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꽃이 왔다. 1936년 동백꽃이 2025년으로 왔다.
난 이제야 알았다. 이 소설의 색깔을.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도 내가 아는 그 동백꽃을 떠올리며 핑크빛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내용도 그렇지 않은가. 점순이는 ‘나’를 밀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은 동백꽃으로 떨어져 나자빠지지 않는가. 뭘 더 생각할 게 있을까 싶었다.
다시 읽어보니 ‘노란’ 동백꽃이었다. 동백꽃이 노란색이 있나 보다 생각했는데 같이 글공부하는 선생님이 ‘생강나무’라고 알려주셨다.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백꽃이라 부른다고 했다.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왜냐면 내가 그동안 이 소설에 대한 색깔이 바뀌니 말이다. 정작 이 소설은 핑크보다는 노란색이 어울린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29살에 죽었다는 김유정을 떠올렸다. 그리고 내가 처음 소설을 읽었던 때는 김유정보다 어렸다. 그리고 이제는 김유정보다 한참 나이를 먹었다.
오히려 처음 읽었던 고등학교 때는 유치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시험에 나온다니 작가 이름을 외우고 내용을 머리에 담았을 뿐이다.
그런데 2025년에 다시 읽으니 어른들의 만들어 놓은 제도 속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나’가 보인다. 주인집 점순이 건드리지 말라고 하는 주인공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진다. 청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신분 차이의 가슴 아픈 이야기로도 읽힌다. 그리고 둘이 나중에 어찌 되려나 걱정도 된다.
그 뒤 이어지는 이 상이 쓴 <김유정론(표지에서는 평론의 제목으로 오해할 것 같아 <소설 김유정론>으로 붙였다.)>은 어떤가.
젊은 청년들이 술을 먹고 문학을 얘기하다 서로 치고받고 하는 치기 어린 이야기로 보이지만, 발표 시기를 보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1937년 3월 29일에 김유정이 죽었고, 19일 후인 4월 17일에 이상이 도쿄에서 죽었다. 그런데 <김유정론> 발표는 1939년 5월이다.
두 사람이 죽고 난 후, 2년이 지나서 발표된 글이다. 알고 읽으면 마지막 문장에서 눈물이 흐른다. 일제 강점기의 궁핍하지만 꿈을 가진 젊은이의 낙관이 보인다.
이상은 ‘천재’와 ‘요절’이란 이미지 때문에 어둡고 심각한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1995년에 개봉한 <금홍아, 금홍아>에서 김갑수가 연기한 캐릭터를 봐도 그렇고 당시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봐도 유쾌한 사람이었다. 길거리에 나가면 인사를 안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다. <동백꽃>과 이상이 쓴 <김유정론>에서 청춘이 읽힌다. 그리고 그 청춘의 상태로 죽어 영원히 정지해버린 시간이 느껴진다.
그들이 만약 중년을 보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하다.
나태주 시인은 ‘요절’이란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요절은 세상에서 그가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보다 많이 줄일 수 있는 유일한 길. 그때 그 사람이 세상을 일찍 버렸으므로 뒤에 남은 사람들이 그를 애석해하고 그 애석함이 끝내 아름다움이 되고 칭찬으로 남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싶다. 혹시 살아서 젊었을 때 실수를 만회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나이가 들어 죽을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이유가 살면서 치르는 죗값이 죽어서 치루는 죗값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다.
늘 생각하지만, 꽃과 죽음은 참 잘 어울린다.
어서, 김유정과 이상을 만나러 가자.
2025년 2월 임리나
난 이제야 알았다. 이 소설의 색깔을.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도 내가 아는 그 동백꽃을 떠올리며 핑크빛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내용도 그렇지 않은가. 점순이는 ‘나’를 밀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은 동백꽃으로 떨어져 나자빠지지 않는가. 뭘 더 생각할 게 있을까 싶었다.
다시 읽어보니 ‘노란’ 동백꽃이었다. 동백꽃이 노란색이 있나 보다 생각했는데 같이 글공부하는 선생님이 ‘생강나무’라고 알려주셨다.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백꽃이라 부른다고 했다.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왜냐면 내가 그동안 이 소설에 대한 색깔이 바뀌니 말이다. 정작 이 소설은 핑크보다는 노란색이 어울린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29살에 죽었다는 김유정을 떠올렸다. 그리고 내가 처음 소설을 읽었던 때는 김유정보다 어렸다. 그리고 이제는 김유정보다 한참 나이를 먹었다.
오히려 처음 읽었던 고등학교 때는 유치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시험에 나온다니 작가 이름을 외우고 내용을 머리에 담았을 뿐이다.
그런데 2025년에 다시 읽으니 어른들의 만들어 놓은 제도 속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나’가 보인다. 주인집 점순이 건드리지 말라고 하는 주인공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진다. 청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신분 차이의 가슴 아픈 이야기로도 읽힌다. 그리고 둘이 나중에 어찌 되려나 걱정도 된다.
그 뒤 이어지는 이 상이 쓴 <김유정론(표지에서는 평론의 제목으로 오해할 것 같아 <소설 김유정론>으로 붙였다.)>은 어떤가.
젊은 청년들이 술을 먹고 문학을 얘기하다 서로 치고받고 하는 치기 어린 이야기로 보이지만, 발표 시기를 보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1937년 3월 29일에 김유정이 죽었고, 19일 후인 4월 17일에 이상이 도쿄에서 죽었다. 그런데 <김유정론> 발표는 1939년 5월이다.
두 사람이 죽고 난 후, 2년이 지나서 발표된 글이다. 알고 읽으면 마지막 문장에서 눈물이 흐른다. 일제 강점기의 궁핍하지만 꿈을 가진 젊은이의 낙관이 보인다.
이상은 ‘천재’와 ‘요절’이란 이미지 때문에 어둡고 심각한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1995년에 개봉한 <금홍아, 금홍아>에서 김갑수가 연기한 캐릭터를 봐도 그렇고 당시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봐도 유쾌한 사람이었다. 길거리에 나가면 인사를 안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다. <동백꽃>과 이상이 쓴 <김유정론>에서 청춘이 읽힌다. 그리고 그 청춘의 상태로 죽어 영원히 정지해버린 시간이 느껴진다.
그들이 만약 중년을 보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하다.
나태주 시인은 ‘요절’이란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요절은 세상에서 그가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보다 많이 줄일 수 있는 유일한 길. 그때 그 사람이 세상을 일찍 버렸으므로 뒤에 남은 사람들이 그를 애석해하고 그 애석함이 끝내 아름다움이 되고 칭찬으로 남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싶다. 혹시 살아서 젊었을 때 실수를 만회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나이가 들어 죽을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이유가 살면서 치르는 죗값이 죽어서 치루는 죗값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다.
늘 생각하지만, 꽃과 죽음은 참 잘 어울린다.
어서, 김유정과 이상을 만나러 가자.
2025년 2월 임리나
[POD] 동백꽃/소설 김유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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