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뱀 (박성경 장편소설)

비단뱀 (박성경 장편소설)

$13.50
Description
정형화된 개념을 비트는 상상력으로 그리는
‘정의(定義)’라 불리는 ‘편견’에 대한 도전,
박성경의 일곱번째 장편소설

나는 비단뱀이다. 언제 어디서든 당신이 나를
마주친다면 목이 졸리는 느낌이 들길 원한다.
“정자가 그의 것이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정자가 누구의 것인가는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가는.”

예상을 뒤엎는 스토리와 통상을 비트는 반전으로 흡입력 있는 작품들을 집필해온 박성경 작가의 장편소설이 나왔다. 영화의 각본과 소설 작품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또 다시 정형화된 개념을 비트는 상상력을 펼쳐낸다. 정숙한 여성이 들어앉아야 이루어지는 ‘가족’에 대한 정의(定義)에 반발하는 작가는 ‘정숙하지 않은 여성’의 ‘새로운 가족’을 이번 작품에서 제안한다. 박제된 정의(定義)를 해체하고 그것의 또다른 얼굴인 ‘편견’에 대해 항의하는 작가의 당돌한 시선과 거침없는 문장은 언어의 정의(定義)에 갇힌 ‘가족’의 모습에 대해 질문한다.
선정 및 수상내역
ㆍ2024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 소설
저자

박성경

서울에서태어나덕성여대국문과를졸업했다.
영화〈S다이어리〉,〈소년,천국에가다〉의각본,장편소설『쉬운여자』『나와아로와나』(2020아르코문학나눔선정)『피우리미용실』『사랑에관한농담혹은거짓말』(2023경기예술지원문학창작지원선정),청소년소설『나쁜엄마』『날마다크리스마스』등이있다.
『쉬운여자』『나쁜엄마』『나와아로와나』는부산국제영화제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북투필름(BOOKTOFILM)선정작이며,『나쁜엄마』는베트남에서도출간되었다.

목차

비단뱀
한여름의눈
요한복음
강같은평화
슬픔씨
정염에미쳐
바다같은기쁨
다시비단뱀

해설:섹스,가족,그리고이동성_유인혁(문학평론가)178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난발정난암캐가아니라비단뱀이거든.”

은해이는기독교재단어린이집에서만1세반을맡고있는교사다.해이는어린이집에제일먼저출근해“환기를위해창문을열고화분에물을주며적당한습도조절”을하며“늘엄마같은마음으로”아이들을돌본다.등원한아이가별로없고원장도없는토요일에는청소를거르자는동료교사의말에생각한다.“누가안본다고청소를안하다니.누가안본다고세수도안하겠군.누가안보면똥싸고밑도안닦겠어.”아이피부를위해뒤처리는물티슈가아닌손으로직접닦이고크리넥스로막힌변기는“화장실로달려가고무장갑을찾아낄여유도없이두팔을걷어붙”이고“변기에손을넣어크리넥스를꺼내”기도한다.해이가아이들을좋아하는이유는“누군가의어떤행동에대해아무런편견이없다는것”이다.
그런그녀가밤이되면차안에서변신한다.그녀의차트렁크에는“가발,하이힐,부츠,미니스커트,속옷,무대의상,화장도구,선글라스,우산,콘돔등등온갖잡동사니들”이있다.단발머리는실핀으로고정하고쇼트커트가발을쓰고스모키화장을한해이는“타이트한검은색그물짜임니트원피스에뱀가죽힐,그리고까만니트모자”를쓰고빨간색펄립스틱으로입술에포인트를준다.어둠침침한재즈바에서온더록스잔에다이어트코크를주문하고공갈담배를입에물고준수한외모의남성에게눈인사를건넨다.은해이는“비단뱀”이다.그리고남자와“뻔뻔하고무책임한섹스”를한다.

‘부재’는상실이아닌,새로운존재를꿈꾸는‘자유’

“솔직히난가족을한번도그리워한적이없다.애초에없었으니까그리움도없는것이다.한번도경험해보지못한존재를굳이떠올리며부재를슬퍼할필요는없다.남들에겐있고내겐없다고해서상실감을가질이유도.”_21쪽

은해이는조손가정에서자랐다.그녀에게부모였던“할머니를빼고서자신의삶을생각”한다는건상상할수조차없다.그래서“결이가당분간‘엄마’란단어는몰랐으면”한다는일일연락장에적어보낸결이아버지글에가슴이아리면서도“그단어를모른다고해서결이에게없는존재가”될거라생각하지않는다.
결이네는부자가족이다.결이엄마는결이를낳은지한달만에산후우울증으로극단적선택을한다.결이엄마는“온종일아기울음소리가환청으로들리는것같아”견디기힘들었고하루수십번젖을물려야하는모유수유를1주일만에포기해버린자신은엄마자격이없다면서자책감에시달렸다.결이엄마는다시직장에나가길원했으나결이아빠는아기는반드시엄마가돌봐야한다고생각하며반대했다.결이엄마의고통에“모든여자가다겪는일을,넌참유난맞다”고결이아빠는몰아부쳤다.결이엄마가자살하던날,직장에육아에피곤에시달리던결이아빠도그녀못지않게우울속으로침잠했기에집을뛰쳐나가는아내를알지못했다.
단비아버지류준수.언제나똑부러지는단비엄마를보며해이가상상했던단비네집의풍경은“유기농먹거리로가득한식탁,영어동요가흘러나오는햇빛찬란한거실,퀼트솜씨를자랑하는커튼과이불이깔린우아한침실.참으로바람직한그들만의집”이었다.하지만단비아빠류준수에게단비는“다만발가락이닮은딸”이었다.친자확인을통해이사실을알게된준수는“죽을때까지모른체”하며“죽을때까지괴롭힐거”라다짐하고결혼생활을지속한다.
교회담임목사의아들로신학대학을다니며교회안에서는최고의신랑감으로꼽히는요한은해이와마찬가지로“된장찌개를밑반찬은하나도안건드리고몰두해서”먹는다.요한이나해이나엄마가만들어준된장찌개를먹어본적이없다.해이는“엄마가없고,요한의엄마는교회일로늘바빠아들에게된장찌개를끓여줄여유가없”었다.그런요한을쫓아다니는가희는장로부부의딸이다.가희가세살무렵,유아세례를받던날,교회에있는피아노에집착하는딸을보고장로부부는딸이장차피아니스트가될거라는기대에피아노를가르치기위해십수년간할수있는일은다했다.하지만가희는일찌감치깨달았다.자신에겐타고난음악적재능도열정도없음을.그러고는안정적인자신의‘가족’을이룰구성원으로요한을선택하고결혼을꿈꾼다.

그녀만의‘가족’만들기

『비단뱀』이보여주고있는것은바로이러한대안적인위치다.『비단뱀』은수많은‘꽃뱀’들의이야기가그러하듯여성의성적방종을징치하는이야기가아니다.반대로순진하게여성의성적모험을주체의자율성에연결시키지도않았다.박성경은그러한스테레오타입들을조심스럽게조립하며,관습적인서사를미묘하고도분명하게굴절시켰다.그럼으로써정해진자리를벗어나고싶은욕망을서사화했다.바로그렇게,『비단뱀』은우리시대의성적모험과가족만들기의서사를계승하면서도,그것들의대안서사와대항서사(counternarrative)의가능성을보여주었다._「해설」에서

결이아빠한설하,단비아빠류준수,요한과의“뻔뻔하고무책임한섹스”를찾아다니는해이의이중생활은가희와단비엄마에게들키고교회와어린이집에서나오게된다.그날해이는임신을했다는사실을알게된다.그녀의변신은“뻔뻔하고무책임한섹스”를위한것이아니라“계획대로임신에성공”하기위한것이었다.뚱뚱한아빠곰과날씬한엄마곰과귀여운아기곰이있는가족사진을거부한그녀만의‘가족’이만들어지는순간이다.

“나는그의정액이내다리밑으로한방울도새어나가지못하도록물구나무를섰다.그의가장튼튼한정자하나가어서나의난자에게달려와성공적으로만나기를빌었다.내자궁에수정란이무사히착상되기를.정자가그의것이란건중요하지않았다.정자가누구의것인가는내게아무런의미가없었다.아이의아버지가누구인가는.”_157-1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