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철물점

발해철물점

$12.00
Description
골목 끝에 떨어지는 고욤나무 이파리가 지구보다 깊다
[발해철물점]은 이경주 시인의 첫 번째 신작 시집으로, 「스키드마크」 「발해철물점」 「워커」 등 60편이 실려 있다.

이경주 시인은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났으며, 2022년 [경남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발해철물점]을 썼다.

이경주 시인의 첫 시집 [발해철물점]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것들에서 삶의 이면과 원리를 찾아낸다. 이경주 시인의 눈에 띄는 대상들은 한결같이 우리 모두 한때 소중하다고 여겼던 것들이다. 이들 대상과 ‘나’ 사이의 동질감을 찾아내고 드러낸다. 시 속에 드러난 내면 풍경이 그것인데 이는 조화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과 맞닿아 있다. 그 세계는 대부분 익명 아닌 실명으로, 감춰짐이 아닌 은근한 드러냄으로, 격렬한 거부보다는 견딤과 순응의 몸짓으로 이루어진 세계다. 이런 세계가 과거 그리고 볼품없는 모습 속에 감춰져 있었다면, 맞섬의 몸짓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래서 시인의 눈길은 촉촉하고 따뜻하고 정겹다. 그렇다고 냉정한 관찰자의 입장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이런 절제와 온기는 이경주 시인이 지닌 특징이자 덕목이다. 이것은 그의 시에 개성을 이루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리고 생에 대한 더 깊은 통찰을 통해 시 전체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는 작업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이상 신덕룡 시인의 해설 중에서)
저자

이경주

저자:이경주
충청남도홍성에서태어났다.
2022년[경남신문]신춘문예를통해시인으로등단했다.
시집[발해철물점]을썼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스키드마크-11
가족에대하여-12
로드킬-13
구두닦는시간-14
경건한아침-16
발해철물점-18
장갑-21
벌초-22
슬하-24
비닐성자-26
등을내밀다-28
역전(逆轉)-30
판공성사-31
엽록체에대한기억-32
평토장-34

제2부

워커-37
둥지-38
강원도식당-40
질주-42
숟가락-44
착한개-45
복권을든남자-46
껌을씹다-48
감자를삶으며-50
재를넘다-52
보일러-54
터지는찐빵집-55
회식-56
안양장례식장10호영안실-58
속없는돼지-60
가래침-62

제3부

사과나무에대한경배-65
시다,라는말-66
벽돌들-68
동행-70
명화식당-72
퀵서비스-74
오래된사진-76
하늘-77
중고차파는날-78
껌딱지-80
시골정류장-82
천국은시끄럽다-84
장항선-86
바다가있는달력-88
엄마손칼국수-90

제4부

남한강메기매운탕-93
불타는오금공원-94
붉은단추-95
벨소리-96
손가락탕-98
금연구역-100
냉장고-102
고라니의마을-104
버스기다리는사람들-106
폐업정리-108
거미줄-110
비둘기민원봉사실-112
개심사해우소-114
젖어들다-116

해설신덕룡생의이력들춰내기-118

출판사 서평

눈앞에떠다니는풍경들을가슴에옮겨놓는다.
이조그만것들에도
무게가있다.

골목끝에떨어지는고욤나무이파리가
지구보다깊다.
-「시인의말」중에서


책속에서

스키드마크

경사진골목길을내려가는
리어카
꽁무니에붙은폐타이어가
온몸으로급하게
바닥을쓸고있다
바람빠진몸에서도
저렇게쓱쓱,살벗겨지는
소리가울려나온다
타이어가새까맣게
길을내는언덕
허리굽은노파가닳아버린
가슴을끌며지나간다■


발해철물점

버스정류장바로앞
시장입구에있는철물점
반쯤열린유리문사이로
뭔가를다듬고있는늙은주인이보인다

굵게패인주름
깊은비밀이담겨있는듯한눈빛
분주히오가는발길과자동차소음속에서
바위처럼앉아있는그는

좁은반도의반쪽땅
이도시귀퉁이로흘러온고독한유민일까
지금그가닦고있는
기다란쇠붙이같은것은
머나먼왕국에서들고온유물일까

어쩌면그옛적초원을달리던용사들에게
칼과창,철촉과등자를만들어주던
강인한팔뚝의대장장이는
그의오래된선조

불타는이백년수도를뒤로한채
식솔들과먼남쪽으로발을옮기면서도
품안에깊이숨긴,가문의명검
한자루쯤있었으리라

풀무와망치질대신
전깃줄과고무호스,빗자루를팔며연명하지만
대륙회복의꿈은천년을이어온
누대의유언이리라

북쪽하늘보이는발해철물점
낡은의자위에서
긴세월날벼리며
무변광야로달려갈영웅기다렸을이

오오,저손에들어올려질
눈부신서슬
상경용천부를뒤흔들천리준마들이여

노인의무릎을향해뻗는내손끝에
와닿는쇠붙이의향기
가슴속에는뭉클한불꽃이돋는다

서서히버스가출발하고
철물점은멀어지고
오래도록잊혔던왕조의후손이
아스팔트먼지속에다시묻혀간다

언제이루어질지알수없는
숙명의무게와
기나긴기다림을말없이버텨왔을간판도

울컥솟아오른망국의슬픔이펼쳐놓은
붉은하늘아래
아득하게사라져간다■


워커

아파트신축공사장옆
길가에버려진워커

꽁꽁조인끈들다풀어주고서
누가여기에놓고갔나

한때의탄력과단단함
다소진해버리고

푹고꾸라져서는
다시는,일어서지못할것같다

가끔은빠져나간발이생각나는지
헐렁한제거죽을
오므려보기도하는워커

그깊은주름사이로
살며시파고드는햇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