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떠올리지 않고 가위바위보

누구도 떠올리지 않고 가위바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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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멀리 있는 누구도 떠올리지 않고 가위바위보, 이 하루는 뜻밖의 포춘쿠키
[누구도 떠올리지 않고 가위바위보]는 고은수 시인의 세 번째 신작 시집으로, 「중앙공원」 「소설이 문제였다」 「입소리」 등 58편이 실려 있다.
고은수 시인은 부산에서 태어났고, 부산대학교 윤리교육과를 졸업했다. 2016년 [시에]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히아신스를 포기해] [모자를 꺼내 썼다] [누구도 떠올리지 않고 가위바위보], 동시집 [선물]을 썼다. 2014년 동서문학상 본상을 수상했다.

우리의 생활과 실존이 고스란히 얽혀 있는 일상의 ‘말’들이 ‘예술’이라는 독특한 문장-시스템에 장착되고 그것이 공감을 일으켜 보편적인 감각과 사유로 고양할 때 비로소 ‘시’는 생성된다. 시는 일상에서 길어 올린 말들의 보고(寶庫)로서 일상어의 특수한 사용이자 그 과정에서 산출되는 미학적 발견이다. 물론 여기에는 시인에게 깃든 또 다른 일상-고유의 말투나 몸짓, 억양과 톤이 덧칠되면서 그 아우라가 완성된다.
특히 고은수 시인의 경우는 그 양상이 삶과 밀착되면서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무너뜨릴 때가 많다. 그것이 본능적이든 아니면 방법의 한 흐름이든 그의 시 쓰기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그 사이로 느리게 걸어가는 고양이, 꼬리가 끌고 오는 저녁. 막 시작된 노을도 동네로 내려앉아 식구가 많아졌다. 말소리가 들린다. 아이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 거리에서 마주친 어른들은 작은 음성으로 안부를 묻는다. 노란 불빛들이 하나둘씩 켜지면 길 가던 바람도 잠시 벤치에 앉고, 철쭉도 이제 어둡다. 돌아갈 집을 생각해 본다. 저녁은 낮은 음조, 서로를 보듬기 좋은 시간이다.”라고 노래하는 시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여름 저녁에」). 먼 곳에서 속삭이듯 흘러오는 조용한 침묵의 몸짓들이 들려온다. 또는, “그렇게 매화에게서 답장이 왔다/차례로 흐르는 전율이 있으므로/하나, 둘, 셋/아는 노래를 모두 불러도 좋을, 박수가/나오는 장르가 되었다/한 사람이 근처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있지만 꽃망울은 크게 숨을 고른다”고 노래할 때(「답장」) 이미 시인에게 몰아쳐 온 수많은 일상의 편린은 발아하여 만개한다. 그는 말하고 중얼거리고 멈춰 섰다가 갑자기 돌아가기도 하며 돌담에 웅크려 오랫동안 들꽃을 바라보다가 바지를 훌훌 털고 능선을 넘는다. 일정한 방향과 물결도 없이 단지 자신의 무게로만 사물에 닿는 바람처럼. (이상 박성현 시인・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저자

고은수

저자:고은수
부산에서태어났다.부산대학교윤리교육과를졸업했다.
2016년[시에]를통해시인으로등단했다.
시집[히아신스를포기해][모자를꺼내썼다][누구도떠올리지않고가위바위보],동시집[선물]을썼다.
2014년동서문학상본상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목백일홍이라고했다11
중앙공원12
여름저녁에14
꽃이비어있는시간15
모두외롭다16
妙18
칸나20
오늘의기분22
여름날23
쓴맛24
컵이곁에있다25
판26
여름하오28
사랑이오는길30
서풍이분다32

제2부
요즘자유에대해서생각하고있어요37
소설이문제였다38
내일은바다40
바다는아무것도모른다네42
빗속을걸었다44
방충망을사이에두고45
운김46
입소리47
화분에게48
가을이있는창49
가족사진50
갈전리에서51
외로움의얼굴을보라52
영혼이트이는곳54

제3부
이렇게하면되죠57
아직흙묻은신발을털지못했네58
언젠가금강60
모자62
비무장지대63
내전은멈추지않고64
선인장의나라66
지구도흐뭇67
라벤더68
흰꽃을삽니다69
십이월70
겨울의운현궁71
절박함이오늘을낳았네72
눈이푹푹,74

제4부
동백여자79
그앞에서카톡을했지80
사월82
배웅83
안부를묻다84
오늘의일기86
엄마의거울87
저여자88
금강여울에꾸구리가산다네90
백지앞에앉았다92
쓰기93
읽기94
답장96
귀가순해져97
이팝꽃핀날98

해설박성현어렴풋하면서도충만한그리움같은99

출판사 서평

추천사

고은수시인의시집은꽃들로가득하다.목백일홍,백합,철쭉,능소화,배롱꽃,맨드라미,장미,쑥부쟁이,각시붓꽃,선인장,라벤더,벚꽃,부겐베리아,매화,이팝꽃등등.시집여기저기에피어있는꽃들을이처럼한자리에불러놓고보면더없이향기롭고화려해보이지만,애재라,속사정을헤아려보면그꽃들은하나같이“만연한슬픔”이다(눈이푹푹,).그렇다면그속사정을차근차근짚어보는게고은수시인의시의진원지를찾아가는바른걸음일것이다.그러나고은수시인은그곳이어디인지애써발설하지않는다.물론시인이시행간에설핏비장해둔생의한때를소환할수도있겠고할머니의입소리가아련히들리는어린시절을끌어당길수도있겠다(입소리).말하자면고전적이든낭만적이든어떤상실감을“만연한슬픔”의동력으로짐작할수도있겠다.그런데고은수시인은그보다다른데다자신의시적영토를넓힌다.예컨대고은수시인은이렇게적는다.“척척접으면그간의상처를감쌀수도/있을것같은데//너는나에게더붉어지라고/붉음을덧바른다”(칸나).“더붉어지라고”달리말하자면더슬퍼지라고,“붉음을”곧슬픔을바르고“덧바른다”.이것이꽃의정체다.요컨대고은수시인은상처가,고통이,슬픔이아물길원하지않는다.오히려고은수시인은소설이문제였다에적은바와같이,즉신체가절단되어봉합수술을받은후한동안은수술부위를바늘로일정하게찔러신경이죽지않도록해야하는것과같이그상처와고통과슬픔을끊임없이현행화한다.그래서고은수시인은“여기나무는모두붉다”라고적을수있고(아직흙묻은신발을털지못했네),“살아가는,살아내는온도가여전히붉은색입니다”라고말할수있는것이다(오늘의기분).“꽃피면놀러가자,/다정하게말하던사람//이제꽃이되어다녀가네”라는막막(寞寞/漠漠)한문장은(배웅)그러니까어떤망실한대상에대한그리움을환기하는바가아니라그망실자체가꽃으로피고또한지는것을뜻한다.그리고그꽃은자연의이법대로반드시다시필것이며그러한데다가“매년피는꽃은/나이를먹지않는다”(이팝꽃핀날).참으로장려(壯麗)하지않은가.“끌어안고흘러가는것이있어/여기가그리움”이고“온몸이눈물이라/고스란히반짝인다”(언젠가금강).이것이한생내내두고두고피어나는꽃이라면말이다.
―채상우시인

시인의말

화병의꽃이시들었다
오가며수십번은눈을맞춘꽃이다
세세하게잘라기억을묻는다

아름다움은그런것

책속에서

<중앙공원>

아쉬움같은건없어보인다
강아지와보조를맞춰서걸어가는사람들
여섯개의발이경쾌하다

초록이깊어진나무곁을지나간다
짙은색이겹쳐지는자리에여름의
음영이깃들어있다,항상거기서멈추게된다

좁은어둠을다들여다볼수없어서
묘해진다

지금은집을나설때의심정이아니다
기분은바람을닮아가고있다

어느방향으로든길이나온다

저기백합도피었던자리에서그대로
말라간다,꽃잎이떨어지는속성이아니었다

그사이거리청소를마친누군가는
싸리빗자루를비스듬히세워두었다

여기서만나자,약속은없었지만
여기로들어서는순간모두약속이된다

<소설이문제였다>

갓을썰고있었다
뻣뻣한것이너풀거리기까지해서
손톱이딸려들어갔다
피가옆으로새어나오는데
요오드액을바르려다병째쏟았다
싱크대가핏물이랑빨간약이랑
섞여서갑자기분위기가섬뜩해졌다
요즘읽고있는소설이문제였다
손가락이잘린사람이그손가락을
봉합하는수술을하고나면한동안
수술부위를일정하게바늘로찔러서
신경이죽지않도록해줘야한다는
에피소드,저절로어깨가움츠러든다
눈살이찌푸려진다
주인공은그사람의집에있는새에게
물을주려고서울을떠나한라산중산간
폭설에갇히며집을찾고있었다
고통의칼을서로의가슴사이에두고
깊이끌어안는사람들이라니,
갓은알고있는지모르고있는지
여전히싱싱하고밴드싸맨내손가락을
무심히보고있다

<입소리>

할머니는표정이담담했다.기쁨도슬픔도넓은어깨위에거뜬히얹혀있는듯,힘든내색이없었다.늘자신의손으로먹고사셨다.어둑한방바닥에버선본을놓고,길이잘든가위로구불구불한것들을오려냈다.할머니솜씨는날렵한버선코에서마무리가되곤했다.나는그방에서노는게좋았다.잡동사니들로어지러워서구석이많았다.할머니는다된버선을머리에이고,한복입은여자들이있는집으로갔다.호호웃음소리가들릴때나는현관에쪼그리고앉아,널려있는고무신들을가만히봤다.할머니가신발을잘찾을수있을지걱정하면서.그때마다맛난것을사주셨다.할머니는황해도해주분이다.한번씩입소리를내는데어린내귀엔아이호라,이렇게들렸다.그럴때나는할머니가모르는산을넘어가고있었다.갑자기떡내놓으라,는호랑이도안만나고잘내려가고있다고.고단한날들이흘려보내는바람소리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