기는문법대부분이바로그시절에설계되었기때문이다.스마트폰과알고리즘그리고AI가일상을재편하는오늘날에도자본의신화메커니즘은형태를바꾸며여전히작동하고있다.다만더깊이숨고,더정교해지고,더분산되는방향으로진화했을뿐이다.소비가일상이된시대에브랜드의유혹에서온전히자유로운사람은없다.
---p.10

이책은‘대한민국광고대상’1회부터10회(1994~2003년)수상작중대표적인광고물들에주목한다.이상은당시우리나라최고권위의광고상으로평가받았으며,수상작이발표될때마다거의전일간신문에보도되는등국민적관심을끌었다.이수상작들은대체로제품위주의광고가아니라,보편적이고공익적인가치를강조하는이미지위주의광고들이었다.한국인이면누구나고개를끄덕일만한보편적이고공익적인주제를표현해사회적으로높은공감대를형성했다.따라서이광고물들은마케팅효과와는무관하게당시대중이무엇에열광하고무엇에위로받았는지를보여주는증거가된다.
---p.32

프롤로그에서살펴보았듯,광고는대립하는두가치를통해갈등을조성한다음브랜드를그갈등의해결자로내세우는신화의문법으로작동한다.박카스광고에서그두가치는선명하다.‘안보여도군대가겠다’라는청년의의지는제도를어기면서까지실현하고싶은인간적인가치다.반면‘안보이면군대못간다’라는규칙은개인의희망과무관하게작동하는제도적인가치다.이두가치의충돌이이광고가조성하는갈등의본질이다.
---p.39

오리온초코파이‘정’시리즈광고가공전의히트로이어진데는이유가있다.장기1990년대한국사회는극한의경쟁과효율의논리가일상전체를잠식해가던시기였다.직장에서의생존,입시전쟁,외환위기이후의구조조정.모든인간관계가도구화되어가는시대에‘정’이라는단어는잃어버린인간성에대한집단적향수를자극했다.그러나이광고속초코파이가판매한정은사실제도가허용한정이었다.군복안쪽주머니에숨길수있을만큼작고,아무도보지않는순간에만꺼낼수있을만큼조용하며,삼키고나면다시굳은표정으로경계를설수있을만큼일시적인정.자본은바로그크기의정을팔았다.
---p.56

이광고의심층에는‘새로운것대오래된것’의대립이작동한다.그런데이광고에서새로운것과오래된것의대립은단순히디지털대아날로그의정면충돌이아니다.불용성에대한유용성,고정성에대한이동성,크고무거운것에대한작고가벼운것,고정된상식에대한발전한기술의대립이서류가방이폴더폰으로변신하는그짧은순간안에압축적으로담긴다.크고무거운서류가방은오래된것의기호다.아날로그시대의권위와성공을상징하지만,그것은동시에무겁고시대에뒤떨어진것이기도하다.반면작고가벼운폴더폰은새로운것의기호다.서류대신정보를,고정된공간대신이동성을,묵직한권위대신민첩한유용성을상징한다.
---p.90

이10편의광고들이공유하는하나의문법이있다.새로운것은오래된것을일방적으로파괴하지않는다는것이다.자유를추구하는청년은사장과악수하고,디지털은재래시장할머니의웃음을빌려오며,작은마티즈는어미코끼리의등뒤에숨고,유턴하는새는언제나자본의공간앞에서방향을바꾼다.새로운것의가치는오래된것의가치를품에안으면서등장한다.그래야만대중이변화를두려워하지않고받아들이기때문이다.
---p.120

광고는극도로절제되어있다.어두운배경,두손그리고오렌지.화면을가득채운것은복잡한서사가아니라단순한행위의연속이다.두손이썬키스트로고가새겨진오렌지를깐다.그러고는오렌지를반으로가른다.곧이어믹서기가작동되는데,갑자기주스병으로바뀐다.아이가컵에담긴주스를맛있게마신다.다섯개의샷,그게전부다.그런데이단순한담화안에이광고의모든것이숨어있다.이광고를분석하는핵심과제는화면에드러나지않은것,곧보이지않는대립쌍을찾아내는데있다.
---p.139

이광고가방영된2003년,한국의도시에서별자리를맨눈으로볼수있는밤하늘은빛공해로점점사라져가고있었다.역설적으로KT의통신인프라가확장될수록,우리가올려다볼수있는별의수는줄어들었다.자연의섭리를계승한다고선언한기술이사실은그섭리를밀어내고있었던것이다.인류가수천년동안올려다보던그하늘의자리에이제KT의위성이떠있다.별은여전히거기있지만,우리가보지못할뿐이다.그리고그사실을가장잘아는것은우리에게별자리대신위성을팔았던자본일것이다.
---p.158

장기1990년대한국사회가겪었던가치갈등,곧인간적인것과제도적인것의충돌,새로운것과오래된것의긴장,자연적인것과인공적인것의대립은광고라는거울을통해고스란히투사되었다.그런데광고는수동적인거울이아니었다.사회적갈등을자신의내부로끌어들여재구성하는능동적인담론의현장이었다.골드만의상동구조개념을적용하면,이책에서분석한33편의광고가왜하필그시대에그형식으로등장했는지가설명된다.성수대교가무너지고삼풍백화점이주저앉던시대에영창피아노는제도의폭력앞에서도인간의음악이살아남는다는환상을심어주었고,외환위기의충격이개인의삶을뒤흔들던시대에마티즈는작아도강하다는위안의서사를제공했으며,환경파괴에대한불안이처음으로대중의언어가되던시대에KT는첨단기술이자연의원시적섭리를계승한다는희망을펼쳤다.사회의균열이깊어질수록브랜드의신화적중재는더욱화려하고정교해졌다.
---p.175

브랜드라는신은여전히우리곁에서매혹적인미소를보내고있다.이제화려한신화의옷을벗고알고리즘과데이터라는투명한얼굴로다가와우리를자신의시스템안으로포섭한다.형태가달라졌을뿐모순을소비로봉합하라는자본의명령은여전히유효하다.신은사라지지않았다.다만더정교하게변장했을뿐이다.
30년전나의광고비평은‘그냥’이라는폭력이시작되고미디어가자본의권력앞에굴복하면서멈춰섰다.그러나비평은그신이멈춰선자리에서다시시작되어야한다.브랜드가설계한화려한환상을걷어내고,우리삶의비릿한실재와마주할때비로소우리는진정한주체로설수있다.
---p.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