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붙은 컵은 책상 위에서 떨어지지 않아 - 파란시선 160

지구에 붙은 컵은 책상 위에서 떨어지지 않아 - 파란시선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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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정희

저자:김정희
시집[벽이먹어버린사내][지구에붙은컵은책상위에서떨어지지않아]를썼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혀아래정원11
나의낙원12
닿지않을안개나라14
사라진파도를어디에서찾을까16
다가온환영18
떨리는창문20
컴팩트21
리셋버튼을누르면22
물의궁전24
가시의떨림속겨울이부서지고26
빈얼굴에가득한돌멩이27
점자책을읽는사내28
플라스틱정원의지형도30

제2부
접착신드롬35
깊숙한방36
지구에붙은컵은책상위에서떨어지지않아38
인형뽑기에서건져올린네얼굴40
같은얼굴보이는여기에42
신호등44
탄피46
새파란행성이지구와충돌하여48
숨비늘50
만지작만지작51
물결경전을읽는다52
주전자연기에서나오는말들이54
꽃피는밥56
박힌구름58
이불속바다는물결치고60

제3부
왕관을위한두손배롱나무65
비밀의입구는출구입니다66
잠든나무깨어나서68
닿은말69
실을타고,처방전70
댄스댄스댄스72
칼날에붙은새순이자라는중74
웃자,날개가돋았어76
잠수함의낮시간78
해당화바람이되다80
꽃은강철이된다82
정주증명서84
차가운음식속부서지지않는뼈가있어86

제4부
떠다니는섬이실종되어91
죽어가는신이다시죽으려왕림하고92
발톱이돋고날개가돋아94
등뒤의빈곳96
냉동된봄날의점프98
빛나는어둠100
뭄베이호텔102
사냥꾼의마지막주문103
무릎에서딴물든사과104
마조렐블루,서쪽으로돌리는얼굴106
냉장고문을열면꽃밭이108
돌아가는팔찌109

해설구모룡애도의시쓰기110

출판사 서평

시인의말

아직사라지는중

추천사

김정희의언어를정원의언어라고불러본다.거기에는큰키나무와관목들과풀들과작은꽃들의향성이만들어내는무수한그림자가어른거린다.화려한정원의표면보다어둑하지만사려깊이정원의이면을들여다보느라그녀의언어에는빛을노래할때조차어둠의발자국소리가들려온다.그래서그런걸까,그정원은간절하고절실하게도‘혀아래’에있다.좁고축축한곳에서돋아나본들식물들은색을입지도못하고빛을받지도못하고새와벌을불러들여수정하지도못하여고독하게굴절되고마는말들의정원이라니!그런환경에서태어난식물들은알비노의언어로발화하지만밖을뚫고나오려고애쓰지않는다.핼쑥하고핏기가없다.밖으로불쑥이끌기에세계라는표면은배려도없고우회도없이무분별한햇볕을쏘아대는곳이므로시인의노심초사가손을거두어들일수없다.
일인칭으로감정이입하지않는그녀의타자들이그렇다.그들은소수이고상처가있고뭉툭하게일반화하기에는여리디여려서세계에노출되는순간그들의목소리가시들어버릴까봐가만가만얼굴을맞대고몸을기울일뿐그흔한‘처방전’을함부로내밀지않는다.어둠에게가장폭력적인것이빛이라는것을그녀는너무나도잘알고있는듯하다.그녀의타자들은서로의숨소리가들릴만큼가까이에있다.그녀는기울이고듣는다.듣고진술한다.그녀는거리를두지않는다.거리를둘수가없다.공감이라고하지않는다.거리없이그녀의언어는마냥축축하지않다.어떤것은새로돋아나고어떤것은스러지고있어서늘가득해보이는정원의성질을잃지않는다.어둠의생성성이움직이고있다.
어쩌면자기애에빠져들지도모른다는불안감을보란듯이배반하고타자들과동거할공간을나누어주는인류애가그녀가제시하는빛이라면빛일지도모른다.식물들이빽빽한틈으로용케찾아드는그것처럼그녀의언어는틈틈이‘해당화의뜨거운향을좁은틈으로밀어넣’으며타자들을돌보는것이다.
―조말선시인

책속에서

<새파란행성이지구와충돌하여>

모조품에서장승까지진열한컨테이너
눈빛레이저를발산하는남자가있다
하늘의경계에사는사람물끄러미
개에게
네모세상을관통하는말을뱉는다

“행복하구나”

“부끄러움으로토굴에가서살고싶다”
얼굴을붉히는그는무엇이부끄러웠을까

여행은
돌아올곳에서떠나는법
지구를담은깡통에담뱃불을털고
사소한별이달려오는밤
헛헛한웃음이하늘에대롱대롱매달린다

짐승처럼이름을벗고살다
아버지의유언으로직장을가졌고
“아직은잘모르겠다”는
오십을넘긴남자

깃털을단인디언추장이앉은오토바이
바퀴에발을얹으면완성되는그림
시동걸엔진은죽었고
우주사막의생명체로남은심장하나가시동을건다

“내가사라지면외계인이찾아올거야”
숭숭구멍난옷이뱃속으로빨려간다

외계인의도착을알리는별하나컨테이너에닿으니
오늘긴꼬리유성이춤추며땅으로박힌다

정상품이죠

<꽃피는밥>

한잎이라도흩어진꽃잎이라도보고싶어요
따르는동생은잘돌봐줘야한다는약속은지켰는데
하교후동생은서둘러저를안아요

아무것도할수없다며담배연기를삼켰다뱉었다하는아버지
나도흰연기로사라질것같아요
동생을만나는건두렵지않지만
선생님도같이간다면동생을볼수있을것같아요

밥앞에서입을닫았던아이
썩어가는밥위에꽃잎하나를얹고싶어했던
찬마다밥마다피는꽃
사라지지않는꽃들조화이기를바랄뿐이라고
죽지않는꽃
꽃없는밥은씹을때마다앞이흐려지는밥이었지

터미널에서먹는밥
먼지가밥위를차지하고
떠나는사람들의발소리가그릇을울렸어
모르던형아들이꽃없는밥을줘요
한입마다떠나지못한향기가묻었지

숱한꽃들이머릿속에서터지듯피었죠
사라지지않는향끈적끈적한기억으로감도는향기
그런밥을안먹었다면머릿속꽃들은피지않았겠죠

집으로가자는사람은없어요
여긴꽃이피지않아좋아요
또래보다작은아이웃음은깨어진유리

넌여기로도집으로도오지않고
발밑에서하늘끝까지이어진빛으로날아갔지
조팝꽃들이하얗게피어
네가돌아오지않는날들을덮었어

<차가운음식속부서지지않는뼈가있어>

다시살아날때는
맞닿은온기가냉기를밀어낼듯
서로를감싸는체온이
부드럽게뼈를빚는다

파르메산치즈를골고루뿌린다
가늘게갈린뼛가루
염증이깃든실패의맛과
칼칼한핫소스와함께

차가운음식을섞자흔들리는몸통
혀는잔해들을엮어
찬덩이에생기를불어넣는다
이건새로운것일까
조각난기억이녹아든것일까

움직임없는창밖풍경
희미한불빛을혀끝으로우물거리자
어두워진거리는점점엉켜
창모서리비스듬히걸린달빛도
빛의결을흩뜨리며사라진다

마지막남은한입
식탁위식은조각
잔열은천천히사그라지며
지워진흔적을더듬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