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의 진짜 의미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현대인은 대개 두 개의 상반된 모습의 연기를 한다. 하나는 타인의 부러움을 사기 위해 무대 중앙으로 나서려는 ‘전시적 성공’의 삶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기대를 회피한 채 무대 구석으로 숨어드는 ‘소확행’의 삶이다. 정신과 의사로서 저자는 사실상 이 둘이 동일한 정신적 층위에 있다고 비판한다. 특히나 십수 년 전부터 유행처럼 번진 소확행과 힐링이라는 것도 결국 현실의 냉혹함과 필연적 고통을 마취하는 일시적 마취제일 뿐이며, 타인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저버리지 않는 성숙한 어른에게는 지속 불가능한 미성숙한 생활방식이라는 주장이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담론의 또 다른 해석도 있다. 내가 배우라면, 나를 지켜보는 진짜 관객은 동일한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동료 배우(타인)가 아니라 ‘객석에 앉아 있는 나의 내면’이라는 것이다. 나의 내면이 내가 써 내려가는 삶의 서사에 몰입하고 경탄할 수 있도록, 삶의 역경 속에서도 도덕적·실존적 붕괴에 빠지지 않고 ‘영혼의 탁월함(아레테)’을 실천하는 것이 인생의 참된 목적임을 역설한다.
현대인의 행복 강박증 비판
저자는 현대 사회가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만들어낸 ‘행복에 대한 강박(The Obsession with Happiness)’을 심도 있게 파헤친다. 오늘날 대중이 열망하는 ‘행복(Happiness)’의 어원을 추적하면, 원래 바이킹의 해적 용어인 ‘Happ(뜻밖의 행운, 운수대통)’에서 기원했다. 고대나 중세에 행복이란 인간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운이 좋은 상태’를 뜻했다. 그러나 근대 철학자 홉스(Hobbes)와 로크(Locke)를 거치며 행복은 ‘욕망의 연속적 달성’으로 재정의되었고, 현대 자본주의 마케팅과 만나면서 “불안을 느껴서는 안 되며 항상 즐겁고 만족스러워야 한다”는 집단적 강박으로 변질되었다. 현대인은 행복하지 않은 상태를 이상 징후나 개인의 실패로 규정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책은 ‘항상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행복의 강박이 오히려 현대인의 영혼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비판한다. 슬픔, 불안, 억울함, 고통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지 못하고, 이를 한시바삐 퇴치해야 할 ‘질병’이나 ‘오류’로 치부하게 만든다. 삶의 필연적인 고단함 속에서도 “나는 왜 남들처럼 행복하지 못한가?”라며 스스로를 재단하는 이중의 통증(Meta-pain)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행복을 삶의 최고 목표로 삼는 순간, 역설적으로 인간은 가장 깊은 불행의 늪에 빠진다”고 경고하며, 행복이라는 가짜 마취제 대신 고통을 묵묵히 통과하는 ‘실존적 의지’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통의 중력’과 내면 근력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고통의 중력(The Gravity of Pain)’은 삶에 동반되는 필연적 괴로움, 손실, 질병, 타인과의 갈등,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물리적 중력에 비유한 개념이다. 우주 공간의 거대한 가스 구름은 만약 중력이 없다면 무한히 흩어져버릴 뿐 결코 빛나는 별이 될 수 없다. 인간의 영혼과 삶 역시 이와 동일하다. 삶이 우리 어깨 위에 내려놓는 과중한 책임과 고통스러운 역경은 나를 짓누르는 거대한 중력이다. 이 고통의 중력을 피하거나 행복의 강박으로 마취하려 하지 않고 꿋꿋이 견뎌낼 때, 내면 중심부의 정신적 압력이 높아지며 소크라테스가 말한 ‘아레테(영혼의 탁월함)’라는 빛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한편, 저자는 현대 정신의학 및 대중문화가 남발하는 ‘트라우마’, ‘PTSD’, ‘상처받은 내면 아이’ 담론을 철학적·진화심리학적으로 집요하게 비판한다. 모든 상처와 서운함에 ‘트라우마’ 딱지를 붙이는 행위는 가해자로부터의 완벽한 보상이나 사과 없이는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무기력한 ‘영원한 피해자’ 상태에 자신을 가두는 결과를 낳는다. 넷플릭스 드라마, 최근의 일본 애니메이션, 순수 문학에 이르기까지 입체적인 캐릭터를 창조할 능력이 없는 게으른 창작자들이 ‘가짜 깊이’를 주입하기 위해 트라우마 플래시백을 남용하는 현상을 ‘문화적 반달리즘’이라 비판하며, 고난을 딛고 우뚝 서는 『레 미제라블』의 장 발장과 같은 위대한 회복탄력성 서사의 부활을 촉구한다.
이처럼 『드라마토스, 고통의 중력』은 고대 철학에서부터 현대 뇌과학, 정치철학, 천문학, 문학 비평을 넘나드는 총체적 지적 탐구를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해 비참해하는 이들, 행복해야 한다는 시대적 강박 속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단단하고 고귀한 정신적 근력을 선물하는 실존 철학서이다. 특히나, 타인의 시선과 소셜미디어의 비교 문화 속에서 자존감을 잃고 피로감을 느낀다면, ‘항상 행복하고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시대적 강박에 지쳐 삶의 진짜 중심을 잡고 싶다면, 과거의 상처나 인간관계의 괴로움에 매여 삶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싶다면, 삶이 부여한 무거운 책임과 역경 속에서 진정한 내면의 가치와 성숙의 길을 찾고자 한다면 삶의 방향과 태도를 전환해주는 강한 동기부여를 해줄 것이다.
책 속에서
내 내면이 관객으로 지켜보는 앞에서, 무대 위 다른 등장인물로부터 부러움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에만 골몰하는 관심병자로 전락하지 말아야 한다. 나와 엮인 다른 등장인물들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고 자신만의 좁아터진 소확행의 동굴로 도망쳐 소소한 도파민 분비만을 끝없이 챙기지 말아야 한다. _17쪽
과거가 불운했다는 것이 오늘의 내가 비겁하거나 무책임해도 된다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는 피해자로 자신을 규정하고 타인으로부터 기어이 사과받고 보상받아야만 내 실존이 구원받는다는, 트라우마라는 이름의 올가미를 우리는 있는 힘껏 끊어내야 한다. _87쪽
‘고통의 중력’을 오랫동안 견뎌내며 끝내 무게와 리얼리티를 획득한 삶에는 ‘한없이 가벼운’ 도파민 추구와는 전혀 다른 원리에서 생겨나는 ‘뿌듯함’과 ‘충만함’이 있다. 그 느낌은 주어진 책임을 감당하는 ‘고통의 중력’을 통해 삶의 무게를 획득하려는 갈망이, 더 무게 있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근원적 소망이 우리의 내면에 존재한다는 증거다._238쪽
샌델의 딜레마 강의가 끝난 샌더스 극장에는 소크라테스의 엘렌코스와 달리 오직 교수 한 사람을 향한 박수갈채만이 남는다. 샌델은 ‘겸손’과 ‘연대’를 입버릇처럼 외쳤지만, 강단 위에서의 지적 스포트라이트와 천 명의 학생이 보내는 경외심만은 철저히 사유화하고 ‘독점’했다. _319쪽
하라리의 치명적인 철학적 오류는 통계적 방법론으로 만들어졌으며 인간이 그 작동원리를 완벽히 장악하고 있는 ‘현상계의 기계’일 뿐인 인공지능을 보며, 그 데이터 처리능력의 거대한 복잡성에 압도된 나머지 인공지능의 배후에 인류를 지배할 능력을 지닌 파악 불가능한 칸트적 ‘물자체’가 숨어 있다고 착각한 데 있다. _4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