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선물 (농화학자 박노동 시인의 에스프리 2)

시간의 선물 (농화학자 박노동 시인의 에스프리 2)

$18.00
Description
농화학자 박노동 시인의 산문집
자연과 인문을 아우르는 균형 감각과
시인의 예리한 직관을 읽는 매력
저명한 농화학자이자 시인인 박노동 씨가 두 번째 산문집 『시간의 선물』(문학들)을 펴냈다. 10여 년 전 출간해 주목받은 산문집 『존재의 초상』과 짝을 이루는 책이다. 자연과 인문을 아우르는 균형 감각과 시인의 예리한 직관이 간파해 낸 삶의 지혜가 곳곳에서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흔히 기체나 액체를 분리하는 크로마토그래피 분석 기기를 앞에 두고 “십의 마이너스 십이승(10-12) 그램까지 검출한다면, 그 그물망에 잡히지 않는 그 나머지는 무엇이지?” 하는 친구의 물음에 그는 답한다. “자유라네. …검출해내지 못하는 미세한 잔량, 수치화되지 않는 그 여백, 그것이 바로 자유라네.” 그러고선 이렇게 적었다.

이건 분석화학기술 너머의 이야기다. 자유를 정량 분석할 수 없듯이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하다. 기기의 감도가 높아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절대적 자유는 멀어진다. 자유는 정량 분석할 수 없거니와, 오히려 측정기 밖의 영역으로 남겨두어야만 하는 고귀한 미지의 영역이다.(「식자우환의 자유」 본문 19쪽)

인간에게 미지의 영역은 도전의 영역이자 결코 정복할 수 없는 절대의 영역이다. 중요한 것은 그 차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불완전한 존재가 완벽하다고 착각할 때 저지르게 되는 오류와 위험을 그는 평생 실험을 통해 체득해왔을 것이다. 미지의 영역이 갖는 양가성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는 자세는 이번 산문집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여기 사과 한 알이 놓여 있다. 그 속에 들어 있는 씨알은 셀 수 있으나 그 씨알이 품고 있는 사과의 수는 결코 다 셀 수 없다.(「아프락사스의 정원」 본문 13쪽)

자연과학자의 삶과 인문적 사유가 결합된 그의 독특한 균형 감각에 빛을 더하는 것은 시인다운 직관적 언어다. 그는 아는 것은 안다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간명하게 쓴다. 그가 확실히 안다고 고백한 것은 “태어났다는 것” “죽는다는 것”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와 현재를 철학적으로 집약한 표현이다.

나의 죽음은 먼저 간 사람들을 통하여 확증되어 있지만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죽음과 탄생 사이에서, 되풀이되는 작은 부활과 작은 몰락. 그 위험한 사이에서 순간열차에 올라탔다는 것뿐.(「아프락사스의 정원」 본문 15쪽)

그가 대상을 다루는 방식에도 눈여겨볼 만한 개성이 있다. 그는 사스, 에볼라, 메르스 등 전염병의 원인을 ‘자연의 복수’라고 진단하면서 신라 헌강왕 때의 향가 「처용가」를 끌어와 설득한다.

괴질을 절제와 체념을 담은 노래와 춤으로 극복했던 처용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생략) 처용은 섣부른 과학 기술보다 원초적인 생명 유대감을 더 긍정했던 것 같다. 거기서 우러나오는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연민의 정이 자연의 복수를 누그러뜨리는 특효약이 될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자연의 복수 앞에서」 본문 210~211쪽)

이 역시 자연과 인문을 넘나드는 그만의 소양이 낳은 방식이다. 이집트무덤박쥐를 서식지에서 몰아낸 데서 바이러스의 재앙이 시작되었으니 이제는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연민의 정이 자연의 복수를 누그러뜨리는 특효약”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문체의 아름다움이다. 대체로 간명한 그의 글은 때때로 긴 호흡의 만연체를 이루는데, 이는 저자의 다분한 의도로 읽힌다.

거기는 쉬임없이 흘러 내려가는 맑은 물줄기와 바위를 감싸고 부서지는 잔물결의 자연 음악이 있고, 나는 본 적이 없긴 해도 어른들의 말을 빌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정하게 돌고 있었다는 물방아거리의 물레방아 돌아가는 소리도 함께 하모니 되는 것 같을 뿐만 아니라 바짓가랑이를 걷고 냇물을 거슬러 물결을 차며 걸어오를 때의 부딪혀오는 물결의 촉감과 소리가 합수(合水)되는 것도 같으며, 바람이라도 조금 불면 가까이 대숲에서 서걱거리는 것이 있어 마치 지상의 갖은 먼지와 더러움과 아픔과 능욕과 붉은 욕망 등을 싹 쓸어서 멀리 국사봉(國師峰)이나 억불봉(億佛峰)쯤으로 소지(燒紙) 태워 올리는 환청에 빠지도록 나를 깊이 끌어당기는 보이지 않는 인력이 미쳐오는 것이다.(「감기의 끝자락에서」 본문 250쪽)

세상일에 지쳐 부모님을 찾아가는 그가 고향의 물줄기를 연상하는 대목이다. 마치 물소리처럼 문장에 음악이 흐른다. 말의 가락 그대로 시냇물이 흐르고 물레방아가 돌아간다. 대숲이 서걱거리고 산봉우리들이 다가온다. 고향은 그렇게 ‘나’를 점점 강하게, 가깝게 끌어당긴다. 이쯤이면 바짓가랑이를 걷고 냇물을 거슬러 오르는 이는 더 이상 저자가 아니라 독자다.
이 책은 저자가 1980년부터 최근까지 틈틈이 써온 글을 추려 총 6부로 엮었다. 제1장 〈사색과 성찰〉에서는 존재론적 사유를 통해 보다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궁구한다. 제2장 〈비평과 예의〉에서는 전쟁과 독재, 코로나19 사태 등을 통해 더욱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한 길을 모색한다. 제3장 〈문학과 존재〉에는 산행과 답사 등 생활에서 얻은 수상과 깨달음을 담았다. 제4장 〈농업과 생명〉에는 오랫동안 전남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로 활동하면서 우루과이라운드 등 당시 어려웠던 우리 농촌의 현실과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제5장 〈환경과 생태〉에서는 사스, 에볼라, 메르스 등의 전염병, 새집 증후군, 식량 문제 등 환경 파괴로 인한 지구적 위기와 모든 생명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생태적 대안을 적었다. 제6장 〈고향과 기억〉에서는 가족과 고향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맺는 인연을 되돌아보며 삶의 근본적인 의미를 성찰한다.
저자는 전남 광양 출신으로 서울대 농화학과 및 동 대학원(농학박사)을 졸업한 후 전남대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로 정년했다. 현재 전남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중국청도농업대학교 객좌교수로 있다. 산문집 『존재의 초상』, 시집 『검돌베개 고요쯤에』, 『우간다 카페』를 펴냈다.
저자

박노동

전남 광양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농화학과 및 동 대학원(농학박사). 전남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학장, 전국국공립농학계대학장협의회 의장, 한국응용생명화학회 회장, 한국키틴키토산학회 회장, 농촌진흥청 혁신추진단 공동단장, 전남지역농업특성화교육사업단 단장, 전국농림기술개발연구사업단장협의회 회장, 농림수산식품과학기술위원회 위원, 농업기술실용화재단 이사, 과학기술부 글루코사민당류소재 국가지정연구실 단장, 작물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정년 후 우간다 나카송골라 소재 Livingstone Farms의 농장장으로 일하였다. 현재 전남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중국청도농업대학교 객좌교수로 있다. 산문집 『존재의 초상』, 시집 『검돌베개 고요쯤에』, 『우간다 카페』를 펴냈다.

목차

작가의 말 · 0401 사색과 성찰아프락사스의 정원 · 13
식자우환의 자유 · 17
스스로 유폐를 선택한 자여! · 20
나는 누구를 위해 사는가 · 23
먼동이 터올 때 · 26
울음 · 28
웃음 · 30
지식의 늪을 지나 지혜의 식탁으로 · 32
게으름 예찬 · 34
어르신의 시간 · 37
장수, 120년의 고독 · 40
고슴도치의 겨울잠 · 42
두려움에서 시공을 넘어선 불꽃이 · 45
들풀처럼 나무들처럼 · 48
용지에는 검은 물이 그득하고 · 51
이제 나는 그저 나다 · 54
참나무 아래서 · 56
02 비평과 예의자유주의 · 61
상식인에게 말을 걸다 · 63
전쟁의 불꽃이 신성한 생활전선을 · 69
거룩한 불한당 · 72
상식, 그 준엄한 목소리 · 74
전대론 1981 · 78
전후 세대에게 보내는 박수 · 82
빨리빨리증 · 84
돈이 충고해준다 · 88
돈의 교주여, 우리는 지혜로운가 · 92
도둑을 변론하다 · 95
내 유전자를 누가 훔쳤나 · 98
종지와 개시의 대전환점 · 101
03 문학과 존재지혜의 파우스트 · 105
어느 농화학자의 밀레니엄 보고서 · 107
자연에 관한 다섯 가지 의식작용 · 110
성, 그 유연한 관계의 미학 · 118
재미 · 121
시간의 다리 · 124
가을 안개 · 127
기다림이 시가 되다 · 130
네모 칸의 선언 · 132
내 앞에는 친구 등짝이 없었다 · 135
살 만한 정토 가거도 답사기 · 138
택견과 대금 · 150
대명매의 일생을 생각하면서 · 153
진허의 공간들 · 156
감기와 질마재 신화 · 159
조문 · 162
어머님들은 다녀가셨습니까? · 163
04 농업과 생명고시레와 그린음악 · 171
오래된 농부는 신세대다 · 175
친환경 농업은, 있다 · 178
농업이여, 농민이여, 불사조여 · 181
배추 5포기의 무게 · 184
친구 따라 강남 간다지만 · 187
포항제철의 유리온실 · 190
호남평야의 소나무 숲과 셰익스피어 · 193
05 환경과 생태누가 와야 한다 · 199
벌을 유혹하지 못하는 불구의 꽃들 · 203
이집트무덤박쥐를 위한 변명 · 206
자연의 복수 앞에서 · 209
지구 집 증후군 · 212
녹색절약 · 215
우리는 화석 연료를 먹고 마신다 · 218
환경 위기 극복을 위한 일상의 위대한 실천 · 222
배부른 후에 · 225
06 고향과 기억그 손 · 229
성좌와 부름켜의 기억 · 231
생명의 한가운데 · 234
집착 · 239
인연은 끝이 없다 · 241
바닥골의 엇박자 쓰레기 매립장 · 246
감기의 끝자락에서 · 249
고향의 흙내음과 세외청음 · 254
매화, 매실, 그리고 광양 · 257
청매실농원 제품의 역사적 뿌리와 계승 · 263
흰 꽃 속에 맺힌 푸른 눈물 · 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