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기억, 냄새 (문학으로 본 후각의 문화사 | 반양장)

찰나의 기억, 냄새 (문학으로 본 후각의 문화사 | 반양장)

$26.00
Description
‘이야기만이 냄새를 설명할 수 있다’
근대 문학에서 찾아낸 후각 언어들의 향연

냄새에 관한 기억은 마음을 동반한다. 설렘, 황홀, 소중함, 그리움, 당황, 고통, 공포,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간질간질한 것. 이러한 냄새에 관한 경험은 좀처럼 수치화되거나 공식으로 환원되지 못한다. 공기 중으로 퍼지는 냄새와 만나는 일은 순간의 경험이며, 사진도 영상도 그 경험을 담아낼 수 없다. 그래서 아직 후각 경험의 의미에 관한 온전한 기록은 가장 아날로그적인 방법에 의존한다. 오직 언어로만 전달된다는 뜻이다.
인류 문명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 매체인 ‘문자’만이 찰나의 감각과 그것이 불러일으킨 맥락을 기록해 왔다. 그런데 사실 대부분의 언어권에서는 ‘달다, 쓰다, 맵다, 짜다, 시다’와 같은 기본 미각어와 같은 기본 후각어조차 정리되어 있지 않다. 한국어도 마찬가지로, 오롯이 후각 의미를 지시하는 기본 후각어로 ‘구리다, 누리다, 비리다, 구수하다, 고소하다’ 등이 언급되는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는 후각 경험을 이야기할 때 단도직입적으로 냄새의 진원지가 되는 사물을 지시하거나, 다른 감각 어휘를 빌려 오거나, 여러 비유를 동원하여 설명한다. 후각 언어는 ‘냄새 대상-냄새 특성-냄새 이름’이 흥미로운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후각 언어는 그 지시 대상을 특정한 의미나 이미지와 결부하는 개념화 과정을 만들어 낸다. 향미가 그득한 와인이나 커피를 설명할 때조차 정작 향 그 자체를 지시하는 명료한 단어를 찾지 못하여, 혹은 한 단어로는 담아낼 수 없는 풍부함을 전달하기 위하여, 다양한 관형사·명사·형용사를 동원해 기나긴 구문을 생성해 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와인의 맛과 향을 매혹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소믈리에는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를 동원한다. 미각과 긴밀히 연관된 후각 경험을 재현할 때는 늘 서사에 의존해 왔다.


문자로 기록된
사라진 냄새, 낯선 냄새, 익숙해진 냄새 이야기

‘글’은 ‘인간에게 후각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유일한 아카이브다. 지난 7년간 틈틈이 사라진 냄새, 낯선 냄새, 익숙해진 냄새의 기원과 흔적을 찾았다. 이를 통해 근대화 과정에서 시간, 공간, 존재 사이를 연결하거나 단절하며 시각성을 보완 혹은 전복하는 역할을 해 온 후각의 의미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근대 문학과 언론 매체는 관련한 여러 대목을 발견할 수 있는 보고(寶庫)였다. 근대화라는 변화의 냄새를 감지하는 흥미로운 장면들은 소설·시·수필에서도, 일간지의 기사와 광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에선 변화의 도입부였던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의 기록을 주로 보되, 해방 후 도시화가 가속화된 시기와 감수성의 변화가 급격히 일어난 최근의 SF 장르도 일부 다루었다. 냄새는 실제 경험이나 수사적 의미로 등장하기도 했지만, 좀처럼 분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그것이 냄새의 본질이기도 하여 이들을 아울러 살펴보았다. 냄새와 이야기는 현재를 ‘과거와 미래’ 사이로, 우리를 ‘존재와 부재’ 사이로 연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상상력을 매개하는 ‘이야기’는 존재의 흔적인 냄새와 그렇게 연결된다.
또한 이 책에선 ‘향기’와 ‘악취’ 대신 ‘냄새’라는 중립적 단어를 선택하여, 우리 삶의 각 대목에서 그것이 지닌 복합적인 성격을 포괄적으로 담아내고자 했다. 냄새는 과거와 현재, 공간과 사람, 이곳과 저곳, 사물과 우리, 나와 너를 매개한다. 냄새는 이들이 구체적 관계와 맥락 속에서 기억될 수 있게 한다. 근대화 과정에서 기록된 후각적 언어들은 근대화의 속도나 방향성, 그 위용과 폭력성을 드러내는 데 적합했던 시각적 언어들과는 다른 후경을 제공했다. 후각적 언어는 보이는 것과 다르거나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말없이 가리키는 수줍은 제보자이기도 했다.
저자

김성연

저자:김성연
연세대학교미래캠퍼스국어국문학과교수.세계를담고펼치는언어의힘에매혹되어,오래된책냄새에사로잡혀,시공간을넘나드는생명력을가진텍스트들의본질과흔적을추적해왔다.윤동주기념관건립과운영을담당하며문학이다른미디어와감각으로전환되는현장으로도관심이확장되었다.아주오래된것과가장새로운것,아름다운질서와전례없는도전이만나는순간을즐긴다.지은책으로는《서사의요철》,《영웅에서위인으로》,《한국근현대번역문학사론》(공저),《동아시아역사와자기서사의정치학》(공저),《한국의근대성과기독교의문화정치》(공저),《서울,문학의도시를걷다》(공저)등이있다.

목차


prologue

1문명의접촉지대:타자만이냄새를맡는다
헬렌켈러의선물,조선의후경(嗅景,smellscape)
조선의봄내음,제비꽃
악취:공존과불안의감각
“냄새문제는전적으로교육에달려있다!”
종교와위생의냄새:유향과몰약에서물과비누로

2향수,근대적취향의형성
근대의척도,개성의지표
불란서향수의권좌
신체의확장,손수건과손편지에뿌려진향수
타락과방종의징표,‘자유부인’의베드퍼퓸

3작가의코
이효석,향기수집가
고향내음새를채집한시인,백석
모던보이이상의얄궂은코
근엄한도덕군자의탈취와자취증이라는부작용
K박사는과연‘똥내’를제거할수있는가?
식민지조선을횡단하는염상섭의코

4도시의냄새
서울냄새,고향냄새,선을넘는냄새들
1960년,첫사랑의비누냄새
어머니,냄새로남다

5미래의냄새:SF가예견한감각의변화
“오도로포닉스(odorophonics)”의시대가임박했다
그대,다른감각의존재를만날준비가되었는가
‘냄새’가사라진다면?

epilogue

감사의말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문자로기록된
사라진냄새,낯선냄새,익숙해진냄새이야기

‘글’은‘인간에게후각이무엇인지’를보여주는유일한아카이브다.지난7년간틈틈이사라진냄새,낯선냄새,익숙해진냄새의기원과흔적을찾았다.이를통해근대화과정에서시간,공간,존재사이를연결하거나단절하며시각성을보완혹은전복하는역할을해온후각의의미를이야기하고자했다.근대문학과언론매체는관련한여러대목을발견할수있는보고(寶庫)였다.근대화라는변화의냄새를감지하는흥미로운장면들은소설·시·수필에서도,일간지의기사와광고에서도찾아볼수있다.

이책에선변화의도입부였던19세기후반부터20세기전반의기록을주로보되,해방후도시화가가속화된시기와감수성의변화가급격히일어난최근의SF장르도일부다루었다.냄새는실제경험이나수사적의미로등장하기도했지만,좀처럼분리되지않는경우가많았고,그것이냄새의본질이기도하여이들을아울러살펴보았다.냄새와이야기는현재를‘과거와미래’사이로,우리를‘존재와부재’사이로연결한다는공통점이있다.과거의기억과미래의상상력을매개하는‘이야기’는존재의흔적인냄새와그렇게연결된다.

또한이책에선‘향기’와‘악취’대신‘냄새’라는중립적단어를선택하여,우리삶의각대목에서그것이지닌복합적인성격을포괄적으로담아내고자했다.냄새는과거와현재,공간과사람,이곳과저곳,사물과우리,나와너를매개한다.냄새는이들이구체적관계와맥락속에서기억될수있게한다.근대화과정에서기록된후각적언어들은근대화의속도나방향성,그위용과폭력성을드러내는데적합했던시각적언어들과는다른후경을제공했다.후각적언어는보이는것과다르거나혹은눈에보이지않는진실을말없이가리키는수줍은제보자이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