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삶을 혼자 짊어지지는 않기에 (변지영의 데리다 쓰기 | 양장본 Hardcover)

누구도 삶을 혼자 짊어지지는 않기에 (변지영의 데리다 쓰기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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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타자의 탄생은 곧 내가 접근할 수 없는 세계의 출현이자 세계의 기원이다. 그리고 타자의 죽음은 세계의 끝을 알린다. 세계에 대한 유일한 열림이었던 타자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탄생과 죽음에서 세계는 멀리 있으며, 데리다에게는 그것이 바로 책임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따라서 데리다에게 애도는 상실에 대한 응답 혹은 타자에 대한 윤리적 책임의 개념을 넘어선다. 이것은 분산된 주체성의 감각이다. 끊임없이 타자에게 말을 건네고 타자의 말이 자신을 장악하고 흘러넘치게 함으로써 자신의 발화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그의 글들은, 우리 존재 자체가 이미 타자의 상실과 자아의 상실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저자

변지영

작가,임상·상담심리학박사.차의과학대학교의학과에서조절초점이정신건강에미치는영향에관한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신경과학의최근발견들을토대로심리학이론을재해석하는작업을하면서『이토록뜻밖의뇌과학』과『나를잃어버린사람들:뇌과학이밝힌인간자아의8가지그림자』를번역했다.지은책으로『순간의빛일지라도,우리는무한』,『우울함이아니라지루함입니다』,『생각이너무많은나에게』,『미래의나를구하러갑니다』,『내마음을읽는시간』,『내가좋은날보다싫은날이많았습니다』등이있다.

목차

1부세계는저멀리있고
1편지11
2시차22
3우편31
4네거티브능력38
5탈구축45
6디페랑스63
7담론72
8흔적77
9코라87
10환대101
11이항107
12반복(불)가능성114
13바퀴124
14나130
15굴136
16섬뜩함146
17사후성153
18자-타율성161

2부나는너를짊어지고가야만한다
19괴물,인간,AI173
20언어180
21유령189
22용서197
23장례205
24너213
25발텐226
26미래245
27서명250
28기원없음,종말없음257

데리다의생애267
에필로그279

참고문헌287
찾아보기292

출판사 서평

하나의세계도현재의나도없다
한때나였던너와한때너였던내가있을뿐
그리하여나는너를다만지탱하는것일뿐

“세계는저멀리있고,
나는너를짊어지고가야만한다.”

세상을떠나기얼마전파울첼란은고등사범학교에서함께근무했던동료자크데리다에게시집을한권선물했다.몇년후한스게오르크가다머의죽음을애도하던데리다는이시집의한구절에서눈을떼지못한다.첼란의시를함께읽으며경탄과존경의마음을나누었던친구가다머와의시간들이떠올라서이다.이시에는첼란이있고,가다머가있으며,그들과함께사유하고교류했던세계가있다.세계는저멀리있고‘나’만이곳에남아있다.남은자로서의‘나’는그세계를잊지않기위해‘너’를짊어지고나아가야만한다.


애도의(불)가능성

일상적으로우리는애도를무언가를잃고나서시작하는,즉상실을받아들이는과정으로여긴다.하지만데리다는그특유의화법으로,애도는이미,그리고항상발생하고있으며동시에아직발생하지않은것이라말한다.그에게우정이란“둘중하나가더오래살아남아,먼저가는친구의죽음을지켜볼가능성”으로부터생겨난다.우리는죽음을경험할수도,느낄수도,생각할수도없다.우리가겪는것은오직타인의죽음이다.

함께했던사람의죽음은언제나하나의세계,어떤세계의가능성자체의끝을알리는것이다.하나의전체로서의세계,고유하고대체불가능한세계의끝.그렇기에무한한세계의종말을선언하는것이다.그리하여타인의죽음을목격하는우리는되돌릴수없는파괴의순간들을겪는난파선처럼위태롭고처참한잔여물이자부서진생존자이다.가족,형제,친구,연인처럼소중한관계에서의이별과상실은,자아의일부가떨어져나가는자아의죽음이기도하다.살아남은자로서나는그죽음을계속살아가야만한다.이처럼삶에는끊임없이죽음이유입되고,죽음만이내가살아있음을일깨워준다.

따라서애도란근원적으로불가능한것으로,이미시작되었으며결코끝날수없는것이다.내가너를만나는순간,애도는이미시작되었고반드시올것이며그러한사실이관계를비로소가능하게한다.


존재한다는것은상속하는것

1930년알제리에서태어나2004년에프랑스에서삶을마감한데리다는90여권의책을남겼고,“탈구축”(해체),“디페랑스”(차연),“대리보충”,“환대”,“유령”,“애도”,“도래할민주주의”,“사건의(불)가능성”,“타자”,“아카이브”등의개념으로널리알려졌지만,어떤용어나문장으로도요약할수없는독특한세계를펼친철학자이다.그래서많은학자가그를어떠어떠한철학자라고규정하거나몇개의키워드나개념으로환원하는우를범하지않으려고애를쓴다.데리다는스스로자신의텍스트를열어둠으로써다양한오해와비판을허용하며읽는자의세계에서저마다다르게살아남도록내버려둔다.

그의관점에서,존재한다는것은상속하는것이다.우리는모두아무런선택권없이이미있는것들가운데무언가를부여받으며태어났다.그런데이유산혹은상속은“결코하나로모아지지않으며그것자체로하나가되지않는다”.상속자는여러가지가능성을읽어내고선택하며재확인해야한다.정해진의미,본래의의미는따로없는세계에서각자가의미를만들어내야만하는것이다.

우리가어떤결단을내릴때그것은항상이전의흔적에의해조건지어지며,그럼에도불구하고전과는다른주체로나아가게한다.어떤결단도완전히자유로운결단은아니다.내가이미경험한것들,교육과규범,실시간맞닥뜨리는타인의표정과몸짓,의식조차하지못하는나의충동과감정들이나의결정을조건짓는다.하지만바로그조건들덕분에나는똑같은결정을다시내릴수없고,항상조금다른방식으로세계에응답하게된다.


애초에세계가없다면

세상을떠나기전,마지막세미나였던『짐승과주권자』세미나에서데리다는이렇게말한다.

“여러분도동의할것입니다.마치우리가같은세상을살고있고,같은것을이야기하며,같은언어를사용하고있는것처럼행동하고있는것처럼보이지만사실우리는그것이전혀사실이아님을잘알고있습니다.”

이미공통된세계,우리가함께살고있는하나의세계란없다는것.그것이환상이라는것을알기에나는너를공허속에서지탱한다.애초에세계라는것이없다면,어차피끝없이먼곳에있는것이라면,내가해야할유일한일은세계를초대하는것이다.너를위해,너를향해네가있도록세계를불러오는것이다.이불가능한항해,우리에게주어진제한된시간안에설령아무일도일어나지않는다하더라도,이잠깐동안이라도내가살수있고네가살수있도록,나는너를다만지탱하는것이다.

타자의탄생은곧내가접근할수없는세계의출현이자세계의기원이다.그리고타자의죽음은세계의끝을알린다.세계에대한유일한열림이었던타자가사라졌기때문이다.그러므로모든탄생과죽음에서세계는멀리있으며,데리다에게는그것이바로책임이시작되는지점이다.

따라서데리다에게애도는상실에대한응답혹은타자에대한윤리적책임의개념을넘어선다.이것은분산된주체성의감각이다.끊임없이타자에게말을건네고타자의말이자신을장악하고흘러넘치게함으로써자신의발화로부터벗어나게하는그의글들은,우리존재자체가이미타자의상실과자아의상실에기반하고있다는사실을드러낸다.


나는이미어제이다

주체란자신을반복하며조금씩어긋나는존재이다.이반복속의어긋남,동일성안의차이때문에나의결단은항상나만의고유한방식으로나타난다.이고유함은어떤독특함이아니라,완전히동일할수없고완전히통제할수없으며완전히설명될수없는어떤특이성이다.대신살아줄수없고대신죽을수없으며대신응답할수없음이다.그렇기에‘나’라고하는것은결코새롭지않지만,고유하며완성될수없기때문에윤리적일수있다.

마지막세미나에서그가남긴말은마치유언처럼들린다.개인의유언이아닌,나와너의유언이자인류의유언처럼말이다.

“즐거움은오직애도에서,애도된즐거움으로부터태어난다.어떤애도나어떤죽음에대한기억이아니라바로나자신에대한애도이다.나는어제에서왔다,나는더이상존재하지않는다,나는더이상현재에존재하지않으며,나는이미어제이다.”

데리다가말하듯기쁨과즐거움은애도에서나온다.어제에대한노스탤지어,어제의나는더이상없다는것.그리해이미우리는흔적이고교차이고얽힘이라는것.그렇다면오늘의나는,어제의너는도래할타자일까?그가한때의나이고,내가한때의너라는것을우리가만약희미하게나마기억해낸다면삶은더괜찮아질까?별자리를이루고있는별들처럼누구도삶을혼자짊어지지는않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