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도말할수없던첫사랑과
32년이지나도착한작별인사
1984년,열일곱살의‘나’는교장의아들이자장래를촉망받는우등생이고,토마는졸업뒤아버지의농장을물려받아고향에남아야하는과묵한소년이다.전혀다른세계에속한두사람은서로에게강렬하게끌리지만,그들의사랑은누구에게도들켜서는안되는비밀이다.남들앞에서는모르는사이인척하고,날짜와시간만적은쪽지를사물함에넣어만남을약속하고,다른누구도보지못하는곳에서만서로를사랑한다.졸업시험이후여름이끝날무렵토마는인사도없이스페인으로떠나고,‘나’역시보르도에서새로운삶을시작한다.
작품은1984년의첫사랑,2007년의뜻밖의만남,2016년에전해진인사를오가며한사람의생애에남은사랑의흔적을복원한다.화자가기억하는토마의사소한몸짓,냄새,옷차림과함께보았던풍경은지나간청춘을생생히되살리는동시에기억이어떻게사실을선택하고변형하는지를보여준다.“진실보다중요한것은그럴듯함이고,정확성보다는적절함”이라고말하는작가는본인의기억과소설의허구성,진실과거짓말의경계를끊임없이넘나든다.『그만해거짓말』은끝나버린첫사랑의회고담을넘어,열일곱살의한순간이이후의사랑과이별,한사람의삶전체를어떻게만들어가는지를보여주는성장과기억의소설인셈이다.
비밀은사랑을지켜주지만
사랑은비밀로남을수없다
베송은당시의관계를두고“비밀은이사랑을꽃피울수있게해주었지만,동시에그사랑을죽였다”고말한다.남들의시선을피해사랑하는일은짜릿한일탈이자둘만의세계를지켜주는방패지만,언제까지나그늘속에서살아갈수는없기때문이다.‘나’는유복한가정에서자랐고자신의성적지향을비교적일찍받아들인편이다.반면토마의어머니는독실한가톨릭신자였고,그는강인한남성으로살아야한다는요구와장남이자외아들로서가족과농장을책임져야한다는기대에둘러싸여있다.그에게사랑은욕망인동시에수치심이며,삶의궤도에서벗어나는위험한일탈이다.두사람사이의거리는성격의차이를넘어교육,계급,종교와가족,떠날수있는사람과남아야하는사람의간극으로확장된다.
토마가후에직접썼듯이그는‘평생말을할줄몰랐’기때문에,그들은말대신서로의몸에의지할수밖에없었다.작품내감각적인육체묘사는사랑을말할언어가없었던두소년의침묵을대신한다.베송은토마의선택을비겁함이라는말로단정하지않는다.오히려자기본성과화해하지못한사람을‘너무넓고빽빽한숲에서길을잃은사람’에비유하며,한시대와공동체가개인에게강요한침묵의무게를헤아린다.사랑을지키기위해택한비밀이결국사랑의존재마저지우고,한사람이평생자기자신을부정하게만드는과정을오직당사자만이관찰할수있는시선으로따라간다.
부재하는사람을되살리는증언,
소설이라는액자에담은첫사랑의얼굴
『그만해거짓말』에서글쓰기는지나간사랑을기억나는대로미화하는일이아니라,세상에자신을그대로내보이지도못한채사라진한사람의삶을증명하는행위다.베송은“책에는부재하는사람을현존하게하는힘이있다.책은사라짐을바로잡고,어떤의미에서는죽음을폐기한다”고말한다.숨겨야만했던사랑은아무런증거도남기지않았으므로존재하지않았던일이될수도있다.작가는닥쳐오는소멸에맞서토마의몸짓,목소리,당시의노래와영화,지방도시의풍경을문장속에되살린다.뒤라스와기베르,트뤼포의작품과당대의노래들이소설곳곳에흐르는가운데,개인의사랑은한시대의사회적·문화적공기와포개지고한소년의비밀은오랫동안말할수없었던수많은사람의기억으로넓어진다.1984년부터2016년까지,33년이라는시간을가로지르는절제된서술을통해,『그만해거짓말』은한작가가평생써왔던이야기의실체를비로소고백하는문학적증언으로드러난다.
2017년메종드라프레스상을수상한이작품은영화와연극으로도만들어졌고,그때마다토마는새로운독자와관객앞에다시나타났다.살아있고,생동하며,사랑에빠진소년의모습으로.작가가지어낸허구가아닌,그의삶이직접쓴이이야기에는거짓말이없다.그리고누군가기억하고기록하는한,한사람의삶과사랑은결코사라질수는없는것이다.30여년전,필리프베송은첫사랑을앓았다.우리는그가사랑했던소년을오직이책으로만만나볼수있다.
·시리즈소개
삶에는주목받는A사이드만있는것은아니다.볕이닿지않는어두운나날,실패와망설임,끝내말하지못했던마음은언제나뒤편에남는다.B사이드아카이브는그뒤편에남겨진목소리를수록한시리즈다.LP와테이프의B면에보다진실하고실험적인트랙이실리듯,이시리즈는청년들의서툰선택과불안,아직완성되지않아무엇이든될수있는시간을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