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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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아무리 세게 마음을 잠가도 새는 게 많았다
[스파이더맨]은 손석호 시인의 두 번째 신작 시집으로, 「방아깨비」 「스파이더맨」 「울음을 망치질하다」 등 61편이 실려 있다.

손석호 시인은 경상북도 영주에서 태어났으며, 1994년 공단문학상, 2016년 [주변인과 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나는 불타고 있다] [스파이더맨]을 썼다. 2025년 제1회 무등문학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손석호의 두 번째 시집의 제목은 ‘스파이더맨’이다. 「시인의 말」에 따르면 시인은 “새벽까지 별을 가리”키며 “오늘 밤에도/손목에서 거미줄”이 발사되기를 기다리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늦잠 속/슬픈 곤충이 기어다”니는 현실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별을 동경하며 스파이더맨을 꿈꾸지만 시인의 현실은 바닥을 기어다니는 “슬픈 곤충”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신세라는 자각이 뒤따른다. 그 간극에서 발생하는 비애와 아이러니가 손석호의 이번 시집 [스파이더맨]을 구성하고 있다.
공장노동자는 물론 건설 현장의 노동자, 고층 빌딩의 유리창을 닦거나 고층 아파트에 페인트칠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 철탑을 오르는 전기공, 폐지 더미를 주워다 팔며 살아가는 사람, 직접 재배한 과일 가격이 폭락해 공판장에 팔러 나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농부 등 먹고살기 위해 몸을 쓰고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손석호의 시집에는 살아 숨 쉬고 있다. 하나같이 고달프고 고단한 인생이지만 이들도 바닥을 기어다니는 곤충이나 벌레 같은 삶이 아니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스파이더맨처럼 별을 가리키며 살고 싶은 꿈을 꾸고 있다. 아니, 고단한 삶과 이들이 품은 더 나은 삶을 향한 동경과 꿈은 동시에 공존한다. 그 속에서 때론 비애가 발생하고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아름다움이 솟아오른다. (이상 이경수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저자

손석호

저자:손석호
경상북도영주에서태어났다.1994년공단문학상,2016년[주변인과문학]을통해시인으로등단했다.시집[나는불타고있다][스파이더맨]을썼다.2025년제1회무등문학상작품상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세상이고소해지려면더오래볶아야하는데벌써새까맣게탄다
방아깨비11
거룩한파리12
메뚜기볶음13
노루표페인트14
스파이더맨15
농게16
민달팽이18
말표구두약20
꼽등이22
동물재배용비닐하우스24
소금쟁이26
사마귀28
기생충30
노린재32
개미구멍34
반듯한개미36

제2부나는소화되지않는어떤이름을쉬지않고삼키고뱉는다
음소거39
근면한모기40
신림동42
지구를굴리는쇠똥구리44
물방개46
땅거미48
인간채집50
동물채집메모장52
칠성무당벌레54
돈벌레56
바퀴58
뱀60
오징어62
늑대64
나방66

제3부두드리면조금가벼워지는슬픔이납작해지고있다
용접봉69
망루70
울음을망치질하다72
컨베이어74
압력계76
되새김질―어느노동자의분신78
전태일과의한끼80
전기공82
영등포표류기84
백혈병86
망월동88
전봉준마지막길90
맥도날드할머니92
못94
비정규직96
거리의야옹97

제4부아무리세게마음을잠가도새는게많았다
오늘의날씨103
마두금104
손목시계―우크라이나106
핼러윈108
1987110
팽목항크리스마스112
굴레113
차이와사이114
김일수116
13월118
지문120
나의아저씨―이선균122
누설124
중독125

해설이경수바닥을기는곤충의생태학127

출판사 서평

추천사

“멀리터널끝이보이지만바라보는것으로만족하고/그냥여기머물래요”.출구없는현실에서오랜기다림끝에출구를발견하고도그대로주저앉겠다고말하는이유는무엇인가?변하지않는현실에서우연히발견되는출구는허상일뿐이라는것일까?출구는개인이요행으로얻는기회의문제가아니며,개인적인해결책은우리시대의구조적이고억압적인폭정에맞서는“정직한굴종”의태도가아니라고여기기때문일까?또는어제보다더높아진계단앞에“태어날때부터정해”진저지대의삶에배인굴종적습성으로빛을피해아래로기어드는생리를가진벌레가되어버렸기때문인걸까?(?기생충?)이시집전반은이세가지질문이섞이고변주되고반복되면서우리시대를바닥까지해부해보이고있다.따라서이시집에압도적으로많이등장하는벌레는카프카식변신이라기보다우리시대를해부하면서발견되는병리적증후에대한명명에가깝다.‘방아깨비’처럼제자리에서반복적으로뛰면서앞으로한걸음도나아가지못하는청년세대,높은교육을받고서도‘거미’처럼빌딩에서줄을타야하는현실,‘농게’가팔을버리듯이컨베이어에팔을내주는일도살기위해어쩔수없다는식의은유는은유가아니라직유라고해야할것이다.
한국인사십대의사망원인1위가암이아니라자살이라고하는통계가말해주듯극심한경쟁체제는인간적존엄과사회적존중을잃어버리게만든다.우리사회가‘공정하다는착각’을불러일으키게만드는능력주의는불평등을내면화하고스스로를착취하고자폐적방어선을치고자기손으로출구를닫아버리게만든다.내면과외부는분리되지않는다.따라서시인은내면을깊이응시하는것이현실과맞서는것이라는듯시를막다른곳까지끌고간다.시인이쉽게정의와공동선을희망하지않는이유도여기에있다.그래서우리시대에시가응시해야할가장정직한자리에이시집이놓여있는게아닐까?
―백무산시인

시인의말

새벽까지별을가리킨다
오늘밤에도
손목에서거미줄은발사되지않는다

늦잠속
슬픈곤충이기어다닌다

책속에서

<방아깨비>

펄쩍펄쩍아무리뛰어도그자리가그자리지구가발목을꽉잡고있으니꼬꾸라지지않는다뒤뚱뒤뚱일어서고걷고뛰고멈췄다가앉고눕고벌떡벌떡다시일어서고걷고뛰고멈췄다가눕는다뒤적뒤적보지말자듣지말자냄새맡지말자맛보지말자만지지말자혹보이고들리고냄새나고먹고만지게되더라도느끼지말자어기적어기적출근하자30분일찍출근하자마을버스타고전철로갈아타고다시마을버스를타고내리자마자뛰자눈부릅뜨고허벅지꼬집으며일하자쓱싹쓱싹쉬지말자쉬더라도실적을잊지말자퇴근말자퇴근하더라도야근하자재깍재깍사랑하지말자사랑하더라도결혼하지말자결혼하더라도섹스하지말자질금질금섹스하더라도아이낳지말자오늘을간신히찧었는데쿵덕쿵덕내일때문에잠은오지않고멈추면죽을것같고버석버석창밖달속에토끼가방아를찧고내심장이방아를찧고말똥말똥

<스파이더맨>

나는도무지책장이넘어가지않는악의꽃의어느페이지에손가락을꽂아두고있었고형은대자보를붙이고있었는데잠자리가우리의여름방학처럼거미줄에달라붙어퍼덕이고있었어

형은잠자릴떼어내날려보내며말했지겹겹이둥글게갇힌과녁처럼거미줄의끈끈한가로줄은위험해거미는위험할때끈끈이없는세로줄을타고잽싸게땅바닥으로도망친대거미도가로줄엔붙으니까

즐겁지는않지만우리는오랫동안거미줄보다낮은곳에살고있지그렇다고절대로기어다니지는않아주로걷는척뛰어다니지높은곳은쳐다보지않아서줄이나빽같은건생각하지도않았어

십년만에만난형은이제줄타며산다고한다손목에서거미줄이나오지않아한뭉치의세로줄을둘러매고다니며공중에서세로줄을타고땅바닥으로도망치며산다고,이십층이상올라가면일당이십만원올라간다고

<울음을망치질하다>

평화시장뒷골목을헤매다가숨찬바람
창신동오르막허름한골목에서주저앉고
뒤따라온늙은아비의걸음에술냄새가났다
지난한달을납품하고돌아온오른쪽어깨는
여전히무언가매달려있어
비탈보다더비탈져있고

탁.탁.탁.
고무망치소리
수척한골목을깨우면
길건너수선집재봉틀이촘촘하게오늘을꿰매고
심술궂은오토바이수시로찾아와시간을뜯어놓는다
좀체풀릴기미없는영하의담벼락에그려진복사꽃
돌아올수없는자가두고간봄처럼
일년내내피어있고

몸뚱이만가지고태어나서
무언가담을수있는가방만드는일을시작했다며
연신가죽을자르고두드리고꿰맨다
매일하는일이지만,삶처럼
칼끝은언제나약한자를겨누고있어
내피까지푹찢어지지않으려면
손가락도부릅떠야한다

폐쇄된공장에설치한바리케이드도망루도
숨겨주거나지켜줄가방은될수없었다
지난밤들소떼울음소리속
죽은아들의절규가섞여있었을까
새벽부터소가죽을넓게자르고,이제라도
아들을숨기려는지주머니깊은가방을만든다

눈금자를아무도모를세상깊숙이밀어넣고
견뎌온거리와남아있는거리를재단하고
가늠할수없는슬픔의눈금이뭉개질때까지
울음을망치질한다
양각이음각으로
음각이마음속문신으로새겨지고
두드리면조금가벼워지는슬픔이납작해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