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을 지닌 채 우리는 (이주영 소설)

초록을 지닌 채 우리는 (이주영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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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제는 안다. 그들은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다.
이렇게 물이 빨리 덮쳐올 줄 몰랐다.
아니, 알았더라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것 앞에서는 그저 속수무책이니까.”

“그리하여 우연히 다시 만난 안녕한 하루가 한 달이 되고 1년이 된다면
더는 이음매를 발견할 수 없는 날이 찾아오기도 할 것이다.”
정상적인 불행 안에서 남들만큼만 아프고 싶었던,
들킬세라 소리 내 울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위로
이주영 작가의 첫번째 소설집

이주영의 소설을 따라 읽는 동안 소설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 장르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내가 살아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살아보지 못할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 저마다의 서사가 조각보처럼 이어진 세상 앞에서 겸허해지는 것, 우리를 웃게 했던 빛나는 그 모든 순간과 죽음 앞에 서게 될 미래의 필연을 망각하지 않게 하는 것. 그러니 읽을 수밖에. _조해진(소설가)

그런데 이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소설들은 어째선지 환한 빛을 품고 있다. 베란다 밖으로 내다보이는 벚꽃잎들, 글러브박스 안에 든 고양이 인형, 입안 가득 달콤하게 퍼지는 아이스크림…… 별것 아니지만 반짝반짝한, 삶을 삶답게 만들어주는 이 다정한 순간들을 이주영은 섬세한 시선으로 잡아낸다. 그래서 내게 여덞 편의 이야기는 무시무시하고도 반짝반짝했다. 반짝반짝하면서도 슬프고 웃겼다. 다 읽고 나서는 작품 속 누군가처럼 말하고 싶었다. “이제 조금 덜 무섭다”고. _서장원(소설가)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그런 무용함 속에서 탄생했다. 작품의 씨앗은 각기 다르지만, 희미하고 어렴풋한데 어쩐지 지나치고 싶지 않은 마음들, 그러니까 유용함과는 거리가 먼 것들을 곰곰이 들여다보다 지어낸 이야기들이다. 세상의 기준으로 본다면 아무 소득도 없는, 그런 무용한 흔적과 기척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반짝임과 온기가 있고, 그것이 결국 우리를 살게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소설을 읽고 쓸 것이다. 무용함이 주는 이상한 아름다움 곁에 오래도록 머물 것이다.
_「작가의 말」에서

이주영 작가의 첫번째 소설집. 주중에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주말에는 소설을 쓰는 이주영 작가의 여덟 편을 담은 소설집이 드디어 세상과 마주한다. “세상 모든 것에 쉽게 반하고 자주 마음이 변하지만 문학만은 예외”라는 저자는 대학원에서 서사창작을 공부하고 소설을 주제로 하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예외’의 끈을 놓지 않았다. “희미하고 어렴풋한데 어쩐지 지나치고 싶지 않은 마음들”(작가의 말)은 “우리를 웃게 했던 빛나는 그 모든 순간과 죽음 앞에 서게 될 미래의 필연을 망각하지 않게 하는”(조해진 소설가) 서사를 직조해낸다. 시간을 스치듯 지나가는 자잘한 일상을 촘촘하게 훑으며 속수무책으로 맞닥뜨린 불행을 절제된 문장으로 성급하지 않게 풀어낸 작가의 시선은 색다른 이해를 전한다.

문맹, 반공법 위반자, 퀴어, 성폭행범의 가족……. 사회에서 낙인이 찍혀버린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마저 비밀에 부치고 소통할 수 없는 불행의 고통을 고스란히 삼키고 있다. 누구에게 들킬세라 오랜 시간 단 한 번도 소리쳐 울지 못한 이들이 이번 『초록을 지닌 채 우리는』에 등장한다. 사회적 편견 앞에서, 죽음 앞에서까지도 북지불기(踣地不起)의 순간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며 손을 내밀지 못하는 이들의 불행을 저자는, 어떤 순간은 깊이 있게 어떤 순간은 당돌하게, 우리 옆에 누군가의 이야기로 설득해낸다. 이번 작품집은 혹자에게는 위로를 혹자에게는 우리 옆을 둘러보는 공감과 이해의 시간을 마련할 것이다.
저자

이주영

저자:이주영
주중에는라디오프로그램을제작하고주말에는소설을쓴다.대학에서는언론정보학을,대학원에서는서사창작을공부했다.KBS팟캐스트〈요즘소설이야기〉에서한동안요즘소설을소개했다.세상모든것에쉽게반하고자주마음이변하지만문학만은예외다.

목차

디어시스터
산책
이터널선샤인
되는얘기
북해서가
안녕한하루
캠프닉
돌스의사생활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왜하필이면나에게’다가선불행,
‘그나마다행’이라는위로조차건넬수없는이들

“한없이자잘하고누구에게나일어나는,정상적인불행”이있다.누군가의더큰불행을들으며‘그나마다행’이라위로받을수있는불행들이다.하지만“늘어난몸무게,곧닥쳐올승진시험,만기가다가오는마이너스통장처럼큰고민없이남들과공유할수있는걱정거리를가진게축복임을”알고있다면,당신은누구에게도털어놓을수없는불행과마주섰을지도모른다.

「디어시스터」에는평생문맹임을밝히지못한손말임할머니가등장한다.초기뇌경색으로병원에입원한여든넷의외할머니병간호를하게된‘나’는통영에있다는할머니의펜팔친구에게당분간편지를전할수없게된사정을전달해달라는부탁을받는다.통영에내려온‘나’는할머니의펜팔친구‘강정자’할머니의딸윤사장을만나고두할머니가문맹이었고각자의한글학교에서글을익혔고두학교가결연을맺으며펜팔이시작된사실을알게된다.그리고이미세상을달리한강정자할머니의딸윤사장에게서자신의어머니를대신해펜팔을이어갔다는사연과함께할머니가보냈던편지들을전달받는다.삐뚤빼뚤하고맞춤법도틀린할머니의글씨들사이로여태‘괴팍’하게만보였던이해할수없는할머니의행동들을떠올린다.

「산책」에등장하는평범한직장인‘나’는어느날아버지에게서친척병문안에동행할것을요청받고요양병원을향하는차안에서난데없는출생의비밀을듣는다.“속초출신인생부는납북어부라는낙인에더해반공법위반이라는죄목으로2년가까이복역했다.출소한지1년만에얻은자식의미래를연좌제로옭아맬수는없었”던친부모는사회적으로안정적이었지만불행히도아이가없었던생모의이종사촌언니부부인지금의‘내부모’에게아이를맡긴다.명절때나방문한외가에서몇번만났던‘생부’에대한기억은노량진수산시장에서맡았던“몸전체에서풍기는짜고비린냄새”다.고등학교이후입시준비로,취업준비로,여행으로외가방문이뜸해졌고그마저도기억이가물가물하다.마약성진통제로하루하루를채우며남은시간이얼마없는생부의존재를알게된‘나’는그날이후주말마다생부를찾는다.

「안녕한하루」의여원은집안의반대를무릅쓰고호준과결혼했다.호준은“그아래에있으면보호받는느낌이”었고“미래의일을앞당겨걱정하는여원의불안을잠재우고자잘한실수를메워주는것은언제나”그의몫이었다.호준과여원은‘안녕한하루’라는간판을걸고게스트하우스와서점을운영한다.여원의‘안녕한하루’가무너진건“다희의몸에서호준의정액이검출된다음날형사들이게스트하우스로들이닥친날”부터였다.여원이호준의합의금8천5백만원을지불하고성폭력피해자지원단체에5백만원을기부한후호준은징역3년에집행유예4년을선고받고풀려난다.여원은숙취에좋은콩나물국과고등어를구워식탁을차리고하던대로호준은사과를깎고커피를탄다.미용실을함께방문해호준의헤어스타일에대해디자이너와이야기를나눈다.호준과‘하던대로’일상을보내지만발끝까지끌어내린절망감은시시때때로고개를들고만다.다희의SNS를뒤져명예훼손으로걸만한자료를찾아내지만다희를향한적개심이여원의절망감에보상이될수있을까.

「이터널선샤인」에서라디오문화프로그램진행자인‘나’는대중음악평론가안향숙교수의메일을받는다.“저의장례식에초대합니다.”안교수의집을방문했을때그녀는없고오촌조카가안교수의영상을튼다.장례식초대장은담낭암3기진단을받은안교수가안락사를결정하고스위스의안락사지원단체로떠나며예약해둔메일이었다.‘장례식’은안교수사자신이아끼는사람들을불러모아자신이좋아하는음악을들려주고그들을위한식사를대접하도록준비해놓은것이었다.안교수가마지막순간에죽음을선택했는지아무도알수없다.안락사를위해약을주입하는밸브는본인이직접열어야했고안교수는영상을찍었던순간에는“혹시나제가마음이바뀌어서밸브를열지않는다면장례식날,우리반갑게만나요”라며웃고있다.집으로돌아가지않는이들이기다려야하는건‘귀환’일까‘부고’일까.

“입원할날이다가오자내가뭘원하는지를명확하게알게되었어요.나는싫었어요.항암치료의고통속에서하루하루를연명하는것도,언제죽음이닥칠지몰라불안해하는것도요.드디어때가되었구나,싶었습니다.내가죽음에게먼저선수를칠때가.”
_「이터널선샤인」에서

「북해서가」에등장하는지운과지윤은서로의책판매를위해참여한독립출판북페어에서우연히만난다.둘은초등학교6학년시절다른친구들이아이돌에빠져있을때함께넥스트와시인과촌장을듣던사이였다.지운은북해서가(??書家)라는출판사명을걸고알코올의존자자조모임에서만났다는‘골무’와책을팔고있었다.지윤이생각했던지운의중년은“‘강남3구’에못들어간게아니라‘안’들어간,가치지향적인라이프스타일속에부의향기가은은하게스며있는생활”을하는모습이었다.하지만『파산생활자』『개방형정신병동라이프』『이혼세번하면어떻게되냐고요』『공인중개사시험에합격하고전세사기를당했다』『MBTI유형별결혼-이혼방정식』이논픽션만쓴다는지운이파는책제목들이었다.지운이팔고있는것은어쩌면책이아닐지도모른다.

「캠프닉」에인영과현지는현지의2년전죽은동성연인의유골함이있는추모공원에서캠프닉을한다.둘은책방에서진행하는영화감상모임에서만났고젊은나이에얻게된오십견환자라는공통점에서로정보를교환하며친해졌다.인영은사고로부모를잃고서른일곱에미혼인고모에게맡겨져자랐다.더이상고모가자신을사랑하지않는다는것을알았을때고모를떠난인영은“안사랑하게될까봐”좋아하는고양이도못키운다.동성연인의장례식에향을피우고절을하고육개장을먹으면서“조문객이아니라상주니까.유나도내가상주라고생각할테니까”,그래서부의금을넣지않았다고현지는인정받지못하는자신의사랑이두렵기만하다.

“팔을뻗어현지의왼쪽어깨에가만히손을올렸다.그날이후,무엇이이곳으로향한현지의발을그토록묶어두었는지궁금했지만묻지않았다.다만현지의등에도알알이박혀있을근육의파편들을생각했다.보드랍고무른조직이돌처럼굳어갈때까지현지가견뎌왔던것들의정체를.날개뼈가,어깨가,팔이움직일수없도록주위를단단히에워싸고붙들어맨희고딱딱한조각들의기원을.”
_「캠프닉」에서

부정하거나맞서싸우거나,살아남기위한
어쩌면당신의이야기

죽음에선수치겠다며안락사를선택한안교수(「이터널선샤인」)와자신의불행을책으로만들어팔며세상안에서버티는지운(「북해서가」)은그들의불행에맞서싸우고있는지도모른다.캠프닉을하고돌아오는차안에서“나이제조금덜무섭다”고하는현지의말은(「캠프닉」)이들을향한저자의응원같다.손말임할머니와아버지,그리고여원은철벽같은사회적편견앞에서살아남기위해‘부정(否定)’을택한다.여든넷의나이에도가족에게자신이문맹이었음을말하지못한손말임할머니는TV장식장위에차곡차곡쌓아둔“전단지며교회에서준홍보책자,철지난선거공보물”이재활용쓰레기로묶여나가도이해받지못할화밖에낼수없다.그가끝내이야기하지않는것은‘난글자를못읽어’라는말뒤에따라올시선에서자신을지키는방법이지않았을까.(「디어시스터」)보이지않는철창안에갇혀평생을감시받으며살아온아버지는억울하지않냐는아들의질문에“그런생각은가끔하지.만약그때오징어가좀덜잡혔다면어찌되었을까”라고불행은그저불운이었다고말하지만,이것은남겨진자식의미래가조금덜아프기를바라는마음이아니었을까(「산책」).변호사는남편이억울할수있다고하지만,남편은실수였다하지만,그래서하루하루시간이지나면모두잊히지않을까생각도하지만,손가락이물린똑딱이핀에서힘을빼지못하고온몸으로퍼져나가는통증에잠시라도또다른고통을묻고싶은여원역시그것이자신을지키는방법이었을것이다(「안녕한하루」).나를지키기위해,아들을지키기위해어떻게든살아남기위해‘부정’을택한이들에게차마불행과맞서싸우지않고회피했다고말할수있을까.어쩌면회피에도인내와용기가필요할지모른다.만약에그들의불행을알아챈누군가의도움이있다면그인내와용기는불행과마주할수있을지도모른다.저자는불행을무덤속까지짊어질비밀로지키고자하는이들에대한위로도잊지않았다.

“알수없는것을알수없는대로둘수있다면,불쑥치솟는물음들을고요히가라앉힐수있다면여원의삶도언젠가단단히매듭지어질수있을것이다.매매,이사,구직,출근……이런단어들을하루하루쌓아가다보면,그리하여우연히다시만난안녕한하루가한달이되고1년이된다면더는이음매를발견할수없는날이찾아오기도할것이다.”
_「안녕한하루」에서

일상의단편을촘촘하게훑는시선

이번작품집에함께한「되는얘기」와「돌스의사생활」은사는법보다‘뜨는’법을먼저배웠을아이돌세계의단면을‘요새’언어로풀어내며창작자로서의스펙트럼을보여주는작품들이다.마흔의나이로커리어상애매한시기를맞은TV예능국PD12년차선유에게는프로그램의존폐를가를‘한방’이필요하다.몇년을공들여섭외한아이돌MC와2년간진행하는프로그램은청취율이나쁜건아니지만선유에게필요한건‘유지’가아닌‘상승’이다.선유는큰이슈가될만한“법적,윤리적으로문제가”없고“팩트확인이불가능해결론을내지못”할“되는얘기”를만들기로한다(「되는얘기」).라디오프로그램PD인수진은TV예능국에서걸그룹유닛오디션프로그램의결승미션중하나로라디오생방송을계획하고있다는정보를입수하고인맥을동원해섭외를따낸다.그러나청취자전화연결에서돌발상황이발생한다.하지만우려했던것과는반대로방송이끝나고SNS의실시간트렌드순위는1위였다.“방송사고라고해서모든게나쁜건아니었다.”“그때청취자전화를더끌어도되었었나”,뒤늦게그런생각이수진의머리를스칠때우연히엿들은사실에수진은더큰이슈의‘생산’앞에서갈등한다(「돌스의사생활」).

“뭔가를해야한다고되뇌며포털사이트에서메일함으로,다시통화목록으로손가락을분주하게움직였지만뭘해야하는지,아니뭘할수나있는건지알수없었다.맨살이드러난허리와다리를움직일때마다속바지가보이던미니스커트,농도가다른푸른색눈들만어지럽게머릿속을떠돌았다.”
_「돌스의사생활」에서

일상의단편들을촘촘한시선으로훑어온작가의기억들은장면마다비일상의불행에설득력을더하며작품에고요하게몰입시킨다.여기에인물들을샅샅이보여주지않는저자가작품곳곳에만든괄호는이야기따라가기를잠시멈추고그들에게말을걸수있는쉼표같다.이번작품집으로불행에먹히지않기위해혼자만의싸움을치르는이들에게저자의위로와용기가온전히전해지기를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