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춘향수절가 - 천년의 우리소설 15 (양장)

열녀춘향수절가 - 천년의 우리소설 15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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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작자미상

저자:작자미상

역자:정길수
서울대학교국어국문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저서『구운몽다시읽기』,『17세기한국소설사』,역서『구운몽』,『선가귀감』,교주서『남원고사』,논문「춘향전인간학」,「〈남원고사〉,혹은‘경계인’의〈춘향전〉」등이있다.

목차

열녀춘향수절가(완판完板84장본)

[상권]
숙종대왕즉위초
지리산에빌어낳은춘향
봄나들이나서는이도령
광한루를찾은이도령
그네타는춘향
이도령과춘향의상봉
춘향을그리워하는이도령
사또의착각
춘향집에서의만남
언약
사랑가
사랑놀음
이별
약속

[하권]
상사相思
신관사또행차
기생점고
춘향소환
춘향의항거
십장가十杖歌:매맞으며부르는열개의노래
춘향이옥중에서부르는노래
꿈에간황릉묘
해몽
장원급제
남원가는길
농부들
춘향의편지
다시찾은춘향집
옥중상봉
변사또생일잔치
어사출또

춘향전(경판京板30장본)

제일강산광한루
그네타는춘향
첫만남불망기
춘향을그리워하는이도령
춘향집구경
권주가
사랑놀음
이별
신관사또
매맞는춘향

장원급제
변사또의쇠코뚜레공사
다시찾은춘향집
옥중상봉
변사또의생일잔치
어사출또
대단원

미주
작품해설-전주의「춘향전」과서울의「춘향전」

출판사 서평

출판시장의두강자,전주의‘완판’과한양의‘경판’

조선시대에소설은필사와대여의형식으로유통되는것이일반적이었다.지인중누군가재미있는작품을창작하거나좋은책을가지고있으면빌려보다가간직해두고싶으면베껴쓴다.이렇게베껴쓴책이‘필사본’(筆寫本)이다.소설이인기상품이될만하다싶으니깨끗하게베껴쓴책들을모아책을빌려주고돈을받는도서대여점,이른바‘세책가’가생겨났다.18세기의일이다.다수의독자에게판매해도이익이남겠다싶으니출판업이시작됐다.소설의상업적출판으로한정해말하면중국과일본에비해많이늦은19세기의상황이아닐까한다.

소설이많이팔리려면내용이재미있어야하고,또작품분량이너무길어서는곤란하다.1820년대에서1860년대사이에창작되어「춘향전」의원형에가장가깝다고알려진「남원고사」는디테일이흥미롭기는하지만다소느슨한줄거리에,대중이소화하기에부담스러운식자층의언어가곳곳에섞여있으며,무엇보다도분량이많다.「남원고사」를스토리위주로축약한것이경판본(京板本)이다.서울의출판업자가판각(板刻)해서판매했으므로‘경판’(京板)이라고불렀다.35장본,30장본,23장본,16장본등여러종의「춘향전」경판본이전하는데,그중대표버전으로꼽히는것이이책에서소개하는‘경판30장본’「춘향전」이다.‘30장본’이란장수(張數)가30장(오늘날의60쪽)인책이라는뜻이다.현재전하는경판본은대개1900년대에출판된것으로추정된다.

1900년을전후한시기경판본과함께소설출판시장을양분했던것이완판본(完板本)이다.전주를‘완산’(完山)또는‘완주’(完州)라했던바,전주에서판각한것을‘완판’(完板)이라고했다.역시84장본,33장본,29장본,26장본등여러종의「춘향전」완판본이전한다.그중20세기내내가장큰관심과사랑을받은대표버전이바로이책에서소개하는‘완판84장본’「열녀춘향수절가」다.완판본소설은1860년을전후한시기에간행되기시작해서1900년대에가장활발히출판되었는데,‘완판84장본’의출판시기는1906년으로추정된다.

‘완판84장본’은「남원고사」의절반분량이지만여타의완판본과경판본에비하면월등히분량이많다.짧은소설을선호하던그시대의출판시장에서다른출판본의3배분량에이르는84장의책을출판할수있었던이유는무엇일까?전주에상대적으로긴분량의책을구매해줄소비층이있었기때문일것이다.과연전주일대의향리(鄕吏)들이판소리의주된애호계층이었고,이들이완판본출판과정에적극관여한기록이있어‘완판84장본’출판당시의정황을짐작하게한다.

「열녀춘향수절가」와「춘향전」,무엇이어떻게다른가?

완판84장본「열녀춘향수절가」(이하‘완판’)와경판30장본「춘향전」(이하‘경판’)의가장큰차이는춘향의신분이다.춘향의신분변화에따라주변인물의성격도함께변한다.독자에게는어떤춘향이더익숙할까?두작품을통독하며내가생각한춘향이어떤춘향인지찾아보자.
‘완판’과‘경판’은어떤차이가있을까?몇가지만예를들어본다.

첫째,기생춘향과양반가의서녀춘향
「남원고사」와그축약버전인‘경판’에서춘향은시종일관기녀다.아버지의정체는분명치않으나점쟁이판수와친구사이였다고했으니중인이하의신분으로추정된다.춘향이이도령과이별한뒤대비정속(代婢定屬)했다는,곧관청에소속된기생이다른사람을돈으로사서자기대신에관청에속하게함으로써천민신분에서벗어났다는설정을취했으나,대비정속으로기생신분을면했다는춘향의주장은변학도의수청을거부하기위한하나의명분으로작용할뿐법적효력이있는것이아니어서실질적으로신분이달라졌다고할수는없다.적어도춘향의대비정속전까지월매를포함한춘향주변의모든인물은춘향을기생으로인식했다.
반면‘완판’의춘향은단순히기생신분이라고말하기곤란하다.춘향은성참판의서녀(庶女)다.어머니가기생이니춘향의법적신분은분명기생이지만,춘향은월매의말대로“씨가있는자식”이어서양반가규수처럼자랐다.춘향모녀모두춘향이본질적으로기생이아니라고생각하므로‘대비정속’의장치도필요없다.

둘째,연애를주도하는춘향과음전한춘향
‘경판’의춘향은이도령과의만남에서이별까지의과정내내어떤중개자도없이자기혼자모든결정을내렸다.춘향은오직자신의판단으로이도령과의만남을허락하고평생잊지않겠다는문서를받아낸뒤평생을약속했다.반면‘완판’에서는월매의역할이두드러져이도령과춘향의첫만남부터혼약을맺는일까지모든과정을월매가주도하고결정했다.춘향이남녀의사사로운만남과혼사를스스로결정한다는것이양반가규수의면모에어울리지않기때문이다.
‘경판’의춘향은처음이도령이찾아올때계단을내려가이도령의손을잡고들어와노래를부르며술을따랐다.반면‘완판’에서는일곱살에이미『소학』을읽은춘향이다소곳이앉아이도령과월매의대화를듣고만있다.「남원고사」의춘향은관아든군졸의집이든무람없이돌아다니고‘경판’의춘향도남원10리밖까지나와이도령을전송하지만,‘완판’의춘향은양반가의예법에따라문밖을나서지않는전형적인양반가규수의모습이다.

셋째,오만한춘향과서민의지지를받는춘향
‘경판’의춘향은당돌하고오만한성격이어서비록자신이아쉬울때는‘오라버니’라부르는관아의군졸이든동료기생이든비슷한신분의사람들에대해특별한연대의식을갖지않았다(「남원고사」의춘향은지나친도도함때문에주변인물들과불화하며질시의대상이되기까지했다).변학도의모진고문을받고옥에갇히기까지서민들의특별한동정과지지도받지못했다.반면‘완판’의춘향은변학도가보낸군졸들에게잡혀가는시점부터이미변학도를제외한관아모든이들의동정을받고있었고,그뒤로도기생(정확히는행수기생을제외한기생들)과농민은물론빨래하는아낙에이르기까지서민일반의절대적인동정과지지를받았다.

넷째,절대악변사또
‘경판’이든‘완판’이든변사또는악당이다.하지만어떤지점에서는선악이혼재된캐릭터이기도하다.그런데‘완판’에서의변사또는남원부임이후전형적인악인으로,악인의캐릭터가더강화된다.그리고이에따른춘향의저항도한층격화된다.‘완판’에서의춘향의분노는개인의차원을넘어민중일반의분노를대변하는방향으로확대되었다.모든「춘향전」에서‘사랑’과‘저항’은한몸이지만‘완판’은상대적으로분노와저항쪽에무게중심이놓여있다.

다섯째,잇속에밝은월매
‘경판’의월매는잇속에밝은,오직눈앞의이익에따라표리부동하게움직이는경박한캐릭터다.반면‘완판’의월매는품위있는양반가마님의면모를가졌다.‘경판’의월매는춘향이수절하는이유를납득할수없으므로춘향과갈등하지만,‘완판’의월매는춘향의의지를잘헤아려춘향과갈등하지않는다.

여섯째,호남방언의절묘한리듬감속에녹아든,청소년관람불가〈사랑가〉
‘경판’의표현도훌륭하지만‘완판’의정감있는호남방언과리듬감있는절묘한표현은작품의재미와함께예술성을높인다.마치판소리의한대목을듣는듯한리듬감있는반복과방언,“만첩청산(萬疊靑山)늙은범이살진암캐를물어다놓고이는없어먹든못하고흐르릉흐르릉아웅어루는듯”,“주홍(朱紅)같은혀를물고오색단청순금장안에쌍거쌍래비둘기같이꿍꿍꿍끙으흥거려뒤로돌려담쑥안고”등의성적이면서도능글맞은표현은‘완판’의큰매력이다.“이궁저궁다버리고네양각(兩脚)새수룡궁(水龍宮)에나의심줄방망이로길을내자꾸나!”(「사랑가」마지막문장)우리조상들의성적표현의수위가너무높다.요즘으로치면청불영화다.

학계의「춘향전」연구자는크게두계열로나뉜다.서민대중의연대와저항에초점을두어‘완판’의가치를높이평가하는쪽이있고,풍부한디테일및캐릭터와서사의일관성에초점을두어「남원고사」와‘경판’의가치를높이평가하는쪽이있다.

어느쪽이「춘향전」의원형에가까울까?「남원고사」와‘경판’쪽이다.「남원고사」를통해그려보는「춘향전」의원형에서는‘대비정속’이라는장치도없이시종일관춘향의신분이기생이었을것으로본다.기생이면서기생이기를거부하며엇비슷한신분의사람들과어떤동류의식도느끼지않는오만하고당돌한춘향,이미평생을약속한연인이있다는이유로기생점고에무단히참석하지않는기생춘향,신관사또의수청을끝내거부하고3년동안옥에갇혀모진시련을겪으면서도뜻을굽히지않고자신의사랑을인정받고자했던춘향,어떤폭압과유혹에도굴하지않고마침내사랑을이루어양반의정실부인이된춘향,이것이춘향의원형이라고본다.

그러나여기에불만을느낀독자들이작품을고치고자하는욕망을품었다.기생이양반의정실부인이된다는것은너무지나치지않은가?이런생각에서춘향의신분과성격은교양있고다소곳한양반규수쪽으로바뀌어갔다.세상에서가장아름다운사람이주변의질시를받아서는곤란하다는생각에서춘향은누구나사랑하고연대하고싶은인물로바뀌어갔다.춘향처럼아름다운사람의엄마가잇속만밝히며경망하고변덕스러워서야되겠느냐하는생각에월매는품위있는마님으로바뀌어갔다.변학도같은인물이밉지않은구석이있는코믹한면모,속이무르기도한인간적인면모를가져서야되겠느냐하는생각에변학도는점점냉혹한악인의전형으로변해갔다.

「춘향전」은21세기의현대작가들에의해서도여전히개작되고있다.대중의끊임없는관심과사랑속에새로운작가들의개작욕망을자극하며18세기이래지금까지멈추지않고변화해온것이다.「춘향전」은한편의소설작품이끊임없는‘자기변화’를보여준,매우희귀한사례다.때로는혁신으로,때로는퇴보로보이기도하지만그모든변화는자기앞의「춘향전」에대한나름의불만과그로인한개작욕망으로부터비롯된것이다.그러니하나하나의버전이모두의미있는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