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재료

비극의 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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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죽음과 어울리는 시간에는
눈이 부셔서 눈을 감았다”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태어난 비극의 시학
핏빛 언어로 그려낸 세계의 초상
‘원성은’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
일상에 신선한 감각을!
교유서가, ‘새로움’에 ‘시’를 더하다!

〉 원성은, 소후에 시인의 시집으로 ‘시의 새로운 문법'을 제시하다
원성은 『비극의 재료』, 소후에 『우주는 푸른 사과처럼 무사해』 동시 출간

그동안 인문학, 교양 분야의 깊이 있는 양서를 꾸준히 출간하며 탄탄한 입지를 다져온 교유서가가 마침내 ‘교유서가 시집’ 시리즈를 론칭하며 시(詩)의 세계로 첫발을 내딛는다. 기존 출판 영역을 확장하고 독자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사유와 감각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다. 그 첫 시작으로 원성은 시인의 두번째 시집 『비극의 재료』를 출간했다. 이 시집은 대산문화재단 대산창작기금 수혜작이다.

세계를 한 폭의 그림이라 한다면,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훼손된 그림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는 원래
훼손된 그림이야 거대한 그림
열쇠 수리공과 자물쇠 도둑이 함께 그린 그림
_「블랙박스 해체하기」

시집을 여는 시 「블랙박스 해체하기」는 원성은이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를 명확히 드러내는 선언문 같다. 세계는 완전하거나 아름답기만 하지 않으며 “훼손된 그림”, 그것도 “거대한 그림”이다. “열쇠 수리공”과 “자물쇠 도둑”이 함께 그린 그림은 선과 악, 질서와 혼돈, 창조와 파괴가 뒤섞인 모순적 구조물이다. 『비극의 재료』는 그 찢긴 캔버스 위에서 다시 붓을 드는 시인의 기록이다. 여기서 시는 세계를 복원하는 대신 손상된 미학을 탐구한다. 시인은 아름다움을 완성의 상태로 보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부서지고, 번지고, 엎질러진 흔적 속에야 진실이 깃든다고 믿는다.
저자

원성은

저자:원성은
1992년대구에서태어났다.2015년[문예중앙]으로시를발표하기시작했다.현재초코는고향에서부모님과생활중이다.시집으로『새의이름은영원히모른채』가있다.


*시인의말

함께좋아하고싶은것이있는것처럼
혼자서만좋아하고싶은것도있다

오롯이독대하고싶은사람,시간,
배타적인사랑,아무도모르고
나눌수없는슬픔

그런것들과같이

시는내게는공공연해지지않는것

2025년10월,원성은

목차

시인의말

1부|세계는원래훼손된그림이야

블랙박스해체하기
의상실
제논,개구리,전갈
개미를삼등분하시오
로코코식부사와형용사
파우스트엔딩
의자가생겨뒤늦은초대장을보냅니다
버터와냉장고
왕의초상화위에파리가앉았네
훅훅레프트훅카피레프트와불한당들의세계
레몬을변호함
케첩과피사이의붉은자국
오브제
변증법적인거울
폭우
색맹
사물A
재난영화
일방통행
파종
청개구리와이끼테라리움
은유적블랙홀의사례

2부|붉어지지말랬지

뱀파이어
어둠에서벗어나기
그림자,아닙니다
구름창조자
루만의메모상자
자화상못그리는사람
육식빨강맨드라미
적록색맹
비극의재료
악몽측량사

삶과살
신비는물을좋아한다
세컨드윈드
기적없이
0과1의산책
누빔점
안테나
악성루머
검은백조
아리아드네의칼과붉은실
거장과시계수리공
안긴문장과안은문장

3부|이별의색깔은밤

팬터마임
교실
병원대기실에서폭포영상을틀어주는이유
betweenthedevilandthedeepbluesea
샥스핀
둥근사각형
미싱링크
죽은화분
이기적유전자
붉고캄캄한흙속에묻혀서,누워서
림보:404NotFound
재현의윤리
선악과
뤼미에르
나무를죽이고싶어하는사람이나뭇잎을떼어낸다.하나하나손으로.정성스럽게.
“내가마지막으로눈물을흘려본게언제였는지기억이안나”

해설|언어-오브제|선우은실(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재료1:색

『비극의재료』의인상적인장면들에는언제나색이있다.그러나그색은명료하지않다.「색맹」에서는“흑백영화에서는불이더환하게타요/물도더환하게흘러요/그리고피는그어느때보다도캄캄하지요”라말하며,감각의불안정함을시각의문제로치환시킨다.명암과색채는단순한시각적요소가아니라감정의구조를드러내는미학적장치다.‘비극’이란그자체가어둠이아니라,빛을감지하기위한조건이라는점을시인은알고있다.

「케첩과피사이의붉은자국」에서는“화면에서는케첩도,피도모두붉은물감일뿐”이라말한다.피와케첩,폭력과예술,진짜와가짜의경계는모호하다.시인은이‘유사한붉음’을응시하며현실과재현의틈을탐문한다.그런의미에서원성은의시에서비극은사건의내용이아니라재현의문제다.“이장면을쓰지않기로결심한후에/집에오자마자쓰고있는나”라는구절은그자각의순간을보여준다.그리고원성은의시는그러한자각을미학으로바꿔놓는다.

재료2:불화

레몬을제외한것들,정확히는
오렌지와유사한종들만
담아놓은과일바구니가있어

낑깡,금귤,유주,한라봉,천혜향
오렌지,오렌지,오렌지
그리고이건그리고,라는부사의사용처럼
불쑥끼이는레몬이야

낄데안낄데를모르는레몬이야

캘리포니아의쨍한햇살같은맛
해바라기처럼촘촘한밀도의빛
오렌지
그러나이건그러나,라는찡그림처럼
신맛의레몬이야

(…)
그리고,그러나,그래서

레몬은레몬이기를멈추지않았다
씨앗도열매도모두돌이킬수없어져서
흙속에서무럭무럭
나뭇가지끝에서주렁주렁

레몬은레몬이었다
_「레몬을변호함」

『비극의재료』의시들은조용한불화를지속한다.「레몬을변호함」의달콤한오렌지들사이에서홀로시큼한레몬은달콤함의질서에서벗어난존재다.시적화자는레몬을질서에편입시키려하는대신,그신맛을변호하며불협화음과비정상을옹호한다.세상의중심에서밀려난언어와사람,틀린문장과비뚤어진감정을감싸안는다.이불화의미학은「적록색맹」에서도이어진다.“이곳에서는색맹이유행한다/야생동물들은원래싸움을좋아하지않았지만/어느날부터포식자의눈에초록색의나뭇잎과풀모두/붉은핏물이묻은것처럼/보이기시작한다그것을전쟁이라고부른다”.초록과붉음의혼동,즉감각의왜곡은곧세계의윤리적혼란을반영한다.또한「사물A」에서“사물은사람을대체한다”라고선언하듯,인간중심의질서를벗어난비인간적감각의언어가등장한다.시인은언어와세계가서로를이해하지못하는지점에서오히려새로운의미의가능성을발견한다.

“여기저기치이는존재에대한옹호는그존재가특정한상황을희망으로이겨낸다는역전을꾀하는대신,여전히그런세상에그런채로지속되고있다는인식에도달하여빛난다.”(「해설」)원성은의시는‘여전히그런채로’의세계를품는다.시와세계가서로를해체하며만들어내는불완전한조화가이시집이구축한언어의윤리다.

재료3:죽음

“내가죽였다”
여자는이렇게쓴작은나무판과함께
죽은화분의사진을액자에걸어두었다
죽은화분의이름은수경이었다
그렇게하면살아있는수경이가정말죽기라도하는
것같았다
_「죽은화분」

『비극의재료』의많은시는소멸과변형의순간을응시한다.「죽은화분」에서죽음은단순한상실이아니라기억이형상화되는장면이다.“내가죽였다”라는문장은선언이자주석처럼죽음을언어로봉인하려는것같다.시적화자는그장면을차분히관찰할뿐애도나감정의폭발로나아가지않는다.죽음은이미액자속에들어간하나의오브제가되었고,그오브제를바라보는시선은살아있는자의증거가된다.

죽음을그리려고할수록
화가의손은민첩해야한다
꽃이시드는속도,깎아놓은사과가갈변하는속도,신선한치즈가부패하는속도,곰팡이가번지는속도,그리고
사랑의심장박동과시곗바늘이
원래속도를찾아가는속도
_「림보:404NotFound」

「림보:404NotFound」에서는죽음을멈춤으로보지않는다.꽃이시드는속도,사과가갈변하는속도,치즈가부패하는속도그리고사랑의심장박동과시곗바늘이원래속도로돌아가는속도.죽음은정지의상태가아니라시간의미묘한변화로나타난다.죽음은종결이아니라모든사물이‘원래의속도’를찾아가는과정이다.부패하고변색하며사라지는일은곧세계가스스로를갱신하는운동이다.『비극의재료』의죽음은그래서정지된사건이아니라,언어가다시움직이기시작하는기점이다.시인은멈춘것을응시하면서도그안에서움직임을감지한다.그것이원성은의시가보여주는비극의새로운감각이다.

『비극의재료』는하나의거대한그림이다.완전하지않고,복원되지않으며,여전히훼손된채로남아있는세계를담았다.시인은얼룩과균열,실패와부조화의흔적을그대로두고,그위에새로운선을긋는다.원성은의시는세상을치유하려하지않는다.대신지속적으로관찰하고부서진언어로기록하는일을택한다.그렇게그는비극을미학으로전환시킨다.

시인의말

함께좋아하고싶은것이있는것처럼
혼자서만좋아하고싶은것도있다

오롯이독대하고싶은사람,시간,
배타적인사랑,아무도모르고
나눌수없는슬픔

그런것들과같이

시는내게는공공연해지지않는것

2025년10월,원성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