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골목에서 꺼낸 질문들 (콤코무리한 이야기들 옥봉)

잊힌 골목에서 꺼낸 질문들 (콤코무리한 이야기들 옥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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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존재하지만 발견되지 않은 곳들이 있다. 사람들이 있다. 일부러 숨은 것도 아니고 애써 찾으려 하는 술래도 없지만 잊히고 있는 곳들을 들여다본다. 세월의 골목에 웅크리고 있는 곳, 그곳을 기록하는 이가 있다. 떠난 이들이 많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어깨를 겯고 살아가고 있는 동네, 진주 옥봉을 기록한다. 무너진 담벼락, 페인트 벗겨진 대문, 녹슨 초인종, 콤코무리한 곰팡내가 날 것 같은 골목을 찍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콤코무리한 이야기를 사진을 곁들여 간결하게 정리한 글을 읽으며 골목을 걸어본다. 사진과 사진 사이, 글 골목의 녹슨 대문은 푸른곰팡이의 콤코무리한 그리움으로 피어난다.

작가는 녹슨 대문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

현대의 도시에서는 대부분 아파트의 획일적인 현관문이 집을 대신한다. 그러나 이 골목의 대문은 달랐다. 알록달록 제각각의 색이 집을 구별해주었고, 때로는 사람을 대신해 정체성을 드러냈다. 예전에는 집을 찾을 때 주소가 아니라 색으로 말했다고 한다.
“나는 빨간 대문집이야.”
“우리 집은 초록 대문이야.”
〈본문 중에서〉

대문 옆에 녹슨 초인종이 있다. 나른한 오후 초인종을 누르면 할머니가 버선발로 달려 나올 것을 기대해본다. 그러나 작가는 초인종을 누르지 않았다.

나는 그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초인종은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작은 장치 같았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안쪽의 누군가가 대답을 해 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동네의 초인종은 대부분 낡고 헤져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불리지 않은 이름처럼,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본문 중에서〉

단순한 기록을 넘어선 사유의 글이다. 작가는 오래된 것들, 빛바래고 벗겨지고 녹슨 것들을 들여다보며 묻고 귀 기울여 벽면의 말들을 듣는다. 사진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도 벽면의 말들도 듣고 나름의 질문도 할 것이다. 콤코무리한 옥봉의 이야기에 스며들게 될 것이다.

작가는 옥봉의 어르신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곳에 사는 어르신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살아오셨습니까?” 대답은 단순했다. “악착같이 살았다.” 짧은 말이었지만, 그 속에는 묵묵히 버텨온 세월과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름이 불리지 않아도, 주목받지 않아도, 삶을 이어가는 힘. 그것이 옥봉이 품고 있던 이야기였다.
〈본문 중에서〉

악착같이 살았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때로는 지치고, 실패도 하고, 원망도 할 것이다. 애써 표시 내지 않아도, 조용히 잊힌다고 해도 우리는 살고 있다. 이렇게 조용히 살아낸 이들의 삶으로 세상사가 채워진다.
저자

박성진

저자:박성진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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