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미니북(1774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초판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미니북(1774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6.49
Description
“운명이여, 나는 왜 이리도 행복하고 왜 이리도 불행한가!
정녕 나보다 행복한 이도 없고, 나보다 비참한 이도 없구나!”

청춘의 질풍노도의 마음, 그 강렬한 열정과 휘몰아치는 감정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표현한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단테, 셰익스피어와 함께 세계 3대 시성으로 꼽히는 괴테의 자전적 소설
“나는 체험하지 않은 것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줄의 문장도 체험한 것 그대로 쓰지는 않았다”는 말처럼, 주인공 베르테르는 괴테 자신이자, 우리 ‘상처받기 쉬운 영혼’들의 초상화와도 같다. 사랑과 도덕, 광기와 이성,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뇌하는 베르테르에게 우리가 공감하는 이유다. 편지글로 이루어진 구성이, 마치 베르테르가 직접 독자에게 고백하는 듯해서 더욱 강렬하게 몰입하게 된다.

괴테는 법학을 전공하고 베츨러라는 도시에서 법무 실습을 시작했던 어느 봄날, 동료 케스트너의 약혼녀인 샤를로테를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는 괴로워하다가 상심한 마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반년쯤 지나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또다른 동료였던 예루잘렘이 결혼한 여인에 대한 연정으로 괴로워하다가, 바로 케스트너의 권총을 빌려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 그로부터 약 2년 후,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집필했다. ’여행을 떠날 예정인데 권총을 빌려 주시겠소?’라는 예루잘렘의 메모 내용이며 자신이 겪었던 사랑의 열병을 그대로 담아낸 자전적 소설이었다.

유럽의 젊은이들은 25세 젊은 작가의 작품에, ‘베르테르의 파란 연미복과 노란 조끼’ 차림에 열광했다. 프랑스혁명의 기운이 익어가던 시기(1789년으로부터 15년 전), 교회의 권위에서 벗어나 계몽주의 교육을 받았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사회적 신분(왕족-귀족-평민)’에 가로막혀 답답해하던 젊은이들은, 누구보다 순수하게 사랑하고 뜨겁게 고민하고 결국에는 사회적 금기를 깨뜨리며 틀에서 탈출하는 베르테르를 자신들과 동일시했던 것이다.
저자

요한볼프강폰괴테

JohannWolfgangvonGoethe.1749-1832

1749년8월28일프랑크푸르트에서부유한집안의장남으로태어났다.어렸을때아버지의감독아래라틴어,그리스어,불어,이탈리아어,영어,히브리어를배웠고,미술,종교,음악(피아노,첼로),그리고승마와사교춤도배웠다.라이프치히에서법대에진학,졸업후에는프랑크푸르트에서작은변호사사무실을열었지만,문학에대한열정이더컸다.이때쓴≪괴츠폰베를리힝겐≫은‘질풍노도’시대를여는작품으로독일에서뜨거운논쟁이벌어졌는데,독일에서드라마의전통적규범으로여기던프랑스고전주의극을따르지않고최초로영국의셰익스피어극을모방했기때문이었다.≪젊은베르테르의슬픔≫이발표되자일약유럽의스타작가가되었다.바이마르(Weimar)의카를아우구스트(KarlAugust)공작의초청을계기로예술적인바이마르로이주,수년간국정수행에관여하다가심신이지쳐서1년9개월동안이탈리아를여행하는데,이때고대예술에심취해서작품성향이고전주의적으로변모한다.실러의격려로≪빌헬름마이스터의수업시대≫,≪헤르만과도로테아≫및≪파우스트≫도1부를쓰는데,실러가46세로과로사하자큰충격을받는다.1815년나폴레옹이권좌에서물러나자바이마르공국은영토가대공국으로확대되고,괴테는수상의자리에앉아문화와예술분야를관장했다.1823년≪마리엔바트의비가≫를쓴이후로괴테는대외활동을자제하고저술과자연연구에몰두해대작≪빌헬름마이스터의편력시대≫(1829)와≪파우스트2부≫(1831)를집필한다.1832년3월22일심장발작으로사망하고,나흘뒤에바이마르의카를아우구스트공작이누워있는왕릉에나란히안치되었다.

목차

제1부
제2부

역자후기:독일문학의거장괴테의자전적소설,사랑의열병으로고뇌하던젊은베르테르의이야기
요한볼프강폰괴테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