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세트 (전 3권)

열하일기 세트 (전 3권)

$105.00
Description
『열하일기』의 원형을 재현한 완역 ‘개정2판’ 『열하일기』
돌베개가 2009년에 출간한 완역본 『열하일기』(김혈조 옮김, 돌베개, 2009)는 ‘박영철본’을 저본으로 번역한 책이고, 8년 뒤에 출간한 개정신판 『열하일기』(김혈조 옮김, 돌베개, 2017)는 연민 이가원 선생이 기증한 친필초고 및 대표 이본 몇 가지를 교감하여 번역하고 수정한 책이다. 이번에 출간한 개정2판 『열하일기』는 친필초고 및 대표 이본 30종을 교감한 『정본 열하일기』(돌베개, 2025)를 저본으로 하여 새롭게 번역한 책이다. 개정2판이야말로 후인이 각색하지 않은, 연암이 처음 쓴 그대로의 『열하일기』를 최대한 재현하였다.
저자

박지원

저자:박지원(1737~1805)
조선후기의저명한문학가이고실학파학자로,자는중미(仲美),호는연암(燕巖)이다.명문가출신으로약관의나이에문명을떨치고장래나라의문운(文運)을잡을인물로촉망을받았다.그러나타락
한정치현실과속물적인사회풍기를혐오하여과거시험을통한출세를진작포기하고,창조적글쓰기와학문에몰두하였다.재야의지식인으로서당파와신분을초월하여인간관계를형성하였으며,특히선비곧지식인의자세와역할에대해일생동안깊이고민하고성찰하였다.그의산문은중세적사유의식을떨쳐버리는참신한작품이대부분으로,그를민족문학사의최고의경지에끌어올렸다.특히44세(1780년)에중국을여행하고지은『열하일기』는당시문단에큰영향력을끼쳤을뿐아니라,민족과세계의고전에값하는기념비적저술이되었다.50세에음직으로벼슬에나아가이후안의현감,면천군수,양양부사등을역임하며,주체적벼슬아치혹은부모같은목민관으로서의훌륭한치적을남겼다.문집『연암집』을남겼는바,주옥같은시와산문,『열하일기』,『과농소초』등크게세부분으로구성되어있다.

역자:김혈조
1954년경북에서출생하였다.성균관대한문교육과를졸업하고대학원한문학과에서『연암체의성립과정조의문체반정』과『연암박지원의사유양식과산문문학』으로각각석사와박사학위를받았다.1982년이래로영남대한문교육과에재직하며한국한문학의산문문학에관심을두고,연암의산문문학을집중적으로탐구하여관련논문을다수발표하였다.2019년대학에서정년퇴직한이래,‘연암문학연구원’이라는작은공간을열고연암문학을계속공부하고있다.특히『열하일기』의각종이본을대조하며원문정본화작업을진행하였다.저서『박지원의산문문학』,역서『그렇다면도로눈을감고가시오』,『열하일기』등연암관련도서를출판하였다.현재는연암시문집정본화작업을진행하고있다.

목차

1권차례
머리말/「열하일기서」熱河日記序
압록강을건너며/도강록渡江錄
심양의이모저모/성경잡지盛京雜識
역참을지나며쓴수필일신수필馹迅隨筆
산해관에서북경까지의이야기/관내정사關內程史
북경에서북으로열하를향해/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2권차례
태학관에머물며/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북경으로되돌아가는이야기/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
열하에서만난친구들/경개록傾蓋錄
라마교에대한문답/황교문답黃敎問答
반선의내력/반선시말班禪始末
반선을만나다/찰십륜포札什倫布
사행과관련된문건들/행재잡록行在雜錄
천하의대세를살피다/심세편審勢編
양고기맛을잊게한음악이야기/망양록忘羊錄
곡정과나눈필담/곡정필담鵠汀筆談
피서산장에서의기행문들/산장잡기山莊雜記

3권차례
요술놀이이야기/환희기幻戱記
피서산장에서쓴시화/피서록避暑錄
피서산장에서쓴시화보충/피서록보유避暑錄補遺
장성밖에서들은신기한이야기/구외이문口外異聞
옥갑에서의밤이야기/옥갑야화玉匣夜話
북경의이곳저곳/황도기략黃圖紀略
공자사당을참배하고/알성퇴술謁聖退述
적바림모음/앙엽기
동란재에서쓰다/동란섭필銅蘭涉筆
의약처방기록/금료소초金蓼小抄
양매죽사가에서쓴시화/양매시화楊梅詩話
청나라인사들이보낸편지/천애결린집天涯結隣集

출판사 서평

조선의블랙리스트!연암박지원과『열하일기』

조선시대를통틀어최고의작품을고른다면단연손에꼽을정도로,『열하일기』는조선최고의문학작품이다.조선의대문호라불리는연암박지원(1737∼1805)의명성도『열하일기』로인해더욱높아졌다.주지하다시피『열하일기』는연암박지원의중국기행문이다.그는1780년청나라건륭황제의70회생일을축하하는사절단에끼어중국을다녀왔다.공적인소임이없어자유롭게여행할수있었던연암은북경여행과함께전인미답의열하지방을체험하였다.

1780년(연암44세)10월말,연암박지원은중국여행을마치고귀국하는즉시『열하일기』집필에전념했다.집필이끝나기도전에초고의일부가주변의지인들에의해전사(傳寫)되었고,급기야한양에일파만파로퍼져나갔다.‘연암체’(燕巖體)라는새로운글쓰기문체가생겨날정도로,『열하일기』는당시독서계와문인지식층에큰영향력을발휘했다.

그러나『열하일기』는당시문단에서받아들여지지못했다.새로운글쓰기시도에환호하는이들도있었지만,대부분의사람들은청나라연호를썼다하여노호지고(虜號之稿)라고비방하였다.문체반정(文體反正)을추진하던국왕정조(正祖)까지이작품을주목하고문제시했던것은유명한일화에속한다.시대착오적인반청(反淸)사상을풍자하고조선을낙후시킨양반사대부의책임을추궁하는등현실비판적인내용과신랄한표현이담긴이책은연암당대는물론이고조선조내내받아들여질수없었다.그때문에연암당대는물론이고손자박규수가우의정으로있던조선말기에도,그리고서적의출판과보급이비교적활황을보였던근대초기에이르기까지도공간(公刊)되지못하고오직필사로만유통되었다.

불온함,원형그대로의파격
국왕정조가당대조선의문체의문란함은모두연암박지원에게서비롯되었다고지목할정도로,연암의『열하일기』는선풍적인인기를구가하였다.하지만여전히책으로간행되지못했고,필사본으로만전파되었다.여러필사본을비교해보면필사과정에서삭제되거나내용이추가된경우,순서를바꾼경우등다양한사례를확인할수있다.당대인및후대인이『열하일기』를윤색하는과정에서『열하일기』는고유한개성과참신성을잃고말았다.이번개정2판은연암이쓴친필초고본과대표적인이본30종을비교해,최대한분식을걷어내고원형그대로의파격을보여준다.

당대인및후인의개작의예
1)초고본은날짜를표기할때‘건륭’이라는청나라연호를사용하여,오랑캐연호를쓴책이라는뜻의‘노호지고’(虜號之稿)라고폄하되었다.이를의식해서인지,이후의필사본들은이연호를삭제하고명나라를‘황명’(皇明)‘유명’(有明)으로표현함으로써숭명반청(崇明反淸)의식을노골적으로드러냈다.당시숭명반청의식이하나의국시로통용되어민족의건전한이성을마비시키던상황을감안하면,국호에대한표현은일종의사상검증수단이된다는점에서대단히예민한문제였다.

2)연암은우리의일상어,속담등우리말을한자화하여과감하게한문문장에섞어서사용하였다.술이달린모자인상모를‘象毛’(상모)로음차해서표현하고,물건을파는상점을‘假家’(가게)로표현한것등이그러한예이다.하지만당대의문인들은이를한문의품격을떨어트리는것으로인식하고,정통한문표현으로바로잡아야된다고생각했다.그리하여‘상모’와‘가가’를‘모모’(?毛)와‘항사’(巷肆)등의중국고문식의표현으로바꾸었다.

3)천주교에대한부분도많은개작이이루어졌다.이부분은후대의필사자들이개작한경우도있지만어쩌면연암스스로자기검열을했을가능성도있다.1801년신유사옥으로천주교도에대한대대적인탄압과처벌이있었던바,『열하일기』역시이문제를비켜가거나자유로울수없었다.천주교교리를삭제함은물론,천주교와관련된일체의용어,나아가서서양의기물을고치거나삭제하였다.「황도기략」편에나오는‘천주당’과‘천주당화’라는제목을‘풍금’과‘양화’(洋畵)로위장하고,“구라철현금은천주교의기물이므로천금이라고한다”(此系天主器物故名天琴)는말은그자체를삭제하였다.뿐만아니라,예수라는명칭이들어간부분의긴문장은완전히다른문장으로대체하였다.연암은북경남당의천정에그려진벽화의인물이자신에게사랑스럽게다가오는것같았는데,그게바로예수임을알아보았다고하였다.이러한언급자체는천주교도로오인될소지가있으므로,벽화그림에대한논평으로교체하였다.

4)연암의자유분방한사고와행동,풍속이나사회적통념에맞지않는내용이개작되거나삭제되었다.동성애에대한호기심,중국여성에대한묘사,투전판에끼어든연암의무용담혹은음식의기호에대한언급등은점잖은양반체통과어긋난다는이유에서인지모두다른내용으로바꿔치기하였고,고약한중국인을골려주는장난기와관광에들떠서호들갑스러운모습등솔직하고좌충우돌하는연암의모습은적당하게다른내용으로갈아치웠다.그리하여연암이라는인물의개성을없애고오직점잖고교양있는양반의모습으로꾸며놓았다.
『열하일기』「경개록」편의‘왕삼빈’을소개하는항목은대부분의필사본에서는수록되지않았는데,내용이워낙파격적이어서인지항목자체를누락시킨듯하다.

왕삼빈王三賓은민?지방(복건성福建省)사람이다.나이는스물다섯인데,아마도윤형산의청지기같기도하고혹시기려천의비복같기도하다.창대가말하기를,
“어제아침에우연히명륜당오른쪽문가리개아래에있었는데,기려천과왕삼빈이팔짱을끼고목을나란히하여홰나무뒤에서있더니한참뒤에입을맞추고혀를빨더군요.마치전각위의얼룩무늬목을한비둘기처럼하였는데,사람이가리개사이에있으면서훔쳐보는줄도모릅디다.왕삼빈은수도없이음란한교태를간드러지게떨더이다.그저께새벽에는책을가지고윤대인의구들방에갔더니왕삼빈이윤대인의이불속에서머리를내밀고책을받았습지요.”
라고한다.곡정의비복인악씨鄂氏도그아름다운젊은이를닮았다.왕삼빈은비단얼굴이잘생겼을뿐아니라,글씨를이해하고그림을잘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