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왜 또 한 권의 『위대한 개츠비』인가

반복되어온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고 피츠제럴드의 문장으로 돌아간 새로운 번역

오랫동안 한국 번역의 파수꾼이었던 번역가, 『위대한 개츠비』로 번역 인생의 2막을 시작하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서커스출판상회의 세계문학 시리즈 서커스 세계문학으로 출간되었다.
1925년 출간된 『위대한 개츠비』는 20세기 미국문학뿐 아니라 영어권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인 동시에 한국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외국소설 가운데 하나다. 이미 수많은 번역본이 존재하는 작품을 다시 번역한다면 가장 먼저 따라오는 질문도 자명하다. 왜 또 『위대한 개츠비』인가?
이번 번역은 그 질문을 피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고전이 여러 차례 번역되었다는 사실이 반드시 번역의 정확성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먼저 나온 번역의 해석이 하나의 관습처럼 굳어지고, 때로는 잘못된 해석까지 여러 번역본에서 되풀이된다. 새로운 번역이 필요한 이유는 새로운 문장을 하나 더 보태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무 익숙해져 더 이상 의심하지 않게 된 문장을 원문으로 돌아가 다시 읽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저자

F. 스콧 피츠제럴드

F. Scott Fitzgerald, 1896~1940
1896년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 태어났다. 프린스턴 대학을 중퇴하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입대했으며, 군 복무 중 젤다 세이어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1920년 첫 장편 『낙원의 이편 This Side of Paradise』이 성공하면서 스물네 살의 나이에 일약 유명 작가가 되었고 같은 해 젤다와 결혼했다.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 The Beautiful and Damned』(1922), 『재즈 시대 이야기 Tales of the Jazz Age』(1922) 등을 발표하며 전후 미국 젊은 세대의 욕망과 환멸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리츠만 한 다이아몬드 The Diamond as Big as the Ritz」, 「겨울 꿈 Winter Dreams」을 비롯한 수많은 단편에서도 부와 젊음, 사랑과 성공의 황홀한 매혹과 그 이면의 공허와 몰락을 끊임없이 변주했다. 1920년대 미국을 가리키는 ‘재즈 시대Jazz Age’라는 이름을 널리 퍼뜨린 인물이기도 하다. 1925년 자신의 모든 작품을 뛰어넘겠다는 야심으로 거듭 고쳐 쓴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를 발표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과거를 되찾으려는 한 남자의 열망을 통해 부와 계급, 욕망과 기억, 아메리칸드림의 황홀함과 그 파멸을 짧고 정교한 소설에 응축했다. 출간 당시에는 기대만큼 성공하지 못했으나 사후 극적인 재평가를 거쳐, 오늘날 미국 문학의 경계를 넘어 20세기 영어권 문학이 낳은 가장 위대한 소설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1934년 『밤은 부드러워 Tender Is the Night』를 발표했으나 젤다의 정신질환과 자신의 알코올 의존, 경제적 곤궁으로 어려운 말년을 보냈다.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며 『마지막 거물 The Last Tycoon』을 집필하던 중 1940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피츠제럴드가 그토록 매혹되었던 부와 젊음과 사랑의 찬란한 허상, 그리고 그 허상이 무너지는 순간의 아름다움은 『위대한 개츠비』에서 가장 완전한 형태를 얻었다.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옮긴이의 말

출판사 서평

사랑과 돈, 계급과 욕망,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관한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이야기는 1922년 여름, 미국 중서부 출신의 청년 닉 캐러웨이가 채권업을 배우기 위해 뉴욕으로 오면서 시작된다. 롱아일랜드 웨스트에그에 자리 잡은 닉의 옆집에는 주말마다 성대한 파티를 여는 정체불명의 백만장자 제이 개츠비가 살고 있다. 그의 저택에는 초대받았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밤마다 몰려들고, 술과 음악이 넘쳐흐르는 가운데 주인에 대한 온갖 소문이 떠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세계의 중심에는 뜻밖에도 단순한 소망 하나가 있다. 개츠비는 오래전 사랑했던 데이지를 되찾으려 한다. 데이지가 사는 집의 선착장 끝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초록색 불빛을 바라보며 그는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믿는다.
닉이 과거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고 말하자 개츠비는 놀라서 반문한다. 과거를 되풀이할 수 없다니? 물론 할 수 있다고.
이 무모한 믿음 때문에 개츠비는 우스꽝스럽고 위험하며 동시에 아름답다. 그는 단순히 부자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아니다. 가난한 청년 제임스 개츠는 스스로 제이 개츠비라는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냈고, 마침내 돈으로 사랑뿐 아니라 시간까지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현실이 자신의 꿈과 어긋날 때 꿈을 수정하는 대신 현실을 꿈에 맞추려 한다.
그래서 『위대한 개츠비』를 단순히 ‘아메리칸 드림의 허망함’을 고발하는 소설로만 읽기는 어렵다. 사랑과 돈, 계급과 욕망에 관한 소설인 동시에 인간이 잃어버린 시간과 어떻게 관계 맺는가에 관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끊임없이 과거를 돌아보고, 손에 닿지 않는 것을 향해 다시 팔을 뻗는 인간의 모습이 개츠비의 비극 속에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피츠제럴드의 문장이다. 개츠비 저택의 밤과 재즈 시대의 뉴욕, 재의 골짜기, 데이지의 목소리, 초록색 불빛 같은 이미지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소설 곳곳에 등장했다가 변주되고 서로 호응하면서 욕망과 계급, 기억과 시간이라는 주제를 하나의 촘촘한 그물망으로 만든다.

단어 하나가 바뀌면 소설의 표정이 달라진다

이번 번역이 특히 주의를 기울인 것도 바로 이 문장과 이미지의 연결이다.
소설 초반, 이제 막 채권업에 뛰어든 젊은 닉은 금융 서적뿐 아니라 여러 분야의 책을 읽어 다시 “well-rounded man”, 즉 여러 방면에 두루 능한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인간을 “the most limited of all specialists”라고 부른다. 기존의 여러 번역에서는 이 대목의 limited를 ‘보기 드문’, ‘드문’, ‘희귀한’ 등의 의미로 옮겼다. 마치 닉이 자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을 아무나 도달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로 높이 평가하는 것처럼 읽힌다. 그러나 limited는 여기서 ‘희귀한’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제한된, 한계가 있는’이라는 뜻이다.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하겠다는 젊은 시절의 야심을 훗날의 닉이 돌아보며 “전문가들 가운데 가장 한계가 분명한 전문가”라고 자조하는 것이다. specialist와 limited가 충돌하면서 생기는 형용모순과 반어가 이 문장을 지탱한다. 단어 하나의 차이지만 결과는 작지 않다. limited가 ‘희귀한’으로 바뀌는 순간 자조는 자부가 되고, 반어는 포부가 된다. 이어지는 “인생이란 결국 하나의 창으로 들여다볼 때 훨씬 더 성공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닉의 말이 지닌 씁쓸한 자기반성 역시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이번 번역이 바로잡은 것 가운데에는 이보다 훨씬 단순한 사례도 있다. 소설 말미 개츠비가 죽은 뒤 그의 저택을 지나가는 택시를 묘사하면서 피츠제럴드는 fare라는 단어를 쓴다. 여러 기존 번역에서는 이를 ‘택시 요금’으로 해석했지만 여기서 fare는 ‘요금을 내고 택시를 타는 승객’이다. 택시 기사가 승객을 태우고 개츠비의 저택 앞을 지날 때면 잠시 멈춰 저택을 가리켜 보여주었다는 이야기다. 개츠비가 죽은 뒤에도 그의 저택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명물로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짧고 쓸쓸한 장면이다.
이 두 사례는 이번 번역의 방향을 보여준다. 오역의 개수를 세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단어 하나를 잘못 읽으면 인물의 목소리가 달라지고, 문장의 반어가 사라지며, 때로는 작품 전체를 이어주는 이미지의 연결까지 끊어진다. 정확한 번역이 필요한 것은 정답을 맞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단어가 놓여 있던 자리에 원래 존재했던 문학을 되찾기 위해서다.

오랫동안 번역을 검수해온 사람이 직접 번역에 나서다

이번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한 오세원은 해외문학 편집자들에게는 결코 낯선 이름이 아니다. 그동안 여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한편, 오랫동안 블로그 「어느 검수자의 기록」을 운영하며 국내에 출간된 번역서들을 원문과 대조하고 번역상의 오류와 문제점을 꾸준히 검토해왔다.
그의 작업은 단순히 오역을 찾아 목록으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하나의 단어가 잘못 옮겨졌을 때 인물의 성격과 문장의 어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앞선 번역의 해석이 검증 없이 후속 번역에서 되풀이되지는 않았는지, 번역 과정에서 원작의 이미지와 문체가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원문으로 돌아가 추적하는 작업이었다. 그동안 직장 생활과 번역과 번역 비평 작업을 병행해왔지만 이제 퇴직과 함께 번역에 전념하면서 『위대한 개츠비』는 그의 번역 인생에서 새로운 시기를 알리는 출발점이 되었다. 오랫동안 직접 번역하면서 동시에 다른 번역을 검토하고 의심해온 사람이, 이제 그동안 축적한 경험과 시간을 온전히 번역에 쏟기 시작하는 것이고 『위대한 개츠비』는 역자의 ‘번역 인생 2막’의 출발점이다.
서커스출판상회는 이번 『위대한 개츠비』를 시작으로 역자와 함께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세계문학의 고전들을 원문에서 다시 읽고 번역하는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는 『서커스세계문학』이 앞으로 만들어갈 하나의 중요한 축이 될 것이다. 목표는 이미 존재하는 세계문학 번역본의 수를 하나 더 늘리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읽혀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번역의 정확성을 다시 묻지 않게 된 작품, 앞선 번역의 해석과 때로는 오류까지 관습처럼 이어져온 작품을 원문에서 다시 시작해보려는 것이다. 작년 2025년은 『위대한 개츠비』가 처음 세상에 나온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한 세기가 지났지만 개츠비가 물 건너편의 초록색 불빛을 바라보는 모습은 낡지 않았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지나간 시간에 붙들리고, 이루지 못한 것을 다시 꿈꾸며, 조금 더 멀리 있는 무언가를 향해 팔을 뻗는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개츠비 한 사람의 꿈은 그렇게 인간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고전 역시 어쩌면 그러한 책일 것이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펼칠 때마다 미처 보지 못했던 문장이 나타난다. 『위대한 개츠비』의 새로운 번역은 너무나 유명해서 오히려 익숙한 번역 속에 가려져 있던 피츠제럴드의 문장을 다시 읽는 데서 시작한다.
왜 또 한 권의 『위대한 개츠비』인가.
이번 번역은 그 질문에 한 권의 책 전체로 답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