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행복대신
찰나의기쁨에바치는
철학자의찬가
프랑스에서가장사랑받는철학자,샤를페팽
20세기의《이방인》을21세기에되살려내다!
어디에선가들어본이야기같을것이다.어머니가위독한상황에서도기이할만큼담담하게체념한채,삶의달콤한면만을바라보려하는한남자의이야기.그는어머니가죽음을맞은슬픔속에서도애인과밤을보내고,장례식에내리쬐는햇볕을음미하며,오믈렛을만들기위해달걀을깨는행위에서기쁨을느낀다.그의이런단순한면은한아랍인의공격을받기전까지는아무문제가없었다.상황이극한으로치닫자권총을빼앗은주인공은‘시야가뿌옇게흐려져서’자신을공격했던아랍인을향해여러방쏜다.그사건으로그는재판을받고교도소에갇힌다.하지만인생의작은기쁨들을알고있는그는슬픔이나우울함에빠지지않는다.얼핏보기에늘기쁨에차있는상태가바람직해보일수도있지만불행이나슬픔의감정이배제된듯보이는그는오히려이사회에서무척이나전복적이며위험한존재로받아들여진다.
문학에관심있는독자들은한눈에알아차렸겠지만,이소설은알베르카뮈의《이방인》을리메이크한작품이다.알베르카뮈의이름을직접인용하지는않았지만,작가는《이방인》의플롯을가져와재해석한다.샤를페팽은카뮈의작품이다양한해석의재료가된다고확신하고있는것같다.마치카뮈의작품이우리모두가자유롭게해석할수있는오래된신화라도되는듯이.
기쁨은지금,여기의현실에서솟아나는것
행복과기쁨은어떻게다를까?작가는행복이란고요한만족감을지속적으로느끼는상태라고본다.반면에기쁨은불만족스러운상황에서도충분히느낄수있는감정이다.추진하던프로젝트가성과가좋지않아불만족스러운상태에서도기쁨을느끼는순간이있을수있다.길을가다가서서마시는커피한잔,라디오에서흘러나오는좋아하는노래,그것만으로도기쁨을느낀다.
주인공솔라로는현재에집중하는인물이고단지자신이존재한다는기쁨에만족하며보도블럭틈에자란한송이꽃에도기분이좋아지고,하늘에흘러가는구름의움직임에,그리고바에서서마시는커피한잔에기쁨이솟는다.그는재정상황으로보면절망해야마땅하지만어쨌든기꺼이이를감당하려고하고,애인인루이즈와미래에대한기약없이육체적인기쁨에빠져들고,죽어가는어머니를보기위해병원에들른다.그러나우연찮게흥분상태에서일어난난동에휘말려마약밀매인한명을죽이고만다.사회의규범에무감각한그는사회에서어떻게평가될것인가?자기어머니의장례식장에서고통을표출하지않는아들을사회는어떻게냉혈한으로몰고가는가?철학자인저자는현재를음미하는방식을드러내는한편,한계상황에처한인물을역설적인우화로보여준다.
이세계와자신에대해질문을던지게하는철학소설
《기쁨》은철학적명제를담은철학소설이다.샤를페팽은우리눈에보이지않는기쁨이라는것을어떻게발전시킬수있는가를다루고있다.우선,미래에더좋아지리라는희망을버려야한다.‘내가직업만바꾼다면,여자만있다면……’하는식의생각을멈추라는것이다.흔히희망이우리를살게한다고믿는다.하지만작가는주인공솔라로의입을통해희망으로인해우리가죽게된다는메시지를들려준다.우리를살게하는것은지금,여기존재하는실재이며현실이다.우리의존재가하나의기적임을깨닫고,지금살아있다는것의기쁨을음미해야한다.기쁨을새로이느끼기위해서는기쁨이라는자원을자기것으로만들줄알아야한다.기쁨은우리가누릴수록점점더우리안에샘솟는속성이있다.이러한기쁨은우리인간성의정수를보여준다.
샤를페팽은주인공의모습을통해스토아학파가지향하던바를드러낸다.흔히스토아학파를그저금욕주의로만이해하기쉬운데,철학자인샤를페팽은그해석을조금달리하는것같다.스토아학파의주장가운데외적인어느것에도마음을괴롭히는일이없이주어진운명을감수하며,내적으로자유롭고명랑하고조용하고경건하게죽음의날을기다리며살아가는태도부분이주인공솔라로의특징과일맥상통한다.
우리는솔라로를가벼운얼간이로치부할수도있고그의이야기와자신은관계없다고느낄수도있다.의사들이등장하거나과학의틀로솔라로의케이스를연구하는장면에서절망적인우스꽝스러움이표현된다.어머니를담당하는의사,정신과의사,상담가,간호사……과학은어떤이유로지금살아있다는것에기쁨을느끼는그의생각을합리적으로설명하려고애를쓰는가?우리는아무대답에도이르지못한다.
작품은유려하게흐르고어떤철학사상을가르치려고직접인용하지않는다.샤를페팽은자신이탐색해온바를작품에자연스레녹여냈고이를통해독자는이세계와자기자신에대해질문을던진다.삶이란무엇인가?어떻게살아야하는가?페펭은이런질문에철학자다운답을내린다.삶은지금여기에서순간의기쁨을누리며살아내는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