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어머니 정기 구독

일간 어머니 정기 구독

$12.00
Description
느 쿰곡 나 쿰곡 우리 쿰곡
살당 보민 살아진다 좋은 날 실 거여
[일간 어머니 정기 구독]은 변종태 시인의 여섯 번째 신작 시집으로, 「옴살 이녁」 「일간 어머니 정기 구독」 「쿰다」 등 61편이 실려 있다.

변종태 시인은 1990년 [다층]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멕시코행 열차는 어디서 타지] [니체와 함께 간 선술집에서] [안티를 위하여] [미친 닭을 위한 변명] [목련 봉오리로 쓰다] [일간 어머니 정기 구독]을 썼다. 제주특별자치도예술인상을 수상했다.

시를 만난 죄로 늘 감정에 출렁이던 변종태에게, 이 세계는 딱딱한 껍질로 둘러싸인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곳이었을 겁니다. 제주에서 태어나 아이들을 가르치며 오늘에 이르렀고 여전히 제주에 머물죠. 그가 견뎌 온 환경의 단단한 외피들은, 자유를 추동력으로 쓰는 시와 그의 어디선가 불화하기를 반복했을 게 분명합니다. 식물의 세계는 온화합니다. 조화롭고 다층적이며 평화롭죠. 그가 세상과 불화할 때마다 함께하며 일체의 비명을 꽃으로 바꾸거나 파릇한 몸짓으로 되돌려놓는 마술적 공간이었을 겁니다. 피난을 받아 주고 기댈 어깨를 제공하는 한편, 천지창조에 버금갈 변화무쌍함으로 위로와 치유를 제공하기도 하면서 말이죠.
도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변환장치-숲에서 그는 얼룩을 다독여 무늬로 바꾸어 냅니다. 결코 일방적이지 않은 식물 세계와 시인의 조화가 빚어내는 아름다움은, 시집의 표제이기도 한 [일간 어머니 정기 구독]의 전체를 포괄하는 주제이자 변종태 시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바탕이면서 질서이기도 하죠.
식물과 시, 그 맞은편에 억척스레 울타리를 가꿔 온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의 주위를 맴돌며 멈추지 않는 손길로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죠. 그가 세상에 지쳐 누더기로 돌아올 때마다 두 팔 벌려 받아안는 존재로서, 어머니는 육체적 휴식과 정신적 평화를 끊임없이 공급하는 탯줄로 여전히 사랑을 실천합니다. 이때의 어머니는 시인에게 식물들이 제공하는 위로와 함께하며, 딱히 구분 짓지 않아도 좋을 하나의 세계가 되죠.
이 시집에 또 무엇이 더 있어야 할까요. 어머니와 식물들이 그를 통해 합일의 과정을 거쳐 시로 재탄생하죠. 그에게 시를 쓰는 일은 어머니와 식물들의 내・외를 오가는 순환이자 고단한 삶을 치유하는 일이며, 다시 일터로 자신을 밀어 가는 일이기도 하죠. 그때마다 어머니의 “텃밭”에서 배운 질서를 통해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을 이룹니다. 창작이 꿈과 현실을 융합하는 화학적 반응을 지나면 새 이름이 필요하고 기꺼이 한 세계가 된다고들 말하죠. 그는 이미 ‘시인 변종태’라는 세계를 가꾸며 사는 게 아닐까 합니다. (이상 임재정 시인의 해설 중에서)
저자

변종태

변종태
1990년[다층]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
시집[멕시코행열차는어디서타지][니체와함께간선술집에서][안티를위하여][미친닭을위한변명][목련봉오리로쓰다][일간어머니정기구독]을썼다.
제주특별자치도예술인상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자세를기다리다11
양!12
죽음을읽다13
석태아(石胎兒)14
그랬다16
마치와처럼17
공갈빵을먹는아침18
그즈음우리는19
너머를짖다20
나쁜일이거울에서22
그녀가나무에사물을담고있다23
네가남쪽이라고부르는24
저녁뉴스를들으며에스메랄다와춤을25
무연고변사처리전담반28
서귀포에서그리다30

제2부
옴살이녁33
일간어머니정기구독34
물의손길36
이별스케치38
기억을더듬다39
노을의배후40
당신을떠올리면배가고프다42
물다와묻다44
어둠속에숨기45
입추다음다음날46
인디언서머48
한수(寒樹)50
하이클리어51
쿰다52
동백에게54

제3부
리그닌을말하다57
베란다는배란다58
달빛을서성이다60
면도62
플루트는가르릉63
잠에밑줄을그었다64
과녁을벗어난저녁66
백일동안의파문67
꼭지를딸때사과는나무를버린다68
오렌지마멀레이드70
나의뿌까욜라72
안개속이었다73
반송되지않은편지74
키오스크에주문을걸다76
열차가달린다78

제4부
어머니에서어머니에게로81
얼리버드82
하쿠나마타타84
아무데나갈까85
쫀드기를뜯는밤86
시집사용설명서88
밤을오독하다90
네시에는내가없어92
패(牌)93
당신을메롱합니다94
할!95
승철이성,셔96
미필적오타98
불면의반가사유100
삶을읽다101
하얀시102

해설임재정어머니와식물,시를만나는자세103

출판사 서평

시인의말

세상모든어머니는시인이다

날마다어머니를읽는다

아흔넘은어머니의일과가

시를만든다

오래된문장일수록감칠맛이난다

추천사

파도는약해질수있지만멈추지않는다.어머니의모체에서분리돼나온이후인간은망망대해에놓인일엽편주가된다.줄기차게난타하는풍랑과태풍속에서도들리는목소리가있으니,어머니가해주신꾸지람과잔소리,칭찬과덕담이다.세파에시달릴때고승의설법이나불경구절이힘이될때도있지만농사꾼이었던어머니가무심코한마디씩해주셨던그말씀에힘을얻곤했었나보다.책을만지고시를쓰면서살아온변종태시인이생의전환점을마련하고자했을때,어머니가체득했던자연의이법이불현듯이떠올랐던것이다.이제인류는생명을해치는공해,전쟁,질병과의힘겨운싸움을전개해야하는데,우리를살릴수있는것은모성이다.대지모신이다.자연이다.제주도의풍광에담아낸시인의생명사상앞에서가부좌자세를취해본다.
―이승하시인

책속에서

<옴살이녁>

가장부끄러운부분을우산처럼함께쓰고
그림자처럼이녁이라했다지
떨어지는비를긋던이녁이라고했다지
무거운빗방울이걸리면낚싯대가파르르
미친듯울어대던바람속
빗물을한방울씩낚아올리며아침을기다리는
뿌리를박은채피고지기를되풀이하는
사랑해라는말은굽은낚싯바늘
손끝에전해지는떨림그느낌으로
아침마다물을주는이녁이라했다지
언뜻언뜻비치는얼굴이었다지
오늘밤은비가내리면어떨까
옴살처럼몸에맞는옷처럼좀비비추꽃대가바람에흔들려서
이녁이라고했다지
잔바람에흔들리는보랏빛에
밟아도밟히지않는춤곡을틀어놓고
처마밑으로똑,똑,떨어지면어때
베란다에피어난보랏빛좀비비추꽃을
이녁이라고했다지

<일간어머니정기구독>

vol.33580.

오늘은휴간일,어머니가배달되지않는다.텃밭의잡초는이때다싶어깊이뿌리를내리고김연경선수는상대코트를향해강력스파이크를날린다.가끔코리안숏헤어에게밥을주기위해문을열기도하지만대부분의시간어머니의문은열리지않는다.

vol.33579.

사흘전읽은어머니의기사가생각나지않는다.헤드라인에주먹만하게새겨진글씨한글자도떠오르지않는다.몇시에대문이열렸던가.축축했던가뽀송했던가기억나지않는다.어스름녘에떴던속보의내용도기억나지않는다.

vol.33578.

골목으로새벽다섯시에배달된어머니가읽히지않는다.

오늘동백열매는저혼자벌어져떨어지고있을텐데

밀고나간유모차에실려온까만동백씨앗이

고루펴진채가을햇살에말라간다.

빨간기억을기름지게쓸어담은어머니가

골목끝에서끝까지여러번인쇄되고있다.

vol.33577.

보일러버튼은자꾸만꺼진다.
자동설정으로알아서꺼지는게아닌데
수은주는영하를향해내달리는데
어머니보일러는자꾸만쉬어간다.
기름한방울안나오는나라에산지오래된어머니가
혼자의시간동안눈물방울을짜내던어머니가
날마다굵은땀방울흘리면서살아온어머니가
자꾸만보일러엔진을정지시킨다.
어머니윤전기가자꾸만불안하다.

<쿰다>

문득새벽동쪽하늘을봤지
실눈을뜨고날보는달이떠있는거야
성산은일출이라더니
아침해가달을품고있었던거야
느쿰곡나쿰곡우리쿰곡
살당보민살아진다좋은날실거여

어스름저녁에서쪽하늘봤지
가느다란실눈으로날보는달이떠있는거야
수월봉낙조라더니
지는해도달을품고있었던거야
느쿰곡나쿰곡우리쿰곡
살당보민살아진다좋은날실거여

서귀포남쪽은태평양바다
바다가섬을품고있다고생각했어
성산에서대정까지동에서서쪽까지
서귀포가태평양을품고있었던거야
느쿰곡나쿰곡우리쿰곡
살당보민살아진다좋은날실거여

큼큼한슬픔까지품어줄게
힘들고지칠때서귀포에오면
기쁘고즐거울때서귀포에오면
너의모든걸품어주는산과바다가있어
느쿰곡나쿰곡우리쿰곡
살당보민살아진다좋은날실거여

*느쿰곡나쿰곡우리쿰곡살당보민살아진다좋은날실거여:너를품고나를품고우리를품고살다보면살게될거야좋은날있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