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착품 (권경욱 시집)

미착품 (권경욱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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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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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착품]은 권경욱 시인의 두 번째 신작 시집으로, 「낙과」 「미착품」 「겨울」 등 43편이 실려 있다. 권경욱 시인은 2017년 [베개]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 [사라지는 공원에서 우리는] [미착품]을 썼다.

우리는 권경욱이 제시하는 시적 화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미지를 가져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음과는 무관한, 어떠한 외부적 자극에도 스스로를 드러냄 없이 초연히 존재하며, 감정의 지속으로서의 ‘기분’조차 외부화되고 대상화되어 단지 거기 있을 뿐인 어떤 존재. 무생물과도 같은 그런 모습. 그렇기에 이 화자의 양태는 어떤 의미에서는 해탈한 것과 같은 초연한 느낌을 선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한없이 외롭고 초라한 최소화된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몰입감 없이 약간의 거리감을 통해 존재할 따름이며, 그렇기에 타인과의 교류도 마음과 마음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러한 관조의 태도란 자신이 처해 있는 혼란, 내적 분열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인지도 모른다. 화자의 어제에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이 지울 수 없는 얼룩의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음이 암시되는 시편들을 떠올리자면 무감각하고 무감정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화자의 모습은 일련의 설득력을 지닌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예컨대, 화자의 이토록 고요하고 최소화된 존재의 양태가 견딤을 위한 것이라 할 때, 그 견딤은 단순히 자신이 경험하는 감정적・감각적인 혼란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다가올 어떤 순간을 위해 자신의 상태를 오래도록 지속하기 위한 방법이라면? 예컨대 이 무감각한 고요란 자신이 속한 세계 전체를 조망하기 위한 일련의 시적 방법론으로써 자신이 속한 세계를 새롭게 예술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그의 고유한 방식이며, 이를 통해 언젠가 찾아올 가까운 미래에 대한 미세한 예감과 기척에 한껏 귀 기울이기 위한 방식으로도 읽힐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최소화된 무생물적 주체가 아닐까. (이상 임지훈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저자

권경욱

저자:권경욱
2017년[베개]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
시집[사라지는공원에서우리는][미착품]을썼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생방송11
입장13
매듭16
호수공원20
면접22
너의작업실25
입실28
영업시간32
연습실35
우산38
무향실40
밝은정원42
스케쳐44

제2부
배차49
낙과50
승객52
미착품54
종이접기57
인공눈물58
가방60
기념품62
근린공원63
응시64
야경증66

제3부
산책들71
악몽74
목도리76
검은별78
마중79
겨울80
환승역81
감은눈82
퇴화85
캐럴86
메아리89
호수앉기92

제4부
정적파티97
이어달리기100
사춘기102
자동녹음장치106
귀108
경호원109
폐곡선110

해설임지훈당신의것이아닌당신의X113

출판사 서평

추천사

[미착품]의언어는물비늘로이루어져있다.물비늘의빛을머금은활자는마음의공백을늘린다.그곳으로드나드는묽은것들을시인은소묘한다.그는세계의볼륨을최대한낮추고작업한다.물빛이튀듯활자가스르륵거리는소리가들린다.그런데활자들이모여서직접적인의미를발생시키기보다는여백을늘리는데에치중되어있다.완료보다는지속에가깝게,지속보다는정지의방향으로언어가흘러간다.그렇다고언어가느리거나희미하지는않다.오히려경쾌하고거침없이배열되면서기존의의미망을단숨에덮어버린다.[미착품]을읽다보면착란에빠지게된다.물비늘처럼활자는활자를반사시키면서‘나’를재구성한다.지금여기가현실의‘생방’인지‘연습실’인지,‘내’가‘재생’버튼을누른건지,되풀이되는것인지알수없는지경에이르게된다.“아침이밝으려면/내가몇번째의자에앉아/얌전히불타야하는지는모르지만”(무향실)‘나’는물비늘처럼당도하지않음으로써빛나는물체,시인이다.“성실한관찰자”인(입실)시인은마음이나기분을포장할수있는언어의끈을지니고있다.그가여백과휴지의공간을깊숙하게만들어내는이유는아마도찰나의물빛을일상에서흘러가는시간보다는조금은더길게간직하고싶은마음에서일것이다.“작년에받은선물을/포장도뜯지않고두는건//미래를보관하는방식”이기때문이다(우산).바다위의물비늘이‘메아리’가되어‘기분’으로포장된다.시인은“반짝이는건전부호수같다”고말한다(호수앉기).그마음의호수에[미착품]을다시띄워본다.
―정우신시인

시인의말

주문한적없어도
도착하는마음들

책속에서

<낙과>

식탁이밝아도
빛은들이쳐있다

주문한적없어도
아침은마음의소실점

잘못만든영화처럼
아무리환해도
자막을볼수가없고

집에서너무멀리나온
길잃은남매처럼

내집에서길을잃을수없다

나는마시던모과차를
바닥에쏟는다

식탁에앉은사람은
남은설탕으로사람을그린다

사람모양으로그린다

<미착품>

창문에앉은사람은
창밖을본다
그것은규칙도아닌데

커피가유리잔에담긴다
얼음과함께
그것은투명한사실

햇볕이뜨거운거리
걷는사람
유리는창밖을비춘다

창틀을제외하면
거의실시간으로보인다

보고있다는건
재생되고있다는것

그것을적는사람
그렇게적힌사람
이것을읽는사람

누구도멈출줄모른다는것

창밖을보는사람은
바깥을보는얼굴을본다

얼굴을보는얼굴을
마감할수는없다

커피는유리잔에담겨있다
컵에물이맺히고
마지막손님이일어날때까지

창밖을보는사람은
매일반복되는일이다

점원은가게를닫고
내일주문할물건들을확인한다

신선상품은
단순변심에의한반품이제한될수있다

주문을취소해도
배송이시작된상품은도착할수있다

<겨울>

여기부터제한구역입니다.순서대로통행권을제시하기바랍니다.사람들은질서를지키며사라지고있다.내겐주머니가없다.차례가되자나는먼저간사람의통행권을보여주었다.그는미소를짓는다.입김이느리게흩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