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문인의 일본견문록: 해유록

조선 문인의 일본견문록: 해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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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해유록』의 저자 신유한(1681~1752)은, 독자에게는 다소 낯선 인물일 수 있으나, 18세기 전반기를 풍미한 문장가이자 시인으로 당대에 널리 알려졌던 인물이다. 특히 그가 일본에 다녀와서 지은 『해유록』은 그의 살아생전에는 물론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행문학의 백미로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신유한은 빼어난 재주에도 불구하고 서얼이라는 신분적 한계로 말미암아 미관말직을 전전해야만 했는데, 통신사행(通信使行)이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사실 신유한이 통신사행에 참여하게 된 것도 서얼이라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는데, 통신사는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야 하기에 사대부는 기피했으며 대신 서얼 문사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719년에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쓴 『해유록』으로 인해 신유한의 명성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다.
『해유록』은 소재 자체가 흥미롭고 일본에 관한 풍부한 인문 지리 정보를 담고 있어서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널리 읽혔다. 특히 일본에 관심을 두거나 통신사행으로 일본에 간 이들에게 『해유록』은 필독서였으며, 통신사 일기나 견문록(見聞錄)에 늘 인용되었다.
저자

신유한

申維翰
1681~1752.자는주백(周伯),호는청천(靑泉).조선후기의문장가이자시인.1719년통신사행의일원으로일본에가서시와문장으로이름을떨쳤다.일본을다녀와서쓴『해유록』(海游錄)은사행록가운데백미라일컬어졌으며,일본에관심을가진조선문인들에게필독서가되었다.빼어난문학적재주를지니고있었으나서얼이라는신분적인한계때문에미관말직을전전하였다.저서에『청천집』(靑泉集)이있다.

목차

해가뜨는곳,일본
신선이사는섬아이노시마
지노시마의어느노부부의초가집
일본의목구멍아카마가세키
후쿠젠지의절경
아름다운항구도시우시마도
효오고의바닷가에서
포로마을진주도
비와호를지나며
백옥같은후지산

가깝고도먼나라
오오사카기생을노래한시
남창을노래한시
에도에서구경한희극
일본의음식문화
밀감향기로지은시
일본인의기호품차와담배
반드시무릎을꿇고앉는이유
정교하고청결한집
아기자기한생활용품

나니와강의황금배
나니와강의황금배
무지개다리사이로
천하으뜸의도시오오사카
오오사카에서출간된조선서적들
교오토의밤거리를거닐며
폭포가웅장한호오타이지의정원
바닷가에우뚝솟은에도성
나가사키의네덜란드상인

국서를받들고
한갓고을태수에게절을하라니
국서를받들고
관백의회답서
한글
도요토미히데요시의절다이부쓰지
통역관의인삼밀무역

무력을숭상하는나라
허수아비천황
천혜의군사도시에도
『산해경』에그려진일본
서복이일본으로간까닭
강산의기운이사람을낳으니
일본의관직제도
무력을숭상하는나라
목숨을가벼이여기는일본인

꿈같은만남과이별
측간귀신이사람을미혹하는듯한글
영특한아이에게지어준자와호
용맹하고검소한요시무네장군
관변학자하야시가문
일본의유학자들
한문을모르는에도의벼슬아치
꿈같은만남과이별
고결한처사도리야마시켄
대나무를사랑하는승려
이별의선물
아메노모리호오슈우의눈물

해설
신유한연보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해유록』,단순한‘기록’이아닌‘문학’으로서의일본견문록

역대통신사행록을모은《해행총재》(海行摠載)의제1권에실려있는신유한의『해유록』은다른사행록들과뚜렷한차이가있는데,기존의사행록이단순한견문기록이라면,신유한의이책은하나의문학작품이다.이러한차이는신유한의이력에서찾을수있다.
신유한은이미당대에문장으로이름이났던시인이자문인이었다.통신사의일행으로서그가맡았던제술관(製述官)이라는직책은일본인들에게시문(詩文)을지어주는등조선의학문과문화의첨단을선보여야하는직책이었다.그러므로역대로제술관의직책은당대의문장가중에서선발했다.
신유한의문장가로서의역량을반영이라도한듯이,‘기록물’에가까운기존의사행록에비해신유한의『해유록』은일본에서의견문을생동감있게그려낸한편의‘문학작품’이라해도과언이아니다.조선후기당대에도집집마다『해유록』을두고읽었다는기록이남아있을정도이다.
일본에관한풍부한인문지리적정보를담고있으며다루는소재또한풍부해서,박지원·이덕무·정약용·이규경등이일본을알기위해이책을필독서로참고하였고,근대의대표적인국문학자인김태준은『해유록』을『열하일기』와쌍벽을이루는기록문학이라손꼽기도했다.
일본이라는이국(異國)의산천을보며느낀감회뿐만아니라통신사행의제술관으로서수행한업무,그리고일본막부와의사이에서겪게된일에이르기까지,신유한의글은유려한문체와풍부한정서로이루어져있다.
「조선문인의일본견문록」을통해서18세기초일본의최첨단을목격한한‘조선문인’의개성과통찰력을한껏음미할수있다.


적개심만으로는일본을파악할수없다

임진왜란과정유재란을겪은지겨우100여년밖에지나지않았던1719년.여전히적국(敵國)인일본땅에발디딘조선인의심정은편치않다.이는일본을그려낸조선후기사행록의주된정서이기도했다.중화(中華)에소속되지않은미개한땅,조선을유린한불구대천원수의땅이라는생각은당시모든사행록을지배하는정서였다.적개심이가득한눈으로본일본은그저친척간에도혼인을하고한자로된문학을제대로구사할줄모르는문맹의나라,야만인의나라였다.
그러나신유한의시야는당시조선인이일반적으로가졌던단순한적개심과편견에갇히지않았다.물론임진왜란당시포로로잡혀간조선진주지역사람들이일본에서진주도(晉州島)라는마을을이루고사는것을기록하며일본인의잔악성에치를떨기도하지만〔포로마을진주도〕,동시에일본의정치조직과군사제도등을날카롭게관찰하였으며,일본무사사회의구조적특성이나천황과쇼군으로분리된이원적정치체제를분석하였다.
한편화려한상업문화속에꽃핀번화한대도시오오사카와나고야,또개항된나가사키를통해들어온서양문물의낯선모습은선진문화의사절로자부하는조선인에게놀라운광경이었다.신유한역시이화려한물질문화에때로는압도되고기탄없이놀라워하는동시에그것을주의깊게관찰하고따져보는태도를잃지않았다.
일본의음식문화,차를끓여물처럼마시는풍속,청결및위생관리방법등신유한의관찰은사소한데까지이르고있다.일본에서는아무리높은관리가명령을받들어길을가더라도스스로반장(飯藏)이라는조그만도시락을들고다니며끼니를해결할뿐각지역의역참에서번거롭게접대하지않아도된다고적고있다〔아기자기한생활용품〕.신유한이이것을기록한의도가잘느껴지지않는가.
편견을최대한배제하고관찰을통해얻은정보속에서신유한은일본사회와조선사회를성찰하는데까지나아간다.일본을‘왜국’,‘오랑캐’라낮춰부르던조선인의일반적인인식속에서도,여정속에서만나는각종사물과현상을최대한편견없이대하고자하는그의탐구심은여전히일본과마주하는현대한국의독자에게도유효한메시지를던져준다.


중세일본인의생생한목소리와모습을그대로담아내다

신유한의탁월함은특히인정(人情)과세태를서술하는시각에서잘드러난다.

남들은겨울밤길다하지만
나는봄날이길다말하죠.
아침부터저물녘까지
열번즐기고도남으니까요.

사랑하니훗날을기약하자며
나더러정조를지키라하네.
주인이돈받으러올텐데
그돈을어찌마련하라고.
-「오오사카기생을노래한시」

매일대낮에남녀가사랑을나누는유곽의생생한모습의이면에,포주에게화대를뜯기는기생의고달픈삶까지도기생의목소리를빌려담아낸신유한의풍속시는현대인의시선으로도파격적이다.남창(男娼)풍속이조선에서는금기시되었지만,일본에서는일반화된모습이었다.신유한은이러한일본의성풍속에대해서무작정배격하거나입을닫지않았다.그렇다고단순한흥밋거리나노리갯감으로그들을대상화한것도아니다.호기심을잃지않으면서도깊은곳까지들여다보며그들의생생한목소리로시를적었다.
여정속에서만나는여러일본인들의모습도풍부한대화와행동묘사속에잘드러나있다.글을써달라는부탁을받으며접한수많은일본인들을보며신유한은조선의유학수준에는한참뒤떨어지는일본인의전반적학문수준을한심해하다가도마음을움직이는인물에게는존경을감추지않는다.몇개월에걸친사행에서서로정이든일본인들과의관계에서도신유한의다감함을볼수있다.때로는웃음이나고때로는콧날이시큰해지는정감있는대화속에서당시일본에살고있던다양한사람들과조선문인이나눈생생한생각과감정을접할수있다.


「조선문인의일본견문록」,정제된언어로『해유록』을번역하다

이번에출간된「조선문인의일본견문록」은돌베개우리고전100선시리즈의15번째책이다.‘우리고전100선’은품격과아름다움과깊이를갖춘,그러면서도21세기한국인이부담감없이‘쉽게’접근할수있는우리고전을만들고자기획되었다.권위주의적이고고지식한고전의이미지와레퍼토리를탈피해,정확하게번역하되고등학생이상이면읽고이해할수있는자연스러운현대어문장이되도록각별히신경썼고,이해를돕는간단한해설을붙였다.
이책은특히일본어고유명사를일본어로읽고표기한것이특징이다.기존의고전번역에서는“낭화(浪華)강을거슬러올라가대판(大阪)시내로들어가니풍신수길(豊臣秀吉)을위해지은절이있었다”라고표기하는식으로일본어고유명사에해당하는한자를한국어식으로읽어오곤했다.그러나〈해유록〉과같이외국을기행하며겪은일을적은기행문학의경우그것이현지의어느지명을가리키는것인지바로알기어려운아쉬움이있었다.특히고유의방식으로한자를읽어온일본의경우에는그런점이두드러지며,그중다수가현재에도남아있는지명이거나한국에서도통용되고있는이름인경우는더욱그러했다.
「조선문인의일본견문록」에서는원칙적으로일본의고유명사는일본어의독법으로읽어,“나니와(浪華)강을거슬러올라가오오사카(大阪)로들어가니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를위해지은절이있었다”처럼해당이름이실제현장에서어떻게읽히는지바로알수있게했을뿐아니라,더욱자연스럽고생생한현장감을느낄수있도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