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화 - PARAN IS 19

주화 - PARAN IS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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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구지혜

저자:구지혜
본명은구명숙.
경상북도영양에서태어났다.
한남대학교대학원문예창작학과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
2011년[시와정신]을통해시인으로등단했다.
시집[그늘을꽃피우는시간][안녕,나의創世편의점][주화]를썼다.
제5회전국계간지우수작품상,제19회[한남문학]운문대상,제2회[창작세계]창작문학상을수상했다.
2019년,2022년대전문화재단창작지원금을수혜했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좁은문
뻐꾸기그리고뻐꾸기
오르는몸
푸른뱀
맨발삼매
낙엽
안개
물류창고의아라한
비늘
중부권의모래바람
음력8월15일
찬란
서있다
여기여기
청리움

제2부
대기실
무명의방
조제의방
혈의서랍
안마의자의방
아이스팩
주차선안의몸
인등
밤이내려앉으면
벽에앉는자세
고독
두물결의몸
비의체온
열여덟번

제3부
위로
웃지않으면시들지
면접을기다리는얼굴들
새마을교실이데아
혈(血)씨의궤도
신화,출제되다
실업급여창구앞에서는
광대
제복의철학
빅브라더에게보내는기도
성곽의피
고명딸
같은하늘아래서
혼돈
운명의학교
MBTI거울앞에서

제4부
주화
2025년전의주화
신의Log
이름에대하여
관계
당신이야기
다시,정자교
깊은연민을들다
동거
낯선바람의시간
시절인연
광명(光明)
자정무렵부터
혹한
자유

해설김홍진몸과틈,경계의존재시학

출판사 서평

추천사

시집제목도그렇지만이시집에가장자주등장하는단어는‘주화’다.그렇다면‘주화’란무엇인지부터궁구하는건당연지사다.그런데이에답하는일은곤혹스럽다.물론‘주화’는사람이름이기도하고,등불이기도하고,주화신(主火神)이아닐까싶기도하고,때론동전을뜻할때도있다.그러나‘주화’를그무엇이라지목하든혹은그무엇하나로는결코귀결되지않는다고단언하든불충분하긴매한가지다.‘주화’는“수천개의다른얼굴속에서번들”거리는과잉이며(비늘),그“이름을부를때마다한겹”씩벗겨지고돋아나는잔여이기때문이다(이름에대하여).그리고‘주화’는“2025년전의안드로메다/수억개의은하가운데/가장먼티끌속씨방”이며(2025년전의주화),“작은동그란그릇하나에”담긴“죽음”이다(찬란).그리고그“붉은팥알같은두눈동자는창가를떠나지못”한채(2025년전의주화)이시집행간마다에서그러하듯우리의“진짜얼굴을”언제어디서나“마주하고있”다(빅브라더에게보내는기도).그리하여“주화,/그말이한번만건너와도귀의연못은물살의울림과파문의떨림을휩쓸고지나간다”(두물결의몸).정녕이러하다면‘주화’를실재의흔적이라고말하는데주저할까닭은없다.‘주화’는시편들곳곳에등장하지만자신의“이름”을“스스로지우고다시쓰며여전히”그것으로남지않고흘러넘친다.그중중무진(重重無盡)의만다라가바로이시집이다.“주화는오늘도부르며벗고벗으며부르고있다”.(이름에대하여)
―채상우시인

시인의말

복지관지하1층실내수영장
한통의물이우리를품고
몸들은서로의물결을받아적는다.
음~파음파
습기어린계단끝에서
우리는같은숨을나눈다.

몸이지나온장소들을더듬다보니
나는어느세계에오래잠겨있었다.

함께설수있는단하나의자리
시는구원이아니라
물위로천천히떠오르는숨에가까웠다.

우리는
어떤몸을입고
어떤자리에서
다시살아낼수있을까?

책속에서

<뻐꾸기그리고뻐꾸기>

산밭에서여자는김을맨다
몸을일으키고구부리고펴는동안
여자의몸은끝내밭이랑에서떨어지지못한다

진흙은잡초처럼달라붙고
개여뀌,금방동사니,쇠비름,명아주,바랭이……
이름가진잡풀들이여자의혈관속으로
땀과흙먼지와함께스며든다

몸은밭이되고밭은다시몸이된다

보리밭같은싱싱한기운
풀의향
버석마른흙냄새같은어머니
(언제부턴가,모든어머니를땅이라부르게되었을까)

아궁이재를물에풀어허기를달이듯
여자는밭이랑에붙어있다
똥물을퍼다마실것같은
이억척의목구멍
얼마나찢어져야살아있다는증명이될까

꽃가마를타고시집오던날
다홍치마연두저고리는잠시몸을빌려썼을뿐
무성한풀은여자의몸에서먼저자라났다

이제는잡풀조차뿌리내리지않는몸
넓은하늘아래
여자가누울곳이라곤
기울어가는황토흙집마저없다는것여자는이미알고있다

그때,뒷산에서뻐꾸기가운다

솥단지하나없이
살아온생들이서로의울음속으로겹쳐들어간다

<고독>

절벽속에는아무기척도머물지않았다
부서진뼈들은
바람의스침만으로도기울어질방향을오래고르는듯했다
지네들은어둠의살갗에말없이달라붙어있었다
차가운돌바닥위로이끼들의숨결이낮게번져갔다
아득했다
위태로운습한기운이가장자리에서부터천천히포위망을좁혔다
가늘고길게늘어진생각들은
돌아갈길을잊은채검푸른파도의그림자만바라본다
석순들은아무말없이
어둠과닿은모양그대로묵묵한굴곡의몸을기댄다
미로는들어갈수록
소리없이높아지는척추처럼여러갈래의고요를세우고
한여름에도조금더깊은냉기를품는다
그러나

그모든침잠의중앙에온화한미소하나가
마치오래전부터그자리를알고있었던것처럼
가만히들어앉아있었을까

<주화>

간밤불의흔적을찾다
늦잠에서깬주화가블라인드를개었을때맞은편동큰문열리고

그때마다긴막대자루하나불쑥불쑥튀어나와까맣게낀출입문바닥을연신문지르고있는것이보였다바닥을붉은양탄자로덧댈지아궁이를치고큰폭으로반등해이그을음을뜰까?까만대걸레가중얼거리는듯들락거리며연신거뭇거뭇한아궁이에남아있는재를쳐내고있었다

주화는거실문닫고부엌안으로돌아와아궁이에불을피웠다주전자밑바닥이타는그을음일었다침실돌아거실을타고주화가조금전까지누워있거나서있던바닥몇페이지에도거뭇거뭇한그것이고여있는듯도하였다

동그라미세모네모따위의일정표를모아‘다시지필까?’하고주화가중얼거렸을때화요일해는멀리서도불씨를살리고있었다

주화는사그라진지난달력한장을앞으로돌렸다‘무시하거나방치하거나함부로땔감으로쓰면안되는이유가있지’주화는‘말해뭐해’특이한말투로‘말해뭐해’그말을몇번이고입속으로되뇌었다

‘희귀해서수백만원’주화는엄지와검지사이에끼어있던주화를일순놓쳤다원탁위에탁!불꽃일었다테이블위에는네귀퉁이끄물끄물한책이며불쏘시개로쓸노란색포스트잇덕지덕지달라붙은노트북타다만거멓게식은기형의커피잔

지름이900센티미터쯤되는원탁그가장자리쪽으로주화가상체일으켰을때주화의몸찌지직거렸다‘구석에처박힌주화나길바닥에엎어져있는주화의그을음잘보살펴보아야지’

지난밤,향초는그을음켠벽을남기고주화가‘혹시,빨간돼지저금통을한국은행에들고가면싫어하나눈치보지않았니’주화는주화를다시엄지와검지사이에끼워놓은걸일순놓쳤다‘아니,쨍그랑거리며귓바퀴에서몇바퀴불씨를피우다이내사그라진들말이야?’

주화속에박제된의관을갖춘노인의눈빛이새어나와주화의눈빛속으로그을음이흘러들었다박제된그을음의눈빛을다른쪽으로돌리자‘100’이란숫자의불씨가아직살아있는듯도하였다

주화는다시베란다블라인드를깔려고했을때,
건너편출입문앞에가물가물까만그것이꺼졌고불의흔적을우물거리며주화는그곳이잔뜩낀일정표를들고현관문을힘주어열었다